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멍…….”
이서의 품에서 단비가 딸꾹질을 했다.
운동장의 반대편. 상호와 세희가 수업을 하던 곳. 그곳을 중심으로 운동장의 반을 훌쩍 넘는 크레이터가 생겨 있었다.
“머엉…….”
대련 중이던 단비와 이서도. 수업 중이던 미진도. 말문이 막힌 채로 멍하니 크레이터 안을 내려다보았다.
나빛이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괜찮……으실까?”
“뭐가 터진 거야?”
“몰라…….”
하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때 폭심지에서 두 인영이 꿈틀거렸다. 흙먼지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한데 뒤엉켜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앗! 살았다!”
“선생님! ……어?”
환해진 것도 잠시, 아이들의 얼굴은 곧 의아함으로 가득 찼다.
크레이터 중앙. 흙이 방사형으로 퍼져 나간 곳.
옷이 걸레짝이 된 상호가, 마찬가지로 옷이 걸레짝이 된 해련의 위에 쓰러져 있었다.
“아오…….”
상호는 고개를 들며 툴툴거렸다.
“왜 그렇게 진심으로 이기시려는 거예요…….”
“딱히 진심은 아니었는걸.”
“자기도 쓰러질 만큼 힘 빡 줬으면서…… 응?”
그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자신과 해련의 상태를 보고 당황했다. 폭발을 직격당한 상의 앞쪽이 다 터져 있어서.
해련이 그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일어나면 안 되겠는데?”
“호신강기로 가리든가 하세요. ……아니! 일어나면 닿잖아요!”
“엄살이 심하네~, 씻겨도 봤으면서.”
“이거나 덮어요. 에휴…….”
상호의 찢어진 상의가 해련의 위에 덮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운동장이 완전히 뒤집어져 있었다. 상호는 바지를 툭툭 털다가 크레이터 바깥의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 입맛을 다시는 아이들.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아이들.
“……얘들아, 괜찮아? 다친 데 없어?”
“네.”
“다행이네…….”
“근데 씻겨도 봤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착각하신 거야.”
“쌤.”
“응.”
“닿았어?”
“……시끄러.”
그는 검을 집어넣고 한숨을 쉬었다.
“수업 계속하자, 얘들아…….”
* * *
다사다난한 수업이 끝나고. 종례 시간.
상호는 교탁에 손을 올리고 아이들과 교장을 바라보았다.
“자, 여러분~. 오늘은 전학을 가는 학생이 있어요~. 해련 학생…….”
“저 내일까지 휴갑니다, 선생님.”
“……줄게요. 줄게요. 소원권 줄게요. 이제 제발 가요!”
“에엥~. 더 놀고 싶은데에~.”
해련은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며 교실 앞으로 나와 아이들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1년 동안 고마웠어~.”
“하루잖아요.”
상호가 핀잔을 날렸지만 해련은 가볍게 씹고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찍었다.
“보고 싶을 거야…….”
“교장실 가면 보겠죠.”
상호는 혀를 차고 안주머니에서 소원권을 꺼냈다.
“이거 받고 빨리 가세요.”
“앗, 소원권이다. 감사합니다~. 안녕~.”
소원권을 받은 해련은 깡총깡총 뛰어 교실 밖으로 나갔다.
상호는 하솔이 해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해탈한 듯 초연하게 웃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가 행복하면 된다 이건가…….’
어쨌든 해련은 보냈고.
이제 종례를 할 차례였지만, 상호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오늘따라 수업을 마치기가 싫어서.
퇴근하기 싫어서.
숙소로 돌아가기 싫어서. 그의 입에서 침음이 길게 새어 나왔다.
‘버텨야 돼…….’
방에는 고양이가 있다.
사람만큼 큰 고양이. 혜소 때문에 오랫동안 굶은 고양이. 아마도 상호가 퇴근하기만을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잡아먹힌다……!’
상호의 등에 진땀이 줄줄 흘렀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했다. 종례로, 교무실 업무로, 저녁으로, 그리고 나머지 수업으로.
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씩 웃었다.
“으흠……. 얘들아.”
“네.”
“오늘따라 교실이 더러워 보이지 않니?”
“네?”
아이들이 눈을 끔뻑였다.
“그래요?”
“저흰 잘 모르겠어요…….”
“아니야. 잘 봐봐. 너희 분장한다고 분도 다 떨어지고……. 거의 반년 동안 청소를 안 했잖아.”
“여름방학에 아주머니들이 했잖아요…….”
“그래도 청소는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거야.”
다 핑계다. 조악한 핑계. 하지만 학교 선생이 청소를 시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상호는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말을 이었다.
“그때그때 해 줘야 때가 안 쌓이고…… 아주머니들이 더 편하게 청소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오늘 한 번 하자.”
“네에…….”
아이들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시무룩한 목소리에 가슴 한켠이 아려왔지만, 죄책감보다 두려운 것이 방에 도사리고 있었다. 상호는 살짝 웃으며 슬금슬금 문가로 걸어갔다.
“다 끝나면 불러.”
“어, 금방 끝나는데.”
미래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어 들어 올렸다.
“문틀싹싹! 틈새박박! 바닥말끔 청소로봇…….”
펑
“……터졌어!”
“청소는 손으로 하는 거야.”
상호는 헛기침을 하고 내공을 거뒀다.
“선생님 교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테니까, 끝나면 불러. 알겠지?”
“네에…….”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청소도구함으로 걸어갔다.
* * *
“미진 씨!”
교무실로 헐레벌떡 들어온 상호가 자리로 달려왔다. 미진은 키보드에 손을 올린 채로 상호를 쳐다보았다.
“왜요?”
“일 내가 할게요. 오늘은 일찍 퇴근해요.”
“다했는데요?”
“네?”
상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그래요?”
“네. 다 끝냈는데. 실습 관련한 업무도 다 끝내 놨고.”
“그러면…… 뭐 남은 일 없어요?”
“없는데요.”
미진은 수상쩍다는 듯한 눈빛을 지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평소에는 짬만 때리고 가시더니.”
“아니, 그냥…… 맨날 시키기만 하니까 미안해서 그러죠.”
“참나……. 괜히 잘 보이려는 척하지 마요. 징그러우니까.”
“……아니거든요.”
상호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일 끝났으면 얼른 퇴근해요.”
“네.”
미진은 짤막하게 답하고 짐을 챙겨 교무실을 나갔다. 상호는 미진이 일어난 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일단 저녁식사까지 여기서 버티고……. 그다음엔 세희랑 나머지 수업으로 밤까지 버틸 수 있을 텐데…….’
그다음은 어떻게 버틸지 계획이 서지 않았다.
책상에 이마를 박고 필사적으로 핑곗거리를 찾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등을 톡톡 두드렸다.
“선생님.”
“응?”
고개를 들어 보니 은율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청소 다 했어요.”
“……벌써?”
“미래가 레이저로 청소했어요.”
과학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금 끝내면 저녁식사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상호는 시간을 벌기 위해 양심을 팔기로 했다.
“가서 청소 잘 안 돼 있으면 은율이 네가 혼나는 거야. 괜찮겠어?”
“네.”
은율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감 강한 은율이니만큼 이미 청소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을 확실히 확인하고 왔을 터였다. 상호는 그래도 한 번 더 물었다.
“정말 잘 돼 있어? 다시 확인 안 해도 되겠어?”
“네.”
“한 번 더 청소하고 오는 게 좋지 않을까?”
“저는 다 됐다고 생각해요.”
눈빛에 흔들림이 없다.
아무래도 좀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할 듯했다. 상호는 헛기침을 하고 은율과 눈을 마주쳤다.
“잘 안 돼 있으면 은율이 너만 남겨서 청소시킬 거야. 선생님이랑 둘이서.”
그 말에 은율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다시 확인하고 올게요.”
은율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람처럼 달려서 교무실을 나갔다.
눈에서 반짝였던 감정이 희열로 보였다면 착각일까. 상호는 방금 자신이 봤던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진땀을 흘렸다.
‘뭔가…… 기뻐했던 것 같은 느낌이…….’
어쨌든 다시 잘 청소시키고 돌아올 것이다. 그는 그렇게 믿고 모니터 속 애꿎은 폴더들을 열었다 닫으며 일하는 척을 했다.
그런데 복도에서 여럿이 우다다 달리는 소리가 났다.
‘허허, 어느 반 학생들이람…….’
혀를 차는데 교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아이들이 상호를 향해 소리치며 달려왔다.
“선생님!”
“강쌤!”
우리 반이구나. 상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빛이 그의 손을 잡아끌며 발을 동동 굴렀다.
“선생님, 선생님!”
“어, 어. 왜?”
“선생님!”
“진정하고 말해 봐…….”
“은율이가 미쳤어요!”
“응?”
반에서 제일 정상인 아이가 왜 미쳤다는 건가. 상호의 머리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왜?”
“그게요, 반에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쓰레기통을 발로 차더니…….”
“물백묵으로 벽에 막 낙서하고…….”
“우리한테는 하교하래.”
“그것도 웃으면서…….”
“쌤 은율이헌티 무신 말을 한 겁니꺼?”
“엄청 화난 것 같아요. 저희 무서워요……. 멍…….”
“…….”
상호는 덜덜 떠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하교해. 너희는…….”
“괜찮겠어, 쌤? 쌤 죽을지도 몰라!”
“괜찮아. 너희는 그냥 가. 쌤이 알아서 할게…….”
상호가 손을 내젓자 아이들이 머뭇거리며 조금씩 물러났다.
“죽지마, 쌤.”
“낼 살아서 보는 겁니데이.”
“은율 양 검은 제가 몰래 들고 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는 겁니다.”
“괜찮아. 안 죽어…….”
아무래도 은율은 그와 둘만 있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상호는 교무실을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시간은 때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괜히 애들 시키느니 내가 청소하는 게 낫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더라. 그는 컴퓨터를 일부러 켜 둔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소를 끝내고 또 돌아와 업무를 보는 척 만지작거리기 위해서.
반으로 향하는 걸음이 느릿하기 그지없었다.
304. 호구
문을 열어보니 쓰레기가 굴러다녔다.
난장판이 된 교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비질을 하는 은율. 상호는 그 광경을 보고 문턱을 밟은 채 굳어 버렸다.
“…….”
“아.”
문 여는 소리를 들었는지 은율이 그를 돌아보았다. 이미 해맑은 얼굴에 환한 미소가 해님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선생님.”
“……응.”
“청소가 잘 안 돼 있었어요.”
“……으응.”
“같이 해요.”
“응…….”
상호는 어색하게 웃고 빗자루를 잡았다.
허공섭물을 쓰면 쓱싹 끝나겠지만, 지금 그의 목적은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효은이 지쳐 잠에 들 때까지. 그래서 먼지 한 톨 한 톨 살펴가며 정성스레 쓸었다.
‘단비는 아직도 털이 많이 빠지는구나…….’
그렇게 수행을 하듯 청소를 하는데, 은율이 말을 걸었다.
“선생님.”
“응?”
“세희 있잖아요.”
“응.”
“요즘 멍을 자주 때려요.”
은율은 쓰레받기를 쓰레기통에 대고 툭툭 털었다.
“말을 걸어도 대답이 늦고, 태화가 장난쳐도 화를 안 내고……. 항상 멍한 눈으로 창밖만 봐요.”
“그래?”
상호도 느끼고 있었다. 이유도 짐작은 했다. 하지만 본인이 도움을 청하지 않으니 가만히 놔둘 수밖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구태여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태평하게 대답했다.
“세희는 알아서 잘 하니까. 가만히 지켜봐주면 충분하지 않을까?”
“되게 우울해 보여요.”
은율의 목소리도 유난하진 않았지만, 저변에는 걱정이 희미하게 묻어 있었다.
까만 눈동자가 바닥에 비친 노을의 색을 받아 빛났다.
“저는…… 받은 게 있어서 도와주고 싶어요. 저도 제 문제였는데 세희가 도와줬잖아요. 그러니까…… 세희가 알아서 한다 해도, 도와주고 싶어요.”
그 눈동자에 상호가 비쳤다.
“선생님은 혹시 아는 거 있으세요?”
“……으음.”
상호는 침음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글쎄. 아무래도…… 으음.”
세희가 원하는 건 친구가 아니라 가족. 은율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자리를 채울 순 없을 터였다.
그래서 그는 말을 흐리고 살짝 웃었다.
“잘 모르겠네. 선생님이 한번 물어볼게.”
“……네.”
은율이 마주 웃었다.
그때 상호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한 번 울렸다. 문자가 온 모양이었다.
상호는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컥!’
발신인 나효은.
-야
-언제 들어오냐?
눈동자가 흔들렸다.
못 읽은 척하고 싶은데, 이미 읽었다는 표시가 생겨 버렸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답장을 보냈다.
-나 오늘 출장가
-미진이한테 물어본다?
-농담ㅇㅇ
-X발아
바로 욕이 날아온다. 문자를 읽은 상호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은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
“……응.”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괜찮아…….”
상호는 서둘러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청소하자, 청소. 근데 은율아.”
“네.”
“혹시 저녁 같이 먹을래? 둘이서.”
그 말에 비질을 하던 은율의 손이 우뚝 멈췄다.
뭔가 말실수를 한 걸까. 둘이서는 좀 그런가. 그는 곧 손사래를 치며 말을 주워 담았다.
“아니다, 아니다. 은율이는 친구들이랑 먹고 싶겠지. 응…….”
“먹을래요.”
“응?”
“같이 먹어요.”
은율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