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8화 (268/501)

* * *

“교장선생님.”

“꺅! 강 선생?! 뭐야뭐야뭐야?!”

“……안녕히 계세요.”

상호는 문을 닫아버리려고 했지만, 바람처럼 달려온 해련이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그를 덥석 안아 들었다.

눈이 별을 뿌려놓은 듯 반짝반짝 빛났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어려졌어요? 말도 안 돼!”

“교장선생님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치만!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지? 어머, 어머…….”

해련은 상호를 소파에 내려놓고 허둥대다가, 책상으로 달려가 막대사탕을 꺼내 상호의 손에 쥐여주었다.

“자!”

“제가 대가리도 애가 된 건 아니라는 거 아시죠?”

“알지, 물론. 그냥 하나 먹어요.”

“……예에.”

상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사탕을 입에 넣었다.

“교장선생님.”

“응?”

“걱정은 안 되세요?”

“당연히 되지.”

해련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열 살 어린애랑 결혼을 할 수는 없다고요.”

“……그쪽 말고요. 만약 지금 악마가 쳐들어오게 되면 큰일 나는 건데, 이렇게 하하호호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뭐야, 내공을 못 쓰게 된 거예요?”

“네.”

“아하.”

해련이 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일단…… 몸이 이렇게 된 이유가 뭐예요?”

“마법은 아니래요. 그러면 주술밖에 없는데, 아마 그 악마놈이 이렇게 만든 것 같아요.”

“……주술이라.”

둘의 눈이 마주쳤다.

“주술을 푸는 방법은…….”

“예. 술자를 죽이거나.”

“더 강한 주술사에게 부탁하는 방법밖에 없죠.”

해련은 한숨을 쉬었다.

“당장은 불가능한 방법밖에 없네요.”

“예.”

“그러면 강 선생이 우리한테 악마를 상대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밖에 없겠네요.”

“예.”

“어떻게 하는 거예요?”

“내공에…….”

상호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미친 새끼 취급받을까봐.

해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왜 그래요?”

“아니, 잠시 생각 좀 했어요. 그러니까…… 내공에, 영혼을 담는 거예요. 초혼강기라고 해서…….”

“내공에 영혼을?”

역시나 어리둥절해하는 반응이 나왔다.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저도 잘 몰라요.”

“네?”

“저도 어쩌다가 한 거라…….”

설명하라고 하면 방법이 없다. 정말 얼떨결에 한 일이라.

머리를 긁적이는 상호를 해련이 벙벙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게 다예요?”

“네.”

“알겠어요. 그럼 그건 됐고……. 수업은 어떻게 할 거예요? 쉴 거예요?”

“아뇨, 애들 보고 싶어서, 실내수업만이라도 하려구요.”

“아, 강 선생한텐 2학기 첫 수업인가. 그래요. 바로 들어가요?”

“네.”

상호는 그렇게 대답하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가보겠습니다.”

“강 선생, 잠깐만.”

“네?”

곧 상호의 손에 사탕 한 다발이 쥐어졌다.

“…….”

“가면서 먹어요.”

해련이 씩 웃었다.

누가 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줄 알겠다. 상호는 두 손 가득한 사탕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문가로 걸어갔다.

“안녕히 계세요.”

“응~. 아이구, 인사도 참 잘하네.”

“제가 대가리도 애가 된 건…….”

“알아, 알아~.”

“에휴…….”

* * *

드디어 도착한 교실 문 앞.

상호는 막대사탕을 입에 문 채로 문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꼴만 아니었어도 엄청 기뻤을 텐데.’

지금은 적당히 기뻤다.

태화를 데리고 도망치는 동안 쭉 그리웠던 장소. 악마와 싸우면서 다시는 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장소.

여기에 다시 설 수 있다는 사실에 눈물마저 찔끔 새어 나왔다.

‘아오, 이 꼴로 울면 안 되는데…….’

그는 눈물을 닦고, 매무새를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고 교실 문을 열었다.

“선생니이이이이……?!”

기세 좋게 지르던 외침은 곧 의아함으로 흐려졌다.

“……누꼬?”

지윤이 쫙 펼쳤던 팔을 어색하게 내렸다.

헬리콥터처럼 돌아가던 단비의 꼬리도 멈추고, 성력으로 만든 꽃가루를 뿌리던 나빛의 손도 멈췄다.

나빛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애기다.”

“누구야? 아는 사람 있어?”

“없는 거 같은데.”

“어? 눈에 흉터…….”

미래의 말에 태화가 벌떡 일어났다.

“강상호 주니어다! 미래에서 찾아온 내 아들이야! 아드으으을!”

“비켜, 넌. 그래서 왜 왔어, 친구야?”

세희가 태화의 꼬리를 잡아채고 물었다.

상호는 자신을 향한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목이 잠겨 있었다.

“얘들아…….”

울먹이는 소리가 났다.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고, 울지는 않았지만 자꾸 콧물이 나왔다. 상호는 코를 훌쩍이며 아이들에게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러자 아이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선……생님?”

“쌤예?”

“응, 나야…….”

“……진짜요?”

그 말에 아이들은 반신반의하는 듯하다가, 상호의 흉터를 다시 한번 쳐다보더니.

“꺄아아아아──!”

뒤집어졌다.

“뭐야뭐야뭐야뭐야! 쌤 뭐야! 졸귀탱이자나아아!”

“헤, 헤헤헤, 선생님. 누나라고 불러보세요, 누나…….”

“뭡니꺼, 쌤예. 이렇게 귀여우면 우짜라는긴데예!”

상호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뭘 귀여워 임마……. 너희보다 여섯 살 더 먹은 어른인데.”

하지만 그의 붉어진 얼굴을 본 아이들은 이제 자리를 박차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늘 수업은 때려치는 겁니다.”

“네!”

“선생님, 저희 매점 가요.”

“얘들아……?”

상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교실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내공을 운용하지 못해 발이 굼뜨기도 했거니와 어느새 달려온 세희가 문을 닫아버리는 통에 도망치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커진 아이들이.

나빛이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선생님.”

“으, 응……?”

“내공 못 쓰시나 봐요, 헤헤…….”

“어, 응, 맞아……. 근데 그건 왜?”

태화가 입술을 살짝 핥았다.

“왜긴 왜야. 이리 와. 안아줄게.”

“뭘 안아! 저리 가,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수업 준비나 해.”

“반항하는 것도 귀여운데, 선생.”

“버릇없이 이럴래! 진짜 혼난다! 가서 앉……!”

“선생님~.”

“쌤예~.”

“……으아아악!”

상호의 절규는 몰려드는 아이들에게 파묻혀 사라져 버렸다.

257. 선생님은 아가야

“이 아르게스에서 한반도로 이어지는 해안은…….”

상호는 의자 위에 올라서서 칠판에 있는 지도에 선을 그었다.

“해양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지역이야. 이 몬스터들이란 놈들은 말했다시피 마나가 풍부한 곳으로 가려는 본능이 있어서, 대부분은 한반도까지 오지 않고 아르게스에 붙어 살아. 다만 아주 가끔씩 동해안까지 오는 놈들이 있지. 주로 어떤 종이냐면…….”

물칠판에 아이들의 모습이 비쳤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수업에 잘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 평소보다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아이들은 교실 한가운데가 아니라 칠판 코앞까지 책상을 옮겨와 앉은 채였다.

아주 부담스러웠다.

‘……수업을 못 하겠네.’

참다못한 상호는 뒤로 돌아서서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얘들아, 조금 뒤로 가줄…….”

“꺄아아아!”

말을 못 하겠다.

무슨 아이돌 콘서트라도 온 것처럼 눈짓 하나 손짓 하나에 반응을 한다. 그는 한숨을 쉬고 칠판으로 돌아섰다.

“그래서 개벽 이후로 동해안에서는 대형 어류를 보기 힘들어졌고…….”

“선생님.”

“응?”

뒤를 돌아보니 나빛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수업 끝나고 같이 사진 찍어요.”

“……꼭?”

“네, 꼭.”

“알았어…….”

나빛의 말은 들을 수밖에 없다. 상호는 울상을 지으며 칠판으로 돌아섰다. 나이 먹고 이 꼴로 돌아다니는 것도 힘든데 사진으로 남기기까지 해야 한다니.

하지만 그가 울상을 짓는 모습조차 아이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인 모양이었다.

“어?! 선생님 울려고 그래!”

“쌤! 이리와! 내 품에 안겨!”

“하이고, 머스마가 그리 울어서야 쓰겠습니꺼. 이번만입니데이~.”

지윤이 달려와서 그의 겨드랑이 아래 손을 넣고 빙글빙글 돌았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몸도 돌고, 머리도 돌아버릴 것 같다. 상호는 어떻게든 정신줄을 잡고 어른스럽게 태연한 척을 하려고 했다.

“지윤아, 수업해야지. 가서 앉…….”

“야, 지윤. 쌤 줘봐.”

이젠 물건 취급일까.

지윤에게서 그를 받아든 태화가 빤히 눈을 맞춰왔다. 상호는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며 물었다.

“왜.”

“내꺼야.”

“……뭐?”

순간 상호의 몸이 옆으로 확 쏠렸다.

“가자! 섬으로!”

태화가 그를 끌어안고 문가로 달렸다.

그러나 무예가가 아니었기에 금방 아이들에게 따라잡혔고, 꼬리를 잡혀 응징을 당하고 말았다.

“으기이익!”

“내놔, 멍청아.”

이젠 세희까지 그를 물건 취급한다. 세희의 품으로 넘어간 상호는 핑 도는 눈물을 삼키며 세희를 올려다보았다.

“세희야, 나 수업…….”

“저흰 작년에 다 배웠잖아요.”

세희는 그렇게 말하며 씩 웃더니.

“가요. 우리 무공 수업하러.”

그를 끌어안고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뺨에 바람이 스친다. 대체 언제 열어놨던 걸까. 쿵 소리와 함께 착지한 그들의 머리 위로 아이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도둑년아아아!”

“으잉…… 선생님 돌려줘!”

“흥.”

세희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상호는 최대한 세희의 품에서 얼굴을 떨어뜨리려 노력하며 간절한 목소리로 세희를 불렀다.

“세희야……?”

“어디로 갈까요?”

“어디로 갈까요가 아니라…… 수업해야지…….”

“옥상이 좋을 것 같아요.”

세희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본관의 외벽을 달렸다.

상호는 그런 세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공을 못 쓰게 되어서 그런지 경공이 평소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키도 뭔가 더 커 보이고. 그가 작아진 걸 감안해도.

‘……얘들도 좀 있으면 고3이구나.’

네 달 남았다. 내년이 되기까지.

그는 그 사실을 절절히 느끼며 세희와 함께 옥상에 발을 디뎠다.

“조금만 쉬다 돌아가는 거야. 알았지?”

엄하게 말해 보지만, 목소리가 너무 어렸다.

세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들어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선생님.”

“응?”

“저 할 말 있어요.”

“……할 말?”

상호는 진땀을 흘렸다.

설마 얼마 전 꿈에서 있었던 일 때문일까.

“뭔데?”

“저한테 무공 가르쳐 주신 거.”

뒤통수에 세희의 품이 닿았고.

“태화 구해주신 거.”

따스한 속삭임이 귀를 간질여서.

“돌아와서 다 같이 수업받을 수 있게 해 주신 거.”

상호의 귀가 붉어졌다.

“고맙다구요.”

세희는 씩 웃으며 그렇게 말을 맺었다.

상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뭐.”

“그래도요.”

양옆에서 다가온 손이 상호의 손을 모아 잡았다.

“선생님은 자꾸 그렇게 아무것도 안 받으려고 하시지만…… 저희가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까지 사양하진 말아 주세요.”

“내가 아무것도 안 받으려고 해?”

“네.”

그랬던가. 상호의 손이 세희의 손안에서 꼼지락거렸다.

“그런 줄 몰랐네. 미안해.”

“사과하지 않아도 될 일을 사과하는 것도 있어요.”

“……그런가.”

그는 쓰게 웃고 세희를 돌아보았다.

“고칠게.”

“꼭 고치지는 않아도 돼요.”

“……응?”

“그래서 좋은 거니까.”

세희가 키득거리며 그의 볼에 얼굴을 비볐다.

어른을 놀리는구나. 상호는 피식 웃고 손을 들어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 컸네.”

“그럼요.”

세희는 여유롭게 웃으며 그를 안고 옆으로 몸을 기우뚱거렸다.

이제 완연한 가을에 이르러 푸르고 높은 하늘. 옥상에 올라와 하늘을 볼 때는 항상 마음이 복잡해 조금이라도 탁 트인 곳으로 가고팠던 것인데, 이제는 그제 개운하기만 했다.

걱정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 원래 몸으로 돌아가냐……. 아니, 잠깐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는 선생이고 수업을 해야 했다.

“세희야, 교실 가자.”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아. 내가 월급 도둑이 되어버려…….”

“아가는 수업 같은 거 안 해요.”

“선생님은 아가가 아니야……!”

“우루루루~ 까꿍~.”

세희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펼쳤다.

상호는 그 환한 얼굴을 넋을 잃은 채로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몸이 어려져도 한숨만은 그대로였다.

“그래, 조금만 더 쉬다 가자.”

“네.”

세희는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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