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3화 (303/501)

* * *

“이건…….”

이츠키는 눈을 감은 채로 손에 닿은 것을 만지작거렸다.

“뭡니까?”

“선글라스요.”

혜소가 당당하게 말했다.

둘이 서 있는 곳은 복도. 선물을 전하기 위해 상호가 따로 불러낸 것이었다. 상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둘을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눈이 안 부시게 해주는 안경이래요.”

“그건 압니…… 으음, 신기합니다. 혜소 돈으로 산 겁니까?”

“네. 얼른 써 보세요.”

“네.”

이츠키는 선글라스를 쓰고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러고는 혜소를 내려다보았다.

이츠키의 눈이 두어 번 깜빡였다.

“보입니다.”

“보여요?”

“네. 똑똑히.”

눈이 부시진 않은 모양이었다.

혜소는 처음으로 이츠키의 눈동자를 보게 되었다. 선글라스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제 저랑 놀 수 있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츠키는 선글라스를 벗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려다가, 혜소가 코앞에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뒤돌아서 선글라스를 벗었다.

“꽤 비싼 것 같은데. 고맙습니다.”

“네에.”

혜소는 살짝 웃고는 쑥스러운지 뺨을 붉히며 복도를 달려갔다.

“언니, 아저씨. 저 갈게요.”

“응. 그래.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가.”

“또 보는 겁니다.”

상호와 이츠키는 혜소에게 손을 흔들고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이들은 이츠키가 낀 선글라스를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츠키? 그거 뭐야?”

“혜소가 선물로 줬습니다.”

“빡빡이가?”

태화가 눈을 반짝였다. 관심이 생긴 듯이. 그 모습을 보자 익숙한 불안감이 상호를 덮쳤다.

‘쟤가 저러면 꼭 사고가 터지는데…….’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불안감인지는 모르겠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벌써부터 뭐라 할 순 없는 노릇이니.

그저 잠자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야, 이츠키. 그거 잠깐만 줘봐. 한번 써볼래.”

벌써부터 구체화되려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뻔했다. 상호는 눈을 부릅뜨며 태화를 을렀다.

“이태화. 너…… 남이 선물로 받은 거 함부로 다루지 마.”

그 말에 태화의 입술이 댓 발 튀어나왔다.

“왜 또 나한테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

“네가 제일 조심성이 없잖아. 야, 미래야. 우리 반에서 수학적으로 누가 제일 사고를 칠 확률이 높냐?”

“태화 언니요.”

“봐봐, 임마.”

“우씨, 억지야!”

태화가 발을 구르며 상호에게 탁구공만한 불덩이를 던졌다.

이제는 어른한테 대들기까지 한다. 상호는 불덩이를 쳐내고 쓰읍 소리를 냈다.

“얌마, 어디 어른 말하는데 공격을 해!”

“쌤이랑 나랑 몇 살 차인데! 그냥 오빠잖아! 오빠는 왜 나만 갖고 그래?! 내가 뭐 했어? 그냥 선글라스 한번 써보겠다는 것도 안돼?! 이게 뭐 별거야?!”

“그 별것도 아니라는 거 굳이 써봐야겠어? 사카시타가 받은 건데 소중하게 여겨주면 안 돼?”

“쌤은 나 안 소중해?!”

“소중해서 지켜줬잖아, 임마.”

상호는 눈을 부라리고 검지로 태화를 가리켰다.

“여하튼 조심해. 내 말 안 듣고 사고치기만 해봐.”

“흥.”

태화는 콧방귀를 뀌었다.

고개를 픽 돌리는데 그 모습이 여간 잔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이제 12월 초에 연말평가인 거 알지?”

“네.”

“잘 놀았으니까 다시 집중하자. 알겠지?”

“네~.”

“그래. 준비하고 나와.”

“네!”

아이들은 일어나서 야외수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야, 야, 야. 천세희.”

“뭐.”

“이것 봐봐.”

태화는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슬쩍 꺼내 썼다. 그리고는 선글라스를 삐딱하게 내리면서 그 너머로 세희와 눈을 마주쳤다.

“멋있지?”

“아니, 전혀.”

“질투하기는.”

둘이 있는 곳은 매점. 세희는 배가 고프지 않아 주스만 홀짝였고, 태화는 이미 한 입 베어문 빵을 들고 있었다.

세희는 태화를 흘겨보았다.

“선생님 말이 꼭 맞네.”

“뭐가?”

“넌 항상 뭔가를 저질러. 그거 이츠키한테 말 안 하고 가져왔지?”

“이제 말하면 되지.”

“……참 뻔뻔하네.”

잠시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뻔뻔했다.

태화는 매점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추었다. 모델처럼 포즈를 잡고, 배우처럼 표정을 바꾸면서. 그 같잖은 꼴값에 세희의 눈살이 확 찌푸려졌다.

“뭐해?”

“키야~, 이거 봐봐. X나 죽여주네. 몸매며 와꾸며~.”

태화가 그렇게 허리에 손을 얹고 포즈를 이리저리 바꾸는데.

누군가가 태화의 등을 퍽 치고 지나갔다.

“앗!”

태화의 입에서 당황성이 튀어나왔다.

세희는 떨어지고 있는 선글라스를 향해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짤각……

검은 유리 파편이 바닥을 굴렀다.

* * *

“아 쫌 도와줘어!”

태화는 울먹이며 세희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나 이거 쌤한테 들키면 죽는단 말야! 니가 부순 걸로 해줘!”

“말이 되냐?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럼 니가 숨겼다고 해줘! 응? 응?”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야?”

세희는 혀를 차고 걸음을 멈췄다. 시간이 조금 늦어 복도에는 둘밖에 없었다.

“그러게 누가 남의 물건으로 장난치래? 넌 좀 뒤지게 혼나봐야 돼. 그래야 또 그런 바보짓을 안 하지.”

“앞으로 안 그럴게! 한번만! 한번만 도와줘! 응?!”

“또 꼼수 부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정직하게 말해. 괜히 속였다가 일만 더 커져.”

“어떻게 말해!”

붉은 눈동자 아래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츠키 걔 나 별로 안 좋아한단 말야!”

“그걸 알면서 왜 그런 짓을 한 건데?”

“내가 일부러 그랬어?! 이렇게 될 줄 몰랐지! 도와줘, 응? 넌 걔랑 친하잖아…….”

“미안하긴 해?”

“응…….”

“너는 진짜 양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후우.”

알고는 있었지만 참 답이 없다. 세희는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도와줄게. 대신 이츠키한테는 네가 말해.”

“못한다니까아아!”

“하라고. 나랑 장난치다가 부쉈다고 해. 말 안 하면 이츠키는 어떻게 된지도 모르고 계속 찾아다니기만 할 거 아냐.”

“끄응…….”

태화는 세희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시간을 돌려 줘…….”

“선생님 말만 잘 들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어.”

어른 말을 안 들으니 이런 꼴이 나는 것이다. 세희는 태화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고 교실로 끌고 갔다.

“가자. 가서 말해.”

* * *

“깨…….”

태화는 마른침을 삼키며 애교를 쥐어짜냈다.

“깨져쪄.”

“…….”

이츠키는 말없이 태화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에는 태화가 깨트린 선글라스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축 늘어진 태화의 꼬리가 힘없이 흐늘거렸다.

“세……세희랑 장난치다가.”

“…….”

“딱…… 딱 한 번만 써봤는데.”

“…….”

“떨어뜨려서…….”

“…….”

“깨졌……쪄.”

이츠키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태화는 그 어두운 눈빛을 마주하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평소의 이츠키답지 않게 감정이 한껏 드러나 있었다.

“미, 미아내…….”

“…….”

“똑같은 걸로 사올게……. 쌤한테만 말하지 말아조.”

그 말에 이츠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겐 못 하겠습니다.”

“응?”

그렇겐 못 하겠다니.

상호의 귀에 들어가면 개박살이 날 것이다. 태화는 당황하며 양손을 싹싹 비볐다.

“제발, 제발 쌤한테는 말하지 마. 내가 뭐든 할게…….”

사고를 쳐 놓고 들킨 아이처럼, 부모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는 듯이. 태화는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은율이 이츠키의 눈치를 살폈다. 반장으로서 중재를 하려는 것이었다.

“이츠키.”

“네.”

“똑같은 물건을 사오면…… 괜찮겠어?”

“…….”

이츠키의 시선이 은율을 향했다가 다시 태화를 향했다. 그러자 태화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사과했다.

“미안…….”

곁으로 다가온 지윤이 일부러 큰 소리가 나도록 태화의 등을 때렸다.

“이 가스나 사고 치는 기 한두 번이가. 그래도 이번에는 사과를 하네. 뒤져도 지 잘못했다고는 안 하는 가스나가.”

“…….”

“똑같은 걸로 사오면 봐줘도 되지 않겄나?”

이츠키는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똑같은 물건은 없습니다.”

작고 낮은 목소리였다.

“누군가의 손을 거치는 순간 그 물건은 하나뿐인 물건이 됩니다. 잠깐 쓰고 버리는 도구에도 마음이 깃드는 법인데,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는 선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늘 미묘하게 올라가 있던 고양이입의 입꼬리가 지금은 내려가 있었다.

“이양은 그걸 몰라서 주술을 못 쓰는 겁니다.”

태화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츠키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는 책상에 팔짱을 올리고 얼굴을 파묻었다.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흑…….”

“……앗.”

아이들이 흠칫했다.

나빛이 쭈뼛거리며 이츠키의 등을 토닥였고, 태화의 편을 들던 지윤도 이츠키가 우는 것을 확인하고는 태화를 째려보았다.

“좀 조심하지 그랬나. 와 그걸 뽀사뿌러가지고…….”

“나, 나는 진짜…… 일부러 한 건 아니야…….”

“그렇겠제. 그래도 조심했어야 한다꼬.”

“이츠키, 내가 열 개 백 개 사줄게, 울지 마…….”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쌤 온다, 쌤.”

“아이고, 또 태풍이 불겄구마…….”

“멍, 난 도망칠래…….”

“뺙.”

혁구마저도 포르르 날아 책상 아래 서랍으로 피신을 했다. 태화는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말을 안 들은 것도 모자라, 선글라스를 부수기까지 했다는 걸 상호가 알게 된다면.

‘난 죽었다…….’

곧 발소리가 멈추고.

교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295. 계획대로

상호는 교실로 들어서다가 멈칫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이들이 한곳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시선의 끝에 자리한 아이는 이츠키. 멀쩡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눈시울이 붉은 것은 감추지 못했다.

태화의 당황한 표정은 덤.

그 꼴을 보니 어렵지 않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태화. 너 뭐 잘못했어.”

“그……그게.”

태화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팔다리를 배배 꼬았다.

“나……, 내가……. 이츠…….”

“별일 없었습니다.”

“……응?”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호도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츠키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 일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진짜?”

“네.”

본인이 그렇다면야 그런 줄 알아야겠지만. 모든 정황이 태화의 잘못을 가리키고 있었다. 상호는 이츠키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문제 없는 거야?”

“네.”

“알겠다.”

그는 태화를 흘끗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 준비하자.”

* * *

그 후로 태화와 이츠키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태화는 뭐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못해하며 이츠키의 눈치를 살폈고, 이츠키는 그런 태화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종례 시간이 되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세희는 그런 태화와 이츠키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태화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야.”

“어, 어.”

“어떡할 거야.”

“몰라, 도와조…….”

“니가 애야?”

“끙…….”

태화가 고개를 푹 숙이고 꼬리를 꾸물거렸다.

구하려면 스스로 구할 것이지 또 누구한테 기대려 하는가. 세희는 좀스럽게 다가오는 태화의 꼬리를 단호한 태도로 밀어냈다.

그때 교실 문이 열리고 상호가 들어왔다.

“수고했다 얘들아. 조심해서 들어가라.”

“앗, 오늘은 빨라, 멍.”

“태화는 남아.”

아이들은 분위기를 읽고 서둘러 하교 준비를 했다. 그중에서도 이츠키가 제일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지금 이츠키를 따라갈지, 교실 밖에서 기다렸다가 태화랑 같이 갈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선생님이랑 같이 하교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이츠키의 곁으로 달려갔다.

이츠키는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는 듯이 세찬 발걸음으로 앞서나가고 있었다. 세희는 그런 이츠키를 따라잡아 옆에서 걸음을 맞췄다.

“이츠키.”

“아, 세희.”

이츠키의 걸음이 확 느려졌다.

“세희인 줄 몰랐습니다. 알았으면 천천히 걸었을 텐데.”

“화 많이 났어?”

“연기였습니다.”

“응?”

연기라니. 세희는 눈을 끔뻑였다.

“……연기?”

“네.”

“그럼…… 화 안 났어?”

“화는 화대로 나긴 했습니다만. 제가 그런 걸로 울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이츠키는 무표정한 얼굴로 혀를 쏙 내밀었다.

“그저 이양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귀여운……?”

세희는 멍하니 눈을 깜작이다가, 곧 김빠진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게 귀여워?”

“귀엽지 않습니까? 잘못한 강아지처럼 주변을 알짱거리는 거.”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네.”

“물론 세희도 충분히 귀엽습니다.”

이츠키는 세희의 볼을 집었다.

“이양한테는 말하지 않는 겁니다.”

“그럴 거야.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놔야지.”

“세희는 이양이 귀엽지 않습니까?”

그 말에 세희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글쎄.”

“흐음…….”

이츠키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세희도 충분히 귀엽습니다.”

“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야?”

“하늘도 알고 땅도 알 겁니다. 세희가 귀엽다는 건.”

“아니, 난 모르겠는데…….”

둘은 나란히 걸어서 기숙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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