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358화 (358/501)

<358화>

358. 영상의 힘

“지우라고 했지!”

상호가 윽박지르자 태화가 빽 소리쳤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싫어! 안 지울 거야!”

“지우라니까! 야, 누가 허락도 없이 그런 걸 덜컥 만들래! 빨리 안 지워?!”

“어떻게 그래?! 같이 만들었잖아! 쌤이랑 나랑 같이 만들었잖아! 나 못 지워! 지우느니 죽을래!”

“네가 안 지우면 내가 강제로 지울 거야. 나 아는 사람들한테 말하면 그런 거 지우는 거 일도 아니야. 그러기 전에 네 손으로 지워. 당장. 빨리 안 지워!”

“싫어어어!”

“이 자식이……!”

상호의 고함에 깜짝 놀란 다혜가 황급히 욕실에서 뛰쳐나왔다. 몸에 수건만 두른 채로.

“므아아앙!”

“다, 다혜야?! 왜……?”

“므앙므앙! 아으아으, 으아으아…….”

다혜는 손짓발짓을 하다가 상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비볐다.

상호가 진땀을 흘리며 세희를 돌아보자 세희가 해석을 했다.

“생명은 귀한 거래요.”

“생명?”

“네. 자기는 고아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다고, 낳아준 부모님한테 감사하다고……. 그러니까 낳고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지우지는 말래요.”

“……무슨 소리야?”

상호는 당황해서 다혜와 눈을 마주쳤다.

“다혜야, 이거 요튜브 얘기야. 요튜브 채널 지우라고…….”

“……므아?”

다혜는 멍청히 눈을 끔뻑이다가 곧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상호의 가슴팍에 주먹을 내질렀다.

“느아아악!”

“커헉! 아니, 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런 착각을…….”

“꾸웅…….”

말이란 게 참으로 무섭다. 상호는 다혜가 꿍얼거리며 욕실로 후다닥 돌아가는 것을 명치를 부여잡은 채로 바라보았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요튜브.

“야, 이태화.”

상호가 눈을 부라려도 태화는 지지 않고 눈을 땡그랗게 뜨고 맞섰다.

“뭐! 내 핸드폰으로 찍어서 내 노트북으로 올린 건데! 내가 만든 거잖아!”

“야, 내 얼굴이야. 내 얼굴을 왜 니가 맘대로 써!”

“얼굴 좀 찍으면 덧나? 그럼 쌤도 내 얼굴 보지 마! 보지 말라고! 근데 안 보기는 또 싫지? 너무 예뻐서 계속 봐야겠지? 응? 응?”

“아, 안 봐. 안 봐. 드러워서 안 봐.”

“우씨, 눈 떠! 남은 하나도 파버리기 전에!”

태화가 상호의 가슴팍을 두들겼다.

고집불통 적반하장이다. 상호는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로 돌부처처럼 꼼짝을 않다가, 태화의 주먹이 가랑이로 날아드는 것을 느끼고는 당황해서 눈을 번쩍 떴다.

“야, 임마! 어딜 때리려고……!”

“말을 해 봐! 왜 안 되는데! 논리적으로 말을 해 보라고!”

“내가 귀찮은 거 싫어해서 X급도 안 받고 살았는데, 이렇게 얼굴이 팔리면 어떻게 되겠냐? 응? 이제라도 지워, 빨리.”

“이미 늦었어.”

“뭐?”

태화가 노트북을 활짝 펼쳤다.

“이미 조회수 베스트 11위야!”

“…….”

‘밥 잘 짓는 잘생긴 담임쌤’, 일간 인기 동영상 TOP 11.

상호는 화면을 보고 굳어 버렸다.

“……지워!”

“싫어! 이 채널로 돈이 벌린다니까?! 자, 봐봐. 벌써 백만원 가까이 쌓였어! 잔잔한 거 위주라 광고는 많이 못 넣지만! 영상 하나가 뜨면 나머지 영상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서…….”

“제발 지워줘……. 나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어…….”

“떳떳하게 고개를 들어! 쌤 얼굴은 팔린다니까!”

“쪽팔린다고…….”

그가 머리를 박는 와중에도, 야속한 조회수는 10씩, 100씩, 늘어만 가고 있었다.

* * *

“하아…….”

늙은 한숨에 민정이 쓴웃음을 지었다.

“왜 이렇게 한숨을 쉬어.”

“……삶이 힘드네.”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핸드폰 화면에는 지인들의 문자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빛, 혜소, 그리고 혁.

-선생님 어디계세요? 저 선생님 방에 왔는데 다혜 언니만 아으아으거리고 있어요 설마 어디 갇혀계신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구해드릴게요

-고모가 아저씨 영상 보면서 웃어요. 비웃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계속 보는 거 보니까 좋긴 한가 봐요. 영상 좀 더 올려 주세요.

-학교 홍보대사는 못 하지만 요튜브는 한다라...

“…….”

상호는 속이 터져서 핸드폰을 끄고 민정을 보았다.

“누나는 어때. 잘 지내고 있어?”

“으응, 뭐……. 나야 전쟁 후로는 늘 홀몸이었는걸. 오히려 지금이 덜 외롭지. 마주치는 헌터들도 많고…….”

민정의 눈이 잠깐 샐쭉해졌다.

“……올케도 있고.”

“이야기는 많이 해?”

“말이 통하겠니?”

민정이 한숨을 폭 쉬었다.

“그러는 너는 효은이랑 연락은 하고 있어?”

“……하고는 있어.”

“왜 또 싸웠어. 뭐 들어보니까 크리스마스에 집에 안 들어왔다며.”

“애들이랑 노느라…….”

“으이그……. 좀 잘 해. 걔는 십 년 동안 너만 보고 살았는데…….”

“……으응.”

어쨌든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상호는 차를 홀짝이다가 방의 문을 흘끗하며 말을 꺼냈다.

“이것만 마시고 가보자, 누나.”

* * *

이전보다 헌터의 수가 늘었다.

단순히 수만 늘은 것이 아니었다. 상호는 복도를 걷는 이들의 면면이 익숙했다. 참전자들. 대전 때부터 쭉 헌터 일을 해온 자들. 수호부대원들과 전방 부대에 복무하던 자들.

그렇게 혈석 봉인소의 경계는 훨씬 삼엄해져 있었다.

“사람이 많아졌네.”

“이제 여기가 협회보다 중요하니까.”

민정이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안쪽에는 침상이 여럿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누운 헌터들. 모두가 자는 듯이 눈을 감은 채였다.

상호는 침상 사이를 걸었다.

“이 사람들은 계속 재워놓기만 하는 거야?”

“응.”

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 인자를 전부 없앨 때까지.”

악마와 싸우다 상처를 입어 정신을 잠식당한 사람들.

그 모습이 꼭 태화가 봉인당했던 때를 떠올리게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치료는?”

“방법을 못 찾았어. 그래도 성력이 조금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그쪽으로 연구하고 있어.”

이계에서 악마들과 싸우던 자들의 힘이니, 효과가 없지는 않을 테지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근본적인 해결은 못 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완전한 치료를 위해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악마 인자에 대한 내성을 갖거나.

‘그 악마를 죽이거나…….’

어느 쪽이든 초혼강기가 필요한 것은 같다.

상호는 조그맣게 초혼강기가 피어오른 손가락을 침상에 누운 이에게 가져가다가, 자신도 아직 심상에서 악마를 쫓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손을 거뒀다.

괜히 환자만 다칠 수 있으니.

“성력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데?”

“악마 융합체 혈액에 성력을 썼더니 악마 인자가 파괴되는 게 확인됐어. 근데…… 진짜 악마의 인자에는 효과가 크지 않더라. 그래도 일단은 한 명한테 성력을 집중시켜 보는 중이야.”

민정이 대답하며 바라본 곳에는 한 청년이 병상에 앉은 이의 손을 잡고 성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눈이 가느다랗고, 인상이 순박한 청년.

“협회 최고 신앙인께서 여기 있었나.”

청년은 가까이 다가온 상호를 흘끗했다.

“다 죽여버리겠다던 X급 테러리스트를 막아준 영웅께서 오셨군요.”

“그때도 그랬지만 한 마디를 안 지는군.”

상호는 뒷짐을 지고 침상에 다가서서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치료가 되는 거야?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볼 수는 있나?”

“모릅니다.”

청년은 눈을 감고 성력을 불어넣는 데에 집중했다.

“그냥 믿는 거지요. 신께서 돕기를…….”

“너무 대책도 없고 기약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해야 할 일이니까요. 달리 방법도 없고.”

상호는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예.”

“너한테 성력을 내린 게 너의 신이 아니라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야?”

“질문의 뜻을 모르겠는데요.”

“지금은 네 나름의 신념을 갖고 치료하고 있는 거 아냐? 만약 그 믿음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그때도 계속 치료를 할 건지, 한다 해도 확신 없는 치료를 무슨 생각으로 계속할 건지…… 그게 궁금했어.”

“확신이 없으면 치료하면 안 됩니까?”

“뭐 별 생각 없으면 그렇다고 대답해도 되고.”

상호의 말에 청년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내 모든 신념과 정의가 부정당해도 내게 힘이 있는 한은…… 그 힘이 닿는 만큼 사람들을 구하고 도울 겁니다.”

“멍청이군.”

상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돌아섰다.

“너 같은 멍청이가 십 년 전에도 많았어야 하는데…….”

“칭찬으로 알아듣겠습니다.”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치료에 집중했다.

더 이상 이곳엔 볼일이 없다. 상호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쓱 둘러보다가 문가로 향했다.

그리고 뒤를 따르는 민정에게 물었다.

“누나. 그 녀석은?”

“이쪽이야.”

둘은 방을 나와 다시 복도를 걸어갔다.

* * *

“뜨아…….”

붉은 입술 사이로 경악이 담긴 신음이 흘러나왔다.

뭉툭하게 잘린 팔다리를 하찮게 버둥거린다. 눈앞에 있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안 그래도 흰 피부가 혈색을 잃어 대리석처럼 창백해졌다.

누가 보면 목에 칼이라도 들이댄 줄 알았겠지만.

“으아……아아…….”

붉은 머리 여인의 얼굴에는 빨갛고 파란 안경이 씌워져 있었다.

상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투명한 격벽 너머의 베르멜로와 그 앞의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3D 영상이라 무슨 장면인지 한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이게 다 뭐야?”

“영화로 세뇌하는 거야.”

“……세뇌?”

“응.”

민정이 입맛을 다셨다.

“쟤는 CG란 게 뭔지 모르니까. 실화를 기록했다고 속이고 보여주는 거야. 그런 거 많잖아, 판타지나 SF나 괴수물 보면 최후엔 인간이 이기는 거. 그런 걸 보여주면서 인간은 수많은 고비를 맞았지만 언제나 승리해 왔다…… 라고 세뇌하는 거지.”

“……그게 먹혀?”

“아주 효과적이야. 배경음악을 걷어내는 게 좀 귀찮긴 한데.”

“…….”

좀 멍청한 녀석인 모양이었다.

상호는 민정이 말없이 건넨 색안경을 받아들고 착용했다. 스크린에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우주전함이 지구를 침공하고 있었다.

베르멜로는 그걸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으아아아…….”

그러니까 베르멜로에게는 저 침략이 과거의 일이고, 인류는 저 거대한 우주전함을 격퇴했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한 상호는 격리실의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어?”

한창 영화, 아니 영상기록을 감상중이던 베르멜로가 문가를 돌아보았다.

색안경 때문에 바로 알아보지 못했을까, 잠시 눈을 깜빡이던 베르멜로는 상호가 색안경을 벗자마자 기겁하며 뒤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꺄아아아악! 살려, 사람 살려!”

“넌 악마잖아, 임마.”

이미 민정에게 영화를 잠시 멈춰달라는 신호를 해 두었다. 상호는 스크린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벨.”

“네……, 네.”

“인간들의 역사를 보고 있었군.”

“네……!”

“뭘 봤지? 읊어 봐.”

베르멜로가 황급히 대답했다.

“저, 저기 그! 시간을 돌리는 마법사가 다른 차원의 신을 물리친 거랑! 별들의 심판자가 이 땅의 수호자들의 희생을 보고 감명받아서 돌아간 거랑! 몸이 전부 강철로 된 종족이 막 변신하면서 인간을 위해 노예처럼 싸우는 거랑! 그리고 별들 사이를 날아다니면서 수천, 수백 종족들을 만나는 사람들이랑, 또……!”

“됐어. 그쯤하면 됐어.”

아주 골고루 봤다. 상호는 베르멜로의 주변을 둥글게 돌기 시작했다.

“네가 본 건 우리 역사의 새 발의 피다.”

“네……!”

“우리는 수없이 침략당했지만, 언제나 이겨냈지. 앞으로도 그럴 거고……. 네 옛 주인도 반드시 쓰러트릴 거야.”

상호의 시선이 베르멜로를 꿰뚫었다.

“이제 네 충성심의 방향을 정해야 할 때가 왔다.”

베르멜로가 마른침을 삼켰다.

붉은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상호의 말에 정말로 현혹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한 줄기 의심이 남았는지, 혹은 두려움이 남았는지. 대답을 쉬이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상호를 올려다보며 떠듬거렸다.

“저어…….”

“뭐.”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정말로 시간을 돌리는 마법이 있는 건가요?”

베르멜로의 눈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제 상식으로는 그런 마법이 존재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야.”

상호는 살짝 뜨끔했지만 일부러 느리게 고개를 기웃거렸다.

“니가 모르면 없는 거냐?”

“그, 그런 건 아닌데……. 마법의 원리상 말이 안 되는…….”

“니가 모르면 없는 거야? 너 내 부모님 모르잖아. 그럼 우리 부모님도 없는 게 돼? 와, 이 새끼 대단한 새끼네. 너 지금 나보고 부모 없는 새끼라고 한 거냐?”

“네?!”

베르멜로는 입을 떡 벌리고 식은땀을 흘렸다. 이런 개소리는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어서.

“아니, 그게, 그게 아닌…….”

“이야~. 너 생각보다 정말 당돌한 새끼구나.”

박수를 치는 상호의 옆에서는 칼이 저 혼자서 뽑혀지고 있었다.

“아가리 터는 솜씨가 아주 마음에 들어. 그 혓바닥 좀 가져가야 쓰겠다.”

“아니! 아니라구요! 궁금해서,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구요! 그래서 외람됐다고 말 했잖아요! 꺄아아악!”

“외람된 걸 알면서 왜 처물어? 입 벌려. 야, 입 벌리라고.”

“우우우웁! 우웅!”

“안 깝칠 거지?”

“네! 네!”

“좋아.”

상호는 검을 집어넣었다.

“이제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 네 주인이 누구지?”

“주인님이요…….”

“그렇지? 네 눈앞에 있는 내가 네 주인이지. 그럼 너는 이 전쟁에서 인간이 이길 것 같냐, 악마가 이길 것 같냐?”

베르멜로의 눈동자가 또 갈팡질팡했다.

하지만 상호가 한숨을 푹 쉬며 베르멜로의 턱을 잡자 베르멜로가 비명을 지르듯이 대답을 토해냈다.

“인간님! 위대하신 인간님이요!”

“그렇지?”

상호는 씩 웃었다.

“그러면 악마를 죽이는 방법, 이제 말해줄 수 있겠지?”

“그, 그건 안 돼요…….”

“그래?”

상호의 손가락이 베르멜로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갔다.

“잘 생각해. 만약 네가 아닌 다른 악마가 우리 편이 되어서 악마를 죽이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그 첫 검증 대상은 네가 될 거야. 하지만 네가 우리에게 알려준다면…… 검증 대상은 네가 아니라 다음으로 잡히는 악마가 되겠지.”

“으…….”

“선택해.”

그래도 베르멜로는 눈을 꼭 감고 몸을 떨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너무 협박만 했을까. 하긴 베르멜로의 입장에서는 그걸 말해버리면 상호가 말을 뒤집어서 바로 죽여버릴 거라고 예상할 터였다.

‘너무 사이코처럼 굴었나?’

채찍 말고 당근도 좀 줘야겠다. 상호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돌아섰다.

“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 말에 베르멜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미친 인간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나.

하지만 상호는 이미 문을 열고 나가는 중이었다.

“좀 더 고민해 봐. 그래도 다음번에 왔을 땐 대답을 들려줬으면 좋겠네.”

“……네.”

“나중에 보자.”

그 말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격리실에 홀로 남은 베르멜로는 멍한 눈으로 문을 쳐다보다가, 선택의 순간이 미뤄졌다는 것에 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붉고 푸른 시야에 다시금 스크린을 담았다.

곧 화면이 움직이며 하늘 가득히 전투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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