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너흰 괜찮아?”
“네.”
세희와 태화는 꼭 붙어 선 채로 눈을 깜작였다. 밤중에 습격을 당해서 많이 놀랐던 모양이었다.
상호는 반으로 가른 악마들을 계속 검으로 베고 또 베었다. 얼른 부활하지 못하도록. 그런 그를 향해 민정이 물었다.
“상호야, 진짜야?”
“응?”
“악마를 죽이는 방법…… 알아냈어?”
“아, 그거. 뻥이지.”
취조는 아직 하지도 못했다. 대가리를 날리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으니까.
상호는 한 손으로는 촉수 악마와 사자 악마를 회치고, 한 손으로는 백의를 들어 살펴보면서 말을 이었다.
“거기 그 빨간 년은 되게 약하더라. 걔는 살려놔서 심문하고, 얘네 둘은 봉인하면 될 것 같아.”
그 말에 아이들이 여인의 잘린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이거, 살아 있는 거예요?”
“응.”
상호가 대답하자마자 여인이 눈을 번쩍 떴다. 가까이서 집중하고 있던 태화와 세희는 화들짝 놀라 서로를 와락 끌어안았다.
“끼야아아악!”
“히끅……!”
하지만 민정은 상호가 내공으로 한 짓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애들 놀리지 마, 상호야.”
“아, 미안. 반응이 이렇게 셀 줄 몰랐네.”
“쌔애앰!”
태화의 눈에서 불길이 뿜어졌다.
“내 애 떨어질 뻔했잖아! 떨어지면 또 만들어 줄 거야?!”
“애가 그 애가 아닐 텐데…….”
상호는 헛기침을 하고 세희에게 다가갔다.
세희는 멍하니 서 있다가 자신이 예경의 검을 들고 있단 걸 깨닫고 상호에게 돌려주었다.
“무사히 잘 썼어요. ……아마도요.”
“응.”
중요한 건 검이 아니었다. 상호는 검을 대충 둘러보고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런 후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친 데 없지?”
“네.”
“있으면 말해야 돼. 알지? 치료해야 하니까.”
“네.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빙긋 웃는 세희를 밀쳐내고 태화가 그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난 왜 안 물어봐? 난 다쳐도 돼?”
“넌 다쳤으면 안 물어봐도 달려와서 자랑했을 거잖아.”
“맞아!”
“당당하게 인정하지 마.”
상호는 한숨을 쉬고 태화의 볼을 잡아당겼다.
무너진 벽 너머로 헌터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헌터들은 상호가 헤집고 있는 악마들의 시체와 여자 악마의 잘린 목을 보고는 약간 당황하더니,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죽인 겁니까? 아니면…… 봉인 준비를 할까요?”
“아뇨, 이거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대신에 필요한 게 좀 있는데…….”
“아, 예. 뭐가 필요하십니까?”
“고기 분쇄기요.”
“……네?”
헌터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323. 몸을 섞어서
드르륵──
악마에게는 생소한 소리였다.
드르륵──
아주 인위적인 소리.
돌과 돌이 맞물려 돌아가면 이런 소리가 날까. 여인은 이미 정신을 차렸지만 조금 더 눈을 감은 채로 상황을 살피려 했다.
드르륵──드드득──드르륵──
규칙적이던 소리에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가 섞였다.
저 소리가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섬뜩하고 꺼림칙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래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으…….’
그러나 정신을 차리는 순간 호흡이 달라진 걸 느꼈는지.
드르륵거리는 소리 옆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구만.”
“…….”
“알고 있으니까 눈이라도 떠 보지 그래.”
그래도 여인은 눈을 뜨지 않았다.
피비린내, 누린내. 육신이 영혼을 잃고 무너졌을 때 나는 냄새. 피는 여인에겐 익숙한 도구였고, 기나긴 세월 동안 수많은 시체를 봐 왔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냄새는 맡아본 적이 없었다.
‘대체…….’
철퍽
또 이상한 소리가 났다.
차진 무언가를 치대는 소리. 진흙이나, 그런 끈끈한 무언가. 거기에 손을 넣고 휘젓는 듯한 소리까지.
그 사이로 사내가 나직하게 말했다.
“널 살려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사자나 문어는 식품으로 취급할 수 있지만…… 아무리 악마라도 사람 모양을 한 걸 도살하긴 좀 그렇잖아.”
“…….”
“물론 악마 새끼들한테 베풀 자비는 없긴 한데.”
여인은 진땀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아무리 두려워도 절대 눈을 뜨지 않겠다 다짐하며.
그런데 팔다리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
그러고 보면 목을 잘렸었다.
일단 몸까지는 감각이 느껴지는데. 재생이 제대로 되지 않은 걸까. 당장이라도 눈을 떠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깨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몸이 당황으로 움찔해 버렸고.
사내는 그걸 본 모양이었다.
“뭐가 많이 없지?”
“…….”
“여러 번 자르니까 회복을 잘 못 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 육체의 회복력에 한계가 있나? 아니면 영혼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 뭐, 그건 앞으로 차차 알아가면 될 것 같고…….”
드르륵──
“근데 니들도 공포라는 게 있나 보다. 그치? 하긴 느그 대빵도 좀 싸우다가 튀더라고. 그런 거 보면 너희도 분명히 죽긴 죽을 거야. 맞지?”
철퍽……
“한번 너로 실험해볼까?”
“…….”
여인은 마른침을 삼켰다. 사내가 아무리 집요하게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협박을 하든, 회유를 하든. 사내는 그녀의 적이었기에.
하지만 실은, 이곳에서 절대로 멀쩡하게 풀려날 리 없다는 것을 머리로, 몸으로 느끼고 있어서.
눈꺼풀 속 눈동자가 갈팡질팡 흔들렸다.
“야.”
“…….”
“이름이 뭐냐?”
“…….”
“이름이 없나? 너희는 서로 부르는 이름이 없어? 아니면 대답하기 싫은 거야?”
“…….”
“하아…….”
사내는 한숨을 푹 쉬더니.
“왜 좋게 말하면 꼭 안 들을까?”
발소리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인의 몸이 덜덜 떨렸다. 더 이상은 깨어있지 않은 척을 하기도 힘들었다. 이쯤 되면 갓난아이에게도 다 들켰을 것이다.
여인은 몸을 굴리며 사내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어딜 가려고?”
사내의 발이 여인의 등을 지그시 밟았다.
“……윽.”
“설마 도망치려는 거야?”
사내가 발에 힘을 주자 여인의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왔다.
“헉…….”
“이름.”
“으…….”
그래도 묵묵부답. 여인은 숨만 토해낼 뿐 말을 지어내지 않았다. 어차피 이 사내는 악마를 죽이는 방법을 모르니까.
그녀가 이곳에 갇히게 된다 해도, 언젠간 악마가 이길 것이다. 십 년이 걸리든 백 년이 걸리든. 그리고 그때가 되면 마신이 찾아올 터.
마신에게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이름도 말하기 싫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여인의 등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그럴 수 있어. 음.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아무래도 너는, 네가 처한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사내의 손가락이 여인의 눈꺼풀을 잡고 강제로 벌렸다.
여인은 눈앞의 광경을 목도하고 숨을 들이켰다.
‘힉……!’
강철로 만든 장치.
여인이 살던 세상에는 저런 물건이 없었다. 하지만 시각으로, 후각으로, 용도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장치 아래쪽에 삐죽 튀어나온 주둥이.
거기서 질질 흘러내리는 끈끈하고 붉은 침.
그걸 받는 대야와,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피비린내. 누린내.
바닥에 엎드려 있어서 대야 안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는 익히 짐작이 갔다.
“으…….”
“어때.”
사내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이름 정도는 말해줘도 되지 않겠어?”
“……베.”
여인은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기가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것처럼.
“베르멜로…….”
“좋아, 베르멜로.”
서늘한 것이 베르멜로의 목에 닿았다.
“내가 제일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베르멜로도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협상에 능숙하지 않아. 쉬운 질문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방식은 모른다. 선택지는 두 개야. 답하거나, 다물거나. 어떤 선택에 어떤 결과가 따를지는……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말대로였다. 베르멜로는 무엇을 택하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알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말…… 못해.”
사내의 대답은 칼이 했다.
가장 강력한 협상의 도구가 목을 조금씩 누르기 시작했다. 베르멜로는 날카로운 통증이 목을 찌르는 것을 느끼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 그걸 말해줄 리가 없잖아! 그것만 빼고 다 말해줄게! 뭐든, 뭐든! 살려만 주면 뭐든 할게!”
“너희 어차피 안 죽잖아.”
사내의 목소리는 이제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 말대로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산 채로 갈려 나가는 것만은 죽기보다 싫었다.
베르멜로는 팔을 버둥거리며 빌었다. 손이 있었다면 싹싹 비볐을 것처럼.
“제, 제발요, 제발요…….”
“두 번 안 묻는다.”
“제발……!”
상호는 베르멜로의 말을 묵살하고 귀에다가 속삭였다.
“너희를 죽이는 방법.”
“제발…….”
“말해.”
베르멜로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흘러나왔다.
“싫어요! 싫어요, 살려주세요!”
“말.”
“그거 말하면 죽일 거잖아요! 제발요, 진짜 뭐든 다 할게요, 시키는 게 뭐든 다 할게요! 주인님으로 모실게요, 정말……!”
“해.”
“제발……!”
긴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아직 생에 미련이 많은 그녀였다. 애초에 악마가 된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서.
베르멜로는 인정에 호소해 보기로 했다.
“저, 저도 원래 인간이에요!”
“어쩌라고.”
상호는 베르멜로를 들어서 쇄육기와 대야 속을 볼 수 있게 했다. 금속 이빨에 낀 기름진 찌꺼기들이 끈적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베르멜로는 숨을 헐떡이며 뭉툭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으……!”
“잘 생각해 봐. 상상해 보라고.”
거친 손가락이 베르멜로의 뒷목을 움켜잡았다.
“뇌가 있으면 알 거 아니야. 아, 뇌가 없나? 확인해볼까?”
“항복! 항복할게요, 항보옥…….”
“대답을 안 하는데 왜 항복을 받아줘야 하지?”
드디어 대꾸를 한다. 베르멜로는 이때다 싶어 허겁지겁 말을 쏟아냈다.
“저, 저 실은 악마 엄청 싫어해요!”
“이야…….”
금속 톱니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거 정말 충격적이네. 나도 실은 여자가 아닐까?”
“아니아니아니아니! 농담이 아니라! 저 새끼들 툭하면 저 때리고! 절 당신한테 싸우라고 보낸 것도! 죽어도 상관없다면서 보낸 거라서……!”
“그래? 그럼 네가 그토록 싫어하는 악마들 내가 다 죽여줄게. 말만 해. 악마 죽이는 방법만 말하라고.”
“그러면 죽일 거잖아요! 으헝헝헝…….”
결국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상호는 쇄육기 투입구에 눈물과 콧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진짜로 충성한다면야 쓸모는 있을 텐데…….’
그 진짜 충성을 보장할 수단이 없으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진위 여하와는 관계없이 배신을 때릴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좀 더 고민하다가 베르멜로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끄엑! 내 등! 아야야…….”
“베르멜로.”
“으헝헝헝…….”
“난 시끄러운 걸 싫어해.”
그 말에 베르멜로의 울음이 뚝 그쳤다.
“여자 우는 소리는 아주 질색이야. 뭐 남자 우는 소리라고 듣기 좋은 것도 아니다만…… 그러니까 나랑 지내려면, 약속 하나 하자.”
“네……!”
“악마를 죽이는 방법.”
빨간 눈동자에 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건 못 말한다구요……!”
“끝까지 들어 새끼야. 그것만 빼고, 내가 묻는 말엔 무조건, 그리고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거야.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알아들었어?”
“네!”
베르멜로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그제서야 뒤돌아서서 남은 작업을 마저 해치우기 시작했다.
“근데 얘들은 이름이 뭐냐?”
“그…… 갈기 있는 놈은 라슈가르, 촉수는 디오란…… 이에요.”
“한입 할래?”
“아니요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