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0화 (330/501)

* * *

“선생님 아파트 살아요?”

미래가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기웃했다.

“선생님 돈 많은 거 아니었어요?”

“돈 많으면 아파트 살면 안 돼? 뭐 돈도 딱히 많지 않긴 한데…… 왜 그렇게 생각했어?”

“그치만 선생님 X급이고……. 사장님처럼 부자 친구도 있고…….”

“그렇게 부자는 아니야. 그리고 이건 옛날 집이고. 들어가자.”

상호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파트로 들어갔다. 양손에 사흘 치 식량을 한가득 들고서.

일곱 명씩이나 되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복작복작했다.

“밥은 선생님이 하시는 거예요?”

“응.”

“전투복 빨래는요?”

“세탁소에 맡기고 찾아야지.”

그는 그렇게 답하고 엘리베이터를 나와 자신의 집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응?’

문틈에서 이상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뭔가가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타는 냄새 같기도 하고. 혹은 둘 다인 것 같기도 하고.

상호는 문을 열려다가 아이들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잠깐만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네…….”

아이들도 뭔가 심상찮은 느낌을 감지한 듯했다.

누가 숨어들어왔다가 고독사했나. 아니면 연탄이라도 피웠나. 상호는 검을 쥔 손에 살짝 힘을 주면서 집으로 들어섰다.

‘켁…….’

매캐한 연기가 집에 가득했다.

이건 100% 연탄, 100% 부패. 어떤 미친놈이 남의 집에 들어와서 이런 짓을 한 걸까. 짜증이 확 솟구쳤다.

‘죽으려면 곱게 죽……엥?’

상호의 발이 주방 앞에서 멈췄다.

“…….”

“흥~ 흐흥~ 흐흥~.”

가스레인지 앞에서. 앞치마를 두른 연회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콧노래를 부르며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흥흐흥~. 아, 선생님!”

나빛은 곧 상호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그를 돌아보며 웃었다. 하지만 상호는 도저히 웃어주지 못했다.

“……나빛아?”

“오셨어요~.”

“네가 왜 여기…….”

“주소를 아니까요~.”

그거야 이미 와 봤으니까 알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금요일이고. 2학년들은 미진에게 맡겨 놓고 왔는데.

어안이 벙벙한 상호에게 나빛이 방긋 웃어 보였다.

“오늘 저녁은 카레예요~.”

“……그게 카레야?”

“보면 모르세요?”

“매생이국인줄 알았는데…… 아니, 그건 그렇고…… 왜 온 거야?”

“식모라도 하려구요~.”

“식모……?”

상호는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그 말을 되뇌었다. 혹시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식모……라니?”

그 물음에 나빛이 천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저는 요리 천재예요…….”

“…….”

아직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훈련을 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식중독 급행 열차를 타게 할 수는 없어서. 또 다른 아이들은 못 왔는데 나빛만 온 게 알려지면 뒷감당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계속 말을 붙이며, 조심스럽게 나빛의 뒤로 다가갔다.

“그렇구나……. 그래서 어떻게 왔어?”

“삼촌 차 타구요~.”

“아……. 경호원 삼촌들?”

“네~.”

나빛이 헤헤 웃으며 다시 가스레인지를 향해 돌아섰다.

상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빛의 뒷목을 향해 지탄을 날렸다.

“……으잉.”

혈을 적중당한 나빛은 잠시 비틀거리다가 옆으로 쓰러져 상호의 품에 안겼다.

‘해치웠군.’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첫 번째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상호가 나빛을 안아 들자 찬장 주변의 컵 속에서 혁구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뺙.”

“숨어 있었구나.”

엄마의 독요리를 시식하기가 싫었나 보다. 상호는 혁구도 어깨에 앉히고 나빛과 함께 현관으로 나왔다.

집에서 흘러나오는 악취에 정신을 못 차리던 아이들은 상호와 그 품에 쓰러져 있는 나빛을 보고 당황해했다.

“선생님? 어? 나빛이 언니?”

“언니가 왜 여기 있어요?”

“언니 괜찮아요? 이거 무슨 냄새예요?”

“멀쩡해. 잠깐 기절시켰어.”

“기절……?”

상호는 영문을 몰라하는 아이들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희는 안에 들어가 있어. 선생님은 언니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올게. 아, 그리고…… 가스레인지에 있는 시커먼 거 먹지 마. 미래야, 하솔아. 단비 그거 못 먹게 해.”

“멍! 왜요? 왜 저만 그렇게 콕…….”

“다녀오세요.”

하솔과 미래가 단비의 말을 씹었다.

주방에 놓인 그것은 딱 봐도 사람이 먹을 수 없는 냄새가 났지만, 그래도 워낙 이것저것 잘 주워 먹는 단비라서, 불상사를 방지해야 했다.

미래와 하솔이라면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금방 갔다올게.”

“네~.”

“멍! 왜 나만!”

“다녀오세요.”

상호는 나빛을 데리고 창밖으로 뛰었다.

* * *

그렇게 나빛을 기숙사에 투척하고. 한 시간쯤 걸려 집에 도착하니. 이제는 정말로 1학년들과 그뿐이었다.

상호는 한숨을 쉬며 거실로 들어섰다.

“선생님 왔다…….”

“다녀오셨어요~.”

두세 명이 대답하는 소리가 났다.

단비는 대자로 누워서 꼬리를 파닥거리고 있고, 미래는 엎드려서 노트북 삼매경. 아리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쪼그려 앉아 노란 눈을 요리조리 굴리고 있고, 이서는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 중.

하솔과 초란은 함께 이곳저곳을 쭈뼛쭈뼛 기웃거리고, 가은은 보이질 않았다.

“가은이는 어디 갔어?”

“그러게요.”

단비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안방 문이 열리고 가은이 걸어 나오더니, 상호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선수를 쳐 대답했다.

“욕실 좀 확인했어요.”

“응? 왜?”

“저녁에 여럿이 씻으려면 나눠 써야 하니까.”

“아아,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상호는 믿지 않았다.

아마 범죄자의 집을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범죄의 흔적을 찾거나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서.

그래도 뭘 막 건드리지만 않았으면 상관없었다. 사실 건드려도 상관없는 게 대부분이고.

“그래서 어땠어? 쓸만해?”

“네.”

가은은 짧게 답하고 소파로 걸어갔다.

한 시간이면 충분히 쉬었을 터. 그들은 지금 놀러 온 게 아니다. 상호는 검과 보호 마법 목걸이를 챙기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옷 갈아입어. 10분 후에 나가자.”

“아, 이제 특훈이에요?”

“응.”

“언제까지예요?”

“저녁 먹을 때까지. 저녁 먹고 나서도 나가서 수업할 거고. 자기 전까지 쭉 수업이야.”

“우왓…….”

“왜, 힘들 것 같아?”

“네.”

아이들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싫은 기색이 아니었다. 수련은 힘든 게 당연하니까. 물론 밝게 대답하는 것은 미래와 단비 둘뿐이고, 나머지는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거나 아예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솔과 초란, 아리까지는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상호는 씩 웃고 엄지로 바깥을 가리켰다.

“가자. 방에서 옷 갈아입고 나와.”

* * *

“끼잉…….”

단비가 우는 소리를 냈다.

“너무 높아…….”

“그래?”

미래는 프로펠러 모자를 쓰고 단비의 옆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너도 이거 써볼래?”

“멍!”

“안 된다, 단비야. 걸어.”

“끼잉…….”

옆에서 걷던 상호의 말에 단비의 꼬리가 다시 축 늘어졌다.

여덟은 상호의 집 뒤편의 뒷산을 오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높아서 무예가 아이들도 땀을 뻘뻘 흘렸다. 정확히는 무예가 아이들만 걷고 있었지만.

둥실둥실 떠가는 아리에게 단비가 소리쳤다.

“아리야! 주아리! 나 업어 줘!”

“어허, 안 돼.”

“끼잉…….”

아이들은 쉬지 않고 발을 옮겼다.

두 마법사는 공중에 떠서 가고, 단비는 혀를 빼물고. 하솔은 힘들어도 의젓하게 참고, 초란은 아이들 중에선 몸이 무거운 편이라 힘들어 보였다. 가은은 상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지 완벽한 무표정으로 걷고 있었고, 이서가 특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은 것처럼.

그래도 다들 묵묵히 상호를 따랐다.

머지않아 너른 공터가 나왔다. 잔디가 있고 들판이라 할 정도로 탁 트인. 상호가 2학년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했던 그곳이었다.

상호는 아이들에게 목걸이를 하나씩 주었다.

“자, 한 명씩 선생님이랑 대련하고. 안 하는 애들은 혼자서 수련하고 있어.”

“선생님이랑 대련해요?”

미래가 눈을 반짝였다.

작년 이맘때엔 당연했던 일이 올해의 아이들에겐 익숙하지 않게 된 모양이었다. 상호는 자신이 1학년들을 잘 챙겨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랑 대련할 거야. 너희 다. 한 번씩.”

그 말에 단비가 감동받은 듯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 쌤이 달라졌어요…….”

“……미안해. 그동안 너무 바빴어. 1년 다 지나가고 있는데 이런 말 하기도 좀 그렇지만…… 이제라도 잘 할게.”

상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말했다. 그러자 단비는 이번엔 미래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박사님! 우리 쌤이 달라졌어요!”

“내가 뭐랬어? 혁명하면 달라진다 그랬지? 언니들 무섭다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니까!”

“멍!”

절을 하는 단비와 교주처럼 양팔을 높게 든 미래를 뒤로하고, 상호는 다섯 아이들을 쓱 둘러보았다.

“우린 수업이나 하자. 누가 먼저 할래?”

“어…….”

아리가 머뭇거리며 손을 들었다.

“저부터…… 할래요.”

“그…….”

상호는 아리의 뺨을, 거기에 드문드문 난 푸른 비늘을 바라보다가, 빠따로 데이에 받았던 푸른 비늘과 편지를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했다.

노란 눈을 마주하기가 살짝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아리는 학생이고. 그는 선생이니.

“그래. 아리부터 하자. 이쪽으로 와.”

“네.”

“너희는 일단 혼자 수련하고 있어. 대련할 거면 내공은 쓰지 말고. 지금은 치료할 사람이 없으니까…….”

“네.”

그는 아리를 가르치기 위해 들판 한쪽으로 향했다.

등 뒤를 따르는 아리의 뺨이 붉어지고 있다는 것을,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327. 거절

“아직도 짧은 걸 쓰는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상호는 쓰게 웃으며 앞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다른 여섯 아이들을 가르치고 남은, 마지막 순서의 학생.

“중간평가 때 1등이었지?”

“…….”

“딱히 바꿀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겠네.”

가은은 단검을 뽑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칼끝부터 손잡이까지, 팔 하나 정도 길이의 검. 다른 아이들이 쓰는 것보다 한 뼘 반, 거의 두 뼘이 짧았다.

“그렇지만 사람도, 무기도, 무공도 변하는 시대에…… 하나만 고집하면, 도태되기 쉬워.”

가은의 입가가 씰룩였다. 그럼 당신은 뭐냐는 듯이.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너는 그런 사람들하고 싸우는 게 업이잖아. 내 상대는 몬스터들이고…….”

상호는 검기가 얇게 둘러진 검을 살짝 까딱였다.

“그리고 뭐…… 너한텐 좀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원하는 것만 고집할 수 있는 건 강자의 특권이지. 약자는 끊임없이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고. 가은이 네가 중간평가에선 강자였지만…… 이번에 어떨지는 해봐야 아는 거야.”

설교가 지겨웠을까. 가은은 눈살을 찌푸리며 상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은의 검은 맹금류의 발톱 같았다. 빠르고, 정확하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쏜살같이 내려와 급소를 덮쳤다.

상호는 세희와 검으로만 대련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어땠더라…….’

얼굴 아래에서 칼끝이 날아들었다.

‘……그래. 이랬었지.’

세희와 비교하자면 조금 느리고 몸이 덜 유연했지만, 동작에는 강단이 있으되 결정은 신중했다. 단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을 거는 세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은율과 비슷하냐면 또 다른 것이, 은율은 상대의 수를 읽은 다음 흘려내서 반격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가은은 훨씬 적극적으로, 전투적으로 빈틈을 찾아내어 공격해 왔다.

다른 두 아이들보다, 훨씬 더 사냥에 어울리는 아이.

‘……그 대상이 사람이라는 게 문제지만.’

헌터였다면 훨씬 더 성공했을 텐데. 물론 가은은 성공 따윈 안중에도 없을 터였다.

상호는 가은의 검을 쳐내고 몸을 낮췄다.

‘한번 실력을 보여 줄까.’

다리를 고친 이후로는 제대로 대련한 적이 없었다. 맨날 세희만 가르치느라. 덕분에 아이들은 상호의 정확한 실력을 몰랐다. 그냥 엄청나게 세다고만 알고 있을 뿐.

내공이 얼마나 강한지는 보여줄 필요 없다. 검이 얼마나 빠른지도 보여줄 필요 없다. 보여줄 것은 전투의 감각.

상호는 일부러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가은이 쳐내어진 검을 몸쪽으로 당기는 순간과 동시에.

슈욱……

가은의 눈동자가 상호의 검을 향했다.

분명히 확인했다. 이미 시선이 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은은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할 수가 없었다.

상호의 검이 날아온 순간이 너무 절묘해서.

“윽…….”

검이 가은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가은은 자신의 목에 닿은 검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칫.”

왜 화내는 걸까. 선생이 이기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상호는 머쓱해서 검을 내리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공간의 빈틈만 보지 말고 시간의 빈틈도 봐야 해. 단검을 든 사람이 빈틈을 보이면 단검을 든 의미가 없어.”

“……흥.”

“긴 칼도 한번 써 볼래? 선생님이랑 바꿔 들까?”

늘 그렇듯,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말하는데 듣는 척도 안 하다니. 상호는 내공을 뻗어 가은의 볼을 톡 건드렸다.

“듣고 있어?”

“……!”

가은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설렘이나 부끄러움은 일절 없이. 순수한 분노로 이글대는 눈. 상호는 그 열기에 놀라 움찔하며 내공을 거뒀다.

“……미안.”

“…….”

가은은 그를 노려보다가 말없이 돌아섰다.

늘 그렇듯, 아무런 대꾸도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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