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357화 (357/501)

<357화>

357. 브이로그

“자.”

“응?”

태화는 상호가 내민 핸드폰을 받아들며 눈을 끔뻑였다. 화면에는 인터넷 쇼핑몰 앱이 켜져 있었다.

“이게 모야?”

“노트북 고르라고.”

상호는 차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

“너 일 잘한다고 하셔서 미리 사주는 거야.”

“진짜?!”

“계속 열심히 해.”

“웅~.”

“참고로 세희는 이미 최신형으로 사줬어.”

“뭐? 야이씨……!”

“뻥이야.”

“……알라븅~.”

태화는 아양을 떨고는 노트북을 고르기 시작했다.

“쌤, 쌤. 노트북이 500만원 넘는 것도 있는데.”

“그런 거 사면 개학식까지 일 시킬 거야.”

“우씨…….”

* * *

그래서 다음 날.

“왔다아아앗!”

태화는 상호가 건넨 택배를 번쩍 들어 올렸다.

TV 앞에 앉아 있던 다혜, 그리고 마침 쉬는 날이라 침대에 누워 있던 세희가 태화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

“뭔데, 그게.”

“느 집엔 이런 거 없지?”

태화가 노트북을 꺼내 흔들었다.

“얘! 봄노트북이 맛있단다~. 쌤이 사줬지롱~.”

“잘됐네. 무급노예.”

“퉤.”

둘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노트북을 펼쳤다. 상호는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며 둘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대체 왜 노트북을 사달라고 한 걸까.

‘뭐 이상한 걸 하지는 않겠지…….’

불법도박이라든가. 중고매물 사기라든가. 괜스레 불안해진 상호는 둘의 뒤로 슬쩍 다가갔다.

태화가 세희를 돌아보았다.

“야, 천세희.”

“뭐.”

“너 컴퓨터 잘해?”

“아니.”

“으음…….”

태화가 상호를 홱 돌아보았다.

“쌤. 쌤은 컴퓨터 잘해?”

“대체로 못 하는데…….”

그래서 미진에게 혼났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상호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컴퓨터라고 하면 여러 가지 있잖아. 게임도 있고 포토샷도 있고…… 뭘 하려는 건데?”

“응, 그거. 포토샷. 포토샷이랑 영상 편집.”

“난 그런 건 잘 모르지…….”

상호의 자신 없는 목소리에 태화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쌤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지.”

“잘하진 않았어.”

“근데 왜 자꾸 나보고 공부하라 그래! 오빠도 못했으면서!”

“야, 나도 고등학교에선 열심히 마음잡고 하려고 그랬어. 근데 공부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울 수밖에 없게 된 거지…….”

“근데 왜 나는 공부시켜! 나도 헌턴데!”

“너는 마법사잖아.”

“아이씨, 나랑 좀 더 빨리 만나지! 그럼 나도 무예 배웠을 거 아냐!”

“넌 혈도 외우고 심법 배우다가 속 터져 죽었을걸. 그래서 영상 편집은 왜 하려고 그러는 건데?”

그 말에 태화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비밀.”

“숨겨 봤자 얼마나 간다고, 임마. 그냥 말해.”

“아 비밀이라니까! 비밀 몰라? 비! 밀! 쌤이 나한테 몸은 보여줬어도 맛은 안 보여 주는 것처럼!”

“이 자식이 못하는 말이 없어…….”

상호는 태화의 다리를 찰싹 후려치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숨겨 봐라. 얼마나 오래 가는지 보자.”

“에베베베~.”

태화는 혀를 내두르며 이불 위에서 발장구를 치다가, 곧 세희와 함께 무언가를 속삭이며 노트북 삼매경에 빠졌다.

상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제발 사고만 안 치게 해주세요…….’

* * *

그날부터였다.

“오빠, 오빠.”

“응?”

상호는 졸린 눈을 끔뻑이며 주방을 돌아보았다.

잠옷 차림의 태화가 커피를 내리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뭐야……. 뭐해?”

“모닝커피.”

“웬 모닝커피……?”

맨날 늦잠만 자던 애가 갑자기 새벽같이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있다니. 상호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옆에서는 아직 세희와 다혜가 자고 있었다.

“야, 잠이나 더 자게 두지, 다 깨게 불 켜고 물 끓이고…….”

“뭐 어때. 일찍 일어나면 좋잖아. 커피 냄새도 좋지 않아?”

“네가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어?”

“헹, 나도 이젠 어른이라궁.”

태화가 커피를 잔에 담아 상호에게 다가와 내밀었다.

그윽한 향이 썩 나쁘지 않다. 상호는 멍한 정신으로 잔을 받으려다가 태화의 반대쪽 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고 멈칫했다.

카메라가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거 뭐야? 찍고 있는 거야?”

“아, 신경쓰지 마.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상호는 눈을 끔뻑이며 잔을 받았다.

뜨거운 커피를 한 잔 홀짝이니 몸과 머리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말없이 커피를 마시는 그에게 태화가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맛이 어때? 응? 응?”

“좋은데. 잘 내렸다. 근데 나 사실 커피는 잘 몰라.”

“괜찮아~. 오빠가 맛있으면 됐어~.”

태화가 생글뱅글 웃었다.

언젠가부터 쌤이 아니라 오빠로 부르고 있다. 상호는 한마디 할까 고민하다가 커피가 맛있어서 봐주기로 했다.

‘애초에 얼마 차이 나지도 않는걸…….’

그렇게 커피를 음미하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그를 찍던 태화가 고개를 기웃하면서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오빠, 오빠. 일어나 봐.”

“응? 왜, 왜.”

“창가로 가자. 저기가 그림이 이쁠 것 같애.”

“그림……?”

상호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창가로 끌려갔다.

태화는 그를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세우고, 몸과 핸드폰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각도를 찾다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었다.

“오케이! 커피 마셔.”

“대체 뭔데…….”

“CF를 찍는다고 생각해 봐. 그윽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면서! 컵에서 피어오르는 새벽 안개를 맡는 거야. 자, 큐!”

“큐는 뭔…….”

그래도 상호는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반쯤 감은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따금씩 잔을 입에 기울이고. 창문 틈으로 스미어 들어오는 새벽의 습기를 맡으며.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남은 커피를 단숨에 쭉 들이켜고 허공섭물로 잔을 주방에 보내는데, 태화가 잔을 잡아채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 그걸 한방에 다 먹으면 어떡해! 음악 깔아야 된단 말야!”

“아니, 뭐 하는 건데. 말을 해 임마. 사람을 곰처럼 부려먹지 말고.”

“비밀이야, 비밀! 오빠한테도 좋은 거야. 컷! 컷! 자, 다시 감정 잡고. 빈 잔이라도 홀짝여! 큐!”

“……하아.”

이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 빈 잔을 홀짝이며 분위기만 잡고 있으라니.

상호는 입에 닿은 잔에 한숨을 쏟아냈다.

‘대체 이게 뭔데…….’

그의 근심과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화는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흡족한 웃음을 흘렸다.

* * *

태화를 정애의 가게에 데려다준 후.

소파에서 TV를 보던 상호에게 세희가 무언가를 들고 다가왔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낮잠을 자는 다혜를 건너뛰면서.

“선생님.”

“응?”

“책 읽어 주세요.”

“……책?”

얜 또 왜 이럴까. 상호는 당황한 눈빛으로 세희를 바라보았다.

세희는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새벽에 태화가 그랬던 것처럼.

“무슨 책……인데?”

“그냥 소설……이에요.”

“소설…….”

낭독은 해본 적이 없는데. 상호는 세희에게서 책을 받아 제목을 읽었다.

-마법 남고의 남고생들은 지나치게 가깝다

“…….”

뭔가 익숙한 분위기의 제목.

“이거 세희 네 책이야?”

“이츠키가 주고 갔어요.”

“그럼 그렇지…….”

상호가 TV를 끄고 책을 펴서 첫 줄을 읽으려는데, 갑자기 세희가 그를 막아 세우더니 침대에 밀쳤다.

그리고는 풀썩 누운 그의 품에 안기더니, 들고 있는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듯 자신과 상호를 찍기 시작했다.

“됐어요. 읽어 주세요.”

“꼭 이렇게 읽어야 해……?”

“네.”

상호는 고개를 살짝 떨궜다. 정말로 이게 대체 뭐 하는 건지.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세희를 품에 안은 채로, 옆으로 누워서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드러난 것은 여태까지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낮고 굵은 목소리가 미세한 진동으로 둘의 몸을 간질이고.

세희는 자신이 영상을 찍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서, 그 목소리에 마음껏 빠져들다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 * *

“야, 졸면서 찍었냐? 쌤 얼굴이 하나도 안 나오잖아!”

“뭐 어때. 목소리만 나오면 됐지.”

“그건 맞는데…… 에이씨, 내가 보고 싶다고!”

“꼬우면 니가 찍어.”

또 희격태격.

앞치마를 두른 상호는 팔팔 끓는 찌개를 식탁에 올리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식탁에는 이미 다혜가 냄비밥을 냄비째로 들고 퍼먹고 있었다.

“얘들아, 밥 먹어라.”

“웅~.”

태화가 건성으로 대답하며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세희와 태화는 방구석에서 방 중앙을 향해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노트북의 화면이 상호에게 보이지 않는 각도로.

굳이 저렇게까지 숨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상호는 봉긋이 솟은 고봉밥을 식탁에 놓고 자리에 앉았다.

“빨리 와.”

“웅.”

“네.”

또 성의 없는 대답. 심지어 세희까지 노트북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상호는 잠시 턱을 괴고 상상 속의 상담사와 면담을 시작했다.

‘딸아이들한테 노트북을 사줬더니 밥도 안 먹고 노트북만 보고 있어요.’

‘어머, 그런가요. 얼마나 오래 되었나요?’

‘닷새째예요.’

‘말로 설득은 해보셨나요?’

‘네. 그런데 바뀌는 게 없어요.’

‘안 쥐어패고 뭐하세요?’

답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상담사님.’

상호는 그 즉시 내공을 뻗었다.

“갸아아아악!”

“아야야야…….”

귀를 잡힌 아이들이 주방을 향해 질질 끌려왔다. 바닥에 놓여있던 노트북까지 덤으로.

상호는 날아든 노트북을 잡아 식탁에 놓았다.

“밥 먹으라고 몇 번을 말하냐, 이놈들아. 안 되겠어. 너희 대체 뭐 하는 건지 확인 좀 해야겠다.”

“아야야야! 귀 좀 놔줘!”

“아, 아파요, 선생님…….”

그는 아이들의 비명과 신음을 무시하고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응?”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요튜브.

요즘 애들은 요튜브 중독이라더니 이것 때문일까. 그런데 화면을 잘 보니 뭔가 이상했다.

채널 관리. 영상 업로드.

‘……?’

상호는 영상들의 썸네일을 보고 굳어 버렸다.

커피를 마시는 자신, 책을 손에 든 자신,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짓는 자신.

그리고 그 영상들의 제목은.

-그윽한 눈빛의 담임쌤

-책 읽어주는 담임쌤(ASMR)

-가사만능 담임쌤(Korean Mukbang with handsome teacher)

-(짧)담임쌤 근육 매드무비#Shorts

그제서야 채널명이 눈에 들어왔다.

-여고 존잘쌤 밀착 동거 브이로그♡

“…….”

상호는 할 말을 잃었다.

댓글은 어떤지 확인해 보니 더욱 가관이었다.

-아... 커피가 되고 싶다...

-살다살다 책이 부럽긴 처음이다.

-담임쌤 먹방은 언제 하나요?

-어머어머어머 핏줄 디테일 봐ㅠㅠㅠ 나 핏줄 조아하는거 신님이 어떻게 알구 저렇게 만들어주셨는지ㅠㅠㅠㅠ

-복근에 빨래 함 하고싶네요^^ 울 남편은 저런 거 언제 만들는지...

그중에 몇몇 댓글이 눈에 띄었다.

-이거 저번에 그 헌터 아님? 서울에서 마왕 잡고 제자랑 키스한

-맞는듯? 채널 주인장 꼬리 살짝 보이네

-결국 동거하는거임?

-근데 옆에서 또 자고있는 여자애는 누구지?

-와 근데 제자들이랑 진짜 같이 사는건가

그중에서 특히, 제일 눈에 띄는 댓글은.

-ONELIGHT: 이거 제 옆반 담임선생님인데요 원래 이런분 아니신데 영상 찍은 애들이 납치감금해서 협박중인거구요 담임선생님이 제일 아끼는 애제자는 따로있는데 걔는 방학이라 집에있구요 성이 하씨인데 엄청 착해서 담임선생님이 제일 예뻐해요 이거 찍은 애들은 선생님이 걔 다음으로 예뻐하는 애들인데 그래도 저보다 안되구요 속으시면 안돼요 우리 담임선생님 협박당하고 계신거예요

└樹: 하 양, 여기서 이러면 안됩니다

└Mirae Han: 언니 유체이탈 실패했어

-Надежда: 이거 제 옆반 담임선생님인데요 원래 이런분 아니신데 영상 찍은 애들이 납치감금해서 협박중인거구요 담임선생님이 제일 아끼는 애제자는 따로있는데 걔는 방학이라 집에있구요 성이 하씨인데 엄청 착해서 담임선생님이 제일 예뻐해요 이거 찍은 애들은 선생님이 걔 다음으로 예뻐하는 애들인데 그래도 저보다 안되구요 속으시면 안돼요 우리 담임선생님 협박당하고 계신거예요ㅍ

└樹: 하 양, 그러니까 여기서 이러면 안됩니다

└멍단비: 언니... 나디아 언니한테 폰 돌려줘...

-jiyoon5: 아이고~ 좀 있으면 떡도 치겠네~

“…….”

상호는 끝까지 할 말을 찾지 못했고.

노트북을 닫고 나서야 간신히 한 마디를 꺼낼 수 있었다.

“……밥 먹자.”

“웅.”

“핸드폰 내려놓고.”

“웅…….”

셋은 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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