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7화 (297/501)

* * *

“같이 못 먹는다구예?”

“으응.”

상호는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진땀을 뺐다. 그의 앞에서는 지윤이 허리에 손을 얹고 있었다.

“헌터 협회 협회장님하고……. 신앙회 총회장님이랑 마법학회 학회장님도 온대. 그분들 말고도 여기저기서 더 오고……. 하여튼 엄청 어려운 자리야.”

“그래서예?”

“그러니까…… 카드 줄 테니까, 너희랑 언니들이랑 먹고 오라고…….”

“쌤은예?”

“쌤은 거기 가야 해서…….”

“선약이 먼저 아입니꺼?”

“맞긴 한데…….”

도현이 시간이 없다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상호는 손을 모아 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쩔 수가 없어……. 오늘 너희끼리 먹고 와. 나랑은 나중에 먹자. 응?”

“안 묵겠습니더.”

“지윤아…….”

“고렇게 잘난 사람들이 오믄 비싼 데서 먹을 기 아입니꺼.”

“응?”

“지만 데려가이소.”

지윤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태화한텐 비밀입니데이.”

“……같이 가자고?”

“안 됩니꺼?”

“되게 불편할 텐데…….”

“지는 그런 거 신경 안 씁니더.”

“그럴 거면 태화도 같이 가지…….”

“안 되입니더. 꼭 지만 델꼬 가이소. 안 그러믄 피봅니데이.”

“……알았어.”

참으로 짓궂은 아이들. 상호는 이길 수가 없어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같이 가자. 그래. 같이 가……. 그럼 저녁에 데리러 올게.”

“흐흐, 싸랑합니데이~.”

지윤은 낄낄거리며 상호를 꼭 끌어안고는 몸을 빙글 돌려 이화관으로 달려 들어갔다.

상호는 그런 지윤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화관을 올려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태화에겐 대체 어떤 핑계를 대야 할지.

‘에이, 모르겠다. 그냥 나도 막 나갈래…….’

내쉬는 한숨마다 번민이 묻어나고 있었다.

* * *

그래서 저녁.

태화에게는 예약해둔 레스토랑이 오늘 망했다는 쌈박한 핑계를 댔고, 지윤과 둘이서만 출발하게 되었다. 상호는 차를 주차시키며 차창 밖의 건물을 흘끗했다.

지윤이 안전벨트를 풀며 물었다.

“여깁니꺼?”

“응.”

서울 한복판, 수상할 정도로 부지가 넓은 식당.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검은 양복들은 헌터 협회 소속인 것 같았다.

“밥이 잘 넘어가진 않을 거 같네예.”

“그러게 말했잖아. 어려운 자리일 거라고…….”

둘은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징검다리처럼 박힌 평평한 돌을 밟고 들어가, 수상할 정도로 창문이 없는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입구에는 도현이 서 있었다.

“왔구나. 아, 지윤이도 왔네.”

“어.”

“안녕하심꺼.”

“들어가자.”

셋은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길쭉한 방. 길쭉한 식탁. 자리의 뒤쪽마다 헌터들이 시립해 있었다. 드문드문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데 아마 수호부대원들인 것 같았다.

앉은 사람들은 나이 지긋한 중년인들. 총 7명. 대부분 TV에서 본 사람들이었다.

그중 제일 끝 상석에 앉은 사람은, 눈이 작고 머리가 벗겨진, 하지만 묘하게 분위기를 휘어잡는 중년 남자.

“우왓, 쌤예.”

깜짝 놀란 지윤이 상호의 곁에 붙었다.

“저, 저기 저거. 대통령 아입니꺼?”

“그런가 보다.”

상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지윤의 등을 툭툭 두드려 함께 자리에 앉았다.

상석과 마주 보는 자리.

“강상호입니다.”

그가 고개를 까딱이자 대통령 곁에 앉은, 옆줄의 제일 상석에 앉은 중년 남자가 씩 웃었다.

눈썹이 굵고 희었다.

“오랜만이군.”

“예.”

헙터 협회의 협회장. 전쟁 당시의 헌터 군인 측 참모총장.

협회장은 자리에 앉은 모두를 둘러보았다. 대통령만 빼고.

“이렇게 모이라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 서울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보다 상세한 경위를 듣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섭니다.”

상세한 경위. 그 말에 상호는 도현을 돌아보았다.

“몰라?”

“보고 다 해 놨는데. 네 입으로 듣고 싶은가 보다.”

“염병…….”

입술을 자근자근 씹는 상호를 협회장이 불렀다.

“강상호 헌터.”

“예.”

“설명해주시게.”

어디부터 말해야 하나.

상호는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밥부터 좀 먹죠.”

옆에서 지윤이 배고파 죽으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그렇게 된 겁니다.”

“으음.”

이야기를 맺자 좌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중에 한 명, 40대 초반의 여자가 상호를 향해 물었다.

협회, 학회, 신앙회 중에 제일 젊은 집단. 머리를 써서 마법을 배우는 학회의 장이었다.

“그러면 그 악마가 회복하는 데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모르죠.”

상호의 간결한 대답에 도현이 당황했다.

“얌마, 좀 성의 있게 말해 봐!”

“아니 X벌 그걸 누가 알아. 형은 알아? 모르니까 모른다고 하지 뭘 뻔드르르하게 포장할라 그래?”

“아이고, 니 말고 민정이를 데려올걸…….”

가슴을 두드리며 분통을 터트리는 도현과 나 몰라라 뻗대는 상호, 그리고 옆에서 상호가 양보한 접시를 닥닥 긁어 먹는 지윤을, 대통령은 그저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이번엔 협회장이 물었다.

“회복하기 전에 잡아야 할 게 아닌가?”

“지금 그놈 죽일 줄 아는 사람이 저밖에 없습니다. 섣불리 갔다가 죽으면 다 끝나는 거죠. 그 악마를 조질 사람이, 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악마는 어떻게 죽이는 건가?”

“죽이는 방법을 정확히 아는 건 아닙니다만…….”

상호는 천색창염의 초혼강기를 두른 손을 들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특히 뒤에 시립한 수호부대원들에게.

“이걸로 싸우는 겁니다. 강기에 영혼을 담는 것인데…… 이걸 남한테 가르쳐주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딱 한 명,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가 있어서 가르치는 중이고요.”

“지금 옆에 그 학생인가?”

“아니요. 다른 아이입니다.”

그가 강기를 거두자 신앙회의 총회장이 물었다.

“그 방법이 무예가만 가능한 겁니까?”

“글쎄요.”

요는 영혼을 마나에 담는 것.

즉 영혼의 힘을 다루는 주술과, 마나를 다루는 방법인 무예의 융합. 그렇다면 또 다른 방법인 마법과의 융합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상호는 그게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성력에 관해서는 더더욱.

“모르겠네요.”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무예는 본인의 마나를 쓰는 일이니까. 영혼을 담기도 쉬울 겁니다. 마법은 세상의 마나를 끌어다 쓰는 것인데, 거기에 일일이 영혼을 담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 주술사는 마나를 다루지 못하고, 신앙인은 자신이 아니라 신에게서 힘을 빌려 쓰는 것이니…… 아마 안 될 겁니다.”

협회장의 시선이 도현을 향했다.

“부협회장 생각은 어떤가?”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그러면 그 강한 무예가들을 모아서, 강 헌터에게 보내면…… 그 영혼을 담는다는 방법을 배울 가능성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어떤가?”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한 명한테 집중해도 될까 말까입니다.”

“그래도 시도는 해 볼 만하지 않나?”

“지금 이 형도 못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딱히 기대가 되진 않습니다.”

“……크흠.”

가만히 있다가 공격을 맞은 도현이 헛기침을 했다. 상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랑 같은 내공을 가진 아이한테 수련을 시키는 겁니다. 최대한 같은 조건을 맞춰서.”

그리고 예경의 영혼까지 넘겨주었으니. 지금 세상에서 상호 다음으로 초혼강기를 만드는 사람이 나온다면, 세희가 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협회장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자네와 같은 심법을 배운 건가?”

“예.”

“그러면 그걸 공개심법으로 할 순 없나?”

“지금 세상에서는 쓸 수 없는 심법입니다.”

“왜?”

“남들이 배워 봤자 검기도 못 만들고 나가떨어질 겁니다. 축기가 심하게 느려서.”

상호가 딱 잘라 말하자 협회장이 턱을 쓸었다.

“공개를 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아닌가?”

“X급의 심법이라 알려지면 무턱대고 배우겠지요. 그러면 인생 조지는 겁니다. 그 사람들한테 일일이 내공을 나눠줄 순 없어요. 지금 제 제자한테 줄 내공도 부족하고.”

“그러면 사람들한테 심법을 배우게 해서 내공을 모아 받는 건 어떤가?”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힘은 정직하게 모아야 정직하게 발휘됩니다.”

“정직을 따질 사안이 아니잖나.”

“주술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시죠.”

고행만이 인간의 바람을 실현시킨다. 몸에 불이 붙어도 물그릇을 잡지 않은 누군가처럼.

“제 사정은 제가 제일 잘 압니다. 악마에 대해서도 제일 잘 알고요. 좀 죄송한 말이지만, 방법은 이겁니다. 제 모든 걸 이어받을 제자 한 명을 키우고 그놈을 죽이러 가는 것. 이게 저와 우리 부대원들이 같이 내린 결론입니다. 그 외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혼자만 강한 채로 남으려는 심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국익을 도외시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냥 다른 헌터들이나 강하게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그놈이 언제 힘을 되찾아서 전쟁을 일으킬지 모르고, 제가 그놈한테 가는 길을 뚫을 헌터들도 필요하니까. 여러분은 그걸 고민하시고…… 저는 악마를 죽일 방법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쓸데없이 부르지 말란 뜻이다.

“……으음.”

협회장이 대통령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문가의 말을 들읍시다. 강 헌터님 말대로 하세요.”

“예. 그러면 학회와 협력해서 교육 쪽으로 가닥을 잡겠습니다.”

협회장은 고개를 숙였고, 대통령의 시선은 상호를 향했다.

“사실 난 전문적인 지식은 없어서. 워낙 중대한 사안이라 예의상 온 겁니다. 그래서 물어볼 수 있는 것이 따로 있진 않고…… 강 헌터님.”

“예.”

“자신 있습니까?”

“해내야죠.”

애들 지키려면 해야지 어쩌겠는가. 상호는 그렇게 대답하고 지윤을 흘끗했다.

그런데 지윤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체했나?’

그런 의문을 품는데, 지윤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우째 글케 쉽게 말합니꺼?”

“응?”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예.”

반지를 낀 손이 꽉 움켜쥐어졌다.

“할지 말지는 자기가 알아서 할 기 아입니꺼. 와 그라는 긴디예. 죽으믄 해줄 것도 없으믄서, 자기들이 싸울 것도 아인데…….”

상호와 도현은 말없이 지윤의 등을 토닥였다.

죽은 사람에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남겨진 사람에게도, 죽은 이를 돌려줄 수 없다.

“그기를 가지고, 그렇게 몰아붙일 자격이 있습니꺼. 말이 격려지, 까놓고 말하믄 대신 목숨 걸어달라 아입니꺼. 그기를 우째 글케…….”

높으신 분들이 종용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상호는 쓰게 웃으며 지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괜찮아.”

“머가 괘안습니꺼. 쌤도 한마디 하이소. 그따우로 시키지 말라고…….”

“괜찮다니까.”

저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아이들도 위하는 일이다. 그래서 상호도 별다른 반발심은 들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애꿎은 태화가 죽게 생겼으니 뒤집어엎은 것이고.

그는 우거지상을 지은 지윤을 다독이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여튼…… 저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여러분도 협력하셔서, 강한 헌터들을 좀 양성해 주세요.”

“그러죠.”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에 바라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시고. 여기 여러분들도. 강 헌터님이 필요하다는 게 있으면 아낌없이 도와주세요. 허허. 이야기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 한 것 같은데. 어서 들지요.”

* * *

“맛있었어?”

“예.”

뒷자리에서 지윤이 대답했다.

거울 속 지윤의 눈은 차창 밖 불빛을 쓸쓸히 바라보고 있었다.

“맛있었습니더.”

“근데 배 안 찼지?”

“…….”

“더 먹으러 갈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상호는 핸들을 돌리며 눈을 끔뻑였다.

“지윤아?”

그때 갈색 손이 그의 어깨로 스르르 올라왔다.

“쌤예.”

“응?”

“죽으믄 안 됩니더.”

운전석 뒤에 꼭 붙은 지윤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쌤이 떠나믄…… 지는, 다신 못 웃을 것 같아예.”

“……응.”

“그러니까 절대 지만 남겨두고 떠나지 마이소.”

“응.”

“약속했습니더.”

지윤의 속삭임이 귀를 파고들었다.

상호는 잠시 차를 멈추고 새끼손가락을 들어 어깨 너머로 내밀었다. 그 새끼손가락에 지윤의 새끼손가락이 단단히 엮어들었다.

자잘한 상처가 많이 생겼다가 아문, 조그마한 손가락.

“약속할게.”

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려 지윤의 뺨을 가볍게 문질렀다.

“그래서 밥은 어디로 먹으러 갈까?”

“조금만 채우면 됩니더. 랍스타 먹으러 가지예.”

“그거는 태화랑 나중에…….”

“지도 사진 찍어가 자랑할랍니더. 와 만날 가덜만 그라는디예. 세희도 그렇고 태화도 그렇고. 요샌 또 이츠키까지 그칸다 아입니꺼.”

“다 사정이 있어…….”

“지헌티도 사정이 있었으믄 좋겠는디예. 와 항상 가덜만 있을까예.”

“……알았어. 사줄게. 랍스터…….”

“흐흐.”

차가 다시 도로를 달려갔다.

288. 예헌제 준비

지윤과 밥을 먹으며 찍은 사진은 이튿날 태화의 핸드폰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왜 나만 빼놓고 이 돼지야만 먹이는데에에!”

“야, 니가 나랑 제일 많이 먹었어…….”

“주작하지마! 무슨 내가 제일 많이 먹어!”

“너야말로 날조하지 마!”

결국은 저녁에 배 터지게 먹여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예현제…….”

상호는 물백묵을 들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준비해야겠지. 그치?”

“네.”

“예!”

아이들이 초롱초롱하게 눈을 반짝였다.

운동회와 축제를 당일로 합친 행사. 2주 남았다. 2학년 아이들은 이미 해봐서, 1학년 아이들은 안 해봐서 기대에 찬 눈빛을 짓고 있었다.

“언니, 언니. 축제 때 뭐 해?”

“우리?”

미래의 물음에 태화가 기다렸다는 듯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위장무늬 티셔츠. 그리고 상호라는 이름이 노랗게 박힌 빨간 모자.

“상호부대!”

“우왓, 이거 엄청 탐났는데.”

“나 써볼래! 멍.”

태화의 모자에는 뿔 구멍이 나 있었다. 단비가 모자를 쓰자 그 뿔 구멍으로 강아지 귀가 나오다가 걸려 버렸다.

“끼잉, 나도 모자 쓰고 싶어……. 아리 네가 써봐.”

아리도 뿔 모양이 많이 달라서 모자가 들어가지 않았다.

“완전 새로 만들어야겠는데?”

“니들은 상호부대하지 마라, 그냥.”

“왜애! 우리도 상호부대 할꺼야!”

상호의 등에 진땀이 흘렀다.

“……얘들아?”

“네?”

“너희 그거…… 올해도 해야겠어?”

“네.”

세희가 눈을 끔뻑였다. 당연한 소리를 왜 하냐는 듯이.

그 옆에서 은율도 평소보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상호를 바라보았다.

“저 이거 좋아요…….”

“…….”

목소리가 아련하기까지 하다. 상호는 어지러워지는 머리를 짚으며 교탁에 몸을 기댔다.

“너희…… 혹시 축제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는 있어?”

“네!”

“근데 그…… 부대를 해서 뭘 할 건데?”

태화가 주먹을 높이 들어 올렸다.

“학교를 탈취할 거야!”

그 말에 하솔이 움찔했다. 쿠데타 집단에 들어온 국가원수의 혈육처럼.

“학교를 탈취해서! 교복을 사복으로 바꿀 거야!”

“대단한 계획이네.”

상호는 일축하고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니까…… 반티는 저걸로 하고 싶은 거지?”

“네!”

“그래…….”

인원이 넷에서 14명으로 늘었다. 더 이상 설미의 반에 빌붙을 수는 없을 테고.

상호는 칠판에 글씨를 끼적였다.

“반티는 너희가 알아서 하고. 정해야 될 게…… 교실에서 뭐 할지. 공연에 누가 나갈지…… 또 뭐 있나? 아, 체육대회 종목별로 나눠야 하고…….”

“응원 율동!”

나빛이 벌떡 일어났다.

“저 춤 생각해둔 거 있어요!”

“응?”

상호는 어안이 벙벙해하며 칠판 옆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 그래. 나와서 한번 해 봐…….”

“헤헤헤.”

방글방글 웃으며 달려나온 나빛이 눈을 반짝이며 상호를 돌아보았다.

“이름은 꾸꾸땐쓰예요!”

“이름만 들어도 알 것 같네. 그래, 한번 해 봐…….”

“네!”

나빛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팔을 뒤로 뻗어 손바닥을 흔들었다. 파닥파닥, 파닥파닥.

입술도 새의 부리처럼 쭉 내밀고 있었다.

“쪼아!”

“…….”

“쪼아! 쪼아!”

나빛은 상호에게 다가와 가슴팍에 얼굴을 들이박았다. 딱따구리처럼 빠르게.

상호는 그런 나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쁘지 않네.”

“진짜요?!”

“진짜겠냐! 들어와 멍청아. 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뺙.”

혁구가 나빛의 책상에서 날개를 한 번 털자 태화의 입이 꾹 닫혔다.

저 입을 닫게 만들다니 참 용하다. 상호가 그렇게 감탄하고 있는데 단비가 손을 들었다.

“응원가도 만들어요. 멍.”

“응원가……도 만들어야겠지. 응. 뭐가 좋을까.”

“선생님 군가 아시는 거 있으세요?”

“……군가?”

상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명한 건 알고 있긴 하지만.

“우리 부대는 그런 거 안 했어. 근데…… 굳이 노래로 하지 말고 짧은 구호였으면 좋겠는데…….”

“미래야. 군가 찾자. 멍.”

“오키. 아, 이거 괜찮아 보이는데.”

미래가 기계 장갑으로 띄운 홀로그램을 만지작거렸다.

“이거. 승리의 횃불. 들어 볼까?”

“켜봐, 켜봐.”

“가사도 띄워 봐.”

아이들이 미래에게 몰려들었다.

교실 앞에 뻘쭘하게 남겨진 상호는 초조하게 물백묵을 만지작거렸다. 저 아이들에게서 어떤 응원가가 만들어질까.

불안감이 그의 이마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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