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으아~.”
단비가 거실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씻고 쉬고 싶어, 멍…….”
“밤까지만 참아.”
아이들은 땀범벅에 흙투성이.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바닥도 점차 자연의 흔적이 덧씌워지는 중이었다.
상호는 걸레로 바닥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훈련 열심히 하면 잠도 잘 온다. 힘들다고 비실거리지 말고, 밥 먹고 힘내서 열심히 하고 푸욱 쉬어. 그래서 밥 뭐 먹을래?”
“메뉴가 뭐예요?”
“닭도리탕이나, 김치찌개나…….”
“닭도리탕이요!”
“그래.”
재료는 충분히 사 놨다. 8명이서 충분히 먹을 만큼 넉넉하게.
상호가 냉장고를 열자 하솔이 달려와서 허리를 수그렸다.
“시키실 거 있으세요?”
“으응.”
상호는 미리 우유에 재워 놨던 닭을 가리켰다.
“저거 한번 헹궈 줄래?”
“네.”
하솔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닭을 향해 다가갔다.
제일 열심히 도와주는 아이. 일이 있다 싶으면 곧바로 달려와서 손을 내어 주는 아이. 상호는 하솔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차기 반장답구만…….’
그때 곁으로 또 누군가가 다가섰다.
옆을 돌아보니 아리가 쭈뼛거리며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저어…….”
“아리도 도와주려고?”
“네…….”
“으음…….”
딱히 일이 없는데. 상호는 고민하다가 살짝 웃었다.
“그럼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좀 도와줄래?”
아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리는 상호가 냉장고로, 싱크대로, 찬장으로 향할 때마다 뒤를 졸졸졸 쫓아다녔다. 그러다가 상호가 채소를 썰기 시작하자 그 옆에 꼭 붙어 별 의미도 없이 썰린 채소를 정리했다.
그 모습을 본 미래가 피식 웃었다.
“야, 아리야.”
“응.”
“……아니야. 됐다. 계속해.”
요리가 중요한 게 아닌 듯해서. 미래는 그냥 포기했다.
아리는 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채 상호의 곁에서 바쁘게 손을 놀렸다. 그게 요리에 의미가 있을지는 상관하지 않은 채.
* * *
“마싯멍.”
“이젠 사람 말도 안 하네.”
“멍.”
단비가 닭다리 뼈를 우물거리며 눈을 끔뻑였다.
각자의 앞접시에는 닭뼈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입이 짧은 아이들도 꽤 많은 양을 먹었고, 심지어는 가은마저 안 먹는 척하더니 어느새 반 마리와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채였다.
미래가 의자에 늘어지며 입맛을 다셨다.
“오늘부터 강쌤로이드를 만들어야겠어.”
“강쌤로이드?”
“은호를 베이스로 해서 강쌤의 기능을 탑재시키는 거야. 보디가드도 하고, 요리도 하고…….”
“얼만데?”
“글쎄…… 10억?”
“엑, 비싸.”
“하지만 빚을 내서 사면 강쌤로이드가 다 갚아 줄 거야.”
“우왓!”
“이상한 소리 말고 그릇이나 모아.”
“넹.”
상호의 말에 그릇이 차곡차곡 쌓였다.
설거지는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이 씻고 있을 때 해도 될 것이다. 상호는 그릇과 냄비를 허공섭물로 들어 대충 싱크대에 박아놓으려 했다.
그런데 하솔과 아리가 벌떡 일어났다.
“설거지 제가 할게요.”
“설거지 같이 해요.”
두 입에서 한시에 나온, 약간 다른 말.
상호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냐, 갔다와서 하면 돼.”
“그럼 갔다와서 제가 할게요.”
“그럼 갔다와서 제가 도와드릴…….”
둘의 말이 겹치자 미래가 하솔의 옷자락을 다급히 잡아당겼다.
“야! 왤케 눈치가 없어!”
“응? 나 뭐 잘못했어……?”
“아리가 하고 싶은가 보지! 넌 걍 쉬어.”
“나도 설거지 잘 하는데…….”
하솔은 미래에게 손목을 붙들려 거실로 끌려갔다.
상호는 그런 둘과 자리에 멀뚱히 앉아 있는 아이들, 그리고 조그맣게 헛기침을 하는 아리를 둘러보다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뭐 어쨌든. 설거지는 갔다와서 하고. 다들 다시 준비해서 나가자.”
“넵.”
아이들은 거실에 널브러진 검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 * *
“아이고…….”
“으으으…….”
집에 돌아왔을 때는 다들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거의 기다시피 현관으로 들어왔던 아이들은 비어 있는 욕실을 보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잽싸게 달려들었다.
“멍! 내가 먼저 씻을 거야!”
“선생님한테 안 물어봐도 돼……?”
“몰라!”
결국 맨 처음은 단비.
상호는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안방 쪽을 가리켰다.
“저기도 써. 좀 좁을 수도 있긴 한데…….”
“앗, 그럼 내가!”
“비켜.”
미래와 이서가 투닥거리며 안방으로 달려갔다.
두 곳을 쓰니 금방 끝날 것이다. 상호는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리 쉬어. 설거지는 선생님 혼자서 해도 돼.”
“아니요…….”
아리가 소매를 걷었다.
“도와 드릴게요.”
“그래.”
정 돕겠다면 마다할 순 없다. 상호는 살짝 옆으로 물러나 아리가 싱크대 앞에 나란히 설 수 있도록 비켜주었다.
“네가 고무장갑 껴.”
그 말에 아리가 아주 살짝, 짧은 시간 흠칫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느낄 수 없을 만큼.
상호는 의아해하며 아리를 돌아보았다가 비늘이 드문드문 난 손을 발견했다.
‘가리라고 한 줄 알았나.’
그냥 물 묻지 말라고 한 건데.
“끼기 싫으면 안 껴도 돼.”
“……네.”
둘은 장갑 없이 설거지를 시작했다.
쌓인 뼈를 치우고, 그릇을 물로 한 번 헹구고.
“물 안 뜨거워?”
“괜찮아요.”
“그거 이리 줘. 수세미로 밀어야겠다.”
“네.”
아리의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태화나 단비의 꼬리보다는 훨씬 묵직했지만, 지금은 따뜻한 산들바람을 맞은 꽃처럼 하늘하늘 나울거리고 있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리야.”
“네?”
“빠따로. 잘 먹었어.”
“……아.”
아리의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푸른 비늘이 검게 보일 정도로 붉어진 얼굴이, 상호를 한 번 흘끗하고는 싱크대를 향해 푹 숙여졌다. 배수구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그, 혹시…… 편지 보셨어요?”
“응.”
그 답을 지금 하려는 것이었다.
상호는 손의 비눗기를 씻어내며 말을 이었다.
“단순히 제자로서 좋아한다는 거야?”
아리는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입이 열리는 데에는 냄비가 물로 가득 찰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아니요.”
“그러면 뭔가 다른 게 더 있어?”
“네.”
상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리야.”
“네.”
“선생님 애인 있는 거 알지?”
“네.”
거실에서 TV 소리와 아이들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 사이에 목소리를 숨겼다. 아리만 들을 수 있도록.
“내 애인도 애인 있는 남자를 좋아했어.”
아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로로 찢어진 노란 눈이 놀람과 의문을 품었다.
“다른…… 다른 분을요?”
“아니, 그 남자가 나였어.”
“……아.”
아리는 눈을 내리깔고 시선을 갈팡질팡 옮겼다.
“그때 저희한테, 말씀하셨던…….”
“응. 죽은 누나.”
1학년들도 알고 있었다. 다리를 자른 바로 그 날에 모든 걸 말해줬기에.
“나는 누나가 죽은 후로…… 여자를 안 만났어. 만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혼자였는데…… 지금 애인을 다시 만난 거야. 옛 전우를.”
아리는 잠자코 들었다.
“걔는 옛날부터 날 좋아했대. 나한테 누나가 있었을 때부터. 그게 잘못된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대. 그래도 꾹 참고 기다리고, 누나가 죽은 뒤로도 쭉 기다렸는데…… 내가 자길 안 찾으니까, 그게 너무 슬펐대.”
“그분이 선생님을 찾아올 수는 없었어요?”
“나도 걔도 사람이 비슷해서…… 누가 목적을 가지고 다가오는 걸 싫어해. 그걸 알았던 거지. 그런 식으로 다가가면 누나를 못 잊고 오히려 멀어질 거란 걸.”
“어려워요.”
“그런가? 어렵나? 뭐, 어쨌든 걔는 그렇게 기다리다가…… 내가 하도 맘을 몰라주니까, 앓고 앓다가 결국은 진짜 죽을 뻔해서…… 내가 달려가가지고 구했지.”
“그래서 사귀게 되신 거예요?”
“응. 그때 배운 게…… 날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 채로 있으면은, 혹은 모른 척하거나 무시하면, 그 사람한텐 엄청난 상처가 된다는 걸 깨달아서……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했어.”
상호는 손에 물을 묻혔다.
“거절을 하더라도…… 이렇게 앞에서 하기로.”
거절이란 뜻이다.
아리는 잠시 말이 없다가, 노란 눈으로 상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선생님.”
“응.”
“언니들은 선생님한테 고백한 적 있어요?”
이번엔 상호의 눈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아니.”
“없어요?”
“응.”
“그럼 지금 이 순간에는 제가 제일 가능성이 높은 거네요?”
그 말에 상호는 당황해서 자신이 뭘 하려고 했는지도 잊어버렸다.
“그렇게…… 되는 거야?”
“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네. 그러니까.”
아리는 살포시 웃었다.
“대답은 안 들을래요.”
“그거면 돼?”
“네.”
“……그럼 그렇게 하자.”
상호는 씩 웃으며 아리에게 장난스럽게 물을 튀겼다.
“꺅!”
아리도 까르르 웃으며 손에 묻은 물을 상호에게 뿌렸다.
주방에서의 소란에 거실에 있던 아이들이 상호와 아리를 돌아보았다.
“뭐야? 뭐 하셨어?”
“아리 웃는 거 처음 들어.”
“분위기 좋네. 근데 단비 얘는 언제 나오는 거야?”
“단비야~.”
“멍! 금방 나갈게!”
그렇게 서서히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328. 나름의 성과
“……푸우.”
상호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 여럿의 뒤섞인 체취가 김과 함께 욕실에서 뭉근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린 단비가 그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젖었멍.”
“그래, 젖었지.”
“야해멍!”
“옷은 딱히 안 젖었는데.”
상호는 난색을 지으며 머리를 털었다.
안방에서는 아이들이 머리를 말리거나 핸드폰을 하면서 잘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침대에 3명, 바닥에 4명. 상호가 잘 곳은 거실 소파.
‘그래도 얘들은 같이 자자고 난리는 안 치겠지…….’
그렇게 안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단비가 고개를 들었다.
“쌤, 방에서 같이 자요.”
“……아니. 안 돼.”
“왜요?”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
이미 가은의 눈빛이 비수처럼 상호를 푹푹 찌르고 있었다.
하지만 단비는 못내 아쉬운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볼멘소리를 했다.
“멍, 언니들은 쌤이랑 자는 거 엄청 좋아하던데.”
“걔들이 이상한 거야. 세상 어느 선생이 제자들이랑 같이 자니…….”
“그럼 언니들은 왜 좋아하는 거예요?”
“나도 잘 모르겠어…….”
“멍, 나는 쌤이 자기 전에 엄청 재밌는 이야기 해주는 줄 알고…….”
“……굉장히 큰 착각을 하고 있었구나.”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내저었다. 백에 하나 다른 여섯이 동의하더라도, 가은 한 명이 싫다고 하면 절대로 같이 잘 수 없었다.
“얼른 자. 피곤하잖아. 불 꺼줄 테니까 얼른 자고…… 일찍 일어나서 뒷산 가자.”
“야식!”
“안 돼.”
“멍……. 그럼 내일 아침 뭐예요?”
“토스트.”
“햄 넣어요?”
“응.”
“안녕히 주무세요~.”
불을 끄고 문을 닫는 상호에게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상호는 마저 머리를 닦은 후 소파에 누웠다. 그도 오늘은 일찍 잘 생각이라 TV는 켜지 않았다. 허공섭물로 불을 끄고 적막에 몸을 실을 뿐.
하지만 아이들이 곧바로 잠들지는 않을 거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멍…….”
문 너머에서 단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리야, 쌤이랑 무슨 얘기 했어?”
“응? 아니, 그냥……. 별 얘기 안 했어.”
이어지는 목소리는 미래의 목소리.
“그래? 그럼 왜 그렇게 홀가분하면서도 복잡하고 아련하고 쓸쓸한 표정을 짓는 건데?”
“그런 표정 안 지었어…….”
“딱 보면 알지.”
“멍, 차였어?”
아리가 당황했다.
“아, 아냐…….”
“너 거짓말 드럽게 못해. 거짓말탐지기도 필요 없어.”
“자기만 몰라. 멍.”
“아니래도…….”
“그럼 아무 말도 안 했다고? 우리가 그렇게 밀어줬는데?”
“말은 했지. 그치만…… 차이진 않았어.”
아이들이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뭐? 그럼 쌤이 받아줬다고?”
“니들 뭔 소리하는 거야?”
그쯤 되자 이서도 관심이 생겼는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얘가 꼰대한테 고백했다고?”
“몰라! 들어봐 들어봐. 받았어? 받은 거야, 고백을?”
“아니.”
“아니 안 차였다매!”
“차이진 않았는데…… 받지도 않으셨어.”
“……뭐어?”
아리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난 이게 좋아.”
그 말에 미래가 입맛을 다셨다.
“하긴 가능성 없긴 했어.”
“……차이진 않았다니까.”
“슈뢰딩거냐? 성공한 주아리랑 실패한 주아리가 동시에 있게? 넌 그냥 차인 거야, 바보야.”
“멍, 괜찮아, 괜찮아…….”
무언가를 토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 울지 마, 멍…….”
“안 울어.”
“그래그래, 울어, 울어. 내 품에서 콸콸 울어…….”
“……안 운다니까.”
“언니들을 이길 순 없었던 거네.”
미래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솔직히 힘들었어. 알지? 세희 언니랑 태화 언니랑, 나빛이 언니 이기기는.”
“……알지.”
아리가 중얼거렸다.
“언니들은 예쁘니까…….”
상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안방으로 달려 들어가고 싶었다. 아리 너도 충분히 예쁜 거라고. 몇 번을 말하냐고.
하지만 좀 더 들어보고 싶어서 잠자코 있었다.
“은율이 언니도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고…….”
“쌤은 누굴 제일 좋아할까?”
“세희 언니겠지. 제일 가깝게 지내잖아. 거의 하루종일 붙어서…….”
“멍, 난 태화 언니 같던데. 꼭 태화 언니만 혼내고. 그러면서도 은근히 하는 말 다 들어 주고.”
“그렇게 치면 나빛이 언니 같은데…… 선생님은 나빛이 언니 말은 무조건 다 들어주잖아.”
“그런가?”
상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냥 빨리 잘 것이지 뭐 하러 저런 쓰잘데기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나.
아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근데 너희는 선생님 어때……?”
“응?”
“너희는 선생님 안 좋아해? 그냥 선생님이야?”
“나는 딱히 연애에 관심이 없어서.”
“나도.”
단비가 미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치만 누굴 사귀게 된다면…… 쌤처럼 자상한 사람이 좋을 것 같아.”
이서가 툴툴거렸다.
“어디가 자상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X나 굴리기만 하는데.”
“이서도 사실은 쌤 좋아하지?”
“의외로 이서가 먼저 고백하는 거 아냐?”
“졸업하면 제일 먼저 선생님 찾아가고~.”
“……죽는다, 니네.”
엿듣던 상호는 실소를 참지 못해 키득거리다가, 이어지는 단비의 말을 듣고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근데 너희는 왜 쌤 싫어해? 이서랑 가은이.”
“이서는 양아치잖아.”
“아, 인정.”
“이 X바…….”
“가은이는?”
가은이 나직하게 말했다.
“너희가 먼저 말해 봐.”
“응?”
“왜 좋은지 말해 봐.”
“음……. 방금 말했잖아. 자상해서. 그리구 뭐…… 잘생기고, 힘도 쎄고…….”
“자상한 게 순수한 호의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응?”
“단정짓지 말라는 뜻이야.”
가은의 목소리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냥 평범한 사실을 말하듯 담담했다.
“이야기 좀 들었다고, 몇 달 같이 지냈다고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게 아니니까.”
“넌 그럼 우리 쌤 몰라?”
미래의 말에 가은의 목이 턱 잠겼다는 것을, 문 너머에서 듣던 상호도 알 수 있었다.
안다고 하고 싶은데. 인간말종이라고 하고 싶은데. 정작 자기가 한 말에 잡아먹혀서 모순이 되어 버리니.
“……몰라.”
“그럼 알려줘?”
“아니.”
돌아눕는 소리.
그리고 피식 웃는 소리.
“너도 언젠간 알 거야.”
“…….”
아주 작은 콧방귀 소리.
그 소리를 끝으로, 아이들도 상호도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