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369화 (369/501)

<369화>

369. 인간의 그림자

“못했다고?”

“예.”

성연이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구하지 못했습니다.”

둘의 앞에서는 협회의 인원들이 시신에 천을 덮고 있었다.

들것에 들려서 나가는 아이의 아버지. 상호는 그 시신을 바라보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나도 못 잡았어.”

“그 정도로 빨랐어요?”

“정확히는 못 찾았지.”

최대한 빠르게 바깥을 확인했지만, 그 어떤 흔적도 기척도 없었다.

그나저나 성연의 성력이라면 살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상호가 성연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짧은 시간에, 비명다운 비명도 못 지르고, 몸싸움도 못한 채로 실혈사를 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상호는 굳이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 성연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다른 해야 할 일이 급했기에.

“이 주변에 지문이 있을 거야. 방명록에도 이름이 있을 거고. 빨리 쫓으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빨리 쫓아야겠네요. 다음 살인을 계획하기 전에…….”

성연이 힘없이 대꾸했다.

상호는 핸드폰을 꺼내 도현에게 연락하려다가, 바깥으로 실려 나가는 아이 아버지의 시신을 흘끗했다.

시신 너머 문 바깥에서 한 여인이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용의자는 총 열다섯 명.”

조수석에 앉은 성연이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 중에 두 명은 식장 안에 있었고, 일곱은 시간상 없었을 확률이 크고……. 그래서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하는 건 여섯인데, 그쪽으로는 이미 협회 사람들이 출동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갈 곳은 어딘데?”

상호는 협회에서 지원받은 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장례식이면 멀리서 온 사람들도 많을 거 아냐. 설마 남쪽 끝까지 가야 하는 건 아니지?”

“다행히 아이 장례라서 그렇게 퍼져 있진 않네요. 부모도 이 주변 출신이고…….”

성연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말한 열다섯 명 중에는 아이도 세 명 포함되어 있어요.”

“…….”

애들은 아니기를 바라고 있으리라. 상호는 자신의 학생이 악마가 된다면 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 잠재우고 치료법을 찾을 것이다. 마흔을 입어서 혈석 봉인소에 잠재워 놓은 이들처럼.

그러나 만약 치료법을 찾지 못한다면.

그때는…….

‘……상상도 하기 싫군.’

그는 고개를 흔들고 성연이 알려준 주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 * *

연기는 피어오르지 않았다.

“…….”

살짝 흔들어 보아도, 반응은 없고.

돌처럼 굳어 버린 상호 대신에 성연이 아이와 그 부모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협조 감사합니다.”

둘은 인사를 마치고 돌아섰다.

현관을 나서자 상호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성연은 그런 상호를 돌아보며 작게 속삭였다.

“어떡하죠? 여기가 마지막이었는데…….”

“몰라, X발.”

상호는 욕을 내뱉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반드시 이곳에서 반응이 나와야 했는데. 그는 눈앞에서 순진하게 눈을 깜빡이던 아이가 차라리 악마였기를 잠깐 바라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결과는, 몇 번을 봐도 인간.

“지문 중에 신원미상인 게 있나?”

“아닐 겁니다.”

“그럼 방명록에 뭔가 착오가 있었다든가…….”

“방명록은 지문을 확인하는 수단일 뿐이었죠. 지문은 열다섯 명 전부 일치하던데…….”

“그럼 검사 키트가 불량인가?”

경우의 수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은 상호도 알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싸쥐고 이를 갈았다.

“뭔가 놓친 게 있나? 우리가 뭔가 잊고 있는 게…….”

“그러게요…….”

당연히 성연도 별 뾰족한 생각은 없었으리라. 한참을 고민하던 성연이 상호의 등을 두드렸다.

“일단 협회에 보고하고 경과를 기다리죠. 그동안은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쉬라고?”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그 말도 사실이었다.

전혀 쉬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은 협회로부터의 소식을 기다려야겠다. 상호는 자동차가 있는 곳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런 그의 뒤를 성연이 뒷짐을 진 채로 따르고 있었다.

* * *

차에 앉아 하릴없이 기다리는데, 초저녁에 도현에게서 연락이 왔다.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를 검사했는데 양성 반응이 나온 사람이 없다고.

그리고 죽은 사람도 없다고.

주변인들까지, 식장 직원들까지 전부 조사했는데도.

“X발…….”

핸들에 머리를 박는 상호를 성연이 측은한 듯 바라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

“놓쳤다는 걸 인정하죠. 내일 아침은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는 겁니다. 아깝긴 하지만…… 이 일에 집착하는 것도 시간낭비일 수 있으니까요.”

“…….”

상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놓쳤다. 아이와 그 아버지가 죽었다. 죄 없는 자들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것들을 가만둘 수 없었다. 한 순간만이라도 손아귀에 들어온다면 짓무른 과육처럼 으깨어 줄 텐데.

하지만 도저히 잡히지를 않았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흐릿한 안개처럼.

멍하니 핸들을 노려보는 그에게 성연이 물었다.

“거울 한번 보시겠습니까?”

“왜.”

“꼴이 말이 아닙니다.”

그 말에 상호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충혈된 눈에 초췌한 몰골. 어제보다 덜 돌아다녔는데도 완전히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다.

성연이 말을 이었다.

“들어가서 쉬세요. 아이들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많이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

상호도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갈 수가 없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 한 걸음을 어디로 내디뎌야 할지를 몰라서 문제지만.

그 순간 어떤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야.”

“네?”

“죽은 애 어머니 쪽. 피 뽑아 봤대?”

“어머니 쪽이요? 잠시만요…….”

당황하던 성연은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다가 대답했다.

“확인 안 했다……는데요.”

“그 여자야.”

상호의 눈이 번득였다.

“그 여자밖에 안 남았어.”

“악마라고요?”

“그럼 뭐겠어? 그것밖에 없어. 애 어머니 쪽에 악마가 들어간 거야. 우리가 찾아가니까 쫄아서 남편을 죽이고 악마가 도망간 척 해놓은 거고.”

“그치만…….”

성연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안 도망칠 이유도 없잖아요.”

“낸들 아냐? 뭔가 이유가 있겠지, X팔. 남은 게 그 여자밖에 없잖아!”

상호는 거칠게 대답하며 성연을 쏘아보았다.

“검사해보라 그래.”

“……이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성연은 눈을 감았다.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고, 또 남편을 잃은 분한테, 당신이 용의자라며 피를 뽑는 게 옳은 일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니 알아서 해.”

직접 가서 확인하겠다. 상호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 * *

“어머님.”

다시금 들어선 식장에는 파리한 낯빛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상호가 성큼성큼 다가가자 여인이 말없이 그를 돌아보았다.

“피를 좀 받아가야겠습니다.”

상호의 몸에서 내공이 뻗어 나와 여인의 어깨를 짓눌렀다.

상호가 손을 옆으로 내밀자 성연이 채혈기와 검사 키트를 툭 내려놓고 돌아섰다. 더 이상은 이 일을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듯.

하지만 상호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괜찮겠지요?”

그래서 이 말은, 필요 이상으로 예의를 차린 것. 상호는 이미 채혈기의 바늘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다.

여인이 그 바늘을 바라보며 말없이 소매를 걷었다.

‘……의외인데.’

뽑을 테면 뽑아보라는 건가.

이것이 인간의 결백인지, 악마의 발악인지. 상호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뽑겠습니다.”

바늘이 살갗을 찔렀다.

검붉은 액체. 밤처럼 검고 불처럼 붉은 액체. 실린더 속에 차오르는 이것은 악의인가, 울분인가.

결과는 검사 결과가 알려줄 터였다.

똑……

검사 키트에 피가 조금씩 담겨 갔다. 똑, 똑, 쪼르르, 다시 똑, 똑.

상호는 가만히 기다렸다.

소리, 혹은 연기를.

‘…….’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눈앞의 여인은 사람이고.

죽은 사람은 있으나 옮겨간 악마는 없다.

상호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례했습니다.”

이윽고 그가 그렇게 말하며 돌아섰을 때, 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의심받는 건가요?”

“…….”

“제가 왜 의심을 받아야 하는 거죠? 제가 왜? 전 이걸로 다 잃었는데, 남편도 아이도 다 잃었는데……. 내가, 내 손으로 가족을 죽일 이유가 어디 있는데요?”

“…….”

“말해 보셔요, 헌터님…….”

여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무너진 듯, 고개를 바닥까지 숙여서.

상호는 이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하나만 약속드리겠습니다.”

당신 아이를 죽인 악마, 당신 남편을 죽인 악마.

“범인을 잡으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드리겠습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성연과 함께 출구로 향했다.

길고 긴 복도를 지나, 마침내 밤하늘. 찬바람을 맞으며 건물을 나서자 성연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분은 이제 어떻게 살까요?”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겠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글쎄.”

“비슷한 일을 겪어 보셨잖아요.”

“내가?”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난 아이까지 잃은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어.”

“이제 본 건가요.”

성연이 먼저 차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악마는 도망쳤군요.”

“…….”

“내일부턴 다시 신고자 위주로 찾겠지요. 그러다 사건이 일어나면 또 조사하고…….”

“…….”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하지만 상호는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성연은 조수석 문을 열다가 그런 상호를 돌아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니, 아무것도 아냐.”

상호는 털어내듯이 고개를 흔들고 운전석에 올랐다.

“그래, 그러기를 바라야지. 언젠가는 찾기를…….”

곧 차에 시동이 걸리고, 차가 협회를 향했다.

* * *

협회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한 시.

악마 사건 때문에 빌딩 곳곳에 불이 켜져 있었다. 원래도 바쁜 곳이었지만, 붐빈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평소보다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주차장도 그랬다.

“X바, 어떻게 지들 소속 차량 댈 곳도 없냐.”

전용 주차장이 있긴 한데 꽉 차 있다. 아마 높으신 분들이나 협회의 간부들이 멋대로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상호가 툴툴대자 성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데 대죠. 좀 걸으면 되니까.”

“찾다가 한도 끝도 없이 멀어지면 어떡해? 걸음도 느리면서.”

“전 상관없습니다. 아니면 여기서 기약 없이 기다리던가요.”

그 말을 들은 상호는 미련 없이 차를 돌렸다.

서울 한복판의 도로는 구불구불했다. 직선으로 가면 5분도 안 걸릴 곳을 10분이 넘게 걸려서야 도착했다. 이래서는 걸으나 차를 타나 비슷비슷한 것 같았다.

그래도 이곳저곳을 헤맨 끝에 자리가 남은 주차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려.”

주차를 마친 상호가 그렇게 말하자 성연이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둘은 주차장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강 헌터님.”

문득 성연이 그를 불렀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셨습니까?”

“이상하지 않냐?”

상호는 습관적으로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놈은 없다는 게.”

“이상하지요.”

성연이 상호의 검을 흘끗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악마는 없었던 게 아닐까요?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일들이 다 인간의 짓이라면…….”

“글쎄.”

상호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우두둑 소리를 내었다.

“아이한테서 양성이 뜬 건 확실하잖아?”

“그 범인은 완전히 따로 있고, 아이 아버지가 죽은 건 개별의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게 더 불가능한 완전범죄야. 우리가 들어갔을 땐 아이 아버지밖에 없었잖아. 우리가 잠깐 이야기하고 들어가는 그 사이에 목을 찌르고 나온다? 차라리 악마의 짓이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지.”

“그런가요.”

성연은 한숨을 쉬었다.

“범죄 이야기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기 싫다고 외면하면 이해도 할 수 없지. 교인이면 범죄도 관찰을 좀 하지 그래.”

“저는 힘들어도 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이해를 못 하게 된다고.”

상호는 혀를 차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야.”

“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모든 게 의문투성이잖아요.”

“분명 장례식장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조사했…….”

그의 말이 뚝 끊겼다.

상호가 갑자기 멈추어 서자 잠시 앞서 걸어가던 성연이 의아해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강 헌터님?”

“너.”

“네?”

“너 조사 안 받았잖아.”

상호는 멍한 눈으로 성연을 바라보았다.

창밖에 아무도 없었던 이유.

비명이 들리지 않았던 이유.

지나치게 빠른 범행 시간. 그리고 치료하지 못한 아이의 아버지.

“너.”

아니어야 한다.

“너…….”

옳은 사람들이 먼저 죽는 세상을, 납득할 수 없다.

“아니…….”

사람을 베지 않기를 바랐는데.

여인에게 원수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겠다 약속했는데.

“……아니지?”

그래야만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상호에게, 성연이 고개를 살짝 기웃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너.”

상호의 떨리는 손이 성연을 가리켰다.

“성력…… 써봐.”

“성력이요?”

성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역시 아니었던 것이다. 너무도 태연하지 않은가. 이제 저 손에서 성력이 나오면 된다. 상호는 멍하니 그 손을 바라보며 따뜻한 황금빛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미안합니다.”

성연의 목소리에 무언가 다른 것이 섞였다.

굵고, 낮고, 어두운 것.

돌처럼 굳어 버린 상호에게 성연이 빙긋 웃었다.

“내가 그런 거짓에 의존할 리 없잖습니까.”

가로등 불빛에 드리운 그림자가, 유난히 길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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