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363화 (363/501)

<363화>

363. 이상한 옷

날이 추워서 바닥이 찼다.

그 위에 깔아놓은 요도, 이불도 얼음장처럼 으스스한 한기를 품고 있었다. 이래서는 자다가 눈과 혀까지 얼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안 그래도 씻는 물까지 차가워서 한바탕 고생을 했는데.

상호는 마른 건지 얼은 건지 분간이 안 되는 머리를 털며 집 구석구석을 뒤져보았다.

‘뭐 쓸만한 게 없네…….’

겨울을 나는 데 쓸 만한 물건은 안방에 있는 전기장판뿐. 하지만 노인과 아이가 쓰고 있는 걸 뺏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보일러는 왜 고장이 나가지고…… 에휴.’

아마 마당이 박살이 났을 때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그나마 솜이불이 두터워서 다행이었다. 겨울에도 밥 먹듯이 야영을 했던 상호와 효은에게는 충분히 버틸 만한 상황이었다. 살아남는 것 이상은 장담하기 힘들었지만.

상호는 이불을 향해 다가가는 효은에게 물었다.

“빌려오기는 시간이 늦었고……. 시내에 가서 전기난방기라도 사 올까?”

“…….”

효은은 대답하지 않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참나…….’

도대체가 말을 하질 않으니.

상호는 그냥 혼자 나가버리려다가, 혀를 쯧 차고는 효은의 옆에 누워 바싹 다가붙었다.

그러자 효은이 그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야, 야. 나효은.”

“…….”

“안 추워?”

“…….”

“춥잖아.”

상호의 품에 효은의 좁은 등이 닿았다.

“너 추운 거 못 참아가지고 옛날에 대장님 라이터 훔쳐서 불 피우다가…….”

퍼억

“……윽.”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다 뒈질 뻔했지 않느냐, 라는 말은 효은의 팔꿈치에 부딪혀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상호는 명치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안 추워? 그냥 이대로 잘 거야?”

“…….”

“벌써 혀가 얼었냐?”

그 말에 효은이 그를 돌아보았다.

원망 가득한 눈빛. 꼭 눈치 없는 새끼라고 욕하는 듯했다. 하지만 상호도 그 정도 눈치는 볼 줄 알았다.

그는 효은에게 조금씩, 은근하게 달라붙었다.

“춥지? 솔직히 춥지?”

“…….”

“이리 와.”

그래도 부답, 부동.

상호는 손을 뻗어 효은의 어깨를 잡았다. 얇은 잠옷 아래로 부드럽고 가느다란 선이 느껴졌다.

“춥게 잘래? 따뜻하게 잘래?”

“…….”

“난 가만히 있을 거야.”

그 말에 효은이 꾸물거리며 상호의 품으로 서서히 안겨들었다.

역시나 이걸 바라고 대꾸를 않았던 것이다. 상호는 피식 웃으며 효은을 꼭 끌어안았다.

‘그렇게 삐진 척을 하더니, 결국에는…….’

그런데 효은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얘가 어디 아픈가. 상호는 어리둥절해서 몸을 일으켜 효은의 얼굴을 확인하려다가 바지 속으로 들어오는 손길을 느끼고 화들짝 놀랐다.

“야, 야!”

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전진했다.

방에 사람들이 있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상호는 질겁하며 효은의 손을 쳐냈다.

그러자 효은이 그를 표독하게 째려보았다.

“가만히 있을 거라며.”

“그게 그 말이냐? 니가 안기라는 거지? 같이 껴안고 따뜻하게 자자고! 이런 거 말고!”

“몰라. 바지나 벗어 봐.”

“아니……!”

음험한 손길이 상호를 뱀처럼 휘감았다.

* * *

“하아…….”

상호는 희끄무레하게 밝아오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몸을 조금만 뒤척여도 차갑게 식은 이불이 닿아 몸이 움찔거렸다.

‘……끄응.’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다.

품에서는 효은이 새근새근 고르게 숨을 쉬고 있었다. 언제는 추워도 혼자서 잘 수 있다는 것처럼 굴더니, 정작 잠에 들고 나서는 한시도 상호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럴 거면서 왜 삐진 척을 하실까…….’

상호는 가만히 효은의 머리를 쓸어내리다가 방에서 나오는 노파와 눈이 마주쳤다.

노파가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잘 쳤냐?”

“그게…… 잘 잤냐는 뜻이죠? 어디 사투리예요?”

“씨를 잘 뿌렸냐 이 말이다.”

“……할머니!”

“거 자식농사에 열심일 수 있지.”

노파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아침을 준비해야겠다. 상호는 효은을 이불로 둘둘 말아서 내공으로 들어 올려 안방 전기장판 위에 올려놓은 후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쌀을 대야에 담아 씻으며 물었다.

“다시 여기서 사시는 거예요?”

“집이 고쳐졌으니 그래야지.”

“그럼 보일러도 고쳐야겠네요?”

“기사는 불렀는데 언제 올지 모르겠다.”

노파가 혀를 쯧 찼다.

“네 제자라던 아이는 잘 지내냐?”

“예, 뭐…… 지나치게 잘 지내죠.”

그 아이의 요튜브 때문에 가출했다가 여기까지 왔다. 상호는 쌀을 안치고 냉장고를 뒤적거리다가 문득 아이들 생각이 났다.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을까.

‘이따가 전화 한 통 해야겠다.’

* * *

“비상사태야!”

태화가 식탁을 손바닥으로 쾅 내리쳤다.

“밥이 없어!”

“아으!”

“뭘 아으야! 언니 때문이잖아!”

“꾸웅…….”

다혜가 고개를 푹 숙였다.

태화의 말대로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범인은 당연히 다혜. 상호가 만들어 둔 카레도, 반찬도, 간식거리도 나흘 만에 싹 털어먹어 버렸다.

다혜의 먹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길게 버틴 셈이었다.

“이대로면 굶어 죽을 거야!”

태화의 말에 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트 가서 사오면 되잖아.”

“아냐! 난 집밥이 아니면 밥을 못 먹어!”

“지도 집밥 먹어본 지 십수 년 넘은 주제에…….”

“쌤을 잡아와야 해!”

“그건 맞지.”

세희의 생각도 같았다.

태화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곧 통화가 연결되고 상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태화야. 잘 지내고 있어?]

“쌤!”

태화가 갑자기 코를 훌쩍이며 우는 척을 했다. 눈물은 한 방울도 없이.

“집에 먹을 게 없어……!”

[그래? 그새 다 먹었어? 어쩌지…….]

“돌아와! 내가 잘할게……. 공부도 열심히 하구……. 청소도 열심히 하구…….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 될 테니까아…….”

[배달시켜 먹어. 너 배달 좋아하잖아.]

“난 쌤 밥이 먹고 싶단 말이야!”

태화의 눈에서 눈물 대신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세희는 호신강기를 씌운 손가락으로 태화의 눈을 찔렀다.

“크아아악!”

“집 타잖아, 멍청아.”

“하여튼 그래서 쌤! 집에 언제 오는데!”

[연휴 끝나면~.]

“왜애애애!”

[뭘 왜야. 할 일이 있어서 못 가는 거지.]

“뻥치지 마! 어디 놀러 간 거잖아!”

[볼래?]

통화가 영상통화로 바뀌고 바닷가가 화면에 나타났다.

겨울의 한적한 부두를 회색 장삼과 회색 비니를 쓴 아이가 되똥되똥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태화가 빽 소리쳤다.

“빡빡이랑 놀러 간 거 맞네! 왜 거짓말해!”

[여기 어딘지 모르겠냐? 다시 잘 봐봐.]

“웅?”

태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뭐야. 우리 도망쳤던 데 아냐?”

[맞아.]

“거길 왜 가! 우리 둘만의 장소잖아!”

[할머니 뵈러 왔지 임마. 잘 지내고 계시더라.]

“그럼 나도 데려갔어야지! 그냥 우리 떼놓고 놀러간 거 맞잖아!”

[……전파 상태가 안 좋나~? 통화가 끊기네~.]

“뻥치지 마!”

[하여튼 알아서 잘 챙겨 먹어~. 끊을게~.]

따질 새도 없어 통화가 끊기고.

태화의 눈에서 불꽃이 또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아!”

“집 탄다고, 또라이야!”

* * *

“다리 안 아파?”

“네.”

혜소는 뒷짐을 진 채로 바닷가를 걸었다. 모래톱이 아닌 자갈과 바위 위를. 기다란 장삼 소매가 내려와 차고 짠 바닷바람으로부터 손을 막아주었다.

그런 혜소의 뒤에서는 마찬가지로 뒷짐을 진 상호가 보폭을 맞추어 느릿하게 걷고 있었다.

“바다는 처음이지?”

“네.”

“어때?”

그 말에 혜소는 바다를 돌아보았다.

푸른 평야. 짧은 생에 처음 보는 수평선. 항구를 떠나는 배가 남도의 섬 사이로 외로운 여로에 오르고 있었다.

“이게 다 물인 거예요?”

“응.”

“얼마나 깊어요?”

“글쎄. 가장 깊은 곳은 가장 높은 산보다 깊지.”

TV도 책도 없이 단둘이서 살아온 세상. 혜소가 세상을 보는 눈은 난생처음 개미집을 나온 개미와 다를 바 없었다.

혜소는 말없이 바다를 향해 다가갔다.

상호는 그런 혜소가 바위에 넘어질까 봐 주시하며 뒤를 따랐다.

참방……

혜소가 바다에 손을 담갔다.

“따뜻해요.”

“손이 차서 그렇게 착각하는 거야. 온몸이 들어가면 죽도록 차가워.”

상호는 혜소의 손을 바다에서 꺼내 손으로 감쌌다.

“혜소야.”

“네.”

“어떻게 할 거야?”

혜소는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따랐던 은인. 그 은인의 조모. 홀로 살고 있는 것이 외로워 보였다.

하지만 하나 두려운 것이 있어서.

“……잘 모르겠어요.”

“네가 선택해.”

상호는 어느 쪽도 권하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한 누군가의 수발을 드는 것.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 지내는 것. 그 두 가지는 혜소에겐 익숙한 일일지도 몰랐지만, 노파에게 남은 시간은 혜소의 주변인들보다 훨씬 짧을 터였다.

그렇지만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는 바라마지 않던 일일 테니.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이해하지만…… 하나 조언하자면, 몸이나 마음이 힘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편이 나아.”

그는 손에 남은 소금기를 털어내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돌이켜 봤자 결과는 바꿀 수 없으니까.”

“……그러네요.”

혜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했어요.”

“정했어?”

“네.”

무엇을 선택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가자. 저녁 먹으러.”

상호는 혜소의 손을 잡고 노파의 집으로 향했다.

* * *

연휴의 마지막 날.

상호는 차 앞에 서서 대문 쪽을 돌아보았다.

“가볼게요.”

“오냐.”

“갈게.”

“네.”

노파의 옆에는 혜소가 서 있었다.

아직 사정을 듣지 못한 효은은 멀뚱한 표정으로 상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호는 그런 효은에게 대충 눈짓하고 운전석 문을 열었다.

“가자.”

“애는 왜 안 데려가?”

“남기로 했어. 빨리 타. 혜소야, 학기 전에 한번 올게.”

“네.”

혜소는 꼬박 고개를 숙이고 노파와 함께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팔다리를 휘적이며 걷는 모습이 꼭 원래부터 이 집에 살던 사람 같았다.

조수석에 오른 효은이 안전벨트를 매며 상호를 돌아보았다.

“혜소가 여기 살고 싶대?”

“응. 영주 형 가족이니까.”

“야, 그래도 애 혼자서 어떻게 노인을……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하면 쟤 혼자서 뭘 어떻게 해?”

“그런가? 그런데 그렇게 되더라도 혼자 쓰러지신 것보단 낫잖아.”

“야, 애가 그런 상황을 보게 되는 게 문제라고!”

“혜소는 그것까지 감수하고 남기로 한 거야.”

“아니…….”

효은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쟤 핸드폰도 없잖아.”

“그렇지.”

“너는 진짜…… 아니, 됐다. 에휴, 그러니까 애가 정했다는 거지?”

“응.”

“알았어.”

효은은 그래도 뭔가 못 미더운 모양이었다.

상호도 효은의 걱정을 못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선택이 혜소의 후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영주의 남은 가족을 돌보는 것. 아직은 어려서 누가 누굴 돌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차에 시동을 걸고 도로로 들어서는데 효은이 그를 돌아보았다.

“내가 같이 살게.”

상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혜소랑?”

“그럼 누구겠냐?”

“아니…… 괜찮겠어? 니가 시골 밥만 먹으면서 살 수 있어? 배달도 안 오는데?”

“나도 요리할 줄 알아, 이 새끼야.”

“그렇다고 피자나 치킨을 만들진 못할 거 아냐.”

효은이 그래준다면야 걱정은 없어지겠지만.

혜소와 살겠다는 말은 곧 상호와 떨어져 살겠다는 말이라. 상호는 효은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겠어?”

“어쩌겠냐. 니가 갈 리는 없는데. 그럼 나라도 가야지.”

“차 돌려?”

“아니. 준비해서 내려오게.”

“아하.”

상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효은이 샐쭉한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좋냐? 내가 간다니까?”

“아니, 그럴 리가……. 그냥, 솔직히 안심은 했지. 혜소랑 같이 지내준다니까.”

“나 가고 나면 또 애들이랑 자겠네?”

“……아닐걸. 아마도.”

“참나.”

효은은 콧방귀를 뀌고는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효은이 숙소를 나가는 게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 모르겠다. 상호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북쪽을 향해 차를 몰았다.

* * *

“바로 갈 거야?”

상호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짐을 챙기기 시작한 효은을 바라보았다.

“좀 있다 가지 그래. 내일 가도 되잖아.”

“가지 말라고는 안 하지? X새꺄.”

효은의 표독한 눈빛에 상호는 몸을 움츠리며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아니, 뭐 외국 가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가는 거면 한 시간이면 가지. 날아가면…….”

“X발럼아, 그런 새끼가 학기중엔 바빠서 못 만나?”

“에이, 방학은 좀 시간이 된다 이거지…….”

“꺼져.”

효은은 혀를 쯧 차고 옷장을 열었다가, 웬 상자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눈을 깜작였다.

뭔가 익숙한 느낌의 상자였다.

‘뭐지?’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한 효은의 몸이 살짝 움찔했다.

“……야.”

“응?”

“참나…….”

효은은 코웃음을 치며 상자에서 교복을 들어 올렸다. 그녀 자신이 어릴 때 입었던 촌스러운 교복.

“이런 거 해달라고?”

“아, 아니…….”

상호는 쩔쩔매며 손을 흔들었다.

효은의 집에서 놀림감으로 쓰려고 가져왔을 때, 아이들의 눈에 안 보이게 옷장 속에 처박아 뒀는데. 저기에 둔 것을 여태 까먹고 있었다.

“너 입으라고 가져온 게 아니라…….”

“그럼 왜 가져왔는데? 딸치려고 가져왔냐? 야, 이 드러운 새끼야.”

“……입어주세요.”

상호는 머리를 바닥에 박을 것처럼 푹 숙였다.

상자 속에 든 것은 효은의 교복만이 아니었다. 효은은 상자를 뒤적거리며 어른의 장난감들을 꺼냈다.

“할 생각 만땅이었구만, 이 새끼야. 너도 어지간하다. 너 교복 보고 싶어서 여기 학교 온 거지?”

“아니야……. 그건 교단 사람들이 치워달라고 해서 가져온 거야! 성당에 너 살던 방에서…….”

“그럼 교복을 왜 여기 넣어뒀는데?”

“그냥 같은 날에 가져와서…….”

“핑계도 많다. 벗어, 등신아. ……아니, 잠깐.”

효은이 보기 드문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니가 입어.”

상호의 머릿속에 천둥이 쳤다.

“……뭐?”

“니가 입으라고.”

“왜……요?”

“너 내가 이상한 옷 입는 거 싫어하잖아. X발새꺄.”

“아니…….”

상호의 온몸에 진땀이 줄줄 흘렀다. 살다살다 여자 교복을 입고 일을 치르라니.

“이거…… 너무 작아서 내가 입으면 찢어질 것 같은데…….”

“너도 그거 입고 느껴 봐. 내가 널 위해서 어떤 부끄러움을 참았었는지.”

“아니 진짜…… 차라리 남자 교복을 구해 올게! 그건 얼마든지 입어줄게! 응?”

“입어.”

“제발 이것만은…….”

“입으라고.”

효은이 어른의 장난감을 손바닥에 탁탁 두들겼다.

“이거 니한테 쑤셔넣기 전에.”

“……입을게요.”

상호는 눈물을 삼키며 두 손으로 공손히 교복을 받아들었다.

* * *

“아오, 진짜!”

태화가 꼬리를 신경질적으로 휘두르며 분통을 터트렸다. 옆에서는 세희와 다혜가 꼭 붙어 걷고 있었다.

“나 이 언니랑 밥 못 먹겠어!”

“뭐 그렇게 따지는 게 많아. 단비랑도 못 먹겠다더니.”

“아니, 자기 입에 이미 음식이 있는데도 나한테 내 음식 달라고 막 쳐다보잖아!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 안 주면 울 것처럼! 진짜 오지윤보다 더해!”

“그럼 너도 똑같이 해.”

“내가 달라고 할 때면 음식이 이미 없어! 다 먹어서!”

“그럼 너도 빨리 먹어.”

“크아아악! ……어?”

태화는 교문으로 들어서다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방학이라 휑한 주차장에 익숙한 차가 주차된 게 보였다.

“쌤 왔나 봐!”

“그러게.”

“놀래켜 줄까? 창문 확 열고 안으로 다같이 들어가는 거야.”

“나쁘지 않은데.”

“므아.”

태화의 작전에 세희와 다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남교사 숙소로 걸어간 아이들은 상호의 방 창문을 향해 둥실 떠올랐다. 세희와 다혜는 허공답보로, 태화는 마법으로.

셋은 창문을 확 열어젖히고 냅다 뛰어들었다.

“쌔애애앰……?!”

퍼억

쏜살같이 날아온 베개가 태화의 얼굴을 때렸다.

세희와 다혜에게도 베개가 날아왔지만, 살기가 담겨있지 않은 허접한 공격이라 가볍게 피해냈다. 진심이 담겨있는 것 같긴 했지만.

둘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마주하고는 돌처럼 굳어 버렸다.

“어?”

“……므아.”

식겁했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불을 가슴에 끌어안은 상호.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 채찍을 든 효은. 이불로 채 가려지지 못한 상호의 몸에는 여자 교복으로 추정되는 천 쪼가리가 걸쳐져 있었다.

그리고 손목에는 끊어진 수갑.

방금 막 뜯어낸 듯 사슬이 덜렁거렸다.

“…….”

“…….”

“……므아앙.”

다혜가 얼빠진 목소리를 내기 무섭게 태화의 얼굴에서 베개가 떨어졌다.

그제서야 비로소 광경을 마주한 태화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

“……오우 X벌.”

그 한마디뿐.

한참이 지나도록 그들 중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늘 헛소리를 해대는 태화조차도.

창으로 들어온 겨울의 찬바람이 그들 사이를 어색하게 지나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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