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아~.”
태화는 입술을 삐죽이며 다리를 꼬았다.
“내일 또 실습이네.”
“실습 싫어?”
미래가 의아한 표정으로 태화를 돌아보았다.
“마법 마음껏 써볼 수 있잖아.”
“마법은 운동장에서도 쓸 수 있어.”
“몬스터들한테 써서 어떻게 되는지 분석하고 데이터 쌓고…… 재밌지 않아?”
“내가 너냐?”
태화의 입에서 한숨이 쏟아졌다.
“귀찮고 힘들고 피곤해. 보람도 없어. 등수도 안 나오고, 쌤이 뭘 해주는 것도 아니고…… 혼자 숲에서 싸돌아다니면서 죽어라 몬스터만 찾는다고. 아, 말하다 보니 빡치네. 걍 내일 쨀까?”
“어떻게 째?”
“생리로.”
그 말에 지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니는 제일 편하게 잡으믄서 뭘 그래 귀찮다카노.”
“뭐? 니가 뭘 알아? 내가 편한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고!”
“쓩~ 날아가가 펑~ 하면 하나 땡 아이가. 니가 그래 사기라 카는 무예가덜은 발로 뛰고 손으로 패고…… 니 몬스터 얼굴은 본 적 있나.”
“그걸 왜 봐? 봐서 뭐해. 잘생기지도 않은 거.”
“……쯧.”
지윤은 혀를 차고는 고개를 돌리며 팔짱을 끼었다. 그 모습을 본 태화는 미래를 바라보며 쟤 왜 저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어쨌든! 난 내일 쨀거야. X뺑이는 니들이나 쳐.”
“선생님이 잘도 빼주시겠다.”
세희가 중얼거렸다.
“너 꾀병 부리는 걸 몰라보진 않으실걸.”
“헹. 진짜로 아프면 되지. 근데 너…….”
자리에 앉아있는 세희를 향해 태화가 몸을 기울였다.
“오늘은 괜찮나 보다?”
“……몰라.”
“너 왜 요즘 말이 없어? 그날인가 했더니 몇 주째 그러드라. 뭔 일 있냐?”
“아니.”
“흠…….”
태화는 세희의 눈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별안간 누군가가 태화의 뒤통수를 툭 밀었다.
태화와 세희의 입술이 정통으로 부닥쳤다.
“웁……!”
“……푸웃!”
둘은 그 즉시 서로를 확 밀쳐내고 범인을 노려보았다. 범인을 확인한 세희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은율아?”
“미안.”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은율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태화 머리에 뭐가 붙어 있길래.”
“말로 해, 미친년아! 왜 사람 머리를 치는데!”
“너도 좋았잖아.”
“뭐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뭐 잘못 먹었……끄응, 미안해…….”
은율에게 꼬리를 잡힌 태화는 몸을 움츠리며 쪼그라들었다.
이츠키는 멀뚱히 친구들을 쳐다보다가 동생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단비.”
“멍?”
“우리 실습 가고 나면 동생들은 뭐 합니까?”
“우리?”
단비는 눈을 깜작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는 모여서 영화 봐. 강당에서.”
“영화?”
“응. 월요일에는 리벤저스 봤구, 금요일에는 스콜피온맨 봤어.”
그 말을 들은 태화가 눈을 부릅떴다.
“야, 너희는 선배들이 고생하는데 어디 편하게 영화를……! 끄응…….”
“왜 애들한테 화를 내.”
“이양은 고생 안 하잖습니까.”
은율과 이츠키는 태화의 꼬리를 잡고 마구 문질렀다. 그러자 태화의 팔다리가 배배 꼬이며 눈동자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응기힉! 미아내, 살려죠…….”
“세희도 와.”
“응.”
“에끄으윽……!”
그때 앞문이 열리고 상호와 나빛이 들어왔다.
“얘들아, 선생님 왔…….”
상호는 교실에 펼쳐진 광경을 마주하고 눈을 끔뻑였다. 세희와 은율, 이츠키가 한데 모여 태화의 꼬리를 잡고 있었다.
태화가 눈을 까뒤집으며 죽어가고 있었지만, 말려야 할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수업 준비하자, 얘들아.”
“쌔, 쌤! 나 살려…… 끄흐으……!”
“네가 뭔가 잘못했겠지, 뭐.”
“아니야아아악!”
“조용히 해, 임마. 갈아입고 나와, 얘들아.”
“네~.”
* * *
다음 날 아침.
상호는 일어나자마자 손을 내려다보며 좌절했다.
‘나빛아……!’
은호가 됐다.
나빛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닿았을까. 슬슬 시기가 됐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하필 이야기를 꺼낸 다음 날에 바로 이렇게 되다니.
심지어 오늘은 실습이 있는 날이었다.
‘빠져야 되나……? 아니, 빠질 수밖에 없는데…….’
저주는 마음대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혼자 실습에서 빠지거나.
아니면 모두 빠지거나.
‘애들을 보내기가…… 불안하네.’
그 개 해골 악마 때문에.
딱히 강한 놈은 아니지만, 나빛은 당할 뻔했고. 무엇보다 교사들의 감시망을 피해 실습 구역으로 들어왔던 것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으음……. 일단 빨리 교장선생님한테 가야겠다.’
그래야 대책을 세우든 실습을 취소하든 할 테니. 상호는 이불을 걷고 일어나 꼬마 옷을 넣어둔 옷장으로 걸어갔다.
* * *
“…….”
“…….”
두 남자는 서로를 마주하고 할 말을 잃었다.
교장실 문턱을 밟고 선 이는 상호. a.k.a 은호.
교장실 소파에 앉은 이는 혁.
혁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 차올랐다.
“혹시…….”
“…….”
“강 선생인가?”
“……네.”
용케도 눈을 보고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약간 더 이어지고, 현실을 받아들인 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원래의 무심한 눈빛을 지었다.
“그런 취미가 있었나?”
“굉장히 크게 오해하는 것 같은데……, 자의가 아닙니다.”
“다행이구만. 그런데 그 꼴로 실습을 갈 수 있나?”
“그래서 여기 온 겁니다.”
상호는 한숨을 쉬고 소파에 앉았다.
“교장선생님 오면 얘기하죠.”
“그러지.”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침묵에 숨이 막히려는 찰나, 때마침 교장실 문이 열리고 해련이 들어왔다.
“류 이사장. 버스 곧 도착한다고 문자 왔……, 어머, 강 선생?”
상호를 발견한 해련의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어려졌네?”
“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못 갈 것 같아요. ……아니, 뭐 하시는 거예요! 이사장님도 있는데!”
“에이, 뭐 어때~.”
해련은 상호를 번쩍 들어 끌어안고 소파에 풀썩 앉았다. 해련의 품에 안긴 상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혁은 그런 둘을 마주하면서도 얼굴빛 한 번 변하지 않았다.
‘아오, 쪽팔리게 애 취급을…….’
상호는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려 해련을 올려다보았다.
“실습 못 가게 됐어요.”
“괜찮아, 괜찮아. 교장실에서 까까나 먹고 있어요~.”
“……저번에 말씀드린 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어요?”
분명 지난 금요일 실습 전에 교사들에게 악마에 대해 조심하라고 전해 놨는데.
해련도 그 일을 떠올렸는지, 상호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우뚝 멈췄다.
“으음……. 큰 문제인가요? 저번에는 민정 양이 잡았잖아요.”
“악마에 관련된 일은 방심해선 안 돼요.”
아무리 세세하게 따져 대비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상호는 해련과 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실습을 내일로 미루는 게 어때요? 하루면 원래 몸으로 돌아오니까.”
“미루자고?”
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준비 다 해 놨는데. 그렇게 위험한 놈인가?”
“위험하죠.”
상호는 단언했다. 강하지는 않아도 위험한 놈이라는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절 믿으세요. 위험해요. 돈이 깨지든 시간이 깨지든 간에 취소해야 돼요. 이사장님도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거 아녜요.”
“그래?”
혁은 해련과 눈을 마주쳤다.
“전문가가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흠…….”
해련은 예상외로 고민을 하는 눈치였다.
악마가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오늘 실습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도 알 텐데.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상호는 멀뚱히 해련을 바라보았다.
곧 해련이 입을 열었다.
“아니야.”
“네?”
“오늘 실습, 그대로 하는 게 낫겠어요.”
상호의 눈이 툭 불거졌다.
“아니 위험하다니까요!”
“악마가 강 선생을 쫓아다니는 것 같다고 했죠?”
해련의 눈빛은 말끔했다.
“그러면 이번에 강 선생을 빼고 가면 그게 진짠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겠죠. 근데 위험하잖아요.”
“우리 부대원들한테 도와달라고 해 볼게요. 그리고 민정 양도 있으니까.”
해련은 다시 상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대원들이 못 온다고 하면 그땐 취소할게요. 그럼 안심이 될까요?”
“그…….”
상호는 고민에 빠졌다.
해련의 말대로, 악마를 끌어들이는 원인을 파악하고 싶긴 했다. 수호부대원들도 온다면 싸워서 못 이길 일은 없을 테고, 찾아내는 것도 민정이 지난 실습 때 성공했고.
긴 고민 끝에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게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래요.”
해련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럼 난 부대원들한테 연락해 볼게요. 이사장은 교무실에다가 준비하라고 전해 주세요.”
“이사장을 부려먹는 교장이라…….”
혁은 투덜거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이러면 해결은 됐는데, 상호의 마음속에서는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꼭 어떤 일이 벌어질 것처럼 가슴이 선뜩했다.
그래서 그도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곧 통화가 연결되었다.
[응, 상호야.]
“누나.”
상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오늘 실습 일정대로 하기로 했어.”
[괜찮겠어? 지금 어려져 있다면서.]
“응. 근데 교장선생님이 그 악마가 노리는 게 난지 아닌지 알아보자면서…… 나 없이 한번 가본다고 하시네. 대신에 수호부대원들이랑 같이 간대. 그래서 말인데…….”
[응.]
“우리 애들, 잘 지켜줘.”
[그럼.]
전화 너머에서 민정의 확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 마.]
“응…….”
상호는 살짝 웃었다.
“고마워, 누나.”
[지금 어디니? 애들하고 있어?]
“아니, 교장실. 이제 교실 갈 거야.”
[그래. 교실로 갈게. 출발하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
“응.”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상호는 해련의 무릎에서 일어나 문가로 걸어갔다.
“저는 들어가 볼게요.”
“응, 강 선생~. 쉬어~.”
“다녀오세요.”
그는 손을 흔드는 해련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교장실을 나왔다.
306. 성동격서
“다치지 말고…….”
상호는 아이들의 전투복을 매만지며 걱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이상한 몬스터 보이면 기회 봐서 도망쳐. 특히 개 해골처럼 생긴 녀석……. 그렇다고 무작정 도망치면 더 위험해지는 거 알지?”
“알아, 알아.”
태화가 상호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10분째 같은 소리만 하고 있잖아. 정신차려! 우리 반만 못 가고 있다고!”
“……그랬나?”
걱정이 지나친 걸까. 그래도 상호는 아이들의 소매를 놓지 못했다.
“다치지 말고…….”
“또또또! 또 시작!”
“걱정 마이소. 악만지 뭔지가 나타나믄 누나야가 때찌해 줄게예.”
“함부로 맞서지 말고…….”
“압니더, 압니더. 농담이지예.”
지윤이 상호의 볼을 집으며 씩 웃었다.
그때 교실 앞문이 열리고 민정이 들어왔다.
“준비 다 됐니?”
“네.”
“누나.”
상호는 민정의 손을 잡고 주물렀다.
“잘 갔다 와.”
“응.”
민정은 씩 웃고 상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말고 있어. 가자, 얘들아.”
“넵.”
아이들이 민정을 따라 교실을 나갔다. 상호는 문밖까지 따라 나와서 아이들을 배웅했다.
“태화 너 덤벙대다가 실수하지 말고…….”
“응~.”
“다들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네~.”
“세희…… 힘내.”
“네.”
세희는 씩 웃고는 아이들과 함께 중앙 계단 너머로 사라졌다.
“후우…….”
불안해 죽겠다.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것처럼.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아이들이 사라진 계단을 바라보다가.
‘괜찮겠지…….’
뒤통수를 긁적이며 반으로 돌아왔다.
반에는 1학년들이 멀뚱히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어미의 명령을 기다리는 아기 들짐승처럼. 이서와 가은만이 반항적인 태도로 다리를 건들거릴 뿐이었다.
‘강당에서 영화 본다고 했지…….’
담임부터 부담임까지 싹 다 차출되어 2학년 실습을 나갔으니, 남겨진 1학년과 3학년은 영화를 보거나 자습을 해야 했다.
그리고 상호는 지금 상태로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가 없었다.
“강당 가자, 얘들아.”
“멍. 선생님.”
“응?”
“저희 교실에서 놀면 안돼요?”
“……응?”
멍한 표정을 짓는 상호에게 단비가 꼬리를 흔들며 말했다.
“같이 놀아요. 저희랑.”
“영화 보여주잖아…….”
상호는 이서와 가은의 눈치를 살피며 손을 내저었다. 예상대로 둘은 한심하다는 듯이, 혹은 짜증 난다는 듯이 상호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그때 미래가 주머니에서 게임기를 꺼냈다.
“선생님 맨날 언니들하고만 놀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
“저희도 선생님이랑 놀래요.”
“영화 보고 싶지 않아……?”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애써 웃었다.
“오늘 리벤저스 라스트세트 보여준대……. 그거 완전 재밌대…….”
“저흰 다 봤어요.”
“그거 안 본 사람이 어딨어요. 볼 사람은 진작에 다 봤죠.”
“그럼 이렇게 해요.”
미래가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난 교실에서 선생님이랑 게임 할래. 같이 할 사람?”
“나. 멍.”
“나…….”
단비와 아리가 손을 들었다.
뒤늦게 하솔도 말없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들지 않은 것은 이서와 가은, 그리고 가은의 표정을 흘끔거리는 초란.
예상했던 바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넷은 선생님이랑 교실에 있고…… 셋은 영화 보러 가. 그러면 됐지?”
“네.”
“다녀오겠습니다…….”
초란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이서와 가은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갈라지는 게 맞는 걸까. 영화를 보든 교실에서 놀든 다함께 있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상호는 많은 생각을 하며 단비의 손에 이끌려 아리의 무릎에 앉혀졌다.
“선생님 무슨 게임 좋아해요?”
“나는 그냥 아무거나 상관없어…….”
“그럼 공포게임 해요!”
“그래,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