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어딜 싸돌아다니다 온 거야?”
“……죽을 뻔했어.”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신발을 벗었다.
“애들이 팔다리를 찢으려고 해서.”
“뭔 소리야? 너 또 환각 봤어?”
“……원래 몸으로 돌아가면 너부터 혼내줄 거야.”
“해봐. 토끼새끼야.”
효은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충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지며.
혜소도 외투를 챙겨 입었다.
“어디 가?”
“언니랑 설미랑 미진이랑 밥 먹으러. 너도 준비해. 집에서 청승맞게 혼자 먹기 싫으면.”
“아니, 나는…….”
설미는 그의 상태를 모르고, 미진은 그의 정체를 모른다.
“됐어. 혼자 먹을래.”
“숨길라고? 왜 숨기는 거야? 어차피 언젠간 들키게 될 텐데.”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됐어, 븅신아. 같이 가. 니 한정식 먹고 싶다고 해서 한정식 먹기로 했어.”
효은이 툴툴거리며 그에게 어린이 외투를 입히려고 했다. 상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 외투를 뺏어 들었다.
“내가 애기냐? 옷은 혼자 입게 놔둬.”
“애새끼가 뭐라는 거야.”
효은은 기어코 그에게 외투를 입혀 지퍼까지 올리고는, 어깨를 툭툭 털며 매무새를 가다듬어 주었다.
꼭 아들을 대하는 것 같았다.
“됐다. 가자.”
이제는 손까지 잡고 걸으려 한다. 상호는 어색하게 효은의 손을 잡았다.
모양이 완전히 어린애였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되어버릴 것 같네…….’
‘괜찮아! 귀여우니까! 어른 상호는 누나가 기억할게!’
‘누나는 이미 누나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 같아요…….’
‘꺄악! 상호야, 저기 신발장 옆에 거울! 거울 봐줘! 우와, 언니가 옷을 잘 샀네~.’
‘하…….’
곧 세 사람과 한 영혼이 방을 나섰다.
* * *
“은호?”
설미와 미진이 어리둥절해했다.
“은율이 동생이라구?”
“……네.”
상호는 일부러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눈빛으로.
옆에서 효은이 같잖다는 듯이 그를 꼬나보고 있었지만, 상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왜 누나는 같이 안 왔어? 같이 먹지.”
“누, 누나랑 사이가 별로 안 좋아요.”
“그래? 은율이는 동생한테 잘해줄 줄 알았는데……. 근데 효은이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
“그냥, 학교 돌아다니다가…….”
“민정이 언니 보러 왔다고 하지 않았니?”
“누나도, 학교 돌아다니다가 친해져서…….”
개소리의 향연이 펼쳐졌지만, 둘은 절대로 상호가 어려졌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어떤 개소리보다도 더 개소리 같은 이야기이기에.
설미는 어떻게 잘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 옆에서 민정이 쓴웃음을 지었다.
밑반찬이 많았다. 달게 조린 호박도 있고, 튀김도 있고, 작은 파전도 있고. 상호는 파전을 집어 혜소의 앞접시에 놓았다.
“자. 많이 먹어.”
“네.”
그 말에 설미와 미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혜소야?”
“네?”
“은호한테도 존댓말 쓰는 거야?”
벌써 찾아온 위기에 상호의 눈동자가 덜덜 떨렸다.
다행히 혜소는 눈치 빠르게 대응해 주었다.
“네. 저는 원래 반말 아예 안 써요.”
“그렇구나…….”
“신기하네.”
두 교사는 의문을 거두고 수저를 집었다.
“이거 맛있다. 언니 이거 먹어 봐요.”
“응. 맛있네. 은호도 먹어 볼래?”
“네…….”
“상호……는 왜 안 왔어?”
설미의 물음에 미진이 콧방귀를 뀌었다.
“여자 모임에 남자가 와서 뭐해요.”
“그래도 효은이 애인인데……. 같이 먹어도 괜찮지 않나 싶어서.”
“그 사람은 좀 혼자 먹어도 돼요.”
“하긴, 미진이한텐 완전 맞상사니까……. 불편할 수도 있겠다.”
“아뇨, 그게 문제가 아니라…….”
미진이 효은을 흘끗하며 입을 닫았다. 남의 애인 험담을 하기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러자 효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말해봐. 그 븅신 아무데나 껄떡거리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
상호의 숟가락이 조금씩 흔들렸다.
효은의 말에 용기를 얻었을까. 미진이 한숨을 폭 쉬고 말문을 뗐다.
“그게…….”
“응.”
“강 선배가, 제 어깨를 자꾸 주물러서…….”
상호는 미진이 더 말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야기는 그칠 기색이 없었다.
“일하고 있으면 뒤로 슬쩍 다가와서 어깨부터 잡아요. 남들 없는 시간에 특히……. 은근히 제 속옷을 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머, 진짜? 싫다고는 해 봤어?”
“했어요. 하지 말라고도 하고, 참다 못해서 뺨도 때렸는데……. 그래도 그래요.”
“……오호.”
효은이 상호를 곁눈질하며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상습범이었다 이거지?”
“네.”
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젓가락이 떨려서 음식을 집을 수가 없었다. 두부는 찢어지고, 콩자반은 떨어지고.
옆에서 혜소가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오해하고 있구나…….’
그래서, 아저씨는 그런 쓰레기가 아니라는 뜻을 담아 식탁 아래로 혜소의 손을 꼭 잡았는데.
“……으.”
혜소가 진저리를 치며 손을 쏙 빼냈다. 더러운 것이라도 닿은 듯이.
상호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그냥…… 하루종일 앉아서 일하는 게 고마워서…… 그런 건데…….’
돌처럼 굳어버린 그에게 설미가 물었다.
“은호 왜 더 안 먹어?”
“애 입맛엔 별로겠죠.”
“혜소는 잘 먹는데……. 애들 메뉴 있나?”
“있네요. 어린이 돈까스.”
“벨 누르자.”
상호는 뭐라 하지도 못했다. 충격을 받아서.
요리사 중에 헌터라도 있는 걸까. 돈가스가 그의 앞에 놓이는 데에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
하염없이 포크만 만지작거리는 그를 놔두고, 어른들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근데 강 선배 다리 다 나았죠? 그거도 잘 해요, 이제?”
“아니. X나 못해. 미더덕이 이제 움직이는 미더덕이 된 거지.”
“X급 헌터면서 왜 그건 못한대요?”
“싸움만 X급이고 밤에는 폐급이야.”
효은의 말에 예경의 영혼이 발끈했다.
‘아니야! 우리 상호 잘 한단 말이야! 조금 일찍 끝나긴 하지만!’
‘누나, 나 죽을 것 같아요…….’
‘맞아, 딱 그 말 많이 했었어.’
‘아니 진짜 죽을 것 같다고…….’
상호는 어린이 돈가스를 깨작이며 코를 훌쩍였다. 자신을 편들어주는 여자들은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 것 같았다.
‘다 이상해……. 다…….’
돈가스에서 눈물 맛이 났다.
265. 수업 견학
‘돌아왔네.’
다시 어른이 됐다. 상호는 칫솔을 들고 거울 속의 자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다행히 자고 일어나니 저번처럼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주기가 변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기간이 일정하면 그래도 익숙해지기 쉬울 것이다. 그는 그런 바람을 품고 열심히 양치를 했다.
오늘은 혜소에게 학교 수업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어제 식당에서 받은 오해를 만회할 겸 해서.
“이우이 어애?”
“오아으어에여.”
옆에서 함께 양치를 하던 혜소가 양칫물을 뱉고 대꾸했다. 세면대가 키보다 높아서 상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뭐라고 하셨어요?”
“기분이 어때? 학교 처음 가보는 거잖아.”
“가봐야 알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빨리 가자.”
상호는 혜소를 내공으로 들어 올리고 함께 세수를 시작했다.
* * *
“얘들아. 쌤 왔다.”
“와써? 오옷, 빡빡이도 왔네.”
태화가 혜소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교실로 들어선 상호는 혜소를 안아 들고 교탁 앞에 섰다. 그러자 아이들의 시선이 그의 품에 안긴 혜소를 향했다.
미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누구예요?”
“친구 딸.”
단비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친구 딸을 납치한 거예요?”
“……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야?”
“그치만, 멍…… 선생님한테 딸을 왜 맡겨요? 수업해야 하는데…….”
“다 사정이 있어. 자, 혜소야. 언니들한테 인사 한번 해 줘.”
“안녕하세요.”
상호의 품에서 혜소가 고개를 꼬박 숙였다.
그런데 문으로 들어설 때부터 이츠키가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기웃했다.
“사카시타? 졸려?”
“아닙니다. 눈이 부셔서.”
이츠키는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대답했다. 확실히 졸린 모습은 아니었다.
눈이 부시다니 무슨 말일까. 고민하던 상호의 머릿속에 계전추모관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주술을 보는 눈.
그는 혜소를 내려주고 말했다.
“혜소야. 저기 저 언니 뒤에 가 있어.”
“네.”
혜소는 아장아장 걸어 이츠키의 뒤로 향했다.
1교시와 2교시는 실내 수업. 3교시부터는 다시 세희 위주의 전투 수업. 상호는 교과서를 교탁에 올려놓고 문가로 걸어갔다.
“의자 가져올게. 잠깐만 기다려.”
“네.”
아이들도 교과서를 꺼내며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 * *
“이 거대괴수들은 일종의 골렘이야.”
몬스터 생태 수업. 상호는 칠판에 물백묵을 끼적였다.
“그래서 몸 어딘가에 마나의 전달을 담당하는 신경망과 동력원이 있어. 마나를 잘 느껴보면 심장보다 찾기 쉽지. 그 동력원을 파괴하는 게 거대괴수 토벌의 핵심이야.”
“야, 빡빡아. 이리와봐.”
“다만 마을만한 초거대 괴수를 상대로는 이 동력원을 찾기가 쉽지 않아. 일반적인 헌터에게는……. 그래서 지금까지 토벌된 거대괴수의 자료를 토대로 동력원의 위치를 추정하는 거야.”
“와 씨, 머리 느낌 개좋아.”
“이 GB-157번은 내가 상대해본 놈인데, 교과서 13페이지야. 이놈은 보다시피 앞발이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고, 굽은 등에 촉수가 있어. 그러면 동력원은 어디에 있었을까?”
“등이요!”
“그래. 거대괴수는 말 그대로 거대한 괴수이기 때문에 항상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놈들을 공격하게 되어 있어. 그런데 등에, 위쪽에 촉수가 있다? 그거는 거기에 급소가 있다는 거…….”
“까슬까슬해!”
“……야!”
참다못한 상호는 아이들이 앉은 곳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쏜살같이 날아간 물백묵이 태화의 이마를 콩 때리고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크악! 토벌당함!”
“엎드리지 마, 임마. 혜소도 놔줘. 그리고 빡빡이라고 하지 말랬지!”
“고작 단어일 뿐인데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관념을 부여하는 사회의 행태에…….”
“말 돌리지 마!”
“빡빡이도 세종대왕님이 만든 한글이야!”
태화가 당당하게 소리쳤다.
“한글의 창조신! 만원의 지배자! 더 엠퍼러 세종카이저가 만든 우리말이라고!”
“언니, 엠퍼러는 더가 아니라 디야.”
“……디 엠퍼러 세종카이저의 유산이라고!”
“하…….”
상호의 입에서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협회에서의 일이 있었던 후로 폭주가 더 심해진 느낌이었다. 혼내기는 더 힘들어졌고.
그렇지만 수업을 위해서는.
“야.”
그는 순식간에 태화의 앞에 다가가 딱밤을 장전했다.
“너 이마 대.”
“딸 쳐?!”
“어. 딸 쳐. 이건 사랑의 매라서 괜찮아.”
“그럼 친히 맞아주지.”
빠아악
“……크아아악!”
“제발 선생님 말 좀 들어라.”
“그치만! 빡빡 밀었으니까 빡빡이라고 하지!”
“혜소라는 이름이 있잖아.”
“이름으로 부르면 정없어.”
태화가 아이들을 한 명씩 가리켰다.
“삼좌, 흰둥이, 깜둥이, 멀대, 쪽바리, 보드카 배달부, 이과충, 보신탕, 공룡, 양아치, 우리반 벙어리, 개눈깔, 젖소…….”
“우리반 벙어리는 뭐야? 다른반 벙어리도 있…….”
상호는 묻다가 답을 깨달았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태화를 노려보았다.
“다혜냐?”
“벙어리도! 세종카이저가 만든!”
“너 씨…… 이리와. 따라나와. 진짜 혼 좀 나자.”
“시러!”
“나오라고!”
“시러시러시러~!”
상호는 자리에 엎드려 뻗대는 태화를 책상째로 들어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혜소는 둘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세희를 돌아보았다.
“항상 저래요?”
“응. 늘 저래.”
“저는 언니들이 아저씨 말 잘 듣는 줄 알았는데…….”
“쟤만 드럽게 안 듣는 거지.”
“고생하시네요. 아저씨도.”
그 말에 세희는 빙긋 웃으며 혜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고생하시지.”
혜소는 눈을 깜작였다.
아이라고 하면 다들 자기처럼 어른 말을 잘 들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선생님이란 일도 별것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상상과는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세희가 물었다.
“혜소야.”
“네?”
“수업 끝나면 매점 같이 가볼까?”
“매점이 뭐예요?”
“가게야. 학교에 있는 편의점 같은 거. 가서 한번 구경해보자.”
“좋아요.”
혜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복도에서 태화가 빽 소리쳤다. 본관이 온통 울리도록.
“강쌤이 딸친다아아아악!”
“야, 임마!”
무언가를 쫙 후려치는 소리가 났다.
* * *
“야, 천세희.”
“뭐.”
“쌤이 내 엉덩이 침.”
옆으로 다가선 태화가 얼굴을 들이밀며 실쭉 웃었다.
“부럽지?”
“별게 다 부럽네.”
“부럽잖아.”
“참나…….”
세희는 자꾸 달라붙어서 치근덕거리는 태화를 콧방귀를 뀌며 밀어냈다.
둘이 있는 곳은 매점. 옆에서는 혜소가 빵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맛있어?”
“네.”
“너도 팥빵 좋아해?”
“네. 생크림 같은 건 별로예요.”
그 말을 들은 태화가 혜소에게서 슬금슬금 물러났다.
“얘 아기 아닐지도 몰라.”
“뭐래.”
“쌤처럼 어려진 거 아냐?”
“우리 반에서 팥 싫어하는 거 너밖에 없거든?”
혜소가 거들었다.
“마귀가 팥을 싫어한댔어요.”
“대머리는 공짜를 좋아하지.”
태화가 엄숙한 표정으로 빵을 혜소의 비니에 집어넣었다.
“공짜란다.”
“감사합니다.”
“본좌가 친히 하사하는 것이니 아껴 먹도록.”
“네.”
“넌 근데 애가 왜 이렇게 늙었냐?”
“몰라요.”
세희는 도란거리는 둘을 놔두고 창밖을 돌아보았다.
다음 교시인 2교시까지가 실내 수업. 3교시부터는 실외 수업.
곧 힘든 수업을 시작해야 했다.
‘그래도, 선생님도 힘드실 테니까…….’
세희는 힘을 내기 위해 빵으로 배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