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화>
365. 속에서 속이다
콰아앙……
운동장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방학이라 오랫동안 조용했던 교정이 간만에 소란해졌다. 덕분에 방학에도 출근하는 행정 직원들과 남아있는 몇몇 교사들이 멀찍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보다 더 앞쪽, 운동장에 가까운 곳에서.
스탠드에 앉은 태화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짜증나…….”
그 말에 태화의 옆에 앉은 다혜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므아?”
“아니, 짜장이 아니라 짜증이라고. 언니는 먹는 걸로밖에 안 들려?”
“아으으…….”
다혜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오리주둥이가 된 둘은 폭발이 일어나는 운동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뿌연 흙먼지 사이로 검푸른 강기와 하늘색 강기가 맞부딪히고 있었다.
“왜 수업이야, 간만에 쉬는 날인데…….”
“아으.”
“어차피 세희만 집중교육할 거면서.”
“아으아으.”
다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심심했는지 태화를 돌아보며 검을 톡톡 두드렸다. 한 판 붙어 보자는 뜻인 듯했다.
태화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난 함부로 대련하면 안 돼.”
“으아?”
“난 우리 쌤의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깜찍한 제자라서, 생채기 하나도 나면 안 되는 소중한 존재…… 크악!”
“아으!”
태화의 이마에 다혜의 딱밤이 작렬했다.
다혜는 뒤로 나동그라지는 태화를 뒤로하고 검을 뽑으며 운동장으로 걸어 나왔다.
“응?”
검을 휘두르려던 상호는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다혜야?”
“아으으아~.”
다혜가 검을 붕붕 휘두르자 세희가 뺨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자기도 싸우고 싶다는데요.”
“그래? 조금 있다 해주려고 했는데……. 그럼 세희랑 교대하자.”
“아으.”
다혜의 옆에 조그만 강검이 두 개 나타났다.
크기는 작았지만 움직임은 빨랐다. 이기어검은 크기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이점이 있지만 속도만은 빠를수록 좋았다. 상호는 다혜가 강검을 다루는 것을 관찰하며 강검을 뽑았다.
“어검술 수업이라. 나쁘지 않지.”
검푸른 강검이 붉은 강검을 후려쳤다.
손이라는 제약에 얽매이지 않은 검들은 현란하게, 혼미하게 허공을 날아다녔다. 마치 스스로 살아 있는 듯 자유롭게, 나비의 날개처럼.
다혜는 강검을 다루는 데 집중하느라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지만, 상호의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다혜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 초, 그중에 어느 순간.
상호는 단숨에 달려들어 다혜의 목에 검을 겨눴다.
“……아으!”
강검에 집중하고 있던 다혜가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그는 칼끝으로 다혜의 목을 톡톡 건드렸다.
“날 봐야지. 검을 보는 게 아니라.”
“아……으.”
“힘들어도 어쩔 수 없어. 눈으로 안 봐도 조종할 수 있게 연습해야지. 안 그러면 이렇게 되는 거야.”
“으아…….”
다혜의 목에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긴장한 것도 잠시. 다혜는 곧 강검을 둥글게 만들고는 스탠드에 가만히 앉아 있는 세희를 향해 돌격했다.
“으아아앙!”
“자기보다 강한 사람한테 지니까 동생한테 화풀이하러 오는 거 봐. 언니. 내가 언니보다 약해 보여?”
“아웅!”
다혜가 뭉툭한 강검을 세희에게 던졌다.
세희는 날아드는 강검을 초혼강기로 부숴버리고 손날로 다혜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빠악
“느악!”
“얌전히 수업이나 받아.”
“……꾸웅.”
다혜가 머리를 문지르며 터덜터덜 상호에게 돌아왔다. 상호는 다시 검을 들어 올리며 씩 웃었다.
“계속하자.”
“아웅…….”
다혜도 다시 강검을 만들어 상호에게 달려들었다.
* * *
“아──.”
현관에 들어서자 태화가 신발을 벗어던지고 욕실로 쪼르르 달려갔다.
“머리에 흙 다 들어갔자나~.”
“네가 착지를 잘했어야지.”
“방학엔 수업 안 하면 안 돼?”
“방학은 학교를 쉬는 거지 삶을 쉬는 게 아니야, 임마.”
“뿌에에엑~.”
태화는 얼굴을 찡그리며 혀를 내밀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상호는 흙 묻은 옷을 하나씩 뱉어내는 욕실 문에서 눈을 떼고 세희와 다혜를 돌아보았다.
“너희도 차례대로 씻어.”
“므아.”
“배고프대요.”
“그래? 아직 밥때는 아닌데……. 일단 씻고 나와. 간단히 먹을 거라도 차려 줄게.”
“아으.”
“라면이라는데요.”
“응, 라면 끓여 줄게.”
“우앙!”
그 말에 다혜가 욕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꺄아아악! X바, 뭐야! 안 나가?!”
“아으!”
“아이씨, 씻을 거면 기숙사 가서 씻어! 아니면 세면대에서 씻든가! 왜 내 샤워기 뺏는데! 야, 천세희! 니 언니 좀 어떻게 해봐!”
“내 언니 아냐.”
“아아아악!”
상호는 태화의 절규를 무시하고 찬장에서 라면을 꺼냈다.
그는 딱히 라면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아이들을 돌보게 된 이후로는 일부러 찾지 않았다. 괜히 성의 없어 보여서.
그래도 막상 끓이면 맛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도 조금 먹을까…….’
다혜는 두 봉지는 너끈히 먹을 것이고. 상호가 먹을 것까지 하면 세 개인데.
그는 세희를 돌아보았다.
“세희 너도 먹을래?”
“저는 조금만요.”
“그래. 그럼 나랑 반씩 나눠 먹자. 야, 태화야.”
“응?”
“라면 먹을래?”
“아니~.”
냄비에 3인분이 조금 안 되게 물이 담겼다.
물이 끓기까지도, 아이들이 나오기까지도 시간이 걸릴 터. 상호는 바닥에 앉아 TV를 켰다.
‘응?’
TV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께 듣기로는 이런 유형의 수법은 처음 본다고 하시던데요?]
[예, 맞습니다. 대낮에, 골목에서 사람을 죽이고 달아난다는 게, 일반적인 사람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두 양복쟁이 밑에는 굵직한 헤드라인이 흘러가고 있었다.
-백주대낮에 살인사건 벌써 2번째… 범인은 아직 오리무중
[이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고 하는데요.]
[맞습니다. 두 사건 다 피해자 주변에서 피해자의 것이 아닌 혈흔이 발견되었습니다.]
[두 혈흔의 주인이 같나요?]
[자세한 것은 감식을 해야겠지만, 이…… 두 사건이 일어난 장소간의 거리가 상당히 멀거든요? 그런 점을 고려했을 때, 비록 범행 수법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범인의 소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잡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예, 제 사견으로는, 해당 사건들이 CCTV로 확인하기 힘든 곳에서 일어났습니다만, 요즘은 마법이 있고, 또 정령이 있지 않습니까? 헌터들이 투입되면 범인을 잡기까지는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세상이 흉흉하구만…….’
대낮에 살인이 다 일어나고 말이다.
그때 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주방으로 가서 라면을 끓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태화와 다혜가 욕실에서 김과 함께 걸어 나왔다.
태화가 코를 킁킁거렸다.
“아, 냄새 맡으니까 먹고 싶네.”
“아으!”
“안 뺏어먹어. 걱정하지 마. 누굴 돼지로 아나.”
“으아~.”
다혜는 머리도 다 말리지 않은 채로 달려와 냄비를 덥석 잡았다. 상호는 당황하며 내공으로 다혜와 냄비의 사이를 벌려놓았다.
“기다려. 세희랑 내 몫도 나누고 줄게.”
“아으.”
다혜가 눈을 반짝이며 침을 줄줄 흘렸다.
곧 작은 그릇에 상호와 세희의 몫이 담기고, 다혜가 냄비를 든 채로 TV 앞으로 달려갔다.
후루루룩
면발이 다혜의 입 속으로 사라져 갔다.
냄새도 소리도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한사코 안 먹겠다던 태화는 어느새 다혜의 뒤에 다가앉아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언니.”
“므아?”
“한입만.”
“우으…….”
다혜는 눈을 끔뻑이다가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태화에게 내밀었다.
딱 두 가닥.
“우아.”
“아이씨, 이게 뭔 한입이야! 차라리 주지를 마! 한입만 달라니까!”
“므아으…….”
“우씨……. 어? 언니, 언니. 저거 봐.”
태화가 라면을 먹으려는 세희를 검지로 가리켰다.
“세희 쟤 머리카락 잘못 땋았어. 중간에 한번 꼬인 것 같은데.”
“아으?!”
그 말에 다혜가 벌떡 일어나 세희에게 달려들었다. 세희는 쌍심지를 켜고 다혜의 손등을 찰싹 쳤다.
“아니 뭘 다시 땋아! 어차피 씻을 거라고.”
“느아…… 으아?!”
정신을 차린 다혜가 자신의 냄비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이미 태화의 입술 사이로 라면 한 뭉텅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태화가 라면을 우물거리며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땡큐.”
“느아아악!”
“그러게 간수 잘 했어야지. 세상에서 젤 맛있는 라면이 남의 라면인 것도 몰라?”
“꾸웅…….”
다혜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태화의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씹기 시작했다.
“앙냥냥.”
“아놔 X바! 방금 감았다고! 침 묻히지 마! 쌤! 아아아악!”
상호는 태화의 절규를 무시하고 국물을 쭉 들이켜 그릇을 싹 비웠다.
그때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형이네.’
발신자는 도현.
“얘들아. 쌤 전화 받고 올게.”
“므앙.”
“아아아아악!”
그는 핸드폰을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을 나섰다.
“어, 형.”
[야, 상호야.]
심각한 목소리.
[요즘 뉴스는 챙겨 보냐?]
“보긴 보는데. 갑자기 뉴스는 왜?”
[최근에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혹시 들어 봤냐? 대낮에 사람 죽었다는 거.]
“응. 마침 방금 보고 있었어.”
[그 사건을 협회에서 조사했는데…… 그 사건이 있었던 장소의 정령들이 입을 안 연대. 뭔가에 겁을 먹은 것처럼…….]
상호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정령들이 무엇에 겁을 먹었는지.
도현의 다음 말이 그 직감에 쐐기를 박았다.
[뭣보다 그 피해자들 몸에서…… 악마 인자가 발견됐어.]
“……그래.”
인간 사이에 숨어든 악마.
정확히 어떻게 된 노릇인지는 잡아서 족쳐봐야 알겠으나, 여태껏 없었던 종류의 공격임은 분명했다.
“잡아야겠네.”
[잡아야지.]
“찾으면 연락해. 용의자든, 범인이든.”
[그래.]
도현이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잘 지내라.]
그 피곤한 목소리가 꼭 작년을 생각나게 했다.
상호는 통화가 끝난 핸드폰을 잠시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곧 핸드폰을 집어넣고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서는 태화와 다혜의 레슬링, 아니 일방적인 고문이 펼쳐지고 있었다.
“거 라면 한입 가지고 되게 쩨쩨…… 응기익!”
“느아아앙~.”
“끄으윽! 잘모탯써…… 미아내…….”
“꾸아웅.”
우두두둑
“으기기긱!”
다혜가 팔을 꺾을 때마다 태화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상호는 그런 둘을 멀거니 구경하다가 핸드폰을 다시 꺼내들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애들한테 조심하라고 해야겠다.’
절대 혼자 다니지 않도록.
그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안전을 당부하는 문자를 보내고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뭐하는 놈이냐, 네놈은…….’
이젠 사람 행세를 하는 악마까지 나타나다니.
그는 정체 모를 악마에게 욕을 내뱉으며, 한숨을 푹 쉬고 눈을 감았다.
옆에서 다리를 잡고 흔드는 태화를 무시한 채.
“쌤! 쌤! 언니가 나 라면 한입 먹었다고 때렸쪄! 혼내줘! 혼내줘!”
“므아아앙.”
“악! 꼬리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쌤! 언니가 내 꼬리 막 빨아! 쌔애애앰!”
“쮸와아압.”
“으히이익……!”
다혜의 사탕 목록에 악마맛 사탕이 추가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