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강 선배는 어디 갔어요?”
미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버스 주변을 둘러보았다.
“교실에 오지 말고 버스에 먼저 타라더니…… 왜 자기는 안 오는 건데요?”
“자기?”
버스에 오르던 태화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미진쌤도 상호쌤 좋아해여?”
“이상한 소리하지 마.”
“악! 오옷, 딱밤 때리는 것도 닮았어!”
“……에휴.”
담임뿐만이 아니라 부담임에게도 까불거린다. 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민정을 돌아보았다.
민정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상호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쉬기로 했어.”
“몸이요? 여태 그런 적이 없었는데……?”
“X급도 감기몸살은 별수 없더라.”
“그래요? 뭐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니에요?”
“으응, 아닐 거야……. 가자. 우리만 늦겠다.”
“네.”
그들은 아이들이 탄 것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랐다.
* * *
“하이고…….”
지윤은 바위 위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원도의 산간, 울퉁불퉁한 지형의 가장 높은 곳. 지난 실습 지역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멀리에 버려진 도시가 언뜻 보였다.
‘저기 가믄 몬스터가 있을라나 몰겄네…….’
몬스터들도 호기심이 있다면 특이한 곳에 몰려들지 않을까. 인간을 잡아먹는 놈들이라면 인간의 도시에 관심을 가질 법도 했다. 지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쿠웅……
꽤나 높은 곳이었던 탓에 골이 흔들렸다.
나무 사이로 누군가가 달려가는 게 보였다. 모르는 학생. 아마 몬스터의 흔적을 발견하고 뒤쫓는 모양이었다.
‘에이, 내리와가 찾아볼걸…….’
한발 늦어 버렸다.
오늘은 꼭 잡고 말리라. 저번처럼 약해지진 않을 것이다. 지윤은 바쁘게 발을 놀려 도시로 향했다.
* * *
“아 쫌! 내가 먼저 찜했다고!”
“아니야!”
나빛은 황금빛 파리채로 태화를 찰싹찰싹 때리며 울먹였다.
“혁구가 먼저 찾았단 말이야! 넌 다른 몬스터 쫓아!”
“아니 X발, 내가 20분 전부터 쫓고 있었다고! 니는 왜 날아가는 사람을 때려서 떨어뜨리는데!”
“몬스터인 줄 알았어…….”
“개년아!”
태화가 눈에서 불꽃을 내뿜었다. 성력으로 만든 밧줄에 꼬리와 팔을 꽁꽁 묶인 채.
“이 쓰레기 내숭쟁이 새끼야! 쌤한테 다 꼰지른다?! 니 이렇게 다른 사람 방해하는 거 쌤한테 말할 거라고!”
그 말에 나빛의 손에 들린 파리채가 삽으로 변했다.
“……안 돼.”
“안 되고 자시고 이것부터 풀…… 어?”
태화는 나빛을 한 대 걷어차려다가 움찔했다. 회색 눈동자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서.
나빛이 삽을 든 채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선생님은 모르셔야 돼.”
“야…….”
“선생님도 모르시기를 바랄 거야.”
“……야!”
“비밀은 묻어버려야 해…….”
황금빛 삽이 순식간에 구덩이를 만들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밧줄이 꼬리를 눌러서 마법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태화는 구덩이와 나빛을 번갈아 쳐다보며 진땀을 흘렸다.
“야, 하나빛…… 악!”
“들어가~.”
나빛은 태화를 구덩이에 처넣고 목까지 파묻어 버리고는 방긋 웃으며 박수를 쳤다.
“잘있어~. 나 갈게~.”
“야!”
태화는 얼굴만 튀어나온 채로 나빛을 올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그런 태화의 머리 위를 혁구가 포르르 날아다녔다.
“밧줄 안 풀어?! 야, 하나빛!”
“좀 있다가 풀어줄게~.”
“니 내 몬스터 잡기만 해봐. 쌤한테 다 이를 거야. 꼰지른다? 꼰지른다고, 개새꺄!”
“혁구랑 놀고 있어~.”
태화의 주변에 방어막이 겹겹이 쌓였다.
방어막 속에서 분노에 찬 외침이 들리는 듯도 했지만, 나빛은 가볍게 무시하고 몬스터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으헤헤…….”
늘 그렇듯, 순진한 웃음을 흘리며.
* * *
그보다 더 깊은 숲속.
세희는 나무 사이를 정처 없이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초점 없는 흐릿한 눈으로, 목적 없는 멍한 표정으로.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왜?’
스스로에게 물어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직면한 문제는 없다. 검을 배우는 것, 무공을 배우는 것, 전부 원했던 일이고 추호도 번거롭지 않았다. 친구들이랑 싸운 것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 굶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혼자 있을 때면, 자꾸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지친 걸까.’
세희는 그냥 걸었다.
걷다 보니 몬스터의 흔적이 보였다. 사람 발보다 더 넓은 모양으로 으깨진 나무뿌리. 하지만 쫓을 맘이 들지 않았다.
‘귀찮아…….’
오늘은 잘해 봤자 칭찬도 듣지 못할 테다. 상호가 오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더 발이 무거웠다.
빨리 돌아가서 상호를 보고 싶었다. 상호의 곁에 있으면 마음속 헛헛함이 조금은 채워지는 것 같아서.
그때 주변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응?’
세희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무언가 딱딱하고 가벼운 것끼리 부딪혀 나는 소리 같았다. 캐스터네츠 소리 같기도 하고.
‘뭐지?’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명확히 들리는데도 어디서 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늘인지, 나무 뒤인지. 나뭇잎 사이인지.
세희의 손이 천천히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주변은 확실한데…….’
몬스터일까.
기감에 집중해도 느껴지질 않는다. 세희는 혹시나 싶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야, 이태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진짜 벤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세희는 뽑은 검에 강기를 둘러 주변의 나무를 향해 휘둘렀다.
촤아악
굵직한 나무들이 신문지처럼 베여나갔다.
하늘색 강기는 나무를 더 베어나가다가 흐릿하게 사라졌다. 세희는 쓰러지는 나무들 사이로 움직이는 것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흩날리는 나뭇잎뿐.
‘잘못 들었나?’
이제는 들리지도 않는다. 세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검을 집어넣었다.
애꿎은 나무만 베어버렸다.
‘나무야, 미안해…….’
자신의 무차별적인 환경 파괴를 반성하며, 세희는 다시 정처 없는 걸음을 옮겼다.
* * *
[이상 없지요?]
이어셋에서 해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민정은 저 멀리 숲의 가장자리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실습 구역의 하늘 위.
그녀의 몸에서는 아주 얇은 실이 수없이 뻗어 나와 숲을 향해 늘어뜨려져 있었다. 실들은 나무 주변에서 다시 여럿으로 갈라져 마치 반투명한 안개와도 같이 숲을 뒤덮은 채였다.
“아직은요.”
[악마가 오늘도 올까요?]
“잘 모르겠어요.”
올 거라 확신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안 온다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상호와 관련된 놈이지만…… 저희가 주말에 왔을 때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럼 아이들을 노리는 걸까요?]
“그렇다기엔 다른 학교 실습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 같고…….”
민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굳이 끼워맞추자면, 예현여고의 어떤 학생을 노리고 있다고 하면 설명이 되겠죠. 그러면 상호네 반 아이일 확률이 클 테고……. 하지만 너무 억지인 것 같아요.”
[왜 억지죠?]
“대체 어떻게 학생을 구분할 수 있는지…….”
누가 어느 반의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사람의 언어를 알아듣긴 하는지도 의문이고.
하지만 해련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강 선생이 그러던데. 악마를 상대로는 안심할 수 없다고. 혹시 정말로 악마가 우리 학생을 노리는 건 아닐까요?]
“가능성이 0은 아니겠지만…… 글쎄요. 저는 너무 앞서 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그런가요. 그래도 올 거라고 가정하고 감시해 주세요…… 음?]
민정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교장선생님?”
[아, 잠시만……. 아르게스 쪽에서 뭔가 오는 것 같은데.]
해련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가 이렇게 긴장하고 있다면 필시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민정은 동쪽을 돌아보았다.
“뭐가 오고 있다고요? ……아.”
그 말대로였다.
뭔가가 오고 있었다. 이 먼 거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또 수많은 무리가.
민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교장선생님.”
[응?]
“실습 중지시키고 부대원들 모아 주세요.”
민정은 말을 마치자마자 허공에서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 * *
소녀가 지나간 자리.
나무들이 쓰러진 곳의 한쪽 구석에서 흙이 들썩거렸다.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처럼.
죽은 자가 무덤을 헤치고 나오려는 듯이.
푹……
그 자리에서 하얀 칼날이 튀어나왔다.
하나, 둘. 흙을 비산하며 튀어나온 두 칼날은 땅을 짚더니 칼날에 달린 두 팔과 이어진 몸통을 위로 끌어올렸다.
달그락……
개 해골이 땅 위로 드러났다.
움푹 들어간 눈구멍. 그 속의 그늘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번득였다. 악마는 개 해골을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비웃듯이 턱을 달그락거리며 어딘가로 향했다.
세희가 걸어간 방향이었다.
307. 추적
“이 미친년을 진짜…….”
태화는 이를 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어막은 나빛이 떠나고 몇 분 후에 풀렸다. 꼬리와 팔을 묶은 밧줄도. 덕분에 이제서야 순간이동으로 땅에 올라선 참이었다.
그런데 주변이 이상하게 고요했다.
“뭐여.”
숲속이 원래 조용하긴 했지만, 지금은 사람의 기척도, 마나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모여들기라도 한 걸까.
‘명당이라도 있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얇고 가느다랗게.
그 바람이 익숙한 목소리를 싣고 왔다.
[학생들은 지금 당장 버스 있는 곳으로 모이세요.]
“넹?”
태화는 멀뚱히 눈을 끔뻑이며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바람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저 멀리 떠나가 버렸다.
무슨 일일까. 방금 목소리는 분명 담임과 썸을 타는 선생의 목소리였는데. 버스 타는 곳으로 모이라는 걸 보면 뭔가 사건이 터진 듯했다.
어쨌든 더 이상 귀찮게 싸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가보면 알겠지, 뭐.’
태화는 버스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다 모였어? 하나, 둘…….”
2학년 11명. 전부 왔다. 설미는 자신의 반 학생들이 전부 모인 것을 확인하고 버스를 가리켰다.
“타서 먼저 가.”
“선생님은요?”
“남아서 일해야지.”
교사가 아니라 헌터로서.
설미의 말에 아이들은 느릿하게 버스에 올랐다. 싸울 힘이 있는데 보태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라는 듯.
하지만 학생을 실습에 내보낼 수는 있어도, 실전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
“어서 가.”
설미는 그 말을 끝으로 버스 기사에게 출발하라는 신호를 했다.
아직 다른 반이 많이 남았다. 설미의 반은 정령들이 기억하고 있어서 금방 찾아 데려왔지만, 다른 반 아이들은 아직도 정령들이 돌아다니며 찾고 있었다. 그녀는 멀어지는 버스에 손을 흔들고 숲을 향해 돌아섰다.
그때 나무 위로 뿔 달린 소녀가 날아왔다. 그 소녀는 설미를 발견하고는 빨간 눈동자를 반짝였다.
“설미쌤!”
“아, 태화 왔구나.”
“뭐예요? 무슨 일 있어요?”
태화는 눈을 끔뻑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각 반의 담임들이 학생들을 세어 버스에 태우고 있었다.
“미진쌤이랑 민정쌤은요?”
“미진이는 너희 찾으러 갔고, 민정 언니는 몬스터랑……, 아, 잠시만…….”
바빠서 정신이 없다. 설미는 바람의 정령에게 보고를 받고 명령을 내린 후 태화에게 버스를 가리켰다.
“저기 옆에서 너희 반 아이들 좀 모아줄래? 선생님 지금 정신이 없어.”
“넵.”
태화는 고개를 끄덕이고 버스 옆에 멀뚱히 섰다. 꼬리를 느릿하게 흔들거리면서.
곧 숲에서 나디아, 그리고 이츠키가 뛰어나왔다. 경공이 느려 멀리까지 나가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이양? 무슨 일입니까?”
“몰라. 여기 모여 있으래.”
태화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아마 몬스터가 쳐들어왔다는 것 같은데.”
“선생님들은 어디 있습니까?”
“민정쌤은 모르겠고, 미진쌤은 너희 찾으러 갔다 했는데. 못 만났어?”
“아마 다른 애들 찾으러 갔나 봅니다.”
셋은 버스에 기대어 기다렸다.
네 번째는 멀리서부터 알아볼 수 있었다. 태화는 황금빛 날개가 달린 소녀가 숲 위로 날아오는 것을 보고 눈을 부라렸다.
“야, 하나빛!”
“앗, 미아안~.”
“씨빠빠년…….”
“그래서 무슨 일이야?”
나빛은 땅에 가볍게 착지해서 회색 눈을 깜작였다. 주변에서는 버스 몇 대가 서둘러 출발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다들 왜 이렇게 바빠?”
“습격인가 봅니다.”
“습격?”
“몬스터의.”
이츠키는 짧게 답하고 숲을 흘끗했다.
“하양은 오면서 미진 선생님 못 봤습니까?”
“응…….”
“다른 애들은?”
“못 봤어.”
아직 안 온 아이는 지윤, 은율, 그리고 세희. 특히 세희와 은율은 경공이 빨라서 멀리까지 나갔을 아이들이었다.
나빛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혁구를 쓰다듬었다.
“우리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냐?”
“안 될걸?”
태화는 설미를 돌아보았다. 설미는 숲 가까이에서 바람의 정령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허락 안 해줄 것 같은데. 우리가 가 봤자 시간만 더 오래 걸릴걸.”
“그러면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야 돼……?”
나빛의 눈이 결연한 빛을 띠었다.
“선생님이라면 찾으러 가셨을 거야.”
“뭐? 뭔 소리야?”
“우리 선생님은 절대 이렇게 가만히 있지 않으셨을 거라구.”
“니가 쌤이냐?”
태화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빛은 진심인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우리 나이였을 때도 그랬을 거야!”
“이 새끼 또 시동걸렸네. 야, 이츠키. 니가 좀 말려봐!”
“난 모르겠습니다.”
이츠키는 한숨을 쉬고 버스에서 등을 뗐다.
“갈 거면 다섯이 함께 가는 게 좋겠습니다. 찾는 건 내가 하면 되니까.”
“다섯? 너 숫자 못 세냐?”
“다섯입니다.”
“뭐?”
태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이츠키가 숲 쪽을 턱짓했다. 숲에서는 이제 막 도착한 은율이 도로로 달려 나오고 있었다.
* * *
“이야…….”
전혀 감탄하지 않은 목소리.
해련은 저 멀리 다가오는 몬스터들의 무리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건 오랜만이네. 안 그래?”
“그렇습니다.”
온몸이 흉터투성이인 중년의 사내가 대답했다.
창공에 서 있는 이는 둘. 나머지 수호부대원과 교사들은 숲을 돌아다니며 학생을 피신시키고 있었다.
해련과 사내의 시선이 몬스터들, 특히 가장 커 보이는 놈을 향했다.
“저 정도면 협회에서도 확인했겠지요.”
“그렇겠지.”
눈대중으로도 체고가 100미터는 되어 보였다. 코브라처럼 꼿꼿이 선 몸에 지네처럼 수많은 다리. 길쭉한 몸통 옆에는 건물만한 팔이 여덟 개 붙어 있었다.
체장으로 따지면 300미터 이상. 해련이 봐왔던 놈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크기였다.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의도가 뭘까요?”
모든 공격에는 의도가 있기 마련.
괴물의 왕이 돌아온 지금, 이 공격은 몬스터들의 일탈이 아닌 왕명. 분명히 어떤 뜻을 담고 있을 텐데.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해련 또한 그런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저게 끝이라면 딱히 큰 위협은 아닌데 말이야. 그렇지?”
“그렇습니다.”
“뭔가 더 오는 걸까?”
“그럴 거면 한 번에 몰아치지 않았을까요?”
그 말도 맞다. 타격을 입히는 게 목적이었다면 첫 공격에 모든 걸 쏟아부었을 텐데.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목적이 뭘까?”
“시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요? 왜 하필 오늘인지…… 짚이는 것 있으십니까?”
“……있지.”
평소와 다른 것은 하나뿐. 해련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강 선생이 못 온 거.”
“저승부대 꼬마 말입니까?”
항상 인상을 쓰고 안대를 차고 다니던 소년. 사내는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기억을 떠올렸다.
“고놈이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 될 줄은…… 그런데 왜 못 왔답니까?”
“저주 때문에.”
“저주에 걸린 걸 알고 온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그걸 알고 온 게 맞다 해도, 여전히 이따위 규모의 공격을 감행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학생들에게는 위험하더라도 헌터들에겐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인데.
왜 힘을 더 모아놓지 않고 오늘 공격한 걸까.
고민에 빠진 해련에게 사내가 물었다.
“그 여자애는 어디 있습니까?”
“하늘에.”
민정은 훨씬 높은 하늘에서 마법을 준비 중이었다.
“대피가 끝나면 폭격을 시작할 거야.”
해련은 그렇게 대답하고 이어셋의 버튼을 눌렀다.
“학생들은?”
[아직 대피 중이에요.]
“얼마나 남았어요?”
[대부분 다 출발했는데…….]
보고를 하는 교사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흐려졌다.
[두 반이 아직 안 모였어요.]
대피를 시작한 지 시간이 꽤 됐다. 더 시간이 지나면 실습 구역에 몬스터들이 도착할 텐데.
시종일관 태연하던 해련의 얼굴에 처음으로 초조함이 스쳐지나갔다.
“어느 반인데요?”
[그게…….]
이어진 대답을 들은 해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