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376화 (376/501)

<376화>

376. 다가온 개학

“그놈이 마지막이었다구?”

“네.”

상호는 차를 홀짝였다.

“그 이후로는 살인이 없었어요.”

방송국에서의 일을 끝으로, 악마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일어난 살인은 범인이 인간이라고 확인되었고.

상호의 앞에 마주앉은 해련이 한숨을 폭 쉬었다.

“큰일이었네.”

“큰일이었죠.”

“그래도 잡긴 잡아서 다행이야. 사람 몸을 옮겨다니는 악마라……. 아이들이랑 같이 찾았다고 했나요?”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태화랑 이츠키가.”

“악마를 찾을 수 있는 거야?”

“네.”

“어린 애들이 대단하네…….”

해련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밖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치만 어린 아이들한테 너무 큰 부담은 아닐까, 걱정도 되고.”

“애들도 이제 열아홉이에요. 제가 교장선생님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많아요.”

상호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해련은 대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묘한 눈빛으로 상호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 말을 들으니까 참 새삼스럽네. 강 선생이 내 생각보다 훨씬 어리다는 게…….”

“……스물다섯이면 교장선생님보다야 한참 어리겠죠. 지금 태어난 아기랑 제 차이보다 교장선생님이랑 제 차이가 두 배…….”

“그렇지…….”

해련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튼실할까…….”

“…….”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도망칠 곳을 찾았다.

해련은 그런 상호를 당장이라도 덮칠 듯이 열렬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악마가 또 나타나면 또 바빠지겠네요.”

“그렇겠죠.”

“신입생은 어떻게 할 거예요?”

“……글쎄요.”

신입생을 신경 쓸 시간은 없다.

악마가 나타나면 또 움직여야 하고, 세희의 수련도 끝나지 않았다. 심상 속 악마도 잡아야 하고, 악마에게 당한 사람들도 깨워야 하고. 악마들을 죽여서 처치하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고.

또 하나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거듭 생각해도, 신입생은 받을 수 없었다.

“못 받을 것 같아요. 적어도 올해는. 아무래도 당분간은 지금 있는 아이들에게 집중을 해야 할 것 같아서…….”

“2학년 아이들이 섭섭해하지 않아요? 동생들이 오기를 바랄 텐데.”

“제가 더 잘해줘야죠. 그래서 애들이 적은 만큼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도 하는 거니까…….”

“뭐 그건 그렇지. 그러면 입학설명회도 빠지겠네요?”

“그렇겠죠.”

“으음…….”

해련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옆으로 갸웃했다.

“그런데 강 선생. 요투부? 요투부가 뭐야?”

잔을 기울이던 상호의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몰라도 돼요.”

“아니, 손녀가 그 말을 하는데 뭔지 통 못알아듣겠더라구……. 이사장도 학교 홍보에 쓴다 그러던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강 선생이 그걸 한다던데, 맞아요?”

“아뇨.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 그래도 강 선생 젊으니까 요투부가 뭔지는 아는 거지? 나 좀 알려줘. 시대를 못 따라가는 늙은이가 된 것 같아서 슬퍼……. 나도 손녀랑 말 잘 통하고 싶어…….”

“백해무익한 거예요. 가짜뉴스에 음란물에 선동 날조가 판치는…….”

상호가 손사래를 치며 한 말에 해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우리 손녀가 그런 걸 본단 말이야……?”

“네. 못 보게 하세요.”

“큰일났네……. 알았어. 한번 말해 볼게…….”

해련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차를 찔끔찔끔 홀짝였다.

물론 하솔이 그런 영상을 볼 리 없다. 상호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솔이 요튜브를 계속 보다가 ‘여고 존잘쌤 동거 브이로그’에 관해서 해련에게 말하게 되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될 터였다.

‘들키면 선생 때려치고 애들이랑 도망쳐야지…….’

상호는 그렇게 결심하고 남은 차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 * *

2월 중순.

입학설명회를 기점으로 교사들이 학교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상호가 처음 보는 교사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아마 올해 임용된 교사들.

미진에게도 후배가 생긴 것이다.

‘나도 이제 3년차구만.’

더 이상 막내로는 보이지 않을 터였다. 딱히 재작년보다 업무 능력이 발전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곧 교사들이 숙소에 다시 입주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므아앙.”

“꺄하하하하!”

이 애들을 방에서 치워야 했다.

침대에서 굴러다니는 다혜. TV를 보며 깔깔거리는 태화. 그리고 책을 읽는 이츠키. 그 옆에 붙어 누운 세희.

상호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문을 뗐다.

“얘들아.”

“므앙?”

“네?”

네 아이들의 시선이 상호에게 몰려들었다.

“왜?”

“너희 이제 기숙사로 돌아가야…….”

“느아아악!”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다혜가 눈을 부릅떴다. 상호에게 열심히 내지르는 손에는 주민등록증이 들려 있었다.

“아으아으악!”

“네가 성인이라고 해서 선생님이랑 동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기숙사로 가야지. 물론 다혜 넌 저번처럼 수호부대원이랑 같이 살게 되겠지만.”

“……꾸웅.”

다혜는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우으아아.”

“수녀님은 뭐냐는데요.”

“걔는 학생이 아니잖아…….”

“그냥 같이 살면 안 돼?”

태화가 꼬리를 빙빙 돌리며 눈을 치켜떴다.

“쌤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서 너무 편해!”

“넌 동거 브이로그 찍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아 씨, 들켰네. 그래도 어쨌든! 우린 동거를 해서 뭐라 할 사람도 없잖아!”

몰라서 이러는 건지, 알고도 이러는 건지. 상호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조곤조곤 말했다.

“야, 여기 남교사 숙소야. 현관 열면 선생님들이 돌아다닌다고. 그런데 너희가 돌아다니면 선생님들이 불편하겠냐 안 불편하겠냐?”

“창문으로 왔다갔다 하면 되지! 뭐가 문젠데!”

“아으!”

“창문이 다니라고 있는 곳이야? 너희 보고 애들이 따라하면 어떡해? 신입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

“우리가 불쑥불쑥 들어오는 게 문제야? 걱정 마! 쌤 딸칠 시간은 보장해 줄게. 마려우면 나 잠깐 혼자 있고 싶다고 당당히 말해!”

“므앙!”

“이 짜식이 진짜…….”

“뭐! 왜! 칠꺼야? 칠꺼야?”

태화는 결국 상호에게 관자놀이 마사지를 당하고 말았다.

“끄으으으……!”

“너희가 여깄는 거 보면 지윤이랑 나빛이가 어떻게 하겠냐. 걔들이 학교 왔는데 너희가 이러고 있으면 무슨 생각 하겠어? 어?”

“걍 다 같이 살아!”

“이 좁은 데서 어떻게 같이 살아! 여긴 원래 혼자 사는 방 ……응?”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세희가 보이지 않았다. 상호는 의아해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세희를 발견했다.

옷이 잠옷 차림이었다.

“세희야? 아직 낮인데 웬…….”

“쫓아내 보세요.”

“……응?”

세희는 태연하게 걸어와 상호의 무릎에 앉았다.

“쫓아내 보시라구요.”

“…….”

상호는 무릎으로 느껴지는 가벼운 몸에 진땀을 흘렸다.

어린애를 한겨울에 잠옷 차림으로 내쫓았다가는 쓰레기 소리를 들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왜 제자가 잠옷 차림으로 집에 있는지부터 해명해야 할 터였다.

‘……아니야!’

세희와 태화도 이제 19살. 절대로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세희를 밀어냈다.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한다고 다짐하며.

그러면서도 밀어내는 손의 힘이 한없이 나약하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못했다.

“안 돼. 안 돼. 그래도 내보낼 거야.”

“잠옷보다 더 얇게 입어 드릴까요?”

“……아니야. 미안해. 그냥 여기 살아…….”

결국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쌤, 우리 밥 언제 줘?”

“줄게…….”

“므앙.”

“배고프대요.”

“빨리 차려 줄게…….”

이게 선생인지, 식모인지.

상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 터덜터덜 주방으로 걸어갔다.

* * *

“쌤예~.”

트렁크를 끌며 교문으로 들어선 지윤이 상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본처가 왔심더~.”

“큰 소리로 말하지 마…….”

“이쁜 첩이 왔어예~.”

“하지 마……!”

“그러게 와 연락 안했는데예.”

“미안…….”

“흐흐.”

지윤은 키득거리며 상호에게 팔짱을 끼었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날. 기숙사 주변에는 짐을 옮기는 학생과 아이들을 차로 데려다주는 학부모들이 여럿 보였다. 상호는 지윤과 함께 기숙사를 향해 걸었다.

“딴 아덜은 다 왔습니꺼?”

“으응, 나빛이는 나디아랑 방금 왔고, 은율이는 내일 오고…… 미래랑 초란이도 개학 전날에 온대.”

“신입생들은 기여븐 아덜로 데려왔어예?”

“아니, 안 받았어.”

“와예?”

“내가 학생을 더 받을 상황이 아니라서.”

“하긴 바쁘다 그러셨지예. 뉴스도 나오고.”

“봤어?”

“나빛이가 보내 주던디예. 지 나온다고.”

해가 지나 이제는 이화관이 3학년, 목련관이 2학년, 백합관이 1학년. 백합관의 앞에는 낯선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이들 중 한 명이 상호를 발견하고는 흠칫했다.

‘……얼굴이 너무 많이 팔렸나 보네.’

상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백합관을 슬쩍 지나쳤다.

하지만 목련관을 지나가면서도 아이들의 눈길은 더욱 달라붙으면 달라붙었지 떨어지지는 않았다. 이윽고 이화관에 다다랐을 때는 지나가는 아이들이 걸음까지 멈추고 상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쌤이다.”

“한번 물어볼까? 뉴스에 나온 거 강쌤 맞는지…….”

“요튜브도 하시던데…….”

“난 이미 구독했어…….”

“난 알바비 후원에 다 때려넣었어…….”

상호는 아이들이 속닥이는 소리를 듣고 기겁했다. 학생이 알바해서 번 돈을 학교 선생에게 쏘다니.

어디 새어나가기라도 했다간 신문에 대서특필될 일이었다.

‘환불해 줄 수 있나……?’

빨리 태화한테 환불해주라고 말해야겠다. 안 되면 학교에 자수해서라도 돌려주고.

상호는 붉어진 얼굴을 이마를 짚는 척 가리고 이화관 입구에서 지윤과의 팔짱을 풀었다.

“들어가서 정리하고, 쉬어…….”

“쌤예.”

“응?”

지윤이 슬쩍 웃으며 팔을 한 번 파닥였다.

“연락 안 한 건 이걸로 봐드릴게예.”

“…….”

그제서야 상호의 귀에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팔짱을 꼬옥~ 끼고 있네, 제자랑…….”

“쌤이 쟤 엄청 이뻐하나 봐…….”

“근데 요튜브에서는 다른 애랑 같이 살던데…….”

“강쌤 애인 있다고 하지 않았어?”

“우와, 그럼 세 다리를 놓은 거야?”

“동거도 한 명이 아니던데…….”

“문어야?”

“…….”

상호는 더 견디지 못하고 돌아서서 달렸다. 문어가 먹물을 뿌리며 도망치듯이.

* * *

“아아아아악!”

숙소로 돌아와보니 태화가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개학 싫어! 학교 망해버려!”

“자퇴하든가. 아, 선생님 오셨다.”

“므앙.”

“선생님~.”

“으응, 안녕…….”

방에는 나빛과 나디아도 들어와 있었다.

지윤과 은율을 제외한 3학년 전원. 여섯 명이 원룸에 들어와 있으니 방이 미어터져서 숨도 제대로 못 쉴 것 같았다.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방구석 무언가 이상한 게 놓여 있었다.

“……얘들아?”

이 방에 있으면 안 될 물건이.

“저 트렁크들은 뭐야……?”

“헤헤, 맞춰보세요, 헤헤헤…….”

“……나빛이 네 거야?”

“네~.”

“저게 왜 있어……?”

“네……?”

나빛의 표정에서 점차 웃음기가 사라졌다.

“있으면 안 돼요……?”

“아니, 짐은 너희 방에 갖다놔야…….”

“이제 여기가 저희 방이에요…….”

“아니…….”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고 저희는 3학년이에요…….”

“…….”

“이제 저희가 학교의 왕이 된 거예요…….”

“…….”

상호는 나빛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이 좁아터진 방에서 일곱 명이 지낼 순 없었다. 애들이 여기 있단 걸 알면 지윤도 올 거고, 어쩌면 은율까지도.

그러기 전에 아이들을 내보내야 했다.

“나빛아, 그래도 너는 학생이잖아, 아버님께서도 너 이런 데가 아니라 기숙사에 살라고 돈을 내시는 건데…….”

“부부는 한 집에서 살아야 해요…….”

“……응?”

“저는 꾸꾸 엄마고 선생님은 꾸꾸 아빠예요…….”

“…….”

“뺙.”

나빛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혁구가 한 번 울었다.

상호는 도저히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혁구는 너 혼자 만든 거라고 했다가는 그 즉시 승천해 버릴 거고. 그래도 나가라고 하려니 말이 안 통하고.

그래서 결국은.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나빛이만 여기서 살고 너희는…….”

“야! 다 벗어!”

“아니, 임마! ……미안해, 잘못했어…….”

“므아앙.”

“밥이나 차리래요.”

“대체 너희한테 난 뭐니…….”

“헤헤헤…….”

목적을 이룬 나빛은 다시 환하게 웃었다. 땅을 녹이고 싹을 틔우는 봄볕처럼.

성큼 다가온 새학기가 상호의 방에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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