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9화 (299/501)

* * *

다음 날.

멀쩡해진 몸으로 교실에 들어서자 나빛이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선생님~!”

“…….”

상호는 나빛의 차림새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게 뭐야?”

“반티요!”

“티가 아닌데……?”

검은 야구모자. 검은 조끼.

택티컬이라고 해야 할까. 경찰특공대나 입을 법한 검은 상하의에 검은색 봉까지 들고 있었다.

“그게 뭐니……?”

“기동타격대예요!”

“그게 뭔지는 알아……?”

나빛이 봉을 들었다.

“다른 교실을 공격해서 손님들을 내쫓는 거예요!”

“왜……?”

“그럼 자연스럽게 우리 교실에 손님들이 찾아올 거예요!”

나빛의 뒤에서도 특공대복을 입은 아이들이 봉을 들었다. 세희, 은율, 이서.

이서는 언니들 때문에 억지로 끌려왔는지, 얼굴을 붉힌 채로 상호의 눈길을 피하며 이를 갈고 있었다.

“저희가 알파! 태화, 이츠키, 아리, 미래랑 단비가 브라보! 지윤이랑 나디아, 하솔이, 초란이, 가은이가 찰리!”

“그러니까…… 기동타격대랑, 교실에서 일하는 팀이랑, 돌아다니면서 노는 팀이 있다는 거지?”

“네!”

“너무 힘들지 않겠어……?”

“괜찮아요!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나빛이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이제 선생님도 일하실 수 있잖아요!”

“……응?”

“선생님 옷도 맞췄어요!”

“……이걸 입고 같이 싸돌아다니라고?”

“선생님도 우리 반이잖아요~, 헤헤.”

말이야 맞는 말이다. 상호는 세희가 건넨 옷을 받아들었다.

“왜 두 벌이야?”

“은호요.”

“…….”

아주 철저하게 준비를 했구나.

그냥 아이들을 감시한다는 명목하에 따라다니기만 해도 될 것이다. 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몰랐다.

상호는 그렇게 여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다른 준비는 잘 되어가?”

“네.”

“연극 대본은 다 짰고? 언제 보여줄 거야?”

“당일이요.”

“언제 외우라고…….”

“당일에 봐도 충분해요.”

대사가 없기라도 한 걸까.

상호는 그러려니 했다. 아니,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더 물어봐도 안 가르쳐 줄 게 뻔했기 때문에.

“그럼…… 선생님은 그런 줄 알고 있을게.”

“네, 걱정 마세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네~.”

* * *

“선생님 반은 뭐 하기로 했어요?”

“나?”

설미는 상호의 물음에 눈을 깜작였다.

“그냥, 작년처럼 카페 하기로 했어.”

“똑같은 거 하면 애들이 지겨워하진 않아요?”

“1년에 한 번이니까. 그리고 1학년 아이들은 안 해 봤잖아.”

“아하…….”

“다들 많이 기대하더라. 그래서 못 바꿨어.”

“하긴, 그렇겠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상호에게 설미가 쓰게 웃어 보였다.

“원래 이런 건 한번 정하면 잘 안 바뀌어. 처음에 잘 정해야 돼.”

“……으음.”

상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년에도 도은호를 팔아먹게 되려나.

‘……그 전에 저주를 풀어야지.’

빨리 그놈을 해치워야겠다. 그렇게 다짐하고 있는데 설미가 물었다.

“상호네 반은 뭐 하기로 했는데?”

“악세서리…… 같은 거 팔아요.”

“악세서리만? 그것만 하면 조금 심심하지 않아?”

“그럴 수도 있고…….”

기동타격대가 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아니면 같이 협업을 할래요? 어차피 일하는 아이는 한 번에 20명이 안 될 테니까…….”

“카페에서 악세서리도 팔자구? 으음, 나쁘지 않네. 아이들한테 물어볼게. 저녁에는 뭐 할 거야?”

“연극이요. 저번처럼.”

그때 교무실 문가에서 미진이 다가왔다. 잔뜩 당황한 듯 걸음을 서두르며.

“강 선배, 강 선배.”

“응?”

“애들 반티가 이상한데요?”

“……그냥 그러려니 해요. 애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아니 애들이 용역깡패가 됐다니까! 담임이 지도 안 하고 뭘 한 거예요?!”

“나한텐 미진 씨가 깡패야…….”

“따라와요. 애들한테 뭐라 좀 해보라고. 이 무능한 아저씨야!”

“제발…….”

상호가 간절하게 호소했지만 미진은 들은 체도 안 하고 멱살을 잡아 밖으로 끌고 갔다. 설미는 그런 둘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 *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예현제 전날.

상호는 방바닥에 늘어놓은 염주를 내려다보았다. 팔에 차는 짧은 것, 목에 차는 긴 것. 나무로 된 것도, 플라스틱으로 된 것도 있었다.

“얼마에 팔 거야?”

“5천원이요.”

혜소는 네모난 나무쟁반에 염주를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아저씨는 투자자니까 20프로 할인해 드릴게요.”

“그래, 그래. 근데 5천원이면…… 언니들이 살까?”

“그래서 이것도 만들었어요.”

혜소가 들어 올린 스케치북에는 ‘시험운, 연애운, 건강운, 금전운’ 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상호는 그 문구를 보고 진땀을 흘렸다.

“……잘 팔리겠네.”

“그쵸?”

혜소는 한 치의 의심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상호의 속뜻은 전혀 잘 팔릴 것 같지 않다는 반어법이었다.

사기꾼들이 돌려쓰는 레퍼토리 아닌가.

“효과가…… 정말 있을까?”

“그럼요.”

상호는 금전운 칸의 염주를 하나 집어 혜소의 팔목에 채워 주었다.

“많이 벌어 봐.”

“네.”

혜소도 염주를 왕창 집어 상호의 팔목에 착착착 채웠다.

“아저씨도요.”

“연애운은 됐어. 아니, 연애운은 됐다니까! 그만…….”

그는 황급히 연애운 염주들을 떨어냈다. 주술이라도 걸릴까 봐.

그때 문이 열리고 효은이 걸어들어왔다. 효은은 바닥에 앉은 둘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뭐하냐?”

“혜소 내일 장사한대. 학교 축제에서.”

“그래? 이게 뭔데. 시험운? 연애운?”

염주를 잘그락잘그락 뒤적이던 효은이 개중 하나를 집었다.

“얼만데?”

“고모는 공짜예요.”

“이게 연애운이야?”

“네.”

“이걸로 할까. 난 항상 연애운이 없었어.”

효은이 연애운 칸의 염주를 집었다. 그걸 본 상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효은의 허리를 슬쩍 끌어당겼다.

“니가 연애운이 왜 없어?”

“몇 년이 걸렸다 이 새끼야. 지금도 나보다 어린애들이 먼저잖아.”

“그럼 애들이 먼저지 어떡해. 선생인데…….”

“참나…….”

효은은 염주로 상호의 얼굴을 탁 쳤다.

“그래서 연애운이 없다는 거야.”

“시끄러. 넌 건강이나 챙겨. 맨날 술이나 처먹지 말고.”

상호는 효은의 손목을 잡아 연애운 염주를 빼고 건강운 염주를 채웠다. 뺄 수 없도록 팔뚝까지 올려서.

“아 씨, 피 안 통하잖아, 등신아! 이거 안 놔?!”

“넌 이거 차고 다녀. 빼면 긴 걸로 양손 묶어버릴 거야.”

“묶어봐, 묶어봐 이 새끼야. 그냥 묶어놓고 하고 싶다고 말을 하지 뭔 염주 핑계는…….”

“야, 혜소 듣잖아!”

상호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당황하며 옆을 돌아보는데 혜소가 차가운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변태.”

“아니 혜소야, 무슨 말인지 알고는 있니……?”

“어쨌든 아저씨는 변태예요.”

“모르잖아!”

“오늘은 큰고모 방에서 자고 올게요.”

“……아는구나.”

“저질.”

혜소는 그렇게 말하고는 상호의 손에 기다란 염주를 쥐여 주었다. 상호는 그 염주를 꽉 부여잡으며 눈물을 삼켰다.

‘연애 불운이 필요해…….’

세상 어디서도 팔지 않는 물건을,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290. 두 번째 예헌제

“…….”

상호는 아침부터 할 말을 잃었다.

“……뭐예요, 그 꼴은?”

“보면 몰라요?”

미진이 교복을 입고 있었다.

대체 누구한테 빌려 입은 건지 꽉꽉 조여서는 아예 터질 것 같았다. 그렇게 살집이 있는 몸이 아닌데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육하원칙으로 설명해 줄래요?”

“교장선생님께서.”

“……한방에 설명이 되네요.”

또 노망이 났구나. 상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른 선생님들도 입는 거예요?”

“네.”

미진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제 아침에 그러셨어요, 학생들한테 빌려서 입고 오라고…….”

“근데 왜 그렇게 작아요?”

“세희한테 빌렸더니…….”

몸이 얇아서 치수가 작을 테니, 굳이 줄이지 않아도 미진에겐 꽉 끼는 모양이었다. 상호는 미진의 몸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별안간 미진의 손이 상호의 뺨으로 날아들었다.

“……왜요!”

손은 황급히 잡아냈지만, 죽일 듯한 눈빛은 막을 수 없었다.

“어딜 봐요? 미쳤어요?”

“아니, 되게 불편해 보여서…….”

“흥.”

미진은 콧방귀를 뀌고 의자에 앉았다.

상호는 다시 업무를 시작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또 일할 거예요?”

“그럼 어떡해요? 일이 있는데.”

“가끔 미진 씨를 보면 교사인지 행정실 직원인지 구분이 안 가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건데요?”

“같이 놀아요. 축제인데.”

미진이 눈을 끔뻑였다.

“네?”

“교장선생님도 그러라고 교복 입으라 한 거예요. 애들 사이에 끼어 놀으라고. 그러니까 일어나요.”

“아니 일이 있다고…….”

하지만 상호는 들은 척도 않고 미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손이 닿자 미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미진을 문으로 끌어당겼다.

“가요, 가요.”

“이거 안 놔요?! 왜 이렇게 신났어요? 교복 때문이야 설마? 이 쓰레기……!”

“에헤이~. 그냥 따라와요.”

둘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교실로 향했다. 사이좋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호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 * *

교실에서는 장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다른 반은 영화관이나 카페 등의 테마가 있었지만, 상호의 반은 그런 것이 없었다. 그저 책상을 붙여 진열대처럼 만들고 물건을 늘어놓을 뿐. 그래도 열심히 무언가를 더 하고는 있었다.

아이들이 바삐 움직이는 교실에 상호와 미진이 들어섰다.

“잘 되어가?”

“아, 상호쌤. 미진쌤.”

“어, 미진쌤 교복 뭐예요?”

“쌤이 입힌 겁니꺼?”

“……그랬겠니?”

상호는 한숨을 쉬고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교실 준비는 얼추 다 끝난 듯했다. 책상 위 장신구들, 도은호 사진, 가격표. 다른 교실들에 비하면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집중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

“연장 챙겼지?”

“응.”

세희와 은율과 나빛과 이서.

검은색 모자, 검은색 특공대복. 조끼에는 ‘집행’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종 치자마자 나가서 멀리 있는 교실부터 하나씩 털고 오는 거야. 알았지?”

“네! 네! 대장님! 어라, 이서는 대답 안 해?”

“네, 대장님…….”

“네! 네! 대장님!”

“네, 네, 대장님…….”

나빛은 그제서야 씩 웃었다.

“좋아~ 좋아~.”

“뺙?”

“앗, 꾸꾸야! 아니야!”

“뺙!”

“아이씨, 이 X발 치킨련아! 꺼져!”

나빛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혁구가 태화의 머리를 마구 쪼기 시작했다. 상호는 그런 아이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장신구가 널린 책상으로 다가갔다.

자리에 앉은 단비가 그를 맞았다.

“멍, 예쁘죠!”

“응. 잘 만들었네. 그런데…….”

상호의 시선이 옆쪽 책상을 향했다.

“이건 상당히…… 뜨악스럽네.”

“귀엽지 않아요?”

도은호 사진.

살짝 졸린 듯 눈을 감고 창틀에 앉거나, 다리를 꼬거나. 패션 잡지에서 봤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저게 본인이라는 것을 아는 상호는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옆에서 미진이 사진을 뒤적거렸다.

“어, 이거 은호야?”

“네. 은율이 언니가 찍었어요.”

말은 그렇게 맞춰 두었다.

미진은 가만히 서서 홀린 듯 사진을 바라보았다. 상호는 그런 미진을 내버려두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얘들아, 혜소 못 봤어? 출근할 때 교실로 보냈는데…….”

“터가 안 좋다고 나갔어요.”

“터?”

얘가 주술을 통달하고 이제 풍수까지 보나.

혼자서 몇십 킬로미터를 싸돌아다니는 아이니, 설령 학교 밖까지 나갔더라도 별일 없을 터였다.

‘돌아다니다 보면 있겠지…….’

그는 그렇게 여기고 세희와 은율, 나빛, 이서를 돌아보았다. 슬슬 종이 칠 시간이었다.

“바로 갈 거야?”

“네.”

“선생님도 기동타격대 옷으로 갈아입고 오세요~.”

“응…….”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상호는 교탁 아래에서 옷을 꺼내 남교사 휴게실로 향했다.

* * *

“여기부터네요.”

세희가 몽둥이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얼른 박살내고 옆으로 건너가죠.”

“……으음.”

상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교실 문 옆 액자를 쳐다보았다. 액자에는 건흠과 학생들이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건흠, 그리고 다혜가 있는 반.

‘……어떡하지?’

이 깡패들이 들어가면 가게가 풍비박산이 날 텐데.

지금이라도 돌아가자고 할까.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기동타격대가 건흠의 교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

건흠의 학생들, 그리고 손님으로 온 학생들이 기동타격대를 보고 흠칫했다.

“……깡패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선생님, 선생님 불러…….”

이 교실은 샵인지 샬롱인지, 하여튼 그런 컨셉인 모양이었다. 손톱에 뭔가를 그리거나, 페이스페인팅, 그리고 머리를 땋기도 하고.

예상대로 머리를 땋아주는 사람은.

“아으.”

다혜였다.

상호와 아이들을 발견한 다혜의 눈이 반짝였다.

“므아아~.”

그러고는 벙긋벙긋 웃으며 이리 오라고 손을 까딱였지만, 상호의 아이들은 그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으흠.”

나빛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성력으로 깔때기를 만들어 확성기처럼 입에 붙였다.

“아, 아. 친애하는 학우 여러분~.”

“…….”

“걱정하지 마세요. 해치지 않아요~.”

대체 뭔 짓을 하려는 걸까. 상호도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한 상태였다.

상호를 포함한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는데, 세희와 은율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자자, 신경쓰지 말고 하던 거 하세요~.”

나빛의 말에 건흠 반 학생들이 다시 작업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네일아트를 하거나, 페이스페인팅을 하거나.

그런데 세희와 은율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어,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여기는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싸?”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이런 걸 돈 주고 받아?”

훈수질.

신경을 안 쓸래도 안 쓸 수가 없었다.

“이서야~.”

나빛의 부름에 이서가 흠칫했다.

“……어, 언니.”

“너도 해야지~.”

“…….”

이서는 상호에게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하지만 상호는 빙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얘들아, 선생님 급한 일이 생겨서 어디 좀 가볼게.”

“네.”

“다녀오세요~.”

“으응.”

그는 망연자실한 이서를 내버려두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행패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얼마 받고 일해요? 최저시급은 줘요?”

“보험은 들었어요? 4대 다?”

“미안, 우리 언니들이 좀 이상해…….”

“어? 이거 예쁘다. 이거 나 해줘.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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