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혜소와 이츠키가 땀을 뻘뻘 흘렸다.
“매워요.”
“맵습니다.”
“……나도.”
상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맛은 좋아서 손이 계속 갔다. 상호는 마지막 남은 떡볶이를 혜소의 입에 넣어주고 식탁을 보았다.
접시들은 깨끗이 비어 있었다.
“계산하고 더 구경하러 가자.”
세희가 그에게서 현금을 받아들어 계산대로 걸어갔다.
직원이 계산대 서랍을 열며 말했다.
“9천원입니다.”
“네?”
세희는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저희 8천원어치 먹었는데요…….”
“떡볶이 2인분, 순대 2인분, 튀김 3인분이잖아요.”
“다 2인분으로 시켰는데…….”
“그래요? 그래도 3인분 먹었으면 돈을 내야지.”
순간 상호의 마음속에 어떤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X빨…….’
세희의 걸쭉한 욕.
깜짝 놀란 상호는 달려가서 세희의 손을 붙잡았다. 세희는 이미 패드립을 일발 장전한 표정으로 미친개의 눈빛을 짓고 있었다.
“세희야, 세희야…….”
“아, 네.”
“괜찮으니까 그냥 내. 잘 먹었으면 됐지…….”
장사치의 잇속 챙기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5만 원만 있으면 잠은 잘 수 있으니까. 상호는 그렇게 세희를 달랬다.
세희도 마음을 가다듬고 말없이 계산을 마쳤다.
“가자, 가자.”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를 나오자 마음속에 예경의 생각이 끼어들었다.
‘상호야, 상호야.’
‘네?’
‘세희가 널 엄청 닮은 것 같애~.’
‘……저도 느끼고 있어요.’
상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세희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배가 덜 불렀을까, 먹고 나온 게 방금인데도 태화는 맹수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빨간 눈동자가 멈출 때는 꼭 그 끝에 달콤한 군것질거리가 있었다. 빵이나 과자 따위의.
“야, 세희. 와플 먹고 싶지 않냐?”
“뭘 또 먹어. 배불러 죽겠구만.”
“단 거 먹을 배는 따로 있는 거 몰라?”
그 말에 혜소가 이츠키의 등에 업히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배가 따로 있어요?”
“얘는 똑똑한 줄 알았더니 맹구같은 구석이 있네. 도은율과인가? 하여튼 그런 게 있단다.”
태화는 그렇게 말하고 상호와 눈을 마주쳤다.
먹는 양만 적을 뿐이고 식탐은 교내 제일이다. 상호는 한숨을 쉬고 만 원을 내밀었다.
“가서 사와.”
“앗싸~!”
“하나만 사. 하나만 나눠 먹는 거야.”
“웅~.”
검은 연기가 펑 하고 터졌다.
다시 나타난 태화의 손에는 와플 하나와 거스름돈이 들려 있었다.
“쌤, 아~ 해.”
“안 먹어. 너희끼리 나눠 먹어.”
“그래? 그럼 나 한입.”
“나도 먹을 겁니다.”
“나도 한입, 나도 한입, 나~도 한입~.”
보다 못한 세희가 태화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아야!”
“돼지냐? 혜소 안 줄 거야?”
“쟨 아까 도넛 먹었잖아!”
“그래 너 다 처먹어. 너 다 처먹고 선생님한테 평생 미움 받어.”
“응~, 난 쌤이랑 살림 차려봤어~.”
태화는 세희에게 혀를 쏙 내밀고 혜소에게 와플을 내밀었다.
그렇게 다들 한 입씩 먹은 후. 상호는 시계를 흘끗했다.
시간은 저녁 일곱 시.
“좀 걷다가 슬슬 숙소 찾아보자.”
다섯은 다시 시장 거리를 걸었다.
* * *
“6만원.”
상호와 아이들은 눈을 끔뻑였다.
“……6만원이요?”
“5만원으로 알고 왔는데…….”
“휴일에는 만원 올리거든.”
카운터에 앉은 중년 여인이 담배를 뻐끔거리며 말했다.
“다른 데 가도 다 똑같아.”
“……으음.”
상호는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침음했다.
분식집에서 받은 거스름돈이 천 원. 와플 사고 받은 거스름돈이 8천 원. 안 꺼낸 돈이 5만 원.
5만 9천 원.
딱 분식집에서 뜯긴 만큼 부족했다.
“천원만 깎아 주실 수 없으세요?”
“안 돼.”
여인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태화가 상호의 겨드랑이를 잡아서 들어 올렸다.
“도은호! 전방에 애교 발사!”
상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쪽팔리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따뜻하게 잘 수 있다면.
“일 더하기 일은…….”
“안 돼.”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는 상호의 귀에 태화가 속삭였다.
“계좌이체 앱 같은 거 없어?”
“나 인터넷뱅킹 안 써…….”
“틀딱.”
“……너는 있어?”
“빠떼리가 다 됐엉.”
“임마…….”
“그치만~, 하루종일 걸어다니기만 하고 심심한걸~.”
“그러면…….”
상호가 세희를 돌아보기도 전에 여인이 말했다.
“계좌이체 안 받아.”
“……끄응.”
상호는 결국 돌아서서 여관을 나왔다.
태화는 상호와 함께 걷다가 멀찍이 떨어진 여관을 돌아보며 감자주먹을 날렸다.
“그렇게 장사해서 먹고살겠냐! 앙?!”
“소문나는 게 싫은가 봐. 깎아줬네 탈세하네 소리 듣는 거…… 싫어할 만도 하지.”
다른 곳도 다 똑같다고 한 걸 보니, 같은 지역 같은 업종끼리 교류가 잦은 모양이었다.
주머니 속 5만 9천 원을 만지작거리는데 태화가 꿍얼거렸다.
“그 분식집에서 삥 안 뜯겼으면 편히 자는 건데.”
“와플을 안 샀으면 됐겠지.”
상호는 그렇게 대꾸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그는 길바닥에서 자도 상관없지만, 애들을 길바닥에서 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누구한테든 전화해서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도현에게 걸어 보니 또 받지를 않았다.
‘이 양반이 떡집을 차렸나, 무슨 하루종일 전화를…….’
그래서 민정.
민정도 연결이 안 됐다. 아마 가족들과 보내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해련에게 걸었더니 또 연결이 안 됐다. 아마도 같은 이유일 터.
상호는 마지막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얘는 가족이랑 안 있겠지…….’
역시나, 곧 통화가 연결되었다.
“야, 효은…….”
[찌발럼아아아!]
“…….”
상호는 조용히 통화를 끊었다.
술 취한 인간한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운전도 못 할 거고.
‘요즘 안 마시나 싶더니 나 없다고 바로…….’
하필 이렇게 악재가 겹치나. 그는 한숨을 쉬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얘들아.”
“응.”
“네.”
아이들이 빤히 눈을 마주쳐 왔다. 순진무구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다들 헌터니까…….’
이 정도는 이겨낼 수 있으리라. 여자들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으니. 혜소는 헌터가 아니긴 하지만.
상호는 입맛을 다시고 말을 맺었다.
“노숙하자.”
276. 거지입니다
“추워.”
태화가 몸에 두른 신문지로 코를 쓱 닦았다.
“이불이라도 훔쳐올까?”
“뭘 훔쳐. 헌터면 이겨내야지.”
“마법으로 불 피울까?”
“불나, 임마.”
상호는 혜소를 끌어안고 코를 훌쩍였다.
역 주변 번화가의 좁은 골목. 그와 세희와 태화, 이츠키, 혜소는 실외기 옆 구석에 함께 쪼그려 앉은 채였다.
이츠키가 세희의 어깨에 머리를 누이며 중얼거렸다.
“세희는 유학 같은 거 가면 안 됩니다.”
“응?”
“멋모르고 가면 아주 고생하는 겁니다.”
“……으응.”
세희는 이츠키에게 유학을 권한 장본인이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가을의 밤은 추웠다. 얇은 신문지로는 한기를 조금도 막아내지 못했다. 어른일 땐 술을 먹고 길바닥에서 자도 끄떡없었지만, 이런 아이의 몸으로 그랬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골로 갈 것 같았다.
상호는 가방에서 옷을 꺼내 혜소와 자신의 목에 둘렀다.
태화도 가방을 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구걸하면 안 돼? 길가에서?”
“또 경찰서 갈라.”
이 꼴로 구걸을 했다가는 가출소녀들로 신고당할 게 뻔하다. 아마 또 경찰을 마주하게 될 터였다. 문제 있는 놈들이 하루 재워주겠다며 껄떡댈지도 모르고.
“하룻밤만 참아. 나 원래 몸으로 돌아오면 바로 카드 찾아올 테니까.”
“추워…….”
“더 붙어.”
상호와 아이들은 빈틈없이 꼭 붙었다.
문득 옛일이 떠올랐다. 민정과 단둘이서 설산에 조난당했을 때. 물론 지금이 그때만큼 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추워서 달라붙어 있는 모양이 그때를 생각나게 했다.
‘이 정도는 이겨내야지…….’
그는 코를 훌쩍이며 혜소의 비니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자 혜소가 고개를 슬쩍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코 닦았죠.”
“아니…….”
몸을 한 차례 떨고 옆을 돌아보는데 희한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사카시타.”
“네.”
“안 추워?”
이츠키는 눈을 감은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몸을 떨지도 않고, 옷을 더 걸치지도 않고.
이츠키는 혜소를 향해 더듬더듬 손을 뻗으며 대답했다.
“혜소가 곁에 있으면 따뜻해서 괜찮습니다.”
그 말을 들은 태화가 진지한 표정으로 상호에게 속삭였다.
“저체온증인가 본데?”
“……아니야, 임마.”
“맞다니까? 얘 지금 맛이 갔어. 야, 이츠키.”
태화의 손가락 끝에 검은 불꽃이 작게 피어올랐다.
“뭐가 보여?”
그 말에 이츠키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집이 보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보입니다……, 따뜻하고 단란한……. 코타츠에 스키야키…….”
“성냥팔이 소녀야?”
상호는 그렇게 핀잔을 날리고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혜소가 태화의 불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이거 진짜 불이에요?”
“크흡!”
이츠키가 움찔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난데없이 섬광탄을 맞은 사람처럼.
혜소는 당황하며 손을 내렸다.
“아……, 언니,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눈이 멀어도 살아갈 순 있으니까…….”
“죄송해요…….”
“농담입니다.”
이츠키는 눈을 감은 채로 혀를 쏙 내밀었다.
상호는 장난치는 아이들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희와 눈을 마주쳤다.
세희가 그의 앞머리를 쓸며 물었다.
“피곤하세요?”
“응. 좀 졸리네.”
“먼저 주무세요.”
“으응…….”
오늘따라 상당히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눈꺼풀이 절로 감기는 것이. 아마 어려져서 그런 모양이었다.
일찍 자면 일찍 어른으로 돌아갈 테다. 상호는 그렇게 여기고 얼른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면…… 다 해결되겠지…….’
곧 잠이 찾아왔다.
* * *
다음 날.
다행히 아무도 얼어 죽지 않고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지만, 깨어난 아이들은 그 사실에 감사하지 못했다.
세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상호를 내려다보았다.
“선생님, 선생님.”
상호는 눈을 감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여전한 아이의 모습으로.
옆에서 태화가 심각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야, 천세희.”
“왜.”
“핸드폰 줘봐. 나 배터리 없어.”
“뭐 하려고?”
“찍어야지!”
“…….”
세희는 말없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 했는데. 왜 아직도 아이 모습일까.
‘아직 안 깨워서 그런가?’
일어나면 그때 바뀌는 걸까. 그래서 세희는 상호의 어깨를 살살 흔들어 보았다.
“선생님…….”
“쿠울…….”
상호가 뒤척였다. 헤 벌린 입에서 침까지 흘리며.
태화는 그런 상호를 신나게 찍으며 낄낄거렸다.
“아웅~, 우리 쌤 귀여워 죽겠넹~.”
그때 상호의 손이 옆에서 자고 있는 이츠키에게로 향했다.
“누나…….”
그 모습을 본 세희의 눈에 불꽃이 확 타올랐다.
쫘악
“……켁!”
상호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한데서 잤더니 뼈마디가 쑤시다. 그런데 손등이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세희가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세희야……?”
“도은호.”
“……넵.”
“학생한테 손대지 마.”
“네…….”
“나한테만 해.”
“네?”
상호는 당황해하다가 몸을 내려다보고 더 당황했다.
‘뭐야, 왜 아직도 애야?’
저번에는 안 이랬는데.
이 빌어먹을 저주는 도저히 예측이 되질 않았다. 찾아오는 주기도 제멋대로, 풀리는 시간도 제멋대로. 그는 이를 갈며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끄응…….”
카드도 찾아야 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는 한숨을 쉬고 핸드폰을 꺼냈다.
걸릴 때까지 거는 수밖에.
* * *
“뭐야.”
도현은 아이들의 상태를 보고 당황했다.
아침부터 전화가 쏟아져서 봤더니 상호고, 또 받아 봤더니 웬 어린애 목소리가 들리고. 민정이 예전에 말해 준 걸 떠올리지 못했다면 웬 꼬마애가 핸드폰을 훔쳐서 장난친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어쨌든 도와달라고 해서 달려왔는데.
거지 다섯 명이 골목에 앉아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상호냐?”
“어.”
“대체 무슨 일이…….”
“노숙했어.”
어려진 상호가 신문지로 코를 닦았다.
달랑 하루 노숙했다기엔 너무도 꾀죄죄한 몰골. 도현은 눈을 끔뻑이며 아이들을 쓱 둘러보았다.
그가 이야기를 해본 아이는 두 명.
한 명은 멀뚱히 눈을 끔뻑였고, 한 명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미움을 샀나.’
도현은 세희의 눈빛을 흘리며 물었다.
“노숙? 왜?”
“내 카드를 경찰이 가져가서……, 가면서 말해줄게.”
“카드?”
“사연이 길어…….”
어린애 입에서 늙은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태화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배고파.”
“……밥부터 먹으러 가자.”
상호는 골목을 빠져나와 도현의 옆에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