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368. 망연
“이 더러운 마교 놈들!”
회초리를 든 노인이 게거품을 물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느냐! 이 황 어르신이 우스워 보이더냐! 좋다, 그렇다면 이 회초리검무를 받아보아라!”
“미안합니다, 아버지가 젊을 적에 무협지를 좋아하셔서…….”
젊지 않은 아들이 상호와 사제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돌아가 주세요. 이런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입니까.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러나 치매노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상호는 내공을 뻗어 노인과 아들의 몸을 묶고 채혈을 했다. 피를 뽑고, 악마 인자 검사 키트에 넣고.
연기는 피어오르지 않았다.
‘아니군.’
내공을 거두자 노인이 회초리를 현란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상호는 피 담긴 통을 제 양심과 함께 사제에게 떠넘겼다.
“사과드리고 와.”
“이놈! 사이한 술법 따위로 나를 묶어둘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내 피로 몹쓸 주술을 쓰려는 게 분명하렷다!”
“…….”
사제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눈을 감았다.
* * *
주홍색 가로등이 굽어보는 골목길.
“성과가 없네요.”
사제는 바닥을 보고 걸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서울만 쳐도 천만 명이 넘으니까.”
상호는 육포를 질겅거리며 답했다. 온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서 이걸로라도 끼니를 때우는 중이었다.
“성과를 바라는 게 이상한 거지. 악마가 한 놈이 아니라 해도.”
“그건 그런데…… 힘들어하는 사람만 만나게 되는 게 힘듭니다.”
사제의 입에서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교인으로 살면서 수많은 이들을 만나 봤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 벼랑 끝에 몰린 사람.
하지만 오늘만큼 의심과 증오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 날은 없었다.
“악마가 의심을 낳게 만드네요.”
“저건 원래 저 인간들이 갖고 있던 거고.”
상호는 혀를 차고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다들 잘 것 같은데. 이제 신고는 안 오지 않을까? 밥이나 먹지.”
“그럴까요. 하나님도 밥은 잘 챙겨 먹으라고 배고픔을 만드셨겠죠.”
둘은 터덜터덜 걸어 식당가로 향했다.
* * *
청년 사제의 이름은 이성연. 나이는 24살. 상호가 밥을 먹으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성연은 전투사제가 아니었기에 협회까지 데려다줘야 했고, 덕분에 상호는 새벽 2시가 되어서나 학교에 돌아올 수 있었다.
‘피곤하구만…….’
하루 종일 돌아다닌 데다가 별난 인간군상까지 만나서 진이 쫙 빠졌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현관문을 열었다.
침대에 아이들이 한데 엉겨 자고 있었다.
“쿠울…….”
“크앙…….”
“끄으…….”
다혜의 입에 태화의 꼬리가 물려 있었다. 그는 움찔거리는 태화를 보며 쓰게 웃고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를 틀자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
그는 뜨거운 물을 맞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악마가 인간을 노리고 있다. 아이와 노인을 가리지 않고. 학생이라고 봐줄 리는 없다.
해련에겐 말을 해줘야 할 텐데.
‘알려줘도 뾰족한 수가 생기지는 않겠지…….’
걱정만 늘어날 것이다.
협회는 악마의 존재를 숨기기로 결정했으니, 해련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학생들에게 조치를 취할 순 없다. 그저 혼자 다니지 말고, 언제나 조심하라고 경고만 해줄 수 있을 뿐.
그의 반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말해줄 이유가 없다.
‘헌터들이 해결하는 수밖에.’
상호는 거울 속 자신을 노려보며 다짐했다. 반드시 개학 전까지 해결하겠다고. 아이들의 아무런 걱정도 없는 웃음을 지키겠다고.
샤워를 마친 그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끄응…….”
꼬리 때문에 얕은 잠을 자던 태화가 몸을 뒤척였다. 물소리 때문에 깬 모양이었다.
상호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손을 빠르게 털어 물기를 날린 후 태화의 옆에 누웠다.
“안 자?”
“웅…….”
태화의 손이 상호의 뒤통수에 얹혔다.
“맨날 어디 갔다 와?”
“헌터 일 하느라.”
“한탕……? 도박해……?”
“……잠이나 자.”
상호는 태화의 등을 토닥였다.
태화는 그런 그의 머리를 가까이 끌어당기더니, 좁은 품에 상호의 얼굴을 폭 묻었다.
“푹 자…….”
“숨을 못 쉬겠는데.”
“푹 자……. 쿠울…….”
“…….”
대꾸해도 못 들을 듯싶었다.
상호는 빠져나가길 포기하고 작은 품에 얼굴을 묻은 채로 눈을 감았다. 그냥 빨리 자고 싶어서.
내일, 아니 오늘도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오늘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군…….’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어?!”
태화는 눈을 부릅뜨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야!”
“뭐가.”
“쌤 어디갔지?!”
“자다 깨선 뭔 소리야.”
세희가 계란프라이를 뒤집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일어날 때 보니까 안 계시던데. 오늘은 안 들어오셨던 거 아냐?”
“아니, 분명 밤사이에 쌤이 내 가슴에 코 박았는데…….”
“뭐래, 코가 파묻힐 자리도 없으면서.”
“너보단 커, 썅뇬아!”
힘껏 던진 베개는 세희의 유연한 뒷발차기에 도로 침대까지 날아왔다.
태화는 베개를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날잡고 미행을 해봐야겠어.”
“너 일찍 못일어나잖아.”
“안 자면 돼!”
“그러니까 그걸 못하잖아, 밥팅아.”
“므아?”
“그 밥이 아니야, 언니. 좀만 기다려.”
세희가 혀를 차고 계란프라이를 접시에 담았다.
“어차피 하는 것도 없는데 오늘은 아예 일찍 자보든가. 여덟 시에 자면 네 시쯤에는 일어날 수 있겠네.”
태화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세희의 속이 뻔히 보여서.
“너도 솔직히 궁금하지? 그래서 나 부추기는 거지? 쌤 미행하라고.”
“아니. 난 선생님 믿는데.”
“응~. 들켰어~.”
“밥이나 먹어.”
“아으~.”
셋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 * *
“아침은 드셨습니까?”
“아니.”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애들이 깰까봐 못 먹고 나왔어.”
성연이 가느다란 눈을 깜박였다.
“애가 있어요?”
“학생들.”
“여고…… 아니었어요?”
“…….”
차마 대답할 수가 없다. 무슨 취급을 받을지 두려워서.
상호는 말을 돌리기로 했다.
“진전은 있나?”
“몇 가지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성연이 태블릿 PC의 화면을 툭툭 건드렸다.
“저번에 그 아이 있지요. 골목에서 봤던 아이.”
죽은 아이를 말하는 것이다. 상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가 엄청났는데 CCTV에도 피 묻은 사람이 없고, 목격담도 없었잖아요? 그 이유를 협회 사람들이 생각해 봤는데, 아마 옷을 미리 가져간 것 같다고 해요.”
“아이 몸에 있을 때 어른 옷을 챙겨갔다, 이 말이지?”
“네. 갈아입을 옷을 가져간 거죠. 어차피 계획살인이니까. 몸을 씻을 물까지 가져갔을지도.”
“그럼 어른 옷을 챙긴 시점이 있겠네.”
“그렇죠.”
성연이 상호를 흘끗했다.
“집에서 나올 때 가방을 메고 있었대요.”
“집이 가장 가능성이 높겠지. 부모한테는 물어봤대? 무슨 옷이 없어졌는지?”
“오늘 아침에 물어봤는데 잘 모르겠대요. 하긴 경황이 없겠죠. 아이를 잃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말에 상호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냄새가 난다.
“아직 장례 중인가?”
“네.”
“거기로 가보지.”
상호의 말에 성연이 당황했다.
“굳이 우리가요? 거기도 협회 사람 많아요. 그냥 시키고 우리는 우리 일을 하는 게…….”
“내 눈으로 봐야겠어. 어차피 이것도 우리 말고 하는 양반들 있을 거 아냐.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거야 그렇죠. 저희는 덤 느낌이니…….”
다른 이들은 여럿이 우르르 몰려다녀야 했지만, 상호와 성연은 딱 둘만 있으면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었다. 전투면 전투, 치료면 치료. 인성비가 좋은 조합이라 할 수 있었다.
성연이 태블릿 PC를 만지작거렸다.
“그럼 장례식장으로 간다고 보고할게요.”
“그래.”
둘은 안개가 낀 새벽의 거리를 걸어갔다.
* * *
장례식장에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며칠째 오열을 그치지 않았고, 아버지는 그 옆에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를 취재하러 찾아온 기자들도 그 모습을 보고는 빈소의 사진만 두어 장 찍고 돌아갔다.
그런 부모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김지한 씨. 오수연 씨.”
부모는 고개를 들었다.
검을 차고 안대를 쓴 사내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 * *
“그러니까…….”
상호는 날카로운 눈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장례 후로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고요?”
“예.”
“그래서 옷이 뭐가 없어졌는지 모른다. 이겁니까?”
“예.”
아이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도 안사람도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없어졌어도 뭐가 없어졌을지는 잘 모를 것 같습니다. 당일날에도 그런 건 못 느꼈고…….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 건가요? 그게 호민이랑 관계가 있습니까?”
“예.”
이 둘은 악마에 관해서는 모른다. 상호는 일부러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의 옆에서는 성연이 태블릿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가도 잘 모를 것이다. 그런 말씀이죠?”
“예. 그렇습니다.”
“어머님도?”
상호가 물어도 여인은 고개를 푹 떨구고만 있었다.
상호는 힘주어 그녀를 불렀다.
“어머님.”
묵묵부답.
아이의 아버지가 아내의 눈치를 보며 상호에게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수사관으로서 어머님 말을 들어봐야겠습니다.”
상호의 눈빛에는 살기에 한없이 가까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
“어머님?”
“……모르겠어요.”
여인이 지친 목소리로 답했다.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알겠습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힘드실 텐데 죄송합니다. 저는 잠깐 부하랑 이야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 말에 성연이 상호를 돌아보며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지만, 상호는 가볍게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성연을 향해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밖으로 나온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고, 성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느 쪽인지 짐작이 가요?”
“근거는 없지만 찍으라면 모친 쪽. 너는?”
“저는 둘 다 아니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악마를 찾으면 좋은 거 아냐?”
“알잖아요.”
성연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저 둘 중에 한 명이 악마라면,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죽인 셈이다.
“저는 악마를 못 찾아도 좋으니…… 그것만은 아니길 바랍니다.”
“어쨌든 둘 다 채혈할 거야. 만약 양성이 나온다면 내가 그 악마를 바로 잡아두고, 너는 악마가 아닌 쪽을 데리고 다른 조문객들과 대피해. 아마 강한 놈은 아니겠지만…… 어떤 놈일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알아들었지?”
“예.”
“가…….”
가자, 라고 말하려던 상호의 입이 멈췄다.
냄새가 났다.
피 냄새.
“왜 그래요?”
상호는 성연이 묻는 것을 무시하고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방금 상호와 성연이 아이의 부모와 이야기했던 자리엔 아이의 어머니만이 앉아 있었다. 아버지 쪽은 보이지 않았다. 상호의 눈이 장례식장 안의 화장실을 향했다.
닫힌 문 안에서 흘러나오는 피 냄새.
문고리에는 지문이 남아 있을 터. 그는 화장실로 달려가 문짝을 힘껏 걷어찼다.
콰앙……
경첩이 부서지고 문이 덜렁거렸다.
상호는 문을 마저 떼어내고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굳어 버렸다. 칸막이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한 줄기 선혈.
주인이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
칸을 열자 아이의 부친이 변기 옆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목에서 피를 흘리며.
뒤따라 달려온 성연이 황급히 손에 성력을 둘렀다.
“빨리 쫓아요!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 말에 상호는 반쯤 열려 있는 화장실 창문을 돌아보았다. 생각과 함께 몸이 움직였고, 다음 순간 그의 몸은 장례식장 건물 바깥에 둥둥 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악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에도, 건물 입구에도.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젠장.’
코앞에서 놓쳤다. 상호는 허공을 노려보며 입술을 잘근거렸다.
피 냄새가, 피 맛이, 코와 입으로 흘러들어 비릿한 구역질을 치밀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