<377화>
377. 조금 다른 새학기
아침마다 눈을 뜨기가 두려웠다.
“쿠울…….”
“쿠아…….”
“크앙…….”
“스으…….”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제각각의 숨소리 때문에.
상호는 슬쩍 실눈을 떠서 창밖의 색을 확인했다.
‘……새벽이군.’
해가 고개를 디밀지 말지 고민하는 때. 아직 등교를 할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야만 했다. 애들 아침밥을 차리러.
그는 앞뒤로 붙어있는 지윤과 나빛을 떼어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11인분쯤이면 되나…….’
9명이니 두 명한테만 2인분 만들어 주면 되겠다. 상호는 냉장고를 뒤적이며 먹을거리를 탐색했다.
개학식이지만 사람은 바뀐 게 없고, 오늘도 오전부터 수업을 할 예정이니, 점심 먹을 때까지 배고프지 않게 든든하게 먹여놔야 할 듯했다.
‘일단 계란후라이부터 만들면서 생각할까…….’
치이익……
방에 퍼지는 기름 냄새와 소리가 아이들을 하나둘씩 깨웠다. 제일 먼저 일어난 은율이 눈을 비비며 상호의 옆으로 다가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으응. 잘 잤어?”
“저 화장실 좀 쓸게요.”
“응.”
상호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은율이 화장실에 들어가고 아이들이 슬금슬금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화장실 쪽에서 나빛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에 누구 있어……?”
“응.”
“은율이야……? 언제 나와? 나 급해…….”
“좀 걸려.”
“으…….”
나빛이 발을 동동 굴렀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다 못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빛아, 기숙사 갔다 오는 게 좋겠는데.”
“네에…….”
결국 나빛은 창밖으로 뛰쳐나가 보호막을 타고 날아갔다.
다른 아이들도 화장실을 가고 싶은 눈치였지만 급하지는 않은 듯했다. 상호는 서둘러 차린 식사를 식탁에 내려놓으며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밥부터 먹자.”
“므앙.”
곧 아이들이 식사를 하러 몰려들었다. 하지만 상호는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화장실만 바라보았다.
‘나도 써야 하는데…….’
써야 할 사람이 아홉인데 화장실은 하나.
불안한 눈빛을 지은 상호를 태화가 젓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쌤 왜 안 먹어?”
“은율이 나오면 먹으려고.”
“뭐?”
아이들의 눈이 툭 불거졌다.
“은율이 나오면 먹는다고?”
“은율이를예?”
“느아아악!”
“……밥을 먹는다고. 빨리 먹기나 해.”
상호는 한숨을 쉬고 손사래를 쳤다.
아이들이 식사를 끝낼 때까지도 은율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접시를 싱크대에 투하한 태화가 순간이동으로 화장실 앞에 나타났다.
“야, 도은율! 언제 나와!”
“좀 걸려.”
“걸린 건 니 똥꼬에 돌이 걸렸겠지!”
“미안.”
“쒸바…….”
상호는 은율의 몫을 슬쩍하려 하는 다혜의 손을 톡 치며 말했다.
“태화야, 기숙사 가라. 너희도 기숙사 가서 등교 준비해.”
“쌤! 쌤이 은율이 똥꼬 좀 개통해봐! 꽉 막혀가지고 싸는 소리도 안 들려!”
“……나가!”
창밖으로 던져진 태화가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다른 아이들도 더 기다릴 순 없었는지 하나둘씩 창문을 넘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세희와 다혜도 결국 포기하고 기숙사로 향했다.
그래도 은율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진짜 막혔나……?’
상호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화장실을 지켜보자 문 안쪽에서 은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생님.”
“응.”
“애들 다 갔어요?”
“응.”
그제서야 손 씻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태연하게 걸어 나온 은율은 식탁에 앉아 상호와 눈을 마주쳤다. 네가 먹기 시작해야 나도 먹을 것 아니냐, 라는 눈빛으로.
상호는 당황하며 젓가락을 집었다.
“그…… 은율아?”
“네.”
“화장실에…… 왜 그렇게 오래 있었는지 물어봐도 돼?”
“선생님이 애들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요.”
은율이 반찬을 삼키고 말했다.
“이제 편히 식사하세요.”
“……그것 때문에 있었던 거야?”
“네. 아침마다 힘들어하실 것 같아서.”
확실히 아이들도 등교하는 날에 같이 자는 건 무리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몇몇 애들은 그래도 막무가내로 자고 가려고 할지도 모르지만.
상호는 씩 웃었다.
“고마워.”
“반장이니까요. 이젠 아니지만.”
은율은 빙긋 웃고 식사를 계속했다.
상호는 오랜만에 찾아온 조용한 아침 식사를 즐기며, 느긋하게 출근 준비를 마쳐 은율과 함께 방을 나섰다.
* * *
“쌤! 은율이 똥꼬 뚫었어?”
“야, 임마!”
쏜살같이 날아간 지탄이 태화의 이마를 때렸다.
퍼억
“켁!”
“뚫긴 뭘 뚫어! 첫날부터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우씨, 좀 물어볼 수도 있지…….”
태화는 꿍얼거리며 붉게 물든 이마를 문질렀다.
오랜만에 찾아온 교실. 하지만 사람은 작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상호는 간만에 마주한 1학년, 아니 이제는 2학년이 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얘들아, 오랜만이…… 응?”
어째 사람이 많았다.
세희, 태화, 나빛…… 이서, 가은, 초란. 상호는 15보다 위로 올라가는 숫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너희는 누구니?”
모르는 얼굴이 넷이나 끼어 있다. 자기들도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는 눈초리들. 그중 한 아이의 어깨에 미래와 단비가 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외쳤다.
“옆반에서 납치했어요!”
“멍!”
“……돌려보내 줘.”
“저희도 동생들 필요하단 말이에요!”
“멍!”
“그건 필요가 아니라 희망사항이야……. 어서 보내줘.”
“끼잉…….”
미래와 단비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놓아주었다.
“잘 가, 얘들아…….”
“심심하면 언제든 놀러와도 돼, 멍…….”
정말로 동생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듯, 아쉬운 표정으로.
하지만 상호도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결정을 내렸으니, 조금 미안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나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응?”
동글동글한 인상의 키가 작은 아이.
상호는 그 아이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이다가, 자기 반을 까먹어서 저렇게 멀뚱히 앉아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개학식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미래야, 단비야. 저 친구 원래 반 데려다줘.”
“얜 저희가 안 데려왔는데요.”
“멍, 얘 누구야?”
‘?’
그럼 대체 왜 여기 있는 걸까. 상호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친구야? 너는 왜 여기…… 왔니?”
“싸인해주세요!”
“……응?”
아이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선생님 팬이에요!”
“…….”
“선생님 여기 계시다는 말 듣고 이 학교 왔어요! 근데 선생님은 신입생 안 받으신다길래 좀 실망했지만…… 그래도 여기 입학한 거 하나도 후회 안 해요! 이렇게 실물로 볼 수 있으니까!”
“저기…….”
“꺅! 목소리 뭐야뭐야뭐야!”
“…….”
말을 많이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다른 반에서는 이 실종된 아이를 한참 동안 찾고 있을 것이다. 상호는 빨리 돌려보낼 요량으로 교탁 밑을 뒤적거렸다.
“그래. 싸인 줄게. 대체 무슨 의미인진 모르겠다만…….”
그때 교실 문이 벌컥 열리고 교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밖에 안 남았는데…… 앗! 찾았다!”
“강 선생님! 남의 반 아이를 납치하면 어떡해요!”
“네? 제가 그런 게 아닌…….”
“아무리 학생이 탐나도 그렇지! 정령까지 강 선생님이 가르치진 못하잖아요! 가자, 가자 소현아.”
“앗, 싸인, 싸인 받아야 하는데……. 다음에 받으러 올게요오오옷!”
여학생은 교사들의 손에 이끌려 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는 상호에게, 교사들과 함께 달려왔던 미진이 톡 쏘아붙였다.
“귀찮은 건 싫은데, 귀여운 건 좋고. 그래서 1학년 한 명은 꼭 필요했나 봐요?”
“네? 아니, 제가 데려온 거 아닌데……. 저 애가 멋대로 들어온…….”
“지금 애 탓하는 거예요?”
“아니 그게 사실이라고…….”
“부끄러운 줄 아세요.”
수업종이 울리자 미진은 홱 돌아서 문가로 향했다.
“개학식에도 수업하실 거죠? 어차피 2학년 애들은 저한테 맡기시겠죠. 기껏 2학년씩이나 됐는데 담임선생님한테는 또 뒷전이네요.”
“아니…….”
“애들 옷 갈아입게 나오기나 하세요.”
“……네.”
틀린 말은 없다. 반박할 말도 없고.
상호는 고개를 푹 숙이며 미진을 따라 나섰다.
* * *
“……미진 선생님 말대로.”
상호는 스탠드에 앉은 아이들을 뒷짐을 진 채로 둘러보았다.
“2학년들은 미진 선생님이랑 수업한다.”
그 말에 단비와 미래가 항의했다.
“직무유기! 멍!”
“월급도둑!”
“언니들 수업 때문에 그래.”
새학기. 3학년의 첫날.
늘 그래왔듯 첫날이라고 봐줄 생각은 없었고.
3학년부터는 그 어떤 편의도 봐주지 않으며,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할 거라고 벼르고 있었다.
“3학년.”
상호의 나직한 목소리에 3학년 아이들이 자세를 바로 했다.
“세희, 태화, 나빛이. 너희한텐 확실히 말했지. 내가 싫으면 언제든지 반을 바꿔도 된다고. 하지만 수업 도중엔 못 바꾼다고. 시작하고 나면 수업이 끝날 때까진 무조건 받으라고 했어. 그치?”
“응.”
“네.”
그게 첫날. 세 아이들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하지만 상호는 아이들을 감상에 젖게 놔두지 않았다.
“오늘 그걸 한 번 더 말해야겠다. 만약 오늘 수업이 끝난 후에…… 반을 바꾸고 싶다면 부담없이 말해. 난 절대로 미워하지 않을 거니까.”
“그런 일은 없을걸요.”
은율이 중얼거렸다.
“무슨 수업이든 상관없어요.”
“……그래.”
상호는 살짝 웃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치만 오늘 수업은 무조건 너희 예상보다 힘들 거야. 너희. 확실히 헌터가 되고 싶은 거지?”
“네.”
“내가 생각하는 헌터의 기준은 나다.”
다른 이들과는 명백하게 다른 기준. 그는 검지를 들어 아이들을 가리켰다.
“원래 이 수업은 세희만 하려고 했어. 그런데…… 너희는 내 생각보다 빠르게 따라와줬다. 내가 예상 못한 능력을 보여준 애들도 있었고…….”
그의 시선이 지윤과 태화, 이츠키를 차례로 훑었다.
“그래서 너희도 이 수업을 하는 거야.”
아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수업……이요?”
상호는 그제서야 씩 웃었다.
일부러 이때까지 단 한 마디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이들과 먹고 자고 한 방에서 살면서도.
내던져지자마자 적응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가자.”
그는 엄지로 주차장 방향을 가리켰다.
“야외실습하러.”
* * *
“짜──증──나아아──!”
태화가 차창 밖으로 불꽃을 토해냈다.
“짜증나!”
“시끄러 임마. 싫으면 헌터 하지 마.”
상호는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깊은 산골 속. 학교가 실습을 나가는 곳보다 더 깊은 곳.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은 구불구불한 도로를 차가 달려가고 있었다.
“너 물 만드는 마법은 배워놨지?”
“므앙?”
“다혜야, 물만두가 아니라 물 만드는…….”
“꾸웅…….”
다혜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차창에 볼을 꾹꾹 눌렀다. 물만두 마법이란 말에 뭔가 엄청난 기대를 한 모양이었다.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다시 태화에게 물었다.
“그래서 태화야. 물 만드는 마법 배웠냐고.”
“배우긴 했는데…….”
“마실 순 있지?”
“마셔도 되긴 하는데…….”
“그럼 됐어.”
“콜라 마시고 싶어!”
“헌터 때려쳐.”
“치이…….”
태화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아이들도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자연인 체험.
‘그게 몇 박이 될지는 모르고 있겠지만.’
상호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차를 몰았다.
한참을 달리자 도로가 부서진 곳이 나왔다. 이 너머부터는 차를 끌고 갈 수가 없을 듯했다.
“내리자.”
아이들이 군말 없이 그를 따라 내렸다.
그들은 나란히 걸어 산으로, 숲으로 들어갔다. 더욱 더 깊은 곳을 향해서. 자유로운 새들도 감히 가지 않는 곳까지.
그들의 신발에 다른 땅의 흙이 서서히 묻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