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2화 (322/501)

* * *

‘교장선생님한텐 굳이 안 찾아가도 되겠지.’

상호는 여교사 숙소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퇴근 중인 교사들이 이따금씩 입구로 드나들며 그를 흘끗거렸지만, 상호는 교사들에게 볼일이 있어서 여기 온 게 아니었다.

그가 만나려는 사람은 학생이었다.

‘2층이랬나.’

방을 착각하면 곤란해진다. 상호는 내공을 뻗어 그가 보고 있는 창문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지더니, 곧 창문이 드르륵 열리며 한 여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민정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여인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땅에 서 있는 상호를 발견하고 눈을 마주쳤다.

서로 낯이 익은 사이였다.

“무슨 일로?”

여인의 물음에 상호는 빠따로를 꺼내 흔들었다.

“다혜 있어요?”

“드디어 존댓말을 배웠나 보네.”

여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수호부대에서는 딱히 깽판을 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상호는 그녀의 시선을 살짝 피하며 입맛을 다셨다.

“하여튼 다혜 있어요?”

“자고 있지. 기다려. 옷 좀 갈아입히고.”

여인은 안쪽으로 사라졌다.

다혜는 폭주 이후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퇴학이나 기숙사에서 쫓겨나는 것은 상호가 막았지만, 학생들과 수업을 듣는 것만은 허락되지 않았다.

‘하루종일 잠만 잤나 보네.’

상호는 여인이 다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산발이 된 다혜가 여인과 함께 창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므우웅…….”

“다혜야.”

“아으?”

눈곱을 떼던 다혜는 퍼뜩 고개를 들어 상호를 발견하고는, 펄쩍 뛸 정도로 기겁하며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느아아악!”

어푸어푸 세수하는 소리가 들렸다.

뻘쭘하게 서 있는 상호에게 여인이 피식 웃어 보였다.

“성격을 바꾸니까 얼굴이 제값을 하는구만.”

“…….”

상호는 가만히 다혜를 기다렸다.

곧 멀끔해진 다혜가 창틀 아래서 쏙 튀어나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벙긋 웃는 얼굴로. 상호를 향해 손을 흔들며.

“아으으아~.”

“……그래. 다혜야. 방에 들어가도 돼?”

“느아아악!”

“안되는구나…….”

“므앙.”

다혜는 옷의 어깨 부분을 당겨 속옷 끈을 가리켰다.

“아으아으~.”

“그건 되고 빨래는 안 되는 거야?”

“아으!”

“그래. 알겠어…….”

상호는 쓰게 웃고 빠따로를 허공에 띄워 올렸다.

“이거 주려고 불렀어.”

“므앙?”

다혜는 코앞까지 떠오른 빠따로를 눈동자가 모일 정도로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혜의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어 갔다.

“아으.”

혹시 오해하고 있는 걸까. 상호는 헛기침을 했다.

“세희도 줬어. 우리 반 애들하고……. 다혜 네 생각 나서 주러 온 거야.”

“므앙.”

“맛있게 먹고…….”

“므앙.”

“……듣고 있는 거니?”

그렇게 물어도 눈만 반짝일 뿐, 이미 전혀 듣고 있지 않은 눈치였다.

다혜는 공중에 뜬 빠따로를 휙 낚아채서는.

“므아아──.”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며 돌아서서 방 안쪽으로 달려갔다.

‘큰 오해를 산 것 같은데…….’

빠따로를 조금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민망해서 머리만 긁적이는 상호에게 여인이 코웃음을 쳤다.

“인기가 많네. 저승부대 꼬마.”

“…….”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돌아섰다.

* * *

“자.”

혜소는 상호가 내민 빠따로를 내려다보며 눈을 끔뻑였다.

“이게 뭐예요?”

“과자야.”

상호는 외투를 벗고 아이들의 빠따로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오늘이 그 과자 주고받는 날이거든.”

“그건 언니들이 준 거예요?”

“응.”

그 말에 관심이 동했는지, 효은이 침대에서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효은은 식탁에 한 무더기 쌓인 빠따로를 보고는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많이도 받았네.”

제일 특이한 모양의 빠따로. 나빛의 빠따로를.

상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 빠따로를 흘끗했다.

“응. 애들이 많으니까…….”

“이거 누구 거야?”

“나빛이.”

“모양이 왜 이래? 뭐야, 이거 뭔 냄새야. 너 방귀 뀌었냐?”

“응.”

대답은 천연덕스러웠지만, 속으로는 긴장하고 있었다.

“먹어봐. 맛있어.”

“니꺼잖아.”

“그러니까 먹으라는 거지.”

“수상한데…….”

효은이 눈살을 찌푸렸다.

“니가 맛있는 걸 그냥 줄 새끼가 아니잖아.”

“날 뭘로 보는 거야?”

상호는 뜨끔했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높였다.

“됐어, 그럼. 먹지마. 나 혼자 다 먹을 거니까.”

“그래라. 돼지새끼.”

효은은 콧방귀를 뀌고는 빠따로를 내려놓고 침대로 돌아가 드러누웠다.

상호의 이마에 진땀이 배어났다.

‘이게 아닌데…….’

반발심을 자극해서 한입 먹이려고 했는데.

결국은 혼자 치워야 할 운명인가 보다. 상호는 눈물을 삼키며 나빛의 빠따로를 냉동고 속 깊은 곳에 처박았다.

기회를 봐서 버리든가 할 계획이었다.

‘나빛아, 미안해. 죽어도 못 먹겠어…….’

슬슬 아이들의 빠따로를 한번 먹어 볼까. 감상을 문자로 보내줘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식탁 앞에 앉는데, 아까 교무실에서 발견했던 출처를 알 수 없는 빠따로가 눈에 띄었다.

‘누구 걸까…….’

상호는 포장을 뜯어 안에 있는 쪽지를 폈다.

안에는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선생님 좋아해요

딱 한 줄.

이름도 안 적혀 있고. 글씨체만 봐서는 누구의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다른 반 앤가……?’

상호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쪽지 뒤편에 붙어 있던 뭔가가 톡 떨어졌다. 작고 가벼운 것이.

상호는 식탁에 떨어진 그 물체를 보고 당황했다.

“……아.”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파란 비늘.

누구의 것인지는 명확했다.

‘문자를 보내야 하나…….’

알아차린 척을 해야 하나. 내일 얼굴을 보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는 일단 조용히 비늘을 집어 지갑에 집어넣었다.

침대에서 지켜보던 효은이 한마디 했다.

“왜 얼굴이 빨개? 애들한테 고백받았냐?”

쓸데없이 감은 좋다. 상호는 혀를 차고 쪽지를 손바닥에 숨겼다.

“아냐.”

“받았구만. 그치? 역시 어린애들이 좋지? X밸럼아.”

“아니라고!”

그때 혜소가 흠칫했다.

갑자기 큰 소리를 내서 그런가. 상호가 당황하며 사과하려는데 혜소가 창백해진 얼굴로 창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

“응?”

“창밖에 이상한 거 있어요.”

“…….”

안 봐도 알 법했다.

“……혹시 하얀색 실 같은 게 늘어뜨려져 있니?”

“네.”

“…….”

상호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혜소야.”

“네.”

“일단 침착하게…… 방금 준 과자 있잖아.”

“네.”

“그걸 창문 밖으로 내밀어 볼래?”

창문 열리는 소리.

그리고 혜소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어?”

“어떻게 됐어?”

“없어졌어요. 과자도 실도…….”

“잘했어.”

빠따로가 목적이니 곱게 주면 조용히 물러갈 것이다. 상호는 한숨을 쉬고 새 빠따로를 꺼내 혜소에게 내밀었다.

“자. 여기 새거.”

“지금 먹어봐도 돼요?”

“응. 먹어.”

마지막 하나 남은 빠따로는 효은에게 던졌다.

“너도 먹어.”

“돼지새끼.”

“다 먹어. 너 다 먹어.”

효은은 그제서야 몸을 일으켜 상호의 빠따로를 집었다.

혜소와 효은 둘 다 빠따로의 포장을 뜯어 오도독오도독 먹기 시작했다.

상호도 아이들의 빠따로를 먹어보려는 찰나.

“응?”

“어?”

효은과 혜소의 입에서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응?”

“이거 뭐야?”

효은의 손에는 작은 색종이가 들려 있었다.

저게 뭔데 그러나. 상호는 멍청히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그게 뭔데?”

“빠따로 안에서 나오던데?”

“안에서?”

혜소의 입에서도 색종이가 튀어나왔다.

“저도 있어요.”

“혜소도? 아…….”

상호는 빠따로를 샀던 가게의 점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벤트용 빠따로라던.

빠따로 안에 종이를 넣어 만든 모양이었다.

“가게에서 그렇게 만든 건가 봐. 어쩐지 비싸더라. 그래서 뭐라 적혀 있는데?”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 이라고 적혀 있어요.”

“아하…….”

그런 빠따로인가 보다.

낯간지럽지만 나쁜 말도 아니고.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는 효은을 돌아보았다.

“너는?”

“내 아이를 낳아줘.”

“……뭐?”

“라고 적혀 있는데?”

효은이 눈을 치켜뜨며 종이를 팔랑거렸다.

“이 X새끼야. 니 나 멕이는 거지?”

“아니, 아니……. 그런 건지 몰랐…….”

대체 왜. 왜 하필이면 효은한테 그런 말이 적혀 있는 걸까. 상호의 온몸에 진땀이 줄줄 흘렀다.

그때 어떤 생각이 뒤통수를 강타했다.

‘아…….’

상호는 한 아이를 떠올리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X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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