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360화 (360/501)

<360화>

360. 하지 말라면 더 하는

상호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태화의 노트북을 흘끗했다.

저 빌어먹을 요튜브를 지워야 하는데. 전원을 켜도 비밀번호를 몰라서 그러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노트북 계정과 요튜브 계정의 비밀번호 둘 다.

태화의 성격상 둘을 구분해 놨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둘 다 알아내야 한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노트북 계정의 비밀번호는 몇 번이고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

마침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태화는 출근, 세희는 다혜와 함께 시내로.

‘……또 시도해 봐야지.’

노트북을 열고 전원을 켜자 이제는 익숙한 잠금화면이 마중을 나왔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을 켰다. 여태 틈날 때마다 시도했던 비밀번호 목록들.

‘2태화…… E태화…… 태화……. 생일, 전화번호 앞자리 뒷자리……. 젠장, 너무 주먹구구군.’

눈 딱 감고 협회에 들고 가서 해킹해 달라고 할까. 하지만 제자의 노트북을 강제로 따버리는 게 거부감이 들었다.

‘음? 잠깐만…….’

이미 강제로 따고 있는 게 아닌가. 비밀번호를 일일이 입력하든 해킹 프로그램을 쓰든 그게 그건데.

거부감이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렸다.

‘오케이! 따자!’

결론을 내린 상호는 곧바로 노트북을 들고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 * *

“그러니까…….”

협회의 직원이 식은땀을 흘렸다.

“비밀번호를 풀어 달라……구요?”

“네.”

상호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의 소개를 받아 도착한 부서.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컴퓨터 관련한 업무를 하는 곳 같았다. 어쨌든 상호에게는 비밀번호만 알아낼 줄 알면 별 상관 없었다.

직원은 노트북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물었다.

“쓴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일주일인가…… 얼마 안 됐어요.”

“그럼 금방 찾을 수도 있긴 한데…… 어쩌다가 비밀번호를 까먹으신 거예요?”

“……제자가 장난을 쳐서.”

얼버무림이 통했을까. 직원은 별 의심을 갖진 않은 듯했다. 가졌더라도 부협회장의 소개를 받아 찾아온 X급 헌터에게 표현하지는 못했겠지만.

비밀번호를 푸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 됐습니다.”

“아, 예. 뭐였어요?”

“대문자 T에 O, A…… 잠시만요.”

직원은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화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쌤 바보 멍청이…… 네요.”

“…….”

비밀번호를 알아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한 방 먹은 상호는 시선을 옆으로 굴렸다.

‘그럼 요튜브 비밀번호도 다르겠구만…….’

“비번 하나만 더 알아내 주세요.”

“어떤 거요?”

“요튜브 비밀번호.”

“아, 그런 건 더 쉽죠.”

직원은 다시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비밀번호를 두 개나 까먹었다는 게 이상했을 것이다. 상호는 결국 사실대로 말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제자가 제 얼굴을 맘대로 찍어 올려서…….”

“아이고. 요튜브에요? 지우시려는 건가요?”

“예.”

“혹시 스트라이샌드 효과라고 아세요?”

“……뭐시기요?”

멍하니 눈을 끔뻑이는 상호에게 직원이 부연했다.

“이런 말 들어 보셨어요? 뭔가를 널리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걸 금지하는 것이다…… 라는 말.”

“무슨 뜻인지는 알겠네요.”

“예. 지우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어요.”

그제서야 상호의 눈에 한 팻말이 들어왔다. 정보부 기밀관리팀.

“특히 이런 요튜브는 시청도, 다운로드도 업로드도 쉬워서…… 지우면 오히려 여러 사람들이 자기 소장본을 올리려고 하죠. 그걸 신고하면 이번엔 요튜브 바깥까지 퍼지고.”

“답이…… 없단 거죠?”

“네. 사실상.”

직원이 상호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정 얼굴이 팔리는 게 싫으시다 하시면…… 방법이 있긴 해요.”

귀가 솔깃했다. 삭제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상호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뭔데요?”

“영상을 바꿔치기하는 거예요. CG 처리를 해서. 얼굴은 조금씩만 바꿔도 인상이 확 달라지니까.”

“그게 돼요?”

“저희 주특기죠.”

씩 웃는 게 퍽 믿음직스러웠다.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환자가 의사에게 처방을 받듯이.

“부탁드립니다.”

“아녜요, 이게 저희 일인데.”

직원이 그에게 노트북을 돌려주었다.

“그럼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처리해서 바꿔치기를 할게요. 요튜브 비밀번호는 알아냈으니까.”

“예. 고맙습니다. 근데 요튜브 비밀번호는 뭐였어요?”

“태화상호697…….”

“……안녕히 계세요.”

상호는 노트북을 들고 부리나케 정보부를 나섰다.

* * *

“이상하다…….”

소파에 앉은 태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바닥에 앉아 검을 손질하던 상호는 뜨끔해서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쌤.”

태화는 무릎 위 노트북과 바닥의 상호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쌤 있잖아, 카메라로 찍으면 사람이 바뀌어.”

“……착각이겠지.”

“아니야, 봐봐. 흉터도 연해져서 거의 안 보이구, 코도 낮아지구, 없던 팔자주름이 생기구…… 턱도 좀 둥글어졌어.”

“착각이라니까. 말이 되냐. 카메라로 찍는다고 사람이 달라져?”

“그치만 이건 완전 다른 사람인데…….”

태화는 눈을 끔뻑이다가 갑자기 소름이 쫙 돋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괴담이야!”

“괴담?”

“영상 속에 사람이 갇힌 거지! 사실 이 영상 속에 있는 남자가 진짜 쌤이고! 쌤은 몸을 바꿔친 귀신! 나는 기억을 조작당해서 속고 있는 거야!”

“그렇구나.”

“왜 그렇게 반응이 미지근해! 나 무서워! 안아줘!”

“귀신이라며.”

“잘생긴 귀신이 더 좋아!”

상호는 품으로 달려드는 태화의 뿔을 막았다.

바꿔치기는 효과가 아주 좋았다. 사람이 달라지니 인기는 자연스럽게 떨어졌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조회수는 점점 폭락해 갔다.

조금만 더 하면 수익도 줄어들고, 결국에는 태화도 요튜브를 그만둘 것이다.

‘대성공이군…….’

상호가 그렇게 자찬하고 있을 때. 침대에 던져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효은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야

-너 설마 성형했냐

당연히 요튜브를 보고 하는 말이리라.

상호는 아니라고 하려다가 장난기가 돋았다.

-ㅇㅇ 성형함

그러자 분노에 찬 문자가 쏟아졌다.

-X발아 왜고쳐

-누구 맘대로 고치는데

-아 진짜

-아 진짜 왜고친건데

울기라도 할 기세. 상호의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너도 고쳤잖아ㅇㅇ 난 고치면 안돼?

-나는 눈이랑 코만 X나 살짝 한거야 병X아

-나도 살짝 했어ㅇㅇ

-아니 진짜 아 왜그랬냐고

꼭 그림을 망친 화가, 혹은 조카들에게 프라모델의 뿔을 테러당한 수집가와 같았다.

상호는 더욱 신이 나서 효은을 자극했다.

-야 근데 고친 게 더 낫지 않냐? 더 잘생겨진듯ㅇㅇ

-뭘 잘생겨 다 망쳤어 개초딩새꺄 ㅇㅇ거리지마

-아 진짜 왜 나한테 말 안했냐고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었다.

-야 근데 그럼 너 나 이제 안좋아해?

-내 얼굴 바뀌었으니까 안좋아할거야?

그러자 한참 후에야 답장이 왔다.

-X발아 애인한테 말도없이 얼굴갈아엎는새끼를 누가좋아해

-니 그 고친얼굴하고는 뒈져도 못살겠으니까 그리알아

-딴남자로밖에 안보인다고 X새꺄

상호는 코웃음을 쳤다.

‘참나……. 더 하면 울겠네.’

슬슬 진실을 알려줘도 될 듯했다.

-야 근데 나 성형 안했어

-뭐X발아 내가 요튜브 다보고왔는데

-닌 진짜 개새끼야 진짜 X발럼아

-아니 진짜 안했다니까

-그거 내가 협회에다 말해서 CG입힌거야

그러자 쏟아지듯 날아오던 문자가 갑자기 뚝 끊겼다.

설마 핸드폰을 집어던진 건 아닐까.

‘얘는 진짜 그랬을 것 같은데…….’

아니면 고혈압으로 쓰러졌을지도.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119를 부르기로 결심한 그 순간에, 답장 대신 통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그런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진짜로 쓰러졌나……?’

당황해서 귀를 기울이는데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씨이, 씨이, 하고.

상호는 피식 웃었다.

“울었어?”

[개새꺄아아!]

효은이 대성통곡을 했다.

[나한테 왜 그래? 내가 니한테 잘못했냐? 니가 나한테 잘못해 놓고 왜 나한테 X랄이야아아아아!]

“아니 너야말로 장난친 거 가지고 그렇게…….”

[당연히 진짜 고친 줄 알았지! 나는 요튜브만 보는데! 그게 CG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아는데!]

“했으면 뭐 어때? 너 나 얼굴만 보고 만나?”

[그래! 얼굴 보고 반했다, 개새끼야! 배식 받을라고 줄서있는데 뒷줄에 X나 잘생긴 새끼가 있더라고, X새끼야! X발 그때 돌아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으헝헝헝…….]

상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뭐? 야, 야. 나효은. 낄낄낄…….”

[쪼개지마! 개새꺄, 어흐흑…….]

“내가 잘생겼어? 그렇게 죽고 못 살 정도로?”

[놀리냐?! 개새꺄. 죽어, 죽어버려! 진짜…….]

“이야~, 완전히 빠졌구만? 어? 그래놓곤 그렇게 삐져가지고 다신 안 볼 것처럼 집을 나가?”

[뭐! 뭐 어쩌라고!]

“야, 그냥 슬쩍 들어와도 모른 척 할게. 알아서 들어와.”

[꺼져! 징글징글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세상에서 제일 설득력 없는 말로, 통화는 끝을 맺었다.

‘걱정 안 해도 되겠구만…….’

상호는 핸드폰을 침대에 툭 던지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태화야. 저녁 뭐 먹을래?”

“글쎄……. 아, 쌤. 떡국 재료 사놨어? 슬슬 설날 컨텐츠 찍어야 돼.”

“……지윤이네서 먹어.”

“그럼 세뱃돈.”

“야, 혜소한테 돈이나 갚아!”

“우씨…….”

* * *

그렇게 태화의 요튜브는 순조롭게 침몰.

‘X바…….’

……되었어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오늘 아침에 또 인기 동영상이 되어 있었다. 올라온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CG 바꿔치기가 안 된 것은 덤.

아니, 오히려 그게 이유겠지만.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상호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협회의 정보부로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두어 번 울리더니 저번에 만났던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헌터님.]

“저기, 오늘 영상은 처리가 안 됐던데요.”

[아, 그게…….]

직원이 헛기침을 했다.

[부협회장님이 명령을 내리셔서요.]

“네? 무슨 명령이요?”

[지인 중에 그 채널 애청자가 있는데, 그분이 영상 원본 그대로 놔두라고 했대요. 자기가 봐야 된다면서. 그리고 그…… 들어보니까 한두 분이 그런 게 아닌 모양이더라구요.]

“…….”

상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헌터님 영상을 올리는 다른 채널이 있는데, 그 채널은 저희가 아직 비밀번호를 못 알아내서……. 아직 조치를 못 취하고 있어요.]

“채널이 또 있다고요?”

[네. 이 채널 주인 아이디가 그…… 1003gml이거든요. 천삼희? 아니면 백삼희? 그런 이름인 것 같은데…….]

“…….”

천셋희인가 보다.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냥……. 그냥 놔두세요.”

[괜찮으시겠어요?]

“예. 그냥 채널 둘 다…… 그냥 놔두는 걸로. 고맙습니다.”

[아 예. 그러면 그렇게 알고 부협회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에…….”

통화가 끊겼다.

이젠 세희도 그의 얼굴을 팔아먹으려는 걸까. 상호는 눈물을 삼키며 핸드폰으로 세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세희야...

-방금 세희 네가 요튜브를 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어...

편의점 알바 중이니 문자가 반가울 것이다.

그 예상대로, 답장이 오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가 일렀어요?

-아니... 선생님 친구가 봤대

-뻥치지 마세요

-우리 반 애가 이른 거 아니에요?

-아니야... 어쨌든... 채널 좀 지워줘... 너도 선생님 그런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태화가 지우면 같이 지울게요

태화의 요튜브가 부러웠을까. 그냥은 지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어떻게 해야 세희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세희에게서 먼저 문자가 도착했다.

-그런데 선생님

-슬슬 은호로 변하실 때 되지 않았어요?

“…….”

불안한 예감이 상호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아마... 그렇겠지...?

-언제쯤이에요?

-정확한 건 나도 모르지... 근데 왜?

-그날은 꼭 같이 놀아요

-저도 그날은 알바 쉴 테니까

‘…….’

보나마나 요튜브 콘텐츠 각을 잡으려는 것이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문자를 보냈다.

-요튜브 지우면 같이 놀게...

-수작부리지 마세요

-세희야 제발...

-늦었어요 선생님

-받아들이세요

-제발...

->ㅅ<

상호는 눈물을 흘리는 곰돌이 이모티콘을 보냈지만, 세희는 활짝 웃는 강아지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결국은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바 잘 하고...

-네

-사랑해요

-선생님도 사랑해...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망했다…….’

태화 채널도 못 없앴고. 오히려 세희가 채널을 만들고. 이러다가 반 아이들이 다 하나씩 만드는 건 아닌가 걱정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걱정은.

‘은호로 변하면 어떡하지……?’

분명히 세희도, 태화도 그를 데려가려 할 텐데.

둘이 합동 콘텐츠를 찍는 거라면 괜찮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뭘 어떡해. 곱게 찢어져야지…….’

산 채로 거열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상호는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하다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은호로 변하고 난 후엔 대응할 방법이 없으니.

미리 대비를 해 놔야 한다.

‘장을 좀 봐둬야겠군.’

그는 자동차 키를 집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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