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유연의 밥은 늘 그렇듯 맛이 좋았고, 나빛도 이번에는 입덧을 하지 않았다. 나빛은 맘껏 먹고 자기 방에 들어갔고, 상호는 설거지를 마친 후 식탁이 놓인 방으로 돌아왔다.
유연이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앉으세요.”
“예. 감사합니다.”
상호는 자리에 앉았다. 앞에 놓인 잔에서 김이 폴폴 피어올랐다.
비싼 차인지 향이 은은하면서도 멀리까지 퍼졌다. 살짝 홀짝여 보니 진하지 않고 적당히 쌉쌀했다.
“잘 끓이셨네요.”
“강 선생님.”
유연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 숨기는 거 있지요?”
“어떤 거요?”
“나빛이에 대해서.”
상호는 가만히 눈을 마주치며 생각했다. 숨기는 것은 많다. 뱃속의 성력. 그리고 천사화.
하지만 그건 상호가 숨기는 게 아니라 나빛이 숨기는 것이었다.
“나빛이한테는 물어보셨어요?”
“아니요.”
“그럼 저도 말씀 못 드려요.”
나빛이 말하지 않는 것을 그가 말할 수는 없다. 아무리 그게 딸의 생사와 관련된 일일지라도.
“나빛이가 숨기고 싶어하면 숨기게 해주세요. 그게 나빛이한테 필요한 거예요.”
“그러면 저보고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는 말인가요?”
“응원을 해주세요. 응원은 몰라도 할 수 있잖아요.”
“어떤 응원을요?”
“기운 없어 보일 때 힘내라고 한마디 해주는 걸로 충분합니다.”
상호는 강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말에 유연이 잠시 찻잔을 내려다보았다가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강 선생님.”
“네.”
“나로한테 들었는데…… 아주 강한 분이시라고.”
“……예에.”
“몬스터를 상대한 경험이 많지요?”
“예.”
“그러면 아이를 길러 본 경험은 있나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럼 강한 사람의 말은 언제나 옳나요?”
“아닙니다.”
“아이는 조금만 잘못해도 엇나가기 쉬워요.”
유연이 엷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어떤 일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응원을 할 수가 없어요.”
“그 말씀도 맞지만…… 고등학생쯤 됐으면 그런 나이는 지났죠.”
아이를 길러본 적은 없어도 아이였던 적은 있다.
“나빛이가 견디는 일들은 평범한 사람은 혼자 견디기 어려운 일들입니다. 어머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그때 엇나갈 수 있어요.”
“그러면 모른 채로 응원만 하란 말인가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상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유연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차를 두어 모금 홀짝이고.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다.
“……모르겠네요.”
그리고 더 말을 하지 않았다.
* * *
“선생님~.”
나빛이 헤실헤실 웃으며 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놀아주세요~.”
“으응.”
상호는 나빛의 말랑말랑한 볼을 양손으로 문질렀다.
시간은 낮. 옷은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선생일을 미뤄두고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나빛을 곁에서 지켜보는 게 더 중요했다. 세희의 수업보다도.
지킬 방법을 아무리 잘 안다 하더라도, 정작 지킬 사람이 없어진다면 전혀 쓸모가 없으니까.
“뭐 하면서 놀까?”
“같이 영화 봐요.”
“그래, 그러자.”
둘은 거실로 향했다.
상호는 소파에 엉거주춤 앉는 나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배가 조금씩 더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고작 하루 만에.
‘꼭 그거 같네. 외계 괴물 영화…….’
그는 입맛을 다시며 나빛에게 리모컨을 건넸다.
“한번 골라 봐.”
그리고 핸드폰을 꺼냈다.
아이들에게서 문자가 몇 통 와 있었다.
-식장 잡고 계십니꺼?
-선생님 태화랑 저는 합동 결혼식으로 합의봤어요
“…….”
할 말을 잃은 그는 핸드폰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돌려놓았다.
TV에서는 나빛이 고른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뮤지컬스러운 가족 영화.
멀거니 집중하고 있는데, 작은 손가락이 어깨를 콕콕 찔렀다.
“선생님, 선생님.”
“응?”
“저어…….”
나빛은 상호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우물거렸다.
뭔가 어려운 부탁이라도 있나. 상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선생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어요?”
상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 그냥 평범했어. 아버지는 직장인. 어머니는 주부. 두 분 다 개벽에 휘말려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한창 사춘기여서 말이 없었고. 나머지 기억들은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잘 안 나.”
나빛의 회색 눈동자가 물기를 머금고 반짝였다.
“그립진 않으세요?”
“그 직후에 너무 바쁘게 살아서 그리울 겨를이 없었어. 지금도…… 내가 그리워하는 시절은 다른 시절이야. 다만…… 만날 수 있다면, 꼭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어.”
“왜요?”
“물어볼 게 산더미라서.”
출생신고도 안 된 애 초등학교 보내려면 뭐 필요해요.
입덧이 심하면 뭐 먹어야 돼요.
애들 돌보는 거 왜 이렇게 힘들어요.
“그래도 뭐…… 나만 그런 건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지.”
상호는 피식 웃었다.
“근데 그건 왜?”
“그냥…….”
나빛도 빙긋 웃었다.
“궁금했어요.”
둘은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쟤는 왜 갑자기 사라져?”
“유령이에요.”
“갑자기?”
“앞에 나왔었는데…….”
“엥.”
“집중하세요!”
“으응…….”
* * *
그날 밤.
상호는 나로의 방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길어지면 안 되는데…….’
천사화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와 효은 둘뿐. 지금은 그가 나빛의 상태를 지켜봐야 했지만, 그렇다고 열 달씩 애들을 놔둘 순 없었다. 세희도 가르쳐야 하고.
‘그래도 배가 빨리 부르는 걸 보면…….’
열 달까지 가지는 않을 듯싶은데.
설마 배가 부르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호는 한숨을 쉬며 손으로 뒤통수를 받쳤다.
그때.
“흐윽…….”
울음소리가 들렸다.
안 그래도 귀에 집중하고 있던 상호는 그 즉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빛의 방에서 나는 소리가 확실했다.
그는 발소리를 죽이고 나빛의 방으로 달려갔다.
“흑…… 흐엉…….”
끊이지 않는 울음소리.
상호는 나빛의 방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나빛아, 괜찮아?”
그러자 방문이 살며시 열렸다.
나빛은 대답하지 않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상호가 다가가자 나빛은 고개를 돌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베개에 눈물 자국이 보였다.
“나빛아, 어디 아파? 배 때문에 그래?”
“선생님…….”
나빛이 울먹였다.
“제가 사람들을 힘들게 해요…….”
상호는 잠자코 들었다.
“선생님도 걱정시키구, 엄마도 걱정시키구…… 오빠도 옛날이랑 달라요. 절 볼 때면 항상 눈이 슬퍼요…….”
조그마한 몸이 가늘게 떨렸다.
“저는 사람들 걱정시키기 싫은데…… 제 몸이 항상 걱정을 받게 해요…….”
“좀 받으면 어때.”
“네……?”
나빛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상호는 나빛의 회색 눈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받으면 어때. 너도 누군가에게 주게 되겠지.”
“저는 걱정받기 싫어요…….”
“나빛아.”
살갗이 거친 손이 하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헌터는 사람을 구하는 직업이라고 했지?”
“네.”
“그럼 헌터는 늘 구하기만 할까?”
“네……?”
나빛이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상호는 나빛의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야. 헌터도 누군가에게 구해질 수 있어. 아니, 오히려 제대로 된 헌터라면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구해지지. 헌터는 사람을 구하기만 하는 직업이 아냐.”
그걸 알려준 사람은 그의 가슴속에 살고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래. 주고 받고. 구하고 구해지고. 네가 지금 이렇게 걱정을 받고, 도움을 받듯이, 너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구할 거야. 네 능력은 특히 그래.”
상호는 이불 속에서 새어 나오는 황금빛을 흘끗했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요 녀석이 널 입덧 같은 걸로 고생시키듯이…… 네가 어머님을 고생시킨다고 해서, 그게 폐라고 생각하진 마. 어머님은 다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으시니까.”
“그런 거예요?”
“그런 거지.”
지금도 문밖에 조용히 서 있으니까.
아마 유연도 잠에 들지 않고 귀를 기울이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걱정을 안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고맙다, 나중에 갚아야지, 그런 생각을 해. 그거면 충분하니까.”
“네…….”
나빛은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다가 상호와 눈을 마주쳤다.
“선생님.”
“응.”
“저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어요?”
“응.”
“제가 선생님도 구할 수 있어요?”
“물론이지.”
상호는 씩 웃고 나빛이 덮은 이불을 토닥였다.
“늦었다. 잘 자.”
“네. 안녕히 주무세요.”
문가로 향하는 그에게 나빛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상호는 자신이 바로 잠들지는 못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문을 살며시 닫고 유연과 눈을 마주쳤다.
“몸이 아픈 건 아니래요.”
“이제는 자기 집처럼 드나드시네요.”
“……죄송합니다.”
상호는 헛기침을 했다.
“제가 안 자고 지키겠습니다. 어머님은 들어가 주무세요.”
“나도 안 자요.”
유연은 팔짱을 끼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호를 노려보았다.
“강 선생님이 손님이니까 가서 주무세요.”
“제가 자동차보다 빠르니까…….”
“필요하면 깨울게요. 주무세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상호는 말을 돌리기로 했다.
“심심하지 않으시겠어요? 차라도 끓여올까요?”
“이젠 제 찬장까지 막 여시게요?”
“죄송합니다…….”
헛기침을 하고 돌아서는데.
“강 선생님.”
“예.”
“나빛이가 아프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상호의 발이 멈칫했다.
“머리도 점점 희어지고, 귀도 잘 안 들리고…… 사람들은 모르는 병이 있다는 걸, 부모라면 알 수밖에 없어요.”
“…….”
“아이가 아픈데도 가만히 볼 수밖에 없는 부모 마음도…… 좀 헤아려 주세요.”
“……예.”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로의 방으로 향했다.
그때.
“으으…….”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이 나빛의 방에서 흘러나왔다.
둘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
* * *
“어떻게 좀 해봐요!”
“아니 임신이 아닌데 어떻게…….”
의사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헌터 협회의 부속 병원. 병실에는 상호가 데려온, 사실상 납치해온 의사들와 신앙인, 마법사들이 쩔쩔매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을 목도한 채.
병상에 누운 나빛이 몸을 웅크렸다.
“으……학…….”
“뭐라도 해 보라구요!”
“태반이 없었다는 건 나올 것도 없다는 소립니다. 유도분만을 해도 의미가……. 여기 내과의 없어요?”
“MRI라도 찍어 볼까요?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저 빛은…….”
“어떡해, 어떡해…….”
유연은 나빛의 손을 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상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효은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었다. 이윽고 통화가 연결되고 졸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야. 시간이 몇 신데…….]
“야, 나빛이가 지금 배가 아프다는데?”
[배가? 어떻게 아픈데.]
“꼭 애가 나올 것처럼, 산통처럼…… 막 아프대. 말도 못 하고 있어.”
[이 X바…… 나도 해 본 적 없어서 모른다니까. 주소 줘봐. 언니랑 갈게.]
“협회 병원이야. 빨리 와.”
곧 통화가 끊겼다.
둘이 온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상호는 계속 입술을 잘근거리다가 사람들을 헤치고 나빛의 옆에 다가갔다.
유연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좀 해봐요, 선생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무정하던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상호는 나빛의 손을 잡았다.
“나빛아. 들려?”
나빛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신음을 내뱉을 뿐.
“으…….”
“너만 해낼 수 있는 일이야.”
상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네가 해내야 해. 네가 그랬지? 항상 돌봐지고,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그런 게 싫어서 내 반에 왔다고.”
유연이 코를 훌쩍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기회가 왔어. 네 힘으로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고통을 이겨낼 기회가 왔다고. 너도 알고 있지?”
“으으…….”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상호는 그런 뜻을 담아 나빛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나빛도 그의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얇은 팔목이 내는 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으……끅…….”
나빛이 눈살을 찌푸리며 온몸에 힘을 주었다. 목에 핏줄이 올록볼록하게 돋았다.
조그마한 몸이 한 차례 경련했다.
“끄으……!”
그리고 마침내.
퐁
나빛의 정수리에서 무언가가 뿅 하고 솟아났다.
‘?’
상호는 얼빠진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하반신 쪽에 잔뜩 집중하고 있었는데. 대체 왜 저기서 나오는지. 아무래도 나빛은 그동안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어디로 나오는지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유연도 상호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대체…….”
둘의 시선이, 병실 안 모두의 시선이 나빛의 머리 위를 향했다.
황금색보다는 훨씬 연한, 병아리와 같은 노란색.
닭을 닮아 매섭게 생긴 병아리보다는, 좀 더 순하고 앙증맞아 보이는.
아기새.
“뺙.”
“…….”
애가 새를 머리로 낳았다.
모두가 할 말을 잃은 와중에 작은 손이 상호의 손을 꼭 잡았다. 상호는 아기새에게서 눈을 떼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나빛이 웃었다.
“헤헤헤…….”
언제 아팠냐는 듯이, 방실방실.
272. 새가 날아든다
삐약 삐약
“…….”
봉진은 멀거니 눈을 끔뻑였다. 밥에 숟가락을 찔러 넣은 채.
유연과 상호의 시선도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삐약
아기새.
쉴새 없이 지저귀고, 포르르 날갯짓을 하기도 하는 아기새. 나빛의 머리 위에 앉은 모양이 꼭 병아리 위에 병아리가 앉은 것 같았다.
“그니까…….”
봉진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저 뱁새 같은 걸…… 네가 낳았다고?”
“네~.”
나빛이 헤헤 웃으며 아기새를 쓰다듬었다. 볼록 튀어나왔던 배는 다시 날씬하게 들어가 있었다.
알을 낳았다면 차라리 덜 놀랐을 것이다. 뭔 사람이 직통으로 새를 낳는단 말인가. 봉진은 설명을 구하는 눈빛으로 상호와 유연을 돌아보았다.
상호가 입맛을 다셨다.
“인체의 신비죠.”
“…….”
“생각만으로 생명을 만들어 내는…….”
“…….”
손자도 아니고, 손녀도 아니고. 손조. 혹은 손추.
봉진은 생각을 포기했다.
“몸은 괜찮고?”
“네.”
“그럼 됐다.”
“헤헤…….”
나빛은 방글거리며 미역국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