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7화 (317/501)

* * *

“아직 못 찾았다고요?”

“네…….”

설미가 초조한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도현은 뒤에 서 있는 꼬마 상호를 흘끗하고는 설미에게 재차 물었다.

“누구누군지는 다 확인 됐습니까?”

“네……, 상호 씨 애들 일곱이랑, 한 명은 송다혜라는 아이…….”

“정령으로 찾고 있는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설미는 다시 정령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애들도 모자라서 다혜까지 실종되었을 줄이야.

정말로 어떤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불안해서 자꾸 진땀이 났다.

“형.”

“응?”

“빨리 찾아야겠는데.”

“그래야지.”

도현은 자신이 데려온 헌터들을 돌아보았다. 몇십 명의 협회 소속 헌터들과 헌터 경찰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현의 손이 숲의 가장자리를 쓱 훑어 가리켰다.

“일렬로 쭉 밀면서 올라가는 겁니다. 간격은…… 어?”

도현과 헌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간 상호도 마찬가지였다.

숲에서 만신창이가 된 지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라.”

지윤은 도로에 쫙 깔린 헌터들을 발견하고 잠시 멈춰 섰다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상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쌤예~.”

“응?”

뒤따라 나온 미진이 눈을 끔뻑였다.

“뭐야, 강 선배 왔어? 어디?”

“아, 그, 그게…… 지가 헛것을 봤나 봅니더.”

“하긴, 그 인간이 왔을 리가 없지. 우리가 이러는지도 모르고 띵가띵가 놀고 있겠지…….”

“아, 아하하……. 저기 은호 있네예. 은호야~.”

지윤은 멋쩍게 웃고는 상호에게 달려왔다.

“우리 은호야~, 누나야 걱정돼서 왔나~.”

“으응…….”

상호는 잘 웃지 못하고 입술을 씰룩였다.

한 명은 무사해서 다행이지만, 아직 일곱 명이나 남아 있다. 그는 자신을 번쩍 안아 드는 지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윤아, 다른 애들은?”

“다른 아덜이예?”

눈을 끔뻑이는 걸 보니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지윤은 그제서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 안 왔습니꺼?”

“너 말고 다 안 왔어……. 그래서 선생님들이 찾고 있어.”

“그런…….”

당황해하는 지윤의 옆에서 미진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녀의 의문 가득한 시선은 상호를 향하고 있었다.

“은호는 여기 왜 왔니?”

“누……누나 걱정돼서요.”

“은율이 말이야? 그건 어떻게 알고?”

“도현 아저씨랑 친해서…….”

“은호는 이상하게 발이 넓구나.”

미진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설미를 향해 걸어갔다. 이 지경이 되도록 은호를 상호라고는 의심조차 못 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사 사람이 어려질 거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냐마는.

상호는 한숨을 쉬고 지윤과 눈을 마주쳤다. 손가락 하나만큼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11월인데도 옷이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싸웠어? 몬스터랑?”

“예. 떼그지로 몰려오던디예.”

“미진 선생님이 구해준 거야?”

“비슷합니더. 근디 쌤예.”

지윤의 목소리는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지가 새 기술을 찾았거든예.”

“응.”

“나중에 한번 봐 주이소.”

“응, 내일 이야기하자. 다친 덴 없는 거지?”

“예.”

“다행이다.”

상호는 지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하늘에서 누군가가 날아왔다.

“쌤! 쌤! 아무나 없어요…… 어라?”

태화는 상호와 지윤을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쌤? 뭐야, 넌 또 언제 왔어?!”

“니는 뭐하노. 아덜 버리고 도망왔나.”

“아! 애들!”

원래 허둥대긴 했지만 오늘따라 많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상호는 무슨 일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태화야. 애들은? 애들 봤어?”

“응, 응. 애들 지금 그 벙어리 언니랑 싸우고 있어…….”

“뭐?”

다혜가 폭주한 건가. 상호의 눈이 퉁방울만해졌다.

“애들? 누구랑 누구?”

“세희랑 나빛이랑…… 몰라, 쟤 빼고 다 있었어.”

“지윤이 빼고? 그럼 지금 거기 다섯이 있는 거야?”

“응, 다 모여 있어. 근데 상대가 안 돼서……. 민정쌤 어딨어? 빨리, 빨리 가야 돼…….”

태화는 애가 타는 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상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도현을 돌아보았다. 눈빛을 받은 도현이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수색해요.”

“네.”

헌터들이 숲으로 달려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또 그중 몇 명이 움찔하며 도현을 돌아보았다.

“부협회장님?”

“예?”

“찾은 것 같습니다.”

헌터들의 앞에서는 아이들이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총 세 명. 아니 업힌 아이까지 네 명. 나빛, 나디아, 은율, 그리고 그 뒤에 업힌 이츠키까지.

상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츠키가 크게 다친 건가 싶어서.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을 보니 그런 건 아닌 듯싶었다.

태화가 먼저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야! 뭐야? 니들만 왔어?”

“응.”

은율이 나직하게 답했다.

“교장선생님이 오셔서.”

“세희는?”

“세희는 거기 남았어. 도와드리겠다면서.”

상호는 둘의 대화를 듣고 뒷목을 잡았다. 한참 어린 꼬마의 몸인데도 벌써부터 뒷목이 당겼다.

‘아니 같이 오지 뭘 돕겠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게 아닌 이상 해련이 다 알아서 처리할 텐데. 뭘 도울 수 있다고 거기 남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호는 지윤의 품에서 뛰어내려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얘들아…….”

“아, 선생님.”

“이츠키는? 이츠키는 왜 그래?”

은율이 이츠키를 조심스럽게 땅에 눕혔다.

“폭발에 휘말려서…… 아마 기절한 것 같아요.”

“너희는 다친 데 없어?”

“네.”

“저어…….”

나빛이 울먹거리며 손을 들었다.

“꾸꾸 두고 왔어요…….”

“혁구를?”

“네에……. 거기서 넘어져 가지구…… 머리에서 떨어졌는데에…… 아무리 찾아도 없구…….”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이는 나빛에게 태화가 역정을 냈다.

“그러게 놓고 오지 뭘 꾸역꾸역 들고 와서 잃어버려!”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그래서 어쩌자고? 찾으러 가자고? 그 쪼매난 거를 어느 세월에 찾아!”

“몰라……. 난 찾으러 갈꺼야…….”

“아.”

지윤이 손뼉을 짝 치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꾸꾸 여기 있디.”

“응?!”

다시 나온 지윤의 손에는 혁구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뺙.”

“꾸꾸야아아아!”

나빛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달려가 혁구를 끌어안았다.

“꾸꾸야! 꾸꾸야!”

“삐익─. 삐익─.”

“꾸꾸야!”

“꾸꾸 죽는디, 임마.”

지윤은 나빛의 등짝을 쫙 치고 은율과 상호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세희는 어캅니꺼. 다 같이 찾으러 갑니꺼?”

“아니…….”

애들이 움직였다간 또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 상호는 고개를 젓고 버스를 가리켰다.

“너희는 버스에 타 있어. 이제 어른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어!”

그때 나디아가 숲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세희와 한 여인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여인의 등에 다혜가 업힌 게 보였다.

상호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세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 모였네.”

아무래도 어른들은 필요 없었던 모양이었다.

* * *

그렇게 실종 사건은 반나절 만에 끝이 났지만, 상호의 근심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거예요.”

“으음.”

상호는 버스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학생이 탄 마지막 버스. 모두가 무사히 학교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하늘에 감사할 만한 일이었지만,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방금 세희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에.

“악마를 만났고.”

“네.”

“그놈이 널 죽이려고 했고.”

“네.”

“다혜가 그걸 막다가 폭주해서…… 교장선생님까지 다치게 했다고?”

“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째서인지 자신과 세희의 상황을 알고 있는 듯한 악마. 그리고 이상하게 강해진 다혜의 용혈.

뒤를 돌아보니 다혜가 곤히 자고 있었다. 버스 맨 뒷자리, 수호부대원의 어깨에 기대서.

“교장선생님은 어떠셔? 많이 다치셨어?”

“조금…… 다치셨어요. 아주 큰 상처는 아닌데…….”

“다치긴 하셨다 이거구나.”

“네.”

“왜 같이 안 오셨어?”

“그 악마 시체를 감시하려고 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렇구나.”

상호는 세희의 다리, 전투복이 찢어진 곳에 작은 손을 얹었다.

“오늘 악마하고도, 다혜하고도 싸운 거야?”

“네.”

“많이 다쳤어?”

“나빛이가 다 치료해 줬어요.”

“아팠겠네.”

“아뇨. 별로 안 아팠어요.”

세희는 살짝 웃었다.

그렇지만 전투복의 상태를 보면 얼마나 다쳤을지 가늠할 수 있었다. 상호는 세희의 찢어진 전투복 사이로 삐져나온 뽀얀 속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엄청 아팠겠는데.”

“아니에요.”

세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상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많이 피곤한가 보다. 안 그래도 버스에 탄 학생 모두가 자고 있었다. 상호는 세희가 좀 더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쳤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세희가 나직하게 말했다.

“선생님.”

“응?”

“오늘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눈을 감은 채로, 잠꼬대를 하듯이.

“손에…… 평소랑 다른 강기를 썼던 것 같은데……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래?”

“네, 그걸로 언니 강기를 부숴서……. 신기하죠? 교장선생님도 못 부쉈는데…….”

“그렇구나.”

상호는 가만히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신기한…….”

“이제 자. 내일 이야기하자.”

“네…….”

세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상호의 조그만 어깨에 기댄 채 잠에 빠져들었다.

* * *

악마의 시체 주변.

해련은 민정과 도현을 흘끗했다.

“어떻게 처리해야 될까요?”

“……글쎄요.”

민정은 시체를 내려다보며 침음했다.

이미 베어도 봤고, 불태워도 봤다. 하지만 악마는 그때마다 부활해서 돌아왔다.

부활을 막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데.

“이놈을 가져간다는 것도 영 찝찝해서…….”

이렇게 죽어 있는 것조차 함정일지도 모르니. 민정은 팔짱을 끼고 한숨을 폭 쉬었다.

그때 도현이 중얼거렸다.

“봉인을 해 볼까?”

“그게 이놈 목적일지도 몰라.”

“그렇지만 죽지도 않는 놈을 이대로 놔뒀다간 이놈이 점점 더 교활한 계획을 짜게 되겠지. 지금 속아 주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봉인은 어떻게 하게?”

“그건 물어봐야지.”

도현은 민정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우리 여보한테.”

313. 점진과 점퇴

“야, 천세희.”

세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대에 엎드려 있는 세희의 엉덩이를 태화가 움켜쥐었다.

“학교 갈거냐?”

“어딜 만져.”

“갈거냐고.”

어제 담임이 그런 말을 했다. 실습 때문에 내일은 학교 안 와도 된다고. 기숙사에서 쉬라고.

하지만 세희는 늦게라도 갈 생각이었다.

“어.”

“그래? 뭐 알아서 해. 난 애들이랑 나가서 밥이나 먹을라고.”

태화는 무심한 투로 툴툴거리더니, 곧 세희의 윗옷 아래로 손을 넣어 등허리를 꼬집었다.

베개에 파묻힌 세희의 이마에 혈관이 솟았다.

“어딜 만지냐고.”

“야.”

“뭐.”

“진짜 같이 안 먹을 거야?”

“……선생님한테 물어볼 거 있어서.”

사실 속에 약간의 핑계가 섞여 있었다.

어제 겪은 색다른 강기를 상호에게 물어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좀 더 큰 이유가 마음속에 숨어 있었다.

은율을 마주하기가 무서워서.

“나가. 난 좀더 자다가 갈 거야.”

“그래?”

별안간 태화가 베개를 옆으로 쓱 빼내고는, 그와 함께 옆으로 돌아간 세희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어째 고민이 늘어난 얼굴인데.”

“……나가. 빨리.”

세희는 베개로 태화를 한 대 후리고는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이윽고 이불 너머에서 펑 소리가 들렸다.

‘……또 혼자네.’

세희는 그렇게 잠들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창밖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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