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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여고의 남선생-372화 (372/501)

<372화>

372. 그걸 왜 같이

“어?”

옆에서 걷던 태화의 고개가 갑자기 휙 돌아갔다. 상호는 그 움직임을 알아차리자마자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로 건너편에서 후드를 쓴 청년이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왜 그래?”

“저기, 저 사람.”

태화가 그 청년을 가리켰다.

“뭔가 느낌이 나는데.”

“그래?”

그렇다면 조사대상이다. 상호는 그 즉시 발을 돌려 횡단보도로 향했다.

청년의 걸음은 느렸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이 영 악마 같아 보이진 않았다. 악마란 놈이 유유자적하게 음악이나 감상할 리는 없으니.

그래도 상호는 방심하지 않고 태화와 함께 청년의 뒤로 다가갔다.

“저기요.”

“음?”

어깨를 툭툭 치며 부르자 청년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뭐, 뭔데요.”

“피 좀 뽑읍시다.”

“네?”

상호는 채혈기를 꺼내 사내의 팔뚝에 박았다.

* * *

“아니 시민한테 무슨 짓이에요!”

“죄송합니다…….”

“아무리 헌터 조사관님이라도 그렇지! 다짜고짜 주사기부터 꽂으면 사람들이 묻지마 테러범이랑 어떻게 구별해요!”

“죄송합니다…….”

“헌터증은 어딨어요? 보여주세요.”

“놓고 왔어요……”

“들고 다니세요!”

“네…….”

상호는 청년과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검사 결과는 음성. 악마 인자가 전혀 없는 순수 인간. 태화의 감은 그냥 느낌일 뿐이었다.

경찰관들이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바쁘시다니까 더 붙잡진 않을게요. 다음부턴 설명부터 해 주세요.”

“……예에.”

상호는 고개를 다시 꾸벅 숙이고 돌아서서 태화를 째려보았다.

“얌마.”

“왜! 그냥 부담없이 말하면 된다매!”

“……에휴.”

그가 한 말이라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온전한 악마가 아닌 반쪽짜리 악마이니만큼 악마를 알아보는 능력은 영 젬병인 듯싶었다. 저번에 상호의 다리를 보고 느꼈던 감각은 다리에 봉인된 놈이 보통 놈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이래서야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진짜 악마를 본다면 도움이 될까. 하지만 태화도 이미 진짜 악마들을 본 적이 있는데.

상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태화를 불렀다.

“야, 태화야.”

“웅?”

“정확히 어떤 느낌이 들었었어? 쌤 다리 봤을 때.”

“으음…….”

태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빠직빠직하고 뿅뿅한…… 그런 느낌적인 느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봐.”

“그니까 이게 있잖아, 고기 탈 때 나는 연기를 맡으면 켁켁거리잖아? 그거랑 콜라 먹을 때 탄산 느낌. 그거 두 개가 머릿속에서 지글지글…….”

“……그러니까 저 사람을 봤을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거지?”

“그런 느낌이 드는 느낌이 나는 느낌을 받았어!”

“그래…….”

그런 느낌적인 느낌인가 보다. 악마가 아니니 그러려니 할 수밖에.

감각이 있는 건 확실한데 그걸 어떻게 갈고 닦아야 할까. 또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사건이 점점 심각해질 텐데.

일단은 이대로 악마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기 전에…….’

상호는 등 뒤로 멀어져가는 경찰차를 돌아보았다.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사과를 하기는 시간이 아깝다. 귀찮기도 하고. 성연이 있을 때는 성연을 시키면 됐지만, 이제는 그가 해결해야 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협회의 권위를 좀 빌려야 하나.’

그는 입맛을 다시며 협회로 걸음을 돌렸다.

* * *

“그래서…….”

도현은 헤어진 지 두 시간도 안 되어 돌아온 상호와 태화를 바라보았다.

“대외용 신분이 필요하다…… 이거지?”

“응.”

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봤을 때 사람들이 약간은 쫄 수 있게. 경찰도 포함해서.”

“뭐 협회 특수고문? 이런 거라도 달아 줄까?”

“좀 더 무서운 거 없나?”

“얌마, 그게 뭔지는 네가 말을 해줘야지…….”

딱 듣자마자 사람들이 알아서 굽신거릴 만한 이름이라. 도현은 턱을 괴고 고민했다.

그때 태화가 상호를 홱 돌아보았다.

“저승부대!”

“……그건 안 돼.”

“왜! 정답이잖아!”

태화의 눈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어차피 쌤 이제 연예인이잖아!”

“아픈 델 꼬집지 마라…….”

“나 저승부대 강상호요 이러면 사람들이 딱 알아보고 굽실~굽실~거릴 거 아니야! 그러면 이제 내가 요튜브 홍보를…….”

빠악

“……악!”

“안 된다고 했지 임마. 그런 짓 했다가 사람들 꼬이면 더 큰일 난다고. 조용히 다녀야 할 판에 무슨…….”

“그럼 안대부터 벗어!”

“그래야지.”

“왜 벗어! 내가 자수 놓아 준 거잖아!”

“이 짜식이…….”

“뿌우우우…….”

상호와 태화는 서로의 양 볼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도현은 그런 둘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그래서…….”

“악! 마를잡아서뚝배기를깰거야 부대!”

“……이름은 나중에 바꿔도 되니까, 특별 부서를 만들어 줄게. 그리고 경찰들한테도 건드리지 말라고 말해놓고. 그럼 되지?”

“다뒤져씅부대! 앗, 잠깐만……. 저기, 쌤, 미안, 그런 뜻이 아니구…….”

“…….”

거의 다 뒈지긴 했다. 상호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태화의 입을 막았다.

“넌 좀 조용히 해. 알았어. 형 말대로 할게. 만들고 나면 신분증 좀 만들어 줘.”

“그래.”

“유니폼도 만들어 주세요! 특수부대처럼!”

“……그런 걸 입으면 악마들이 도망치지 않겠니?”

“그치만 까리하잖아요!”

“필요하면 만들어 줄게…….”

“아싸~.”

* * *

“여긴 왜 왔어?”

태화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환자들이 들락거리는 협회의 병동. 상호는 옆으로 지나가는 응급 환자 침대를 피하며 대답했다.

“가져가야 할 게 있어서.”

성연이 쓰던 태블릿. 수상해 보이는 사람에 대한 신고를 받기 위해서는 그 태블릿이 필요했다.

그는 태화를 데리고 병동 안쪽으로 들어갔다. 경비가 삼엄한 구역을 지나자 악마와 관련된 환자를 취급하는 병실이 보였다.

‘여기 있군.’

한 침대에 성연이 누운 게 보였다.

잠을 자듯이 눈을 감은 모습. 민정이 있는 봉인소에서 보았던 환자들과 같았다.

병상 옆에는 작은 장롱이 놓여 있었다. 저 안에 성연이 갖고 있던 물건들이 놓여 있을 듯했다.

“태화야. 저기서 태블릿 좀 찾아봐.”

“웅.”

태화가 장롱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상호는 말없이 성연을 내려다보며 참으로 얄궂다는 생각을 했다. 환자들을 치료하려 했던 녀석이 환자가 되어 누워 있으니.

그런데 그때.

‘……응?’

시야를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성연의 머리카락 속. 은은하게 빛나는 황금색의 무언가.

‘뭐야.’

그는 손을 뻗어 성연의 머리카락을 헤쳤다. 웬 황금색 깃털 하나가 사이에 끼어 있었다.

아주 작은 깃털.

‘뭐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괜히 건드렸다가 성연이 골로 갈 수도 있으니.

옆에서 태화가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모해?”

상호는 깃털을 머리카락으로 숨기고 손을 거뒀다.

“그냥. 태블릿은 찾았어?”

“응.”

“가자.”

둘은 태블릿을 챙겨 병실을 나섰다.

* * *

그렇게 하루 종일 골목을 기웃거리고, 느낌이 오는 사람을 쫓아가고, 수상한 사람에 대한 신고를 받았지만, 결과는 당연하게도 허탕.

상호는 등에 업혀 새근새근 자는 태화를 돌아보았다.

‘피곤했겠지…….’

이걸 내일도 해야 한다.

악마를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아예 멀리서도 악마를 추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당장 생각나는 건 베르멜로를 목만 똑 떼어서 허리춤에 달고 악마를 찾아내라 명령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악마에게 의존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항복을 했더라도.

사람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근데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가 문제지…….’

그는 한숨을 쉬며 교문으로 들어섰다.

숙소에 도착해 현관으로 들어서니 아이들이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침대를 꽉 채운 세 명의 아이들.

‘셋?’

상호의 몸이 일순 굳었다.

다시 눈을 비비고 봐도 세 명. 머리도 세 개고 다리도 세 쌍.

태화는 등에 업혀 있는데.

‘……분신술이구나!’

세희나 다혜가 자면서도 분신술을 쓰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상호는 감탄하며 침대로 다가가 이불을 살짝 걷었다.

이츠키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밤입니다.”

“……으아아아악!”

상호는 기겁해서 뒤로 물러났다. 등에 태화가 업혀있단 사실도 까먹고 팔을 휘저으며.

덕분에 곤히 자던 태화는 바닥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퍼억

“악! X바, 뭐야 쌤! 나한테 왜 그래!”

“미, 미안……. 이츠키? 왜 여기…….”

“놀고 싶어서 일찍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놀기 좋은 곳이 아니라서. 그런데 세희한테 들어보니 여기도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응. 악마 놈들 때문…….”

상호의 말이 뚝 끊겼다.

그의 시선은 이츠키의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주술과 영혼, 인연을 보는 눈.

“……이츠키.”

“네.”

“일 하나 같이 하자.”

“……네?”

동그란 눈동자들이 끔뻑였다. 이츠키도, 태화도. 잠에서 깬 세희와 다혜까지.

상호는 그 눈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 * *

다음 날 아침.

“왜 나 안데려가는데에에에!”

태화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상호의 가슴팍을 두들겼다.

“약속했자나아아! 나랑 둘이 다니면서 맛있는 거 사준댔자나아아!”

“미안.”

“미안이 끝이야?! 내가 쓸모가 없어? 왜 버려? 왜 거짓말해? 쌤이 그러고도 어른이야? 어른이면 어른답게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냐아아아!”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이미 결정했다. 오늘부턴 이츠키만 같이 가기로.

상호는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어제 맛있는 거 많이 사 줬잖아.”

“쌤도 그거야?! 일본 여자 좋아해?! 일본 여자는 다 남자한테 헌신하고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준다고 망상하는 그런 인간이지?! 벌레! 병X! 기분나빠! 쓰레기!”

“야, 이게 장난이야? 사람 목숨이 달려 있잖아. 최대한 효율적으로, 최대한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태화가 빽 소리쳤다.

“그렇게 이츠키 오줌싸는 걸 보고 싶어?!”

‘……!’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상호는 태화의 손을 덥석 잡았다.

“꼭 같이 가자.”

“됐어! 저리가! 쌤이 좋아하는 일본 여자랑 알콩달콩 쿵떡쿵떡 살아!”

“난 한입으로 두말 안 해. 가자, 가자.”

“됐다니까?! 쟤한테 사케나 사!”

“내가 그걸 왜 사 임마. 가자고! 맛있는 거 사 줄게!”

상호는 태화를 잡아끌었지만 태화는 바닥에 질질 끌리도록 버텼다. 그런 둘을 바라보던 이츠키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상호에게 팔짱을 꼈다.

“그냥 떼놓고 가는 겁니다.”

“이츠키? 아니, 잠깐만. 태화도 같이 가야…….”

“제가 딱히 헌신적이지는 않습니다만 선생님에게는 가능합니다. 소변 이야기는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츠키가 혀를 쏙 내밀었다.

“필요한 일이라면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

상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츠키의 장난스러운 눈빛 때문도, 태화의 생떼 때문도 아니었다. 빵을 우물거리는 다혜의 궁금해하는 표정 때문도 아니었다.

세희의 고개가 천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선생님?”

“……응.”

“소변 누는 걸…… 왜 봐요?”

“아니, 안 봤어! 그게…….”

거짓말을 지어냈다가는 들통이 날 것이다. 세희는 감이 좋으니까.

상호는 차마 시선을 마주치지 못해서 눈을 내리깔았다.

“사건 중에…… 화장실에서 죽은 사람이 있어서…….”

“그래서 태화랑 같은 칸에 들어갔다는 거예요?”

“…….”

“같이 쌌어요?”

“……응? 뭐?”

이게 뭔 소리인가. 상호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같이 쌀 수는 없잖아…….”

“가능하잖아요.”

“대체 어떤 자세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아니야. 태화만 쌌어…….”

“결국 같이 들어가긴 했다는 거네요?”

“……응.”

상호의 어깨가 쪼그라들었다.

그런 상호를 바라보는 세희의 눈동자 속에서는 차가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선생님.”

“응…….”

“다녀오세요.”

“응……?”

“다녀오셨을 때 화장실 문짝이 없어도 놀라지 마세요.”

“…….”

“제가 실수로 부술 예정이니까.”

“……다녀올게.”

상호는 세희의 눈빛을 견디지 못해 태화와 이츠키를 데리고 현관을 뛰쳐나왔다. 아침도 챙겨먹지 못한 채.

그런 그의 등 뒤에서는 세희가 강기를 두른 손으로 화장실 문의 경첩을 뜯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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