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화>
364. 방송
그렇게 효은이 영주의 조모와 혜소를 돌보러 떠나고. 태화의 500시간 알바 채무도 거의 끝나갈 무렵.
태화가 침대에 누운 상호의 옆으로 다가와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쌤, 쌤.”
“응?”
또 요튜브로 이상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닐까. 상호는 경계를 풀지 않은 채로 핸드폰을 빼꼼 넘겨다보았다.
화면에는 양복쟁이가 무언가를 강의, 연설, 혹은 발표하고 있었다.
“이게 뭔데.”
“태궐전자!”
태화가 눈을 반짝였다.
“오늘 새 폰 공개했어!”
“그래?”
“응! 이제 주가가 하늘을 찌를 거야! 매일 아침마다 쌤이 텐트를 치는 것처럼!”
“……야!”
상호는 쌍심지를 켜고 태화에게 딱밤을 아주 세게 치려다가, 혀만 쯧 차고 도로 드러누웠다.
“오르면 팔아. 계속 들고 있지 말고.”
“왜? 더 오를 수도 있잖아.”
“넌 그거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간에 그것만 보느라 인생을 말아먹을 거다.”
“치.”
태화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상호를 걷어차며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아~, 얼마나 오를까? 두 배? 세 배?”
“대기업이 어떻게 그렇게 오르냐. 끽해야 10퍼 20퍼 오르고 말겠지…….”
“그치만 그래도 몇백만 원인데!”
“그러니까 그걸로 만족하고 빼.”
“웅~.”
건성으로 대답하는 게 절대 그대로 끝낼 것 같지가 않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얜 그냥 주식에 손을 대면 안 되는 앤데…….’
제발 제때 빼주기를, 괜히 또 곤두박질쳐서 잃지나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며칠 후.
상호는 핸드폰에 뜬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눈을 부릅떴다.
-태궐전자 주가 37% 폭등
‘……올랐네?’
많이 올랐다.
대충 읽어보니 서울이 박살나도 여전히 경쟁력 있는 회사임을 증명해서 이전의 신뢰를 되찾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엄청 올랐네…….’
상호는 고개를 들어 침대 앞쪽을 바라보았다. 세희와 태화, 다혜가 TV를 보며 과자를 까먹고 있었다.
“야, 태화야.”
“웅?”
태화가 그를 돌아보며 빨간 눈을 깜빡였다.
“왱?”
“태궐전자 엄청 올랐다는데.”
그 말에 태화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상호는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슬슬 빼야지?”
“으, 으응. 그래야지…….”
“얼마 벌은 거야?”
“몰……라.”
“몰라?”
상호는 몸을 일으켜서 태화의 볼을 집었다.
“왜 몰라? 네가 알아야지.”
“아, 아직 확인 안 했어…….”
“37퍼센트나 올랐다는데. 그걸 확인을 안 해? 마지막으로 봤을 때 얼마나 올랐었는데.”
“그…….”
태화는 시선을 계속 이리저리 피하다가, 더는 상호의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게…… 내가 들어간 지가 꽤 됐잖앙.”
“어.”
“근데…… 그 37퍼센트가 저점 기준이걸랑…….”
“어.”
“그래서어…… 내가 들어갔을 때 기준으로는…….”
“어.”
“5퍼센트밖에 안 올랐어…….”
“…….”
아주 거하게 말아먹었었던 것이다.
“……그래도 원금은 회수했네.”
“웅…….”
“5퍼센트면 얼마야?”
“백오십…….”
“500시간 알바한 값도 안 나왔네.”
“웅…….”
“그나마 노트북 값은 나왔고.”
“우웅…….”
“그냥 일해서 돈 버는 게 낫겠지?”
그 말에 태화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그치만! 버는 사람들도 많잖아!”
“넌 아니라는 게 문제지.”
“일해야만 돈이 벌리면 평생 일해야 해!”
“맞아. 그래야지.”
“아니이! 일을 안 해도 돈을 버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태화는 그렇게 빽 소리치며 핸드폰을 상호에게 들이밀었다.
“그게 이거야!”
화면에는 태화의 요튜브가 띄워져 있었다. 상호는 썸네일마다 출연당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번보다 조회수가 더 올라 있었다.
“제발 요튜브를 할 거면 네 얼굴로 해라……. 내 얼굴 말고.”
“우씨……. 알았어! 그럼 캠 사줘!”
“뭘 그럼이야, 임마. 은근슬쩍 당연하게 밀어붙이지 마. 150만원 주식으로 벌었잖아.”
“끄응…….”
태화는 꿍얼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알았어. 내가 시킬게.”
“근데 캠이 캠코더 말하는 거지? 굳이 사야 돼? 핸드폰으로도 잘 하고 있잖아.”
“더 좋은 화질이 필요해! 폰으로는 쌤의 얼굴을 다 담을 수 없어!”
“……그래, 니 알아서 해.”
제발 아침에 일어난 직후에는 안 찍어 줬으면 좋겠다. 눈에 낀 눈곱이 초고화질로 저장될 테니.
문득 장난기가 솟은 상호는 태화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세희야, 캠코더 하나 골라. 넌 공짜로 사줄게.”
“야이씨, 쌔애애앰!”
* * *
다음 날.
상호는 현관 앞에서 주워온 택배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요즘은 택배가 빨리 오는군.’
태화 앞으로 온 택배. 운송장에 쓰인 내용물은 캠코더.
“태화야, 캠코더 왔다.”
“아, 진짜?”
후다닥 달려온 태화가 택배를 찢어발기듯이 허겁지겁 열었다.
캠코더가 도착한 게 그리도 좋을까. 상호는 눈을 끔뻑이다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리 말하는데 난 안 찍혀줄 거야.”
“미리 말하는데 난 어떻게든 찍을 거야.”
“얌마…….”
“뻥이양.”
태화는 캠코터를 흔들며 혀를 쏙 내밀었다.
“이건 나 찍으려고 산 거야.”
“그래?”
그 말을 듣자 약간 안심이 되었다. 백 퍼센트 신뢰가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도 그런 거 찍지 마. 얼굴 팔리면 귀찮은 일만 한가득…….”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태화의 음흉한 시선이 상호의 얼굴에 박히고 있어서.
무언가 음모를 꾸미는 게 분명했다.
“쌤.”
“……뭐.”
“출연료 주면 출연해 줄 거야?”
“아니.”
“그래? 뭐 그럼 됐어.”
태화는 씩 웃고는 캠코더를 들고 식탁으로 달려갔다. 식탁 위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진땀을 흘렸다.
‘또 뭔 짓을 하려고…….’
제발 사고만 치지 말기를. 그는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불안함을 억누르며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 * *
그날 저녁.
노트북 앞에 세희와 태화, 다혜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지금 나가고 있는 거야?”
“그런가 본데.”
“므앙.”
상호는 멀찍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저게 그 인터넷 방송인지 뭐시긴지인가. 인터넷을 잘 안 쓰는 상호에게는 생소한 문화였다.
태화가 화면에 대고 말을 했다.
“안녕하세용~. 어서오세용~. 언니덜~. 네네~. 오늘은 라이브 방송이에용~.”
요튜브 구독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리라. 상호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볼일을 보려는 척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요튜브를 켰다.
-여고 존잘쌤 밀착 동거 브이로그♡
-소통해요~ [LIVE] [실시간 스트리밍 중]
‘이건가.’
클릭해 보니 화면에 아이들의 얼굴이 떴다.
[안녕하세용~. 후원 감사합니다~. 쌤이요? 쌤은 화장실 갔어용.]
[스승과 제자사이 요튜브도 많이 구독해 주세요.]
[야, 왜 남의 채널에서 맘대로 홍보해! 홍보비 내! 네? 홍보비 내지 말고 보비라구요? 그게 뭔데여?]
[매니저. 쳐내.]
[므아.]
다혜가 채팅방 관리자인 모양이었다.
채팅방에 올라오는 채팅들과 그 아이디는 대부분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아무래도 다들 방송에 나오는 아이들보다는 ‘존잘쌤’을 보려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이 채널의 수요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통감했다.
‘잘생긴 거 보려면 TV나 틀지, 뭐 이런 놈을 보겠다고…….’
아무리 한숨을 쉬어도 벽 너머의 아이들과 화면 너머의 사람들에게는 닿지 않겠지만, 그래도 상호는 한숨을 쉬었다.
아이들이 화면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 채팅을 읽었다.
[아, 저희 학교요? 그건 비밀인뎅. 아 중3이야? 근데 우리 학교 등록금이 비싸. 지금 여기 셋은 다 중학교 성적으로 장학금 받아서 온 거야.]
[선생님 성격이요? 음……. 일단 다정하구요. 본인은 잘 모르시는데 은근히 소심해요. 적어도 저희 앞에서는.]
[므앙으앙므앙으앙.]
다혜가 옹알거리자 무언가 특이한 표시가 달린 채팅이 올라왔다.
-1,000₩
-옆에 친구는 실어증인가요
[므아아.]
[아, 네. 헌터 일 하다가 충격을 좀 받아서……. 그리고 친구는 아니고 언니인데…….]
-10,000₩
-맛있는 거라도 사주세요
[우왓!]
태화의 눈이 뒤집어졌다.
[어버버버! 어버버!]
[뭐해 등신아. 그런다고 사람들이 속겠냐?]
[므아아아악! 느아아아악!]
[시끄러워. 진행이나 해, 바보야.]
세희가 태화의 뒤통수를 치자 그제서야 태화가 실어의 난동을 멈췄다.
[아, 맞아. 진행해야지. 저희가 오늘 방송을 킨 이유는요~.]
태화가 환하게 웃었다.
나빛이 지었다면 그냥 예쁜 미소였겠지만, 태화가 지으니 가식적인 기운이 퍽 묻어났다.
[오늘 쌤한테 드릴 출연료를 좀 받으려고 하는데용~.]
‘?’
핸드폰을 보던 상호의 몸이 굳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대놓고 자신을 팔아서 수금을 하겠단 말이 아닌가.
‘이 짜식이…….’
그래도 일단은 더 들어 보기로 했다.
[금액은 상관없구요~. 여러분의 마음이 담겼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천원이든 만원이든 마음대로 쏴주세용~.]
-100,000₩
[워메 X벌.]
상호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말이 태화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태화도 상호도 굳어버린 동안, 순식간에 후원금이 세 자리가 쌓였다. 쏘는 사람의 수도 많았고 한 사람이 쏘는 양도 많았다.
지금 당장 튀어나가지 않으면 돈독 오른 새끼라고 욕을 바가지로 들어먹을 터였다.
‘아니 X바…….’
상호는 눈물을 삼키며 욕실에서 뛰쳐나가 태화에게 소리쳤다.
“야, 이건 사기잖아, 임마!”
“사기? 이게 왜 사기야. 사기가 아니게 만들면 되잖아!”
“아니……. 아오!”
이미 헤어날 수 없는 덫에 걸려 버렸다. 그는 터덜터덜 걸어가 아이들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채팅창에 채팅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존잘쌤 등☆장☆
-왔다아아아아~~
-ㅉㅉㅉㅉㅉㅉㅉ
-ONELIGHT: 선생님...헤헤헤...선생님...
“……안녕하세요.”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못난 선생이 제자들 교육을 잘못 시켜서……. 돈은 그만 쏴주세요. 돈 없는 거 아닙니다…….”
“왜! 내가 돈 벌고 있잖아!”
“이런 거 말고 좀 건실한 걸로 부탁한다, 제발…….”
“틀딱 같은 소리하지 마! 딴따라네 환쟁이네 소리 듣던 사람들도 이제는 어엿한 직업이잖아! 시대는 흐르는 거야!”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사람 등쳐먹는 게 직업이 되진 않아!”
“등쳐먹는 거 아냐! 컨텐츠를 파는 거야!”
-쌤 너무 고리타분하네~
-집이 보수적인가봐요~
-여자랑 사귀면 결혼할때까지 지켜줄 것 같아~
그 채팅을 본 태화가 손을 내저었다.
“아, 우리 쌤 여자 겁나 많아요. 제가 아는 것만 세 명? 네 명? 나까지 합치면 다섯인가. 그쯤.”
“야……!”
상호의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하지만 채팅창은 이미 그의 얼굴보다 더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뭐야? 그렇게 안 봤는데 육식남이야?
-머리는 보수적인데 여자는 참을 수 없었군요...
-유교상체 발정하체
-입으로는 조신하게 다니라고 하면서 손으로는 벗길 것 같아~
낯이 뜨거워 들 수가 없었다.
상호는 고개를 처박은 채로 최대한 작은 목소리를 내었다.
“얘들아…….”
“응.”
“이거 언제 끝나……?”
“몰라.”
“지금 끄면 안 돼?”
“사람들 막 쏟아져 들어오는데. 지금 끄면 쌤 완전 먹튀로 찍힐걸. 받은 만큼은 해줘야지.”
“그게 언제쯤……?”
“몰라. 230만원어치만큼 방송해.”
태화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세희와 다혜를 데리고 옆으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그렇게 완성된 상호의 단독 샷.
-꺆!!!! 어뜨케!!!! 얼굴에 묻은 잘생김 하나하나 다 보여!!!!
-화질 엄청 좋다
-주인장 캠 잘바꿨네~
-선생님 더 가까이 와보세요~
-안대 벗어주면 안대여?ㅠㅠㅠ
“죄송합니다…….”
-연애 썰 풀어주세요
-노래해요 노래
-아니면 춤!!!!
“죄송합니다…….”
상호는 노트북에 머리를 박고 다시는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아래로 숙여지는 그의 고개와는 반대로, 채팅창 위 후원금 목록은 그 끝을 모르고 위로 쭉쭉 뻗어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