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9화 (269/501)

* * *

“점심 잘 먹고…….”

상호는 의자에 올라선 채로 교탁에 손을 얹었다.

“선생님은 따로 먹을 거니까 괜히 찾지 말고…….”

“에이, 왜요~.”

나빛이 방긋 웃었다.

“오랜만에 학교 오셨는데 같이 드세요~.”

“안 돼. 다른 반 애들이 보잖아.”

그는 단호하게 손을 저었다.

아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안 그래도 X급인 게 드러나서 관심이 쏠려 있는데, 이 꼴이 나 있는 것까지 알려지면 감당이 안 될 터였다.

“쌤은 수녀님이랑 먹고 올게. 다들 맛있게 먹어.”

“네에…….”

나빛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호도 웬만해선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안 되었다.

“주말에 같이 먹자. 응?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네.”

“갈게. 오후에 보자.”

상호는 그제서야 아이들에게서 벗어나 교실을 나올 수 있었다.

꼬마가 고등학교 복도를 걷고 있으니 시선이 유난히 달라붙었다. 그래도 절름발이일 때보다는 걷는 속도가 빨라 학생들의 눈 밖으로 서둘러 도망칠 수 있었다.

계단을 달려 내려가자 뒤에서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저 애 누굴까? 누구 동생인가?”

“그렇겠지? 근데 되게 귀엽다. 누나가 누굴까?”

“강쌤이랑 되게 닮았는데, 강쌤 동생 아냐?”

“와 씨, 진짜면 난 납치할래.”

상호는 순간 삐끗해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무서워 죽겠네…….’

그래도 어찌어찌 학교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기숙사로 달려가니 효은이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민정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는지 크게 놀라지는 않는 눈치였다. 상호는 습관적으로 운전석을 향하며 물었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뭐 먹으러 갈까? 양식?”

“나와, 멍청아.”

운전석에 오르려는 그를 효은이 안아 들었다.

“애새끼가 무슨 운전이야. 뒷자리에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

“아, 맞네.”

상호는 머쓱해서 머리를 긁으며 뒷좌석에 올랐다.

“혜소는 어떻게 했어?”

“언니한테.”

“미안, 운전 못하게 돼서…….”

“잘됐지 뭐. 어차피 운전 드럽게 못하는데.”

효은은 콧방귀를 뀌고 핸들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뭐 먹을 거야. 네가 정해 봐.”

“글쎄. 정 없으면 주변에 한번 둘러보고…….”

“너 근데 주머니에 뭐냐?”

“응?”

상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가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사탕들을 발견했다.

“아, 이거. 교장선생님이 주셔서…….”

“그걸 또 받아서 갖고 있어?”

“그럼 어떡해. 버리기 아깝잖아.”

“완전 애가 됐네. 젖 물려 주랴?”

“……됐어. 밥이나 먹자고.”

차는 아직도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교문을 지나 도로로 나왔다.

학교 주변 상가를 돌아다니다 보니 낙지볶음을 파는 식당이 보였다.

“저긴 어때?”

상호가 그 가게를 검지로 가리키자 효은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 매운 거 먹을 수 있냐?”

“얘가 진짜 날 애 취급하네. 당연히 먹지. 너보다 잘 먹을걸.”

“그래?”

효은은 핸들을 돌려 그 가게로 향했다.

“그럼 한번 먹어 봐.”

* * *

‘……매워!’

상호는 찬물을 꼴딱거리며 휴지로 이마를 닦았다.

몸이 어려지니 혀가 초기화됐는지 매운 것에 훨씬 약해져 버렸다. 쪽팔려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입속이 얼얼하고 벌써 속이 쓰렸다.

반면에 효은은 멀쩡한 얼굴로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효은이 입에 든 것을 삼키고 물었다.

“맵냐?”

“……아니.”

“그러게 왜 객기를 부려?”

“먹을 만해.”

“입에 묻은 거나 닦으셔.”

상호는 헛기침을 하고 휴지로 입을 닦았다. 입이 작아져서 그런지 자꾸 입가에 빨간 국물이 묻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효은이 물었다.

“너 계속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

“몰라. 술자를 죽이거나 더 강한 주술사를 찾아야 할 것 같다는데.”

“언제 그렇게 됐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이랬어.”

“너 근데 밤에 어디서 잤냐? 술 마시러 간 거 아니야?”

“……길바닥에서.”

“아주 인간이 망가졌네.”

효은은 혀를 차고 상호의 앞접시에 낙지볶음을 덜었다.

“하루아침에 그렇게 됐다는 거는 하루아침에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거 아니야?”

“그건 주술을 건 놈밖에 모르겠지.”

상호는 한숨을 쉬고 밥을 깨작였다. 낙지볶음은 매워서 더 못 먹겠고 맨밥만.

“애들은 나 이렇게 된 거 엄청 좋아하더라. 누나들도 그렇고…….”

누나들. 그는 예경과 민정을 말한 것이었는데 효은은 다르게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누나들? 설미?”

“아니. 설미 선생님은 몰라. 미진 씨도 모르고.”

하루종일 교무실에 안 갔다. 교과서나 준비물이 필요할 때는 은율을 시켰다. 덕분에 설미는 상호의 상태를 전혀 몰랐고, 미진도 여전히 그를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지금 내 상태 아는 사람이 민정 누나, 너, 교장선생님, 우리 반 애들. 이렇게만이야.”

“그럼 왜 누나들인데?”

효은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가 상호를 향했다.

“너 혹시…….”

“……안 미쳤어.”

“또 언니 귀신 보이냐?”

“아니라고.”

상호는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속에서는.

‘상호귀여워어어어!’

효은이 말한 그 언니 귀신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숟가락에 비친 상호도 귀여워! 물컵에 비친 상호도 귀여워! 그냥 다 귀여워! 어린 상호 너무 좋아아아!’

아주 인간이 망가졌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상호는 엷게 한숨을 쉬고 식당 유리창 밖을 쳐다보았다.

‘누나,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그치만…….’

예경이 싱글벙글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상호 어린 얼굴 보면, 상호랑 나랑 결혼했을 때 어떤 아이를 낳았을지 상상이 돼서……. 너무 좋아.’

그 말을 들은 상호는 눈물이 핑 돌았다.

“……효은.”

“응?”

“손거울 있어?”

“거울? 있지. 줘?”

“응.”

효은이 손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건넸다.

상호는 그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풍파를 처맞기 전의 똘망똘망한 눈망울, 오밀조밀한 코와 입, 보들보들한 피부.

예경이 잘 볼 수 있도록, 이리저리 자세히 살폈다.

‘좋아요?’

‘응!’

예경의 밝은 목소리에 상호는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얀 손이 그에게서 거울을 우악스럽게 뺏었다.

“……응?”

고개를 들어 보니 효은이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넵.”

“병원 가자.”

“저 수업해야 되는데요…….”

“야.”

효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히기 시작했다.

“가자고. X발아.”

“주말…… 주말에 갈게요.”

“수업이 중요하냐 이 새끼야! 너 요즘 진짜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너 볼때마다 미친 것 같아서 나 무섭다고! 으헝헝헝…….”

“미안…….”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우는 효은을 끌어안아 토닥이며, 상호는 깊은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

‘영혼을 꺼내서 보여 줄 수도 없고…….’

대체 어떻게 해야 모두가 웃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오늘도 존재하지 않는 답을 찾아 헤매며 쓰린 속을 찬물로 달랬다.

258. 돌아오다

“헤헤헤…….”

나빛이 헤벌쭉 웃으며 핸드폰 화면의 버튼을 눌렀다.

“선생님~. 웃어요, 웃어. 헤헤헤…….”

“……으응.”

“헤헤헤, 해봐요. 헤헤헤…….”

“헤……헤.”

상호는 나빛의 무릎에 앉은 채로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6교시. 원래대로라면 야외 수업 대신 실내에서 몬스터 수업을 하고 있었겠지만, 아이들의 등쌀에 못 이겨 교실 한가운데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었다.

지켜보던 지윤이 한마디 했다.

“마. 고마 나오라, 임마.”

“싫어!”

나빛이 상호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외쳤으나.

“나오라고!”

태화가 가세해 나빛과 의자를 떼어놓았다.

상호는 주변을 둘러보며 진땀을 흘렸다. 자신을 둘러싼 2학년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1학년들.

자신을 구해줄 사람은 없는 듯했다.

‘에이, 그래. 이미 한 번 찍은 거…….’

공평하게 빨리 다 찍고 수업하자. 상호는 애써 웃으며 태화의 무릎에 앉았다.

“빨리 찍자. 빨리.”

“오옷, 드디어 날 편애하는 거야?”

태화가 음흉하게 웃으며 그를 꽉 끌어안았다.

“어때? 어깨 쪽이 푹신하지?”

“응, 푹신하네. 허리 쪽이.”

“어깨.”

“허리.”

“어깨.”

“허리.”

“어깨.”

“허리.”

“어깨!”

“허리.”

“스으으읍…….”

태화의 명치가 상호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어깨! ……커헉!”

“혼자 뭐하냐?”

상호는 한숨을 쉬고 태화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빨리 찍고 일어나.”

“아, 쌤. 나 그거 해줘.”

“뭔데?”

“손으로 브이해서 볼에 붙여봐.”

상호는 시키는 대로 했다.

“볼 부풀려봐.”

“……못해.”

“에헤이, 해봐!”

‘X바…….’

여장도 했는데 뭘 못하겠나. 상호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볼을 부풀렸다.

태화가 낄낄거리며 핸드폰 화면의 버튼을 눌렀다.

“우리 쌤 졸귀탱이네~.”

“내가 흰머리 나면 다 너희들 때문이야.”

“아웅~, 귀여웡~.”

“하…….”

그는 눈물을 삼키며 태화의 무릎에서 내려왔다.

“다음…… 사람…….”

* * *

그렇게 2학년들과 한 번씩 찍고, 마지막엔 1학년들까지 끼워 단체사진을 찍었다.

상호는 미래의 로봇 장갑에서 인화되어 나오는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옆에서 아이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귀여워~.”

“작아~.”

“이제 이거 문 옆에다 붙여 놓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강상호 없는 강상호반으로 보일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앞문으로 나가 문 옆 액자에 사진을 끼워 넣었다.

‘저걸 미진 씨가 봤다간…….’

큰일 난다.

종례 후에 치워야겠다. 상호는 속마음을 숨기려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의자를 들고 교탁으로 걸어갔다.

“자, 종례하자.”

의자에 올라서자 밖에 있던 아이들이 후다닥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실내수업이라 고생은 별로 안 했지만…….”

그는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그래도 그동안…… 고생시켜서 미안해.”

“네?”

단비가 안절부절못해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뭐예요, 멍. 왜 또 멀리 가는 것처럼 이야기해요…….”

나빛도 울먹이며 성력으로 밧줄을 만들었다.

“또 가요? 왜요? 저 이제 선생님 못 보내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다시 한번 말하는 거야.”

상호가 쓰게 웃자 아이들이 또 가슴을 부여잡았다.

“웃지마! 심장터져!”

“헤헤헤, 코피 터진다. 헤헤헤헤…….”

“그래, 안 웃을게…….”

“울지마! 심장터져!”

“어떡하라고…….”

상호는 한숨을 쉬고 조그마한 손으로 교탁을 통통 두드렸다.

“어쨌든, 원래는 너희한테 앞으로는 미진 선생님을 더 많이 볼 것 같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어려져서. 없던 일이 되어버렸네.”

“잘 된 거네요?”

“……으응, 뭐 그런 면도 있지.”

“와~.”

나빛이 방긋 웃으며 작게 박수를 쳤다.

아이들에겐 아마 악마와 전쟁에 대한 걱정이 없을 것이다. 그저 담임이 멀쩡히, 아니 다리까지 고쳐서 돌아와 줬다는 것이 좋기만 한 모양이었다.

상호도 그 편이 더 좋았다.

“당분간 어디 안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제 다시 시험 준비해야지. 예현제도 있고.”

그는 빙긋 웃었다.

“그러니까 내일 보자.”

아이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차올랐다.

“선생님…….”

“쌤예…….”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또 은근슬쩍 안으려고 하는구나.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의자에서 내려왔다.

“그래. 안아라, 안아…….”

“일루와앙~, 누나들이 이뻐해줄께~.”

“연상이 좋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그래. 너희 말이 다 맞아. 에휴…….”

세희, 태화, 나빛, 지윤, 미래, 단비. 은근슬쩍 다가온 이츠키와 은율, 그리고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리까지.

상호는 다 포기하고 아이들을 마주 끌어안았다.

“우왓, 쌤 은근슬쩍 얼굴 비벼!”

“……무슨 소리야!”

“그렇게 내 품이 좋아? 이리 와! 가슴팍에 딱! 안겨 보라고!”

“야, 야……!”

“괜찮아! 맘껏 비벼! 아니면 내가 안아 줘? 요렇게? 요렇게?”

“숨막……!”

그의 목소리는 살덩이에 파묻혀 사라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