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소득은 있었어요?”
“네.”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도로 끝의 지평선에서는 어느덧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해련은 퀭한 얼굴로 상호를 바라보았다.
“밥은 먹고 들어가야겠지? 뭐 먹을까요?”
“그냥 빨리 들어가서 주무시는 게 나아 보이는데요.”
“아니야. 뭐라도 먹고 들어가자.”
“뭐 드시고 싶은데요?”
“뭐가 좋을까……. 추운 날엔 곱창전골 같은 거에 소주가…….”
“낮술하시게요?”
“쿠울…….”
말하다 말고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깨워가지고 잠을 못 자게 만들었으니 많이 피곤할 터였다.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사람들 깨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겠네…….’
부려먹은 게 미안해서 깨우지는 못하겠다. 몰래 눕히는 게 최선일 것이다.
차가 속도를 높여 도로를 달렸다.
* * *
학교 입구에는 어제 학생들이 만든 눈사람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교문으로 차를 몰고 들어서는 상호의 눈을 잡아끌었다. 얼굴에 안대를 쓴, 7미터에 달하는 눈사람.
‘누구 작품이지……?’
크기를 보아하니 일단 미래의 로봇은 확실히 이용된 것 같았다. 상호는 그 눈사람을 지나 여교사 숙소 앞으로 향했다.
운기조식에 시간을 너무 쓴 탓에 아침 일곱 시가 넘어 버렸다. 주말이긴 하지만 부지런한 사람들은 진작에 일어나서 아침 먹을 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서두르지 않으면 오해를 받을 것이다. 그는 숙소 바로 앞에 차를 세우고 나와 조수석 문을 열었다.
“으응…….”
해련은 곤히 자고 있었다.
상호가 조심스레 안아 들자 해련이 웅얼거리며 상호의 어깨에 머리를 누였다.
“영감…… 쿠울…….”
‘아닙니다~.’ 그는 해련을 안은 채로 경공을 펼쳤다.
몸이 살짝 떠올라 미끄러지듯이 숙소 입구로 들어섰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샤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올 뿐.
상호는 살금살금 해련의 방으로 다가갔다.
끼이익……
하필이면 그때, 교장의 방 옆의 방문이 열렸다.
‘……켁!’
상호는 그 방이 누구의 방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곧 긴 트레이닝복을 입은 미진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왔다.
“으음…….”
하품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미진은, 교장의 방 근처에 엉거주춤하게 멈춰버린 상호를 발견하고 말았다.
화장을 하지 않은 민낯이 점차 일그러졌다.
“미쳤어요?”
“죄송합니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여자들 숙소에 드나드는 건데요? 교장선생님은 또 왜……. 어디 외박하고 왔어요?”
“……그렇게 됐어요.”
“왜 못 일어나시는 거예요? 술이라도 먹였어요?”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 깨워드리면 알아서 오실 거 아니에요. 그냥 여기 들어오고 싶어서 핑계 만든 거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저 때문에 잠을 못 주무셨어요.”
그 말에 미진은 어안이 벙벙해했다.
“그니까…… 선배가 교장선생님을…… 밤새 잠을 안 재웠다고요? 외박하러 나갔으면서?”
“……굉장히 말이 이상해지는데 난 떳떳해요.”
상호는 그렇게 얼버무리며 해련의 방문을 열었다.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나중에 교장선생님한테 물어봐요. 난 죄지은 거 없으니까……. 아침 맛있게 먹어요~.”
“…….”
미진은 상호가 안에 들어가 문을 닫은 후에도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 * *
점심.
학교는 이제 완전히 눈사람들의 나라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무슨 경쟁이라도 붙은 걸까. 아니면 그런 콘셉트를 잡는 것이 재미있었을까. 아이들은 밥을 먹으러 갈 때도 하나를 만들었고, 올 때도 하나를 만들었고, 시내에 나갈 때도 하나를, 돌아올 때도 하나를 만들었다.
그렇게 눈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증식해 갔다.
‘……이건 대체 누가 만드는 거지?’
상호는 남교사 숙소 옆에 세워진 거대한 눈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안대를 쓴 두 번째 눈사람. 교문에 놓인 것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5미터. 3층 창문을 열면 정수리가 코앞에 있을 크기였다.
얼굴에 씌운 안대가 상호의 얼굴을 살짝 달아오르게 했다.
‘분명히 미래일 것 같은데…….’
미래가 아니면 이렇게 큰 눈사람을 만들 사람이 없다. 이 학교 전체를 통틀어도.
하지만 이런 물건을 만들 만한 사람은 미래가 아니었다.
‘태화인가? 지윤이……? 이츠키도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데…….’
상호의 의문은 길지 않았다.
저 멀리 본관 옆에서 거대한 눈덩이가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그 눈덩이를 굴리는 3미터 남짓의 로봇까지.
자기보다 거대한 눈덩이를 굴리는 꼴이 꼭 쇠똥구리 같았다.
‘역시나…….’
범인 중 한 명은 미래가 맞았던 것이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눈덩이를 향해 걸어갔다.
눈덩이를 굴리던 로봇이 그를 발견하고 경례를 했다.
‘어라?’
뭔가 느낌이 다른데. 상호는 잠시 멈추어 서서 멍청히 로봇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로봇이 다시 척 소리가 나도록 경례를 했다. 왜 안 받아주냐고 항의하는 듯이.
“……나디아야?”
[네!]
로봇의 스피커에서 나디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래는 어디 가고 나디아가 들어 있나. 할 말을 잃은 상호에게 나디아가 또다시 경례를 했다.
상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경례를 받았다.
“아, 미안……. 나디아. 그럼 저 눈사람들…… 다 네가 만든 거야?”
[네!]
“로봇은…… 미래가 빌려줬어?”
[네!]
“그냥 네가 만들고 싶어서 만드는 거야?”
[네!]
“그렇구나…….”
이러다가 학교 전체가 자신의 눈사람으로 가득 차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나디아가 좋아서 만든다는데 막을 명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눈사람 좋아해?”
[꿈, 꿈.]
“꿈?”
[아기? 아기!]
로봇이 양팔을 벌려서 큼지막한 원을 그렸다.
대충 어릴 때부터 큰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다는 모양이었다. 상호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나디아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래……. 그럼 더 크게 만들어 볼까?”
[네!]
“내가 눈을 모아서 길을 만들 테니까, 네가 거기로 굴려.”
[네!]
“가자.”
운동장의 눈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운동장뿐만이 아니라 학교 부지의 모든 눈들이 다. 그렇게 내공으로 긁어모은 눈이 눈덩이 앞에 길을 만들었다. 로봇이 그 길을 따라 눈덩이를 굴리자 크기가 빠르게 불어났다.
너무 커서 로봇의 힘만으로는 힘들었지만, 상호가 도와줘서 어렵지 않게 굴릴 수 있었다.
대략 지름이 10미터쯤 될 것 같았다.
‘충분히 크지? 이 정도면…….’
상호는 건물만해진 눈덩이를 올려다보며 로봇에게 물었다.
“나디아, 이제 머리 만들어서 붙일까?”
[네?]
‘?’
왜 의문문이냐. 상호의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머리…… 안 붙일 거야?”
[머리.]
“응?”
[머리, 머리.]
로봇이 눈덩이를 툭툭 쳤다.
그 말을 들은 상호의 눈동자가 덜덜 흔들렸다.
“그게…… 머리라고?”
[네!]
나디아가 해맑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제 몸통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인가. 그럼 아무리 못해도 15미터는 되어야 할 텐데.
상호는 도합 25미터의 강상호 눈사람이 모두를 굽어보는 광경을 상상했다.
‘……안 돼!’
그렇게 크면 잘 녹지도 않고 겨우내 놀림감이 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상호는 진땀을 빼며 나디아를 설득하려 했다.
“나디아, 눈사람이 너무 크면 멋이 없고…….”
[꿈!]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꿈!]
“끄응…….”
꿈을 강하게 역설하는 소녀의 앞에서는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상호는 눈밭에 눈물을 더해가며 새로운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꿈이라는데 어쩌겠어……. 응?’
상호의 눈에 무언가 띄었다.
온통 하얀 세상에 들어서는 검고 길쭉한 차. 봉진 같은 부호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차. 그 차가 교문 쪽에서부터 달려와 널찍한 운동장에 아무렇게나 주차를 했다.
그 안에서 털옷과 양복을 입은 이들이 내렸다.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들.
‘……고단한 날이 되겠군.’
그런 직감이 들었다.
343. 동토에서 왔다
길고 검은 자동차를 향해 중년의 사내가 달려왔다.
“거기! 세우라고 했잖아요!”
예현여고의 수위. 보아하니 교문을 뚫다시피 해서 운동장까지 달려온 모양이었다.
수위도 나름 한 가닥 하는 헌터라 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차에서 내린 외국인들은 덩치가 두 배쯤 되는 거한들인데도.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것 같은 분위기.
상호는 로봇의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내 손님들일 게 뻔하니…….’
그래서 그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상호가 다가가자 경비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학교에서 제일 강한 인간이 여기 왔다는 게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강 선생님! 이 사람들이 지금…….”
“예. 제가 일단 얘기를 좀 들어볼게요. 수위님은 쉬고 계세요.”
“다른 선생님들을 데려올까요?”
“아뇨, 안 그래도 돼요.”
곤히 자고 있는 해련을 굳이 깨울 필요는 없으니까. 상호는 돌아서는 수위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학교를 지키는 이들은 수위뿐만이 아니었다. 바람이 그의 귀에 다가와 설미의 걱정 어린 목소리를 전했다.
[상호야, 괜찮겠어? 아는 사람들이야?]
“확실하진 않은데 아마 그럴 것 같아요.”
[나라도 거기 갈까?]
“아뇨. 괜찮아요. 지금은 혼자인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응…….]
목소리가 희미해지고 바람이 사라졌다.
뒷짐을 진 채로 기다리고 있는 상호에게 벽안의 사내들이 다가왔다.
“너.”
머리를 짧게 깎은 우락부락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네가 이곳의 주인인가?”
주인이라 함은 교장이나 이사장을 말하는 것이리라. 상호는 둘 다 아니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럼 저 안대를 쓴 스네고비크는 뭐지?”
사내의 손이 교문 쪽을 가리켰다. 아마 나디아가 만든 강상호 눈사람을 본 것 같았다.
교문에 거대한 눈사람이 놓여 있으니 영락없이 꼭대기에 앉은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제자들이 만든 거요.”
그의 대답에 사내가 무뚝뚝하게 명령조로 말했다.
“이곳의 주인에게 안내해라.”
“지금은 주무시고 계시…….”
상호는 말하다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말하는 것이 상당히 꼬왔다.
모르는 단어를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고 마치 네가 알아서 알아들으라는 듯이 자기네 말로 말하는 게. 그리고 남의 학교에 쳐들어와서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명령을 내리는 게.
심지어 반말로.
상호는 제일 앞에 나와서 말하고 있는 사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고등학생 딸이 있을 나이는 아닌 것 같군.’
그렇지만 여기서 소란을 피우기는 좀 그렇다. 나디아가 보고 있으니.
그래서 고분고분 대답했다.
“그러죠.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사내가 뒤를 돌아보았고, 그 눈빛을 받은 사내가 자동차 안에 대고 무어라 말을 했다.
그 안에서 내리는 털옷을 입은 중년인.
눈썹이 희끗한 금색이고, 눈이 연한 파란색이었다.
‘이쪽이군.’
상호는 그렇게 확신했다.
딸과는 다르게 선이 굵었다. 키도 거의 2미터. 입고 있는 두꺼운 털옷 때문에 완전히 곰처럼 보였다.
그 곰 같은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맨 앞에 나선 사내가 상호를 돌아보았다.
“안내해라.”
“따라오십쇼.”
상호는 그들을 데리고 본관으로 향했다.
그런 그들을 운동장 한가운데에 선 로봇이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 * *
“드시죠.”
탁자에 찻잔이 놓였다.
교장실 한가운데에 놓인 가죽 소파에는 딱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아무리 덩치가 커도 양옆에 두 명, 앞 소파에 세 명, 상석에 한 명은 앉을 수 있을 텐데도.
상호는 해련의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학교 주인은 어디 있나?”
“납니다.”
아까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냐. 통역을 맡은 사내는 그런 눈빛으로 상호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 정도 눈빛에 굴할 상호가 아니었다.
“나한테 말해 봐요. 내가 해결해 줄 테니.”
“……아이를 찾고 있다.”
사내가 품에서 사진을 꺼냈다.
“이렇게 생긴 러시아 아이. 알고 있나?”
사진 속에서는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소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호는 일단 모른 척했다.
“잘 모르겠는데. 그 아이는 왜 찾는 거요?”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다.”
“협조를 원하면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 텐데…….”
상호의 시선이 소파에 앉은 중년인을 향했다.
“당신들도 뭔가 알아낸 게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것 아뇨? 솔직히 말해 보시라고. 그 아이랑 당신들이랑 무슨 관계인지.”
“다시 말하지.”
통역을 맡은 사내, 그리고 그 주변의 사내들에게서도 묵직한 투기가 흘러나왔다.
“너는 알 필요 없다. 이 아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만 말해라. 아니면…… 우리가 직접 찾아다니도록 놔두던가.”
“그래. 그렇게 말을 하라고.”
상호는 등받이에 한껏 기댄 채로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좋아. 목적이 뭔지 딱 드러나잖아. 근데…… 당신들이 이 학교를 마음대로 쏘다니는 건…… 우리 학교의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 같군. 일단은 여고라서 말이야.”
“그럼 학생 목록을 보여줘라.”
“그것도 곤란한데.”
“그러니까…… 이 아이를 모르고, 찾아줄 수는 없고, 찾는 걸 허락할 수도 없다…… 이 말인가?”
“그렇지.”
그 말에 통역을 맡은 사내가 러시아어로 무어라 말했고, 사내들이 코트를 헤치며 검 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뽑지는 못했다.
“윽……?!”
보이지 않는 힘이 손을 누르고 있어서.
“너, 이건 무슨…….”
“이곳의 법은 잘 모르겠지.”
상호는 눈썹을 슬쩍 올렸다.
“헌터의 방식대로 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 다만…… 그 결과도 헌터답게 책임을 져라.”
“…….”
사내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쉽게 검을 놓을 생각은 없는 듯싶었다. 상호는 그들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내공을 움직였다.
사내들의 손이 검에서 떨어져 나가고, 강검이 사내들의 목에 겨누어졌다.
“윽…….”
“이 학교에는 이 나라에서 제일 강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너희가 너희 나라에서 가장 강한 게 아니라면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게 좋아. 딱히 위협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냥 사실만 말해주는 것뿐이야.”
통역을 맡은 사내가 당황한 눈빛으로 상호를 노려보았다.
“너는 법을 안 지켜도 되는 위치인가?”
“물론 나도 법은 지켜야지.”
상호의 손에서 검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하지만 법이 당신들을 발견하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지.”
그 강기를 본 사내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들도 헌터였기에 어렴풋이나마 알아볼 수 있었다. 저 불꽃이라면 사람을 흔적도 남지 않게 불태워버릴 수 있음을. 또 눈앞의 헌터가 평범한 헌터들은 범접조차 할 수 없는 존재임을.
드디어 상호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된 듯했다.
“이제 말해줄 수 있을까? 그 아이를 왜 찾는 건지. 그 아이랑 무슨 관계인지. 곱게 말하면 서로 좋게 끝날 거라고…… 내 약속해 주지.”
“……우리 아가씨다.”
사내가 상호와 눈을 마주친 채로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렸다. 소파에 앉은 중년인을 향해.
“나챌니크의 딸이다.”
“나챌니크?”
“보스.”
상호의 시선이 중년인을 향했다.
얼굴은 안 닮았지만 색이 닮았다. 아마 얼굴은 어머니 쪽을 더 닮은 모양이었다.
그는 나디아의 신청서에 쓰여 있었던 내용을 떠올렸다.
“당신이 페트로브라고?”
말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사내들의 안색이 대번에 급변했다.
“아가씨를 아나?”
“나데즈나 블라디미로브나 페트로바.”
상호는 팔을 책상에 올리고 깍지를 끼었다.
“내가 담임을 맡은 아이의 이름이다.”
“그럼 우리를 아가씨에게…….”
“그 전에 확인할 게 있는데.”
이렇게 쳐들어오다시피 찾아온 것은, 나디아와 나디아의 아버지는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이 있는 곳을 알아내면 잡으러 올 것이란 사실을.
“나디아와 연락은 했나?”
“아니. 안 돼서 찾으러 온 거다.”
“그럼 당신들이 찾으러 오는 걸 나디아가 좋아할까, 싫어할까?”
“좋든 싫든 찾아야 한다. 당신은 모르는 사정이 있다.”
“그래?”
상호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럼 그 사정이란 거나 한번 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