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9화 (309/501)

* * *

접시를 다 비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민정은 악마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겠다며 학회로 향했고, 그래서 태화가 상호의 차로 넘어왔다. 상호는 조수석에 앉은 태화를 흘끗하며 핸들을 돌렸다.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뽀뽀.”

“아니, 임마. 나온 김에 할 거 있냐고. 이츠키도 어디 들르고 싶은 데 있어?”

“있습니다.”

“어디?”

“파티용품점입니다.”

“……파티용품?”

뭐 축하할 일이라도 있나. 그는 눈을 끔뻑이며 핸드폰을 꺼냈다.

날짜는 10월 28일.

‘누구 생일이던가…….’

애들이 생일파티를 그렇게 크게 할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가서 뭘 사는지 보면 알 수 있을 테다. 상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차를 가게로 돌렸다.

* * *

‘……할로윈이었군.’

상호는 파티 용품점의 벽보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10월 31일 할로윈. 가게 유리창 속에는 눈알 모양 사탕이나 호박 모양 전등 따위가 진열되어 있었다.

“얘들아.”

“응?”

“너흰 놀 생각밖에 없니?”

“우리가 1등반인데 놀지도 못해?”

태화가 꼬리를 상호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지갑 줘. 사올게.”

“주식 아직도 안 팔았냐?”

“연말에는 주가가 잘 오른대!”

“마법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 봐라, 임마……. 같이 가. 가서 사 줄게.”

상호는 한숨을 쉬고 가게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았다. 주로 젊은 사람들. 연인들끼리, 친구들끼리. 하지만 선생과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가게를 둘러보던 상호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잡혔다.

“태화야.”

“웅?”

“요즘은 파티용품점에서 속옷도 파냐?”

“오옷, 쌤 저런 거 관심 있어?”

태화가 벽에 진열된 의상들을 가리켰다.

“어떤 게 취향이야? 마녀? 박쥐? 토끼? 고양이? 아니면…… 투명인간?!”

“넌 그대로 있어도 충분하잖아. 뿔도 꼬리도 있으면서.”

상호는 핀잔을 날리고 사탕 코너로 향했다.

좀 가져가서 애들한테 줘야겠다. 뭘 좋아할지 모르니 맛도 여러 개로. 그래서 사려고 봤더니 모양이 어째 무서운 것들밖에 없었다. 눈알 모양, 심장 모양.

동공이 반투명한 것이 더욱 사실적이었다.

‘안대 밑에 숨겼다가 주면…… 애들이 놀라려나?’

그는 그 생각을 하자마자 눈알 사탕을 한 움큼 잡았다.

눈알 모양 말고도 여럿을 집어서 돌아서니 태화와 이츠키가 뭔가를 잔뜩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쌤, 다 골랐어.”

“그래.”

“카드 줭.”

“얼만데.”

“몰랑.”

“너는 쌤이 금방망이야?”

“쌤 방망이는 내꺼긴 해.”

“뭔 소리야…….”

이젠 얼만지 알아보지도 않고 막 산다. 상호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너희가 노는 데 돈 쓰는 게 버릇이 될까봐 걱정돼…….”

“아빠는 뭘 그렇게 쓸데없는 걱정만 해~.”

“그래서 얼만데. 뭐 샀는데.”

“비밀~.”

태화는 물건들을 품으며 혀를 쏙 빼물었다.

“궁금하면 나중에 봐~.”

“그래. 알아서 해…….”

그는 결국 카드를 꺼내 들었다.

* * *

트렁크에 짐이 가득 찼다.

분명 올 때는 텅 비어 있었는데. 상호는 잘 내려가지 않는 트렁크를 억지로 눌러 닫고 운전석으로 향했다.

태화가 차창으로 얼굴을 쏙 내밀었다.

“저녁도 먹고 들어갈 거징?”

“점심도 사주고 이것도 사줬잖아. 그만 먹어.”

“구래~?”

보석처럼 빨간 눈이 깜빡깜빡 예쁜 척을 했다. 상호는 그 눈동자에 대고 입김을 훅 불었다.

“……크아아악!”

“예쁜 척해도 소용없어. 학교 들어갈 거야.”

“헹, 난 예쁜 척이 아니라 예쁜 거라구우우~.”

태화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언제 철이 들까. 아니 그런 기대는 이제 접었다. 상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운전석에 올랐다.

“벨트 매.”

“맸엉.”

곧 차가 출발했다.

한참 도로를 달리다가 이츠키를 흘끗하니 멍한 표정으로 창밖만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상호는 슬쩍 말을 붙였다.

“사카시타는 뭐 샀는지 말 안 해줄 거야?”

“비밀입니다.”

“사카시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겁니다.”

이츠키는 창밖 어딘가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꼭 뭔가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스쳐가는 경치가 아닌 무언가를. 상호는 그런 이츠키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한 번 기웃하고는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학교가 있는 도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302. 눈깔사탕

무언가 가벼운 것이 배에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자고 있던 상호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뭐여.’

웬 거대한 알사탕 하나가 보였다.

포장지를 양갈래로 꼬아놓은 알사탕. 그의 두 주먹을 합친 것보다 컸다. 이런 걸 먹으려면 오우거 정도는 되어야 할 듯했다.

상호는 손을 뻗어 포장지 양옆을 당겼다.

그러자 포장지가 풀어지는 게 아니라 쏙 하고 통째로 벗겨졌다.

“…….”

반질반질한 대머리가 빛나고 있었다.

“……뭐해?”

“언니들이 시켰어요.”

혜소는 상호의 배에 얼굴을 박은 채로 대답했다. 시체놀이를 하듯 일자로 가만히 누워서.

상호는 눈을 끔뻑이다가 혜소의 머리를 문질렀다.

‘31일인가.’

어릴 때는 있었다. 굳이 할로윈에 뭘 해보려는 아이들이. 제일 인기 있는 아이템이 절규 가면이었던가.

허나 나이 먹고 나서는 굳이 챙길 이유를 찾지 못해 아무것도 안 했는데.

‘역시 놀 생각밖에 없구나.’

실습 때문에 놀고 싶을 만도 하지만. 너무 놀다가는 연말평가를 조지게 될 것이다. 상호는 혜소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 옆으로 구르게 했다.

옆에서는 효은이 곤히 자고 있었다.

‘깨우면 뒈지겠지?’

그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세수를 하고 양복을 꺼내 입는데, 옷장 깊숙한 곳에 웬 종이가방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뭐지?’

잘 보니 안쪽에 검은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상호는 고개를 기웃하며 그 무언가를 꺼내 보았다.

까만 속옷.

속옷뿐만이 아니라 고양이 귀 머리띠에 고양이 꼬리까지. 전투에 쓸 무기들을 확인하자 상호의 눈동자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혜소를 불렀다.

“혜소야?”

“네?”

“혹시 오늘…… 어디서 자고 오기로 했어?”

“네. 큰고모 방이요.”

“…….”

들어올 때 조심해야겠다. 상호는 소매로 이마의 진땀을 닦고 넥타이를 묶었다.

뒤에서 혜소의 목소리가 들렸다.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고 가세요.”

“으응.”

그는 구두를 신고 손을 흔들었다.

“다녀올게.”

* * *

역시나 다른 반들은 조용했다. 복도를 걸으며 주변을 둘러봐도 할로윈을 기념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상호는 주머니에 든 사탕을 만지작거렸다.

‘우리 반은 어떨지…… 응?’

그의 발이 우뚝 멈췄다.

뭔가가 있다. 교실에서 무언가 불손한 기운이 풀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학생 수준이 아닌데…….’

상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교실 문 앞에 바짝 붙어 섰다.

어차피 열게 되어 있다. 도망칠 것도 아니고, 수업은 해야 하니. 그는 문을 조심스럽게, 틈새로 들여다볼 수 있게끔 조금만 열었다.

‘…….’

분장을 한 아이들.

해골 가면이나 귀신 화장. 머리를 풀어헤치거나 가발을 쓰기도 하고. 시꺼먼 눈화장을 하거나 시뻘건 립스틱을 칠하기도 했다. 그렇듯 얼굴엔 온갖 요란한 분장을 했지만.

정작 몸은 다소곳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이유를 찾던 상호는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강 선생님~.”

귀신 분장을 한 아이들 사이에 딱 한 명. 평범하게 교복을 입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아무런 분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 어떤 아이들보다 기이한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에이, 학생한테 존댓말 안한다던데~.”

“합니다.”

“그래요~?”

해련이 씩 웃었다.

“강 선생님이 그렇게 예의바른 선생님인 줄은 몰랐네~.”

“네에……. 그런데 해련 학생님은 어쩐 일로?”

“출근하다 보니까~ 강 선생님 반에서 뭔가를 하는 것 같길래~.”

“사탕 드릴 테니까 가세요.”

상호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다.

사탕을 받아든 해련은 아이처럼 사탕을 할짝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원권은요?”

“발급 기한이 만료됐어요.”

“내놔요.”

“바로 부하 취급하시네요…….”

해련의 옆에서는 하솔이 아픈 사람처럼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상호는 그런 조손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쉬고 교탁으로 걸어갔다.

“수업할 거니까 돌아가주세요.”

“휴가 냈어요.”

“……휴가를 왜 여기로 오는데요!”

“그냥~. 여기가 재밌게 노는 것 같아서~. 근데 귀신 분장은 왜 한 거야?”

이 할머니는 젊은이들 노는 날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태화가 아무런 장난도 못 치고 있다는 것. 보나마나 아침부터 장난을 치려 했을 테지만, 지금은 해련의 기에 눌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수업에 도움은 되겠다. 상호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교탁 밑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알아서 하세요. 수업을 듣든 말든…….”

“수업 잘 들으면 소원권 준다면서요?”

“예, 예. 잘 들으면 드리죠. 그리고…… 얘들아. 분장은 지우고 와라.”

“네에…….”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물티슈를 꺼냈다.

* * *

“2학년들은 실습 나가서 경험해봤겠지만…….”

상호는 물백묵을 빙글빙글 돌렸다.

“몬스터들은 지능이 낮을수록 전투보다는 생존이라는 목적성이 강해져서…… 끝장을 보려고 하지 않고, 싸우다가 약간만 귀찮아 보여도 물러나는 일이 다반사……예요.”

“그렇군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몬스터들을 대량으로 사냥할 때는……일부러 약한 척을 하면서 도망칠 수 없는 지역으로 유인하는 작전이 필요합니다.”

“아하!”

“……저기, 해련 학생.”

“네!”

해련이 빙긋 웃었다.

알 만한 양반이 처음 듣는 척을 한다. 상호는 한숨을 쉬고 물었다.

“본인이 겪어 본 사례를 한번 말해볼까요?”

“네! 저와 수호부대원들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던 종마곡 전투에서…… 아차.”

해련은 말하다 말고 손끝으로 입을 막았다.

“저는 학생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종마곡 전투에서 수호부대가 이 작전으로 몬스터 천여 마리를 몰살시켰죠. 계곡의 유일한 탈출구는 저승부대에서 파견된 인원 두 명이 막고 있었고…….”

그중 한 명의 딸은 여기서 함께 수업을 듣는 중이었지만, 상호는 굳이 그것까지 말해주지는 않았다.

“이처럼 실전에서는 상대의 특성과 목적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작전을 짜야 해요.”

“네!”

나빛이 눈을 반짝였다.

나빛은 오늘따라 수업에 열정적이었다. 아무래도 존댓말을 하는 상호가 신선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상호는 어색하게 웃어주고 말을 이었다.

“수요일에 또 실습이 있죠?”

“네!”

“그때는 조를 짜서 조금 더 강한 몬스터를 상대해볼 거예요. 오늘 배운 이 내용을 잘 기억해서 활용하도록 하고…….”

“멍, 선생님.”

단비가 손을 들었다.

“저희는 실습 언제 해요?”

“너희…… 아니, 여러분도 곧 하게 될 거예요.”

상호는 아이들을 쓱 둘러보았다.

“궁금한 거 있으면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언니들한테도 물어보고. 준비 잘 해서 실습할 수 있도록 하세요.”

“근데 쌤.”

태화가 턱을 괸 채로 눈을 마주쳐 왔다.

“목소리 완전 달달해. 앞으로도 존댓말 쓰면 안 돼?”

“안돼요.”

“외않되?”

“……안돼요~.”

“그럼 목소리 대신 사탕 줘.”

왜 그렇게 되는 거냐. 상호는 주머니 속 사탕을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수업 시간에 먹지 마. 이따가 한 명씩 달라고 해.”

“아~. 당 떨어졌어~. 머리 안 돌아가~.”

“그건 그냥 배고픈 거야. 몇 살인데 당이 떨어져 인마.”

“그럼 존댓말해줘!”

“……몇 살인데 당이 떨어져요.”

존댓말로 어르는 것이 무슨 유치원 교사 같다. 사탕 달라고 떼쓰는 것도 유치원생과 다름이 없고.

그는 돌아서서 물백묵을 들어 올렸다.

“앞서 말한 작전은 지능이 낮은 몬스터를 상대로는 효과가 있지만, 지능이 높은 몬스터를 상대로는 효과가 좋지 않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작전을 짜느냐…….”

* * *

쉬는 시간의 교무실.

상호는 등받이가 꺾일 정도로 의자에 푹 늘어졌다.

“아이고…….”

“피곤해?”

설미가 옆자리에서 눈을 깜작였다.

몸이 피곤한 것은 아니지만 정신이 피곤하다. 상호는 소매로 눈을 가리며 한숨을 토했다.

“교장선생님 수발들기가…… 좀 힘드네요.”

“교장선생님? 오늘 휴가 내셨잖아. 실습날 오신다던데.”

“지금 제 교실에 있어요.”

“……응?”

설미는 그 말을 듣고는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가, 곧 씩 웃어 보였다.

“힘내.”

“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교무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고개를 슬쩍 들이밀었다.

‘응?’

이서였다.

이서가 교무실엔 웬일일까. 상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문가를 쳐다보다가 이서와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다.

이서는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귀찮음이 풀풀 묻어나는 걸음으로 상호에게 걸어왔다.

“선생님.”

“어, 어…… 이서야. 무슨 일이야?”

“사탕 주세요.”

“……사탕?”

사탕과는 제일 어울리지 않는 아이가 어쩐 일로 이러나. 상호는 직감적으로 누군가가 관련되었음을 알아차렸다.

“태화가 시켰니?”

“잘 아시네요.”

이서가 툴툴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안 먹는다고 했더니 받아서 자기 달래요.”

“직접 오라 그래. 뭐라고 하면 나한테 말하고.”

“일단 줘 보세요.”

사탕이 뭔지나 보려는 듯했다.

상호는 다리를 건들거리는 이서를 올려다보며 잠시 고민했다. 어제 계획했던 걸 정말로 해도 될까.

특히나 웃음 없는 이서라서 더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다른 애들한테 하기 전에 반응을 한번 볼까…….’

상호는 재빠르게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손바닥에 쥐었다. 속도가 빨라서 이서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터였다.

그리고 안대를 쓴 눈에 손을 가져갔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끄응…….”

그렇게 용을 쓰는 척하면서, 입으로 뽁 소리를 내어.

“짠!”

눈알 모양 사탕을 이서에게 내밀었다.

어떤 반응을 할까. 이서를 웃길 수 있을까. 나름 열심히 준비한 회심의 개그인데. 상호는 잔뜩 기대를 품은 채 이서를 바라보았다.

사탕을 본 이서는 고개를 한 번 기웃하더니 아주 익숙한 눈빛으로 상호를 내려다보았다.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

‘애쓴다, 븅신.’

어째 효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상호는 헛기침을 하고 사탕을 이서에게 쥐여주었다.

“가져가. 가져가서 먹어…….”

“선생님은 개그 하지 마세요.”

“응…….”

이서는 혀를 쯧 차고는 돌아섰다.

효과가 없구나. 역시 개그는 때려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상호는 눈물을 삼키며 주머니에 남은 눈알 사탕들을 만지작거렸다.

‘버릴까……?’

그런데 문가로 향하던 이서가 멈칫하는 게 보였다.

왜 저러나 의아해하던 상호는 문가를 보고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나빛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교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선생님~. 앗, 이서야!”

“으응…….”

“사탕 받으러 왔구나!”

“응…….”

“잠깐만 기다려~. 언니도 금방 받고 올게~.”

나빛은 도도도 달려서 상호의 앞에 끼이익 멈췄다. 회색 눈이 별을 뿌린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선생님!”

“……응.”

“사탕 주세요!”

“응…….”

상호는 사탕을 그냥 주려다가 멈칫했다.

어쩌면 이번에는 반응이 다를지도 모른다. 항상 잘 웃어주는 나빛이니까.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래…….’

그는 다시 빠르게 사탕을 꺼내고 안대에 손을 붙였다.

“끙…….”

그가 허리를 숙이고 앓는 소리를 내자마자 나빛이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을 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잠시만. 금방 줄게……. 악!”

그는 작게 비명을 지르며 눈알을 뽁 하고 빼내는 시늉을 했다. 나빛이 흠칫하며 상호의 손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자. 여기.”

천천히 펼쳐지는 손바닥에서 눈알 사탕이 모습을 드러냈다.

“짜안~.”

상호는 환하게 웃으며 사탕을 내밀었다.

나빛은 그 사탕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선생님.”

“응?”

사탕을 집어 냅다 내던졌다.

파삭……

“…….”

교무실 바닥에 부서진 사탕 조각. 상호의 정신도 파삭파삭하게 부서져 내렸다.

나빛은 처음 담배를 물었을 때처럼 서늘한 눈빛을 지었다.

“이상해요.”

“…….”

“하지마요.”

“……네에.”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빛이라면 재밌어할 줄 알았는데.

실패한 이유가 뭘까. 눈알이 너무 리얼하게 생겨서일까. 아니면 연기가 너무 리얼했을까. 어느 쪽이든 나빛에겐 전혀 재미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흥.”

나빛은 이서와 함께 교무실을 나갔다. 새침한 걸음으로 쌀쌀맞은 눈빛을 흘리며.

망연하게 남겨진 상호의 옆에서는 설미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상호는 애들 못 이기네.”

“…….”

“힘내.”

“…….”

그는 이번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303. 교장도 반장도

칼의 옆면이 어깨를 후려쳤다.

“……윽.”

공중제비를 돌던 세희는 황급히 몸을 틀어 상호의 검을 받아쳤다.

이미 어깨에 공격이 들어갔지만 상호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상대였다면 유효타가 들어가자마자 끝난 셈 치고 대련을 마쳤겠지만, 세희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콰앙

둘의 검이 부딪히자 충격파가 터져나갔다.

학생 수준을 완연히 벗어난 위력. 세희의 초강기는 이제 검과 전신을 뒤덮고 맹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집중해.”

상호는 엄한 목소리로 꾸짖으며 검을 휘둘렀다.

슉……

그의 검이 쏜살같이 날아가 세희의 명치를 꾹 눌렀다.

“……아.”

반쯤 넋을 놓은 채 전투를 하던 세희는 그 날카로운 감각을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나자 상호가 말을 이었다.

“어디 아파?”

“아니요.”

“요즘 좀 이상해. 저번에도 그러더니……, 실습도 그렇고……. 세희야.”

세희는 눈동자를 굴려 상호의 걱정 어린 눈빛을 피했다.

“네.”

“무슨 문제가 있으면 혼자 묻어두지 말고…… 곁에 있는 사람들한테 말해.”

상호는 검을 납도하고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혼자가 아니잖아. 그치?”

“……네.”

세희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상호의 손길을 가만히 느끼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제간이 참 보기 좋네요, 선생님.”

옆을 돌아보니 해련이 웃고 있었다.

전투복은 학생 전투복이지만 검은 본인의 고아한 검. 치수를 착각했는지 전투복이 터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채였다.

“이제 내가 교육받을 차례네요?”

“뭔 교육을 받아요. 가르치면 늘긴 하세요?”

상호는 이미 집어넣은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꺼낼 뜻이 없다는 듯이.

“애초에 우리끼리 싸우면 위험하다고요.”

“그럼 강기를 뭉툭하게 만들면 되죠.”

“굳이 애들 앞에서 싸워야겠어요?”

스탠드 쪽에서는 미진이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하고 있었다. 앉아 있는 아이들 중에서 한 명이 상호와 해련이 있는 방향을 유난히 흘끔거렸다.

상호는 하솔과 아이들을 가리켰다.

“누가 이기고 지는 걸 애들한테 보여줘야겠어요? 교육에 좋을 게 없잖아요.”

“그런가?”

해련이 고개를 기웃했다.

“그럼 밤에 싸울까요? 방에서?”

“……지금 싸우죠.”

상호는 한숨을 쉬고 검을 뽑았다.

그의 내공이 세희를 번쩍 들어 멀리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해련과 그의 검에서 강기가 불타올랐다.

해련은 비스듬히 서서 검을 양손으로 움켜잡고 가슴께로 올려 상호를 겨눴다.

“이기어검이나 강검은 쓰지 않는 걸로.”

“네?”

“검이 닿으면 지는 걸로 하죠.”

손의 검으로만 문답을 나누자는 뜻.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하세요.”

그 순간 해련의 발이 땅을 박찼다.

뭉툭해진 강기가 상호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불꽃처럼 일렁이는 금빛 강기. 검로가 정직하고 빨랐다.

‘쳐내긴 늦었고.’

상호는 목을 까딱여 검을 피했다. 아슬아슬하게, 필요한 만큼만 정확히.

그런 후 몸을 낮게 숙이고 해련의 발목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타악……

구두 바닥에 해련의 전투화 코가 박혔다.

발차기가 막혔다. 서둘러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데 어떤 감각이 상호의 발에서 느껴졌다.

타인의 내공이었다.

콰앙

“……윽.”

상호는 폭발의 압력을 밟고 뒤로 뛰었다.

해련의 전투화 앞이 살짝 터져 있었다. 내공을 모아서 터트린 것이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구두를 흘끗했다.

‘에이, 상처 났네…….’

아이들을 상대로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해련을 상대로는 그럴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없었다. 옷 정도는 버릴 각오를 해야 했다.

상호의 손가락에 내공이 모여들었다.

슈욱……

그러는 동안에도 해련의 검은 상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칼끝이 뱀의 대가리처럼 교묘하게 흔들렸다.

해련 또한 상호의 손에 맺힌 내공을 알아차렸는지, 검을 오른손으로만 휘두르며 왼손으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상호는 해련의 검을 세차게 후려쳤다.

카앙

상호의 검은 두 손, 해련의 검은 한 손. 힘에서 밀린 해련의 팔이 뒤로 크게 젖혀졌다.

빈틈.

상호는 검을 쥔 채로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펼쳤다.

피융

지탄이 빠르게 날아가 해련의 옆구리를 타격했다.

혈을 노렸지만 몸이 빨라 명중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내장과 가까운 곳이라 해련의 움직임이 순간 느려졌다.

상호는 그 두 번째 빈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웃……!”

해련이 다급히 왼손을 쫙 뻗었다.

콰아아아……

손바닥에서 쏟아진 기운이 상호의 검을 밀어냈다.

대련 때문에 강기를 뭉툭하게 만들어 둔 터라 그 흐름을 가르기가 여의치 않았다. 상호는 그 힘을 거스르지 않고 검을 뒤로 빼며 몸을 빙글 돌렸다.

그의 온몸에서 강기가 확 터져 나왔다.

푸화아악

시야를 가리는 검푸른 불꽃.

“윽……!”

해련은 기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저 불꽃 속 검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서. 하지만 아무리 기감이 뛰어나도 초강기에 파묻힌 검의 위치를 알아내기는 불가능했다. 상호의 위치 또한 마찬가지.

해련의 눈이 흔들렸다.

‘이런…….’

이런 식의 공격을 막으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해련은 검을 떨어뜨리고 양손을 모았다.

손 사이에 초강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쿠우우우……

대기를 울리는 낮은 진동.

살이 떨리고 뼈가 떨렸다. 상호는 검푸른 불꽃 속에서 해련의 기운을 느끼고 움찔했다. 운동장 하나를 날려버릴 만한 위력이라서.

‘아니 학교 부술 일 있나…….’

교장이 학교를 부술 셈인가. 그렇게 이기고 싶었나. 그는 기운이 더 모이기 전에, 싸움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검을 휘둘렀다.

푸확……

검푸른 불꽃 속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기운을 모으고 있는 해련을 향해.

해련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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