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374. 사실을 전하는
쏴아아……
내려가는 물소리와 함께 정신도 떠내려가는 듯했다.
변기를 뒤로하고 같은 칸에서 나오는 상호와 나빛. 둘의 얼굴은 하나같이 새빨간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혁구가 둘의 머리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넘으며 뺙뺙거렸다. 경사라도 났다는 듯이.
“뺙─뺙─.”
“…….”
둘은 손을 씻고 재빨리 화장실을 나섰다.
* * *
“이거 상당히 악마적입니다.”
이츠키가 닭꼬치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하루종일 군것질만 하는데 계속 걸어다니니까 죄책감이 없어져서 더 처먹게 되는 게…….”
“맛있는 건 살 안 쪄.”
태화의 손에는 회오리감자가 들려 있었다.
“찌면 어때. 쪄야 하는 곳에만 찌면 되지.”
“배에 살 안 찌는 이양이 부럽습니다.”
“헹, 내가 유전자는 좀 쩔긴 하…….”
“얼굴에 찌는 게 문제지만.”
“……개색갸!”
“얘들아, 주변 봐라. 주변.”
“……끄응.”
상호는 꿍얼거리는 태화의 뒤에서 나빛의 손을 잡고 걸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닌 지 세 시간 째. 악마의 느낌이 오는 사람도, 인연의 실이 없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수상한 사람이란 신고를 받고 찾아가도 전부 허탕.
태블릿의 메세지를 뒤적거리며 다른 추적조의 소식을 찾았지만, 쓸 만한 정보나 성과는 보이지 않았다.
“사카시타.”
“네.”
“실이 끊어지는 걸 따라갈 수 있어?”
악마에게 빙의당하는 순간 실이 끊어질 거라는 가정.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었지만 가능성은 높았다. 만약 그걸 쫓아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하지만 이츠키는 고개를 저었다.
“실은 얇아지다가 한순간에 끊어지는 것이라 쫓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가…….”
“게다가 이 순간에도 몇 개씩 끊어지고 있기 때문에…… 쫓을 수 있었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죽는 사람을 일일이 찾아갈 수는 없으니까.”
“그렇구나.”
그래도 이 드넓은 땅을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나았을지도 모른다. 상호는 아쉬움에 한숨을 쉬었다.
‘전략을 세워야 하나…….’
이대로는 답이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악마가 지배의 악마라는 건 확인했다. 사람을 죽이며 옮겨 다니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동시에 여러 사람을 조종하지는 못하는, 즉 하급의 악마가 빙의의 매개가 되고, 지배의 악마가 그 하급의 악마를 조종하는 방식일 거라고 예상하는 중이었다.
어쨌든 지배의 악마는 상호가 쫓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그러한 사실을 감안하면.
‘무언가를 하려고 할 텐데…….’
그 무언가는 필시 내분. 혼란을 조장하려 할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방송…….’
그가 오래도록 싫어해 왔던 집단.
가닥을 잡은 상호는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응?”
“방송국 한번 가볼래?”
“……방송국?”
아이들이 눈을 끔뻑였다.
* * *
“이야…….”
태화가 선글라스를 만지작거렸다.
“연예인들 앞에서 이러니까 되게 이상하다.”
“잘 살펴보기나 해.”
상호는 핀잔을 주고 마스크를 고쳐 썼다. 그와 아이들은 로비에 앉아 사람들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방송사 건물 입구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원래 경비와 보안을 신경 쓰는 곳이라 사람이 다니는 길목이 단 두 곳뿐이었다. 건물 입구와 주차장 쪽 입구.
그래도 안심할 순 없었다.
“들어오는 사람만 보지 말고 들어와 있는 사람도 잘 봐. 혹시 모르니까.”
“웅.”
그렇게 대답하는 태화의 얼굴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빈틈없이 가려져 있었다.
상호도 선글라스와 마스크, 나빛도 선글라스와 마스크. 인연의 실을 봐야 하는 이츠키만이 선글라스 없이 마스크만 쓰고 있었다.
‘연예인들 앞에서 연예인 행세라…….’
오히려 연예인들보다 더 시선이 끌리는 것 같기도 했다.
드나드는 사람들 중에는 상호도 눈에 익은 사람들이 있었다. TV에서 본 코미디언, 가수, 배우. 그런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태화가 오두방정을 떨었지만, 상호는 태화의 볼을 꼬집으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때 이츠키가 몸을 움찔했다.
“……아.”
뭔가 본 걸까. 상호는 그 즉시 이츠키를 돌아보았다.
“사카시타? 찾았어?”
“아, 아닙니다.”
이츠키의 마스크 위로 홍조가 살짝 올라와 있었다.
“섬광탄용병단 멤버들이 보여서…….”
“……그게 뭔데?”
“보이그룹입니다. 일본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
“…….”
어째 아이돌 그룹 이름이 굉장히 전투적이다. 상호는 헛기침을 하고는 마음을 다잡으라는 뜻으로 이츠키의 어깨를 두드렸다.
“헌터는 임무에 집중해야 해, 사카시타.”
“죄송합니다.”
이츠키도 곧 그 청년들에게서 시선을 뗐다.
하지만 그 청년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자꾸만 상호와 아이들을 흘끔거렸다. 이상할 정도로 자주.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자신과 아이들의 행색을 살폈다.
‘옷 못 입는 놈이 끼어 있어서 그런가?’
숨길 수 없는 싼티라도 있나. 의아해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애들은 누구지?”
“어머, 탈색이 아닌데? 원래 저런 머리인가 봐.”
“가려도 예쁘네. 아이돌인가?”
“처음 보는데. 데뷔시키려고 데려왔나 보다.”
당황해서 굳어버린 상호에게 이츠키가 중얼거렸다.
“저희 행색이 그렇긴 합니다.”
“…….”
“데뷔 전의 아이돌은 이렇게 꽁꽁 싸매놓기 때문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옆에 아저씨는 누구지?”
“프로듀서겠지.”
“프로듀서라기엔 너무 잘생겼는데…….”
“어디서 본 것 같기도…….”
상호는 슬쩍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보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그런데 지나치는 여자들이 더욱 소곤대기 시작했다.
“어머, 턱선 봐…….”
“…….”
피할 수가 없었다.
상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 태블릿을 만지작거렸다. 협회 사람들이 쓸 만한 정보를 남겨놓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 순간 이츠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아.”
이번엔 음색이 달랐다.
“사카시타?”
“실이…… 많이 끊어졌습니다. 한 순간에…….”
방송국과 관련된 사람이 죽었다. 혹은 빙의당했다.
상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 쪽인지 알 수 있겠어?”
“주차장 쪽……입니다.”
“아.”
그 방향을 바라보던 태화가 상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왔어. 쌤.”
한 중년인이 서류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 *
“쿠울…….”
무릎을 베고 누운 나빛이 새근새근 숨을 쉬었다.
상호는 그런 나빛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슬슬 시간이 됐나.’
저녁 어스름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생방송 뉴스가 시작될 때.
악마의 입장에서는 방송국 직원에게 빙의해서 더 확실하게, 방송을 끊을 새도 없이 자기 입맛대로 방송을 송출시키고 싶었겠지만, 악마 따위가 방송국 직원이 누구인지 알 리 없으니. TV에 얼굴이 나온 앵커를 공략하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마 방송에 나와 무언가를 알리거나, 보일 것이다.
예상하기로는, 악마의 존재를.
‘그렇겐 안 되지.’
그랬다가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저승부대원들이 종전의 진실과 마신의 존재를 알리면 찾아올 거라 예상했던 혼란. 그 혼란보다 훨씬 거대하고 직접적인 불신이 사회를 집어삼킬 터였다.
그걸 막기 위해, 상호는 나빛을 톡톡 두드렸다.
“나빛아. 슬슬 일어나자.”
“……우웅.”
슬며시 눈을 뜬 나빛이 작게 웅얼거렸다.
태화와 이츠키는 협회 사람들에게 맡겨서 학교로 돌려보냈다. 악마가 누구의 몸에 깃들어 있는지 확인했으니 치료할 사람만 있으면 되었다. 상호는 나빛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기세 좋게 엘리베이터에 오른 것까지는 좋은데.
‘……어디로 가야 하지?’
층을 고를 수가 없었다.
‘일단 스튜디오……를 찾아야 하나?’
누군가 물어볼 만한 사람부터 찾아야겠다. 그는 대충 아무 층이나 눌렀다.
도착해서 내려 보니 사무실 같은 곳이었다. 마침 한 청년이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고 있었다.
“저기요.”
“네?”
청년이 당황하며 상호를 돌아보았다.
안경을 쓰고 푸석푸석해 보이는 게 딱 사무나 편집 따위를 맡았을 분위기였다. 상호는 다짜고짜 도현에게서 받은 신분증을 내밀었다.
“괴협 특무부에서 나왔습니다.”
“아, 네…….”
고개를 꾸벅이던 청년은 다시 당황하며 눈을 끔뻑였다.
“……근데 그게 뭔가요?”
“자세한 건 극비사항이라 말 못하고. 어쨌든 뉴스라이브 찍는 데가 어디에요?”
“스튜디오요?”
청년이 상호의 검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건 저희도 비밀이라 함부로 말 못하는데요…….”
“나 정신병도 없고 도청장치도 없으니까 곱게 말해요. 이상한 사람 아니고 헌터라고 헌터. 헌터증 보여줘요?”
“그걸 저한테 보여줘도 저는 모르죠…….”
“쓰읍…….”
시간이 많지 않다. 곧 시작할 텐데.
상호는 결국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다.
“아!”
그러자 청년이 화들짝 놀라 박수를 치고 검지로 상호를 가리켰다. 상호는 쓴 입맛을 다시며 다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썼다.
“이제 믿겠어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헌터…….”
“요튜버! 요튜버 맞죠?”
상호의 표정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아닙니다.”
“여고 존잘쌤 밀착 동거 브이로그! 제가 우리 방송국 요튜브 편집 담당이라서 하루종일 요튜브만 보거든요! 이야, 여기서 뵙네요.”
“아니, 헌터라고! 몇 달 안 됐잖아요. 언론인이면 기억을 좀 해봐!”
상호가 붉으락푸르락하며 다친 눈을 가리키자 청년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 그때 악마랑 싸웠던 애꾸눈 헌터……!”
“그래! 그게 나라고. 지금 X발 시간 없으니까 뉴스라이브 스튜디오나 말해 줘요!”
“네, 네! 5층, 5층으로 가면 돼요.”
드디어 알아냈다. 상호는 한숨을 쉬며 나빛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도로 올랐다.
그리고 어안이 벙벙해하는 청년을 돌아보았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요. 말하면 큰일납니다.”
“그, 제가 좀 뉴스에 욕심이 있어서…….”
“말하면 헌터협회 지하로 끌고 갈 거예요.”
“예에…….”
시무룩해하는 청년과 상호의 사이로 문이 닫혔다.
* * *
“준비되셨어요?”
“예.”
그는 살짝 웃으며 옆에 앉은 패널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직업은 앵커. 해설과 논평을 맡은 뉴스의 진행자. 옆에는 뉴스를 전해주는 여자 아나운서와 오늘의 뉴스와 관련된 범죄심리학 전문가가 앉아 있었다.
이 방송이라는 것은 그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마법도 아닌 것으로 온 누리에 정보를 퍼트린다니. 그래서 이 뉴스란 것도 낯설었지만, 개념은 이해를 했다.
뉴스는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진실을 알리는 것.
‘……이라고 인간들은 알고 있지만.’
사실이란 것은 알릴 수 없다.
진실이란 것도 알릴 수 없다.
사실은 절대적인 것이기에 있는 그대로 알릴 수 없으며, 진실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서 늘 달라진다.
그렇기에 뉴스가, 방송이, 언론이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진실을 알린다는 것은 이상향일 뿐.
실제로는 그저 무언가를 알리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오늘 그는 알릴 것이다.
너희 사이에 무엇이 숨어 있음을. 그리고 너희는 대항할 수 없음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려, 이 뉴스란 것을 진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게 참된 언론인이지.’
그는 붉은 불빛이 들어온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 그래왔던 것처럼.
그리고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