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많이 아팠어?”
“아니요.”
세희는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말과 행동이 딴판이다. 상호는 쓰게 웃으며 세희의 어깨에 난 상처에 소독약을 발랐다.
“미안해.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거, 알지?”
“네.”
잠옷을 입은 세희가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방금 씻고 나온 참이라 머리카락에 물기가 약간 남아 있었다.
상호는 세희의 어깨에 반창고를 붙이고 톡톡 두드렸다.
“됐다. 내일 나빛이한테 치료해 달라고 해.”
“네.”
“잘 자.”
상호는 세희가 침대에 눕는 것을 확인하고 창가로 걸어갔다.
그런데 뒤에서 세희의 목소리가 그를 불러 세웠다.
“선생님.”
“응?”
“내공은 안 가져가세요?”
“응.”
그는 내공을 뻗어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네 거야. 열심히 연습해서 초강기에 익숙해져. 검에도 몸에도 두를 수 있게.”
“……네.”
세희는 이불을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안녕히 주무세요…….”
“응.”
상호는 창턱에 발을 올렸다.
그때 한 자락 내공이 그의 손에 스쳤다. 미약하지만 분명한 뜻을 품은 내공.
세희의 내공이었다.
‘그새 허공섭물까지…….’
하긴 초강기를 다룰 정도로 집중력이 뛰어나니까, 내공만 충분하면 허공섭물도 진작부터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은 내공이 부족해서 할 수 없었을 뿐.
상호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세희의 방을 나섰다.
* * *
방으로 돌아오니 혜소와 효은이 자고 있었다. 상호는 둘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창턱을 넘었다.
‘흙 때문에 안 씻을 순 없고…….’
그냥 세희 방에서 씻고 올 걸 그랬다.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옷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물을 살살 틀고 샤워를 하는데, 문 밖에서 효은의 얕게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왔냐?”
“응.”
상호는 샴푸를 머리에 문지르며 물었다.
“누워 있지 왜 일어났어?”
“뭐 하다 왔어?”
“세희 가르치고 왔지.”
“세희가 너랑 같은 무공이랬던가?”
“응.”
문에 기대는 소리가 들렸다.
“세희는 잘 배워?”
“수제자야. 가르치면 뭐든 잘 배워.”
“그러면 세희를 그 악마놈이랑 싸울 수 있게 하려는 거야?”
“그럴 가능성을 남겨놓는 거지. 세희가 배우는 게 빠르긴 하지만…… 나만큼 강해지려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얼굴에 물을 뿌리느라 잠시 말이 끊겼다.
“어느 정도만 가르치고 출발할 거야.”
“어디로?”
“아르게스로.”
효은이 말을 하지 않아서, 상호의 말만 계속 이어졌다.
“그 악마놈이 힘을 되찾고 있어. 일찍 가서 끝장을 낼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다고 대책 없이 갔다가 내가 죽으면 방법이 없으니까. 제자를 두고 가려고.”
“너.”
“응?”
“죽을 생각 하지 마.”
문이 조금 열리고, 그 틈 사이로 잠옷을 입은 효은이 상호를 째려보았다.
“제자가 있으니까 죽어도 되겠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알아들었어?”
“별 걱정을 다하네. 당연히 살아 돌아오는 게 최우선이지.”
상호는 피식 웃고 손에 묻은 물을 효은의 얼굴에 뿌렸다.
그러자 효은이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X발아. 다리 고쳤다고 신났지? 바닥에 누워, X새끼야.”
“야, 야. 혜소 자고 있잖아……!”
“어쩌라고. 누가 2주씩 외박하래? 빨리 누워. 하나 남은 눈깔 파버리기 전에.”
“아니…….”
“하나.”
상호는 결국 욕조에 곱게 누웠다. 미라처럼 가슴에 손을 모아서.
그저께 들었던 도현과 리주의 통화가 기억났다.
‘형은 완전 꽉 잡고 살던데…….’
이제 와서 주도권을 잡기는 늦었다. 반항하다가 깨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그는 결국 눈을 감고 효은이 몸 위에 앉는 것을 받아들였다.
‘에휴…….’
* * *
“또 했어?”
상호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현실이 아닌 심상 속에서.
예경이 침대 옆에 앉아 빙긋 웃고 있었다.
“효은이랑 잘 지내나 봐.”
“……네에.”
상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가, 예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나.”
“저번에는 그냥 념이랬잖아요.”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영혼 같은 건 아니라고 했었잖아요.”
“글쎄.”
예경은 그저 웃었다.
“그 답도 네 안에 있을 거야. 아마도.”
“영혼을 담았다는 건…… 진짜 누나인 거예요?”
“진짜 나는 죽었지. 그건 변하지 않아. 그렇지만 나도 너와의 기억이 있고, 내 의지가 있으니…… 굳이 따지자면 두 번째 백예경이랄까.”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요.”
쪼개졌더라도 분명히 의지를 가진 영혼.
“누나.”
“응.”
“누나 영혼이라고 하면 내가 여자 못 사귈까봐…… 그런 거죠?”
“으음, 글쎄. 어떨까.”
예경이 고개를 기웃거리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상호는 어느새 그녀의 얼굴을 다시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확실히 예경의 영혼이 지금처럼 그의 눈앞에 나타나 영혼이라고 밝혔다면 그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터였다.
예경도 그걸 알고 그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마음에 시체를 두지 말라고.
“미안해요.”
“아직도 못 잊었구나.”
“……네.”
고개를 푹 숙인 상호를 예경이 살포시 끌어안았다.
“괜찮아. 천천히 잊어도 돼……. 이제 효은이도 있고, 민정이 언니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까…….”
“……아니에요.”
“많던데?”
“…….”
들켰다. 상호는 수치심에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민정이 누나까지밖에 안 했어요…….”
“알아~. 열심히 하더라~.”
“…….”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빨리 묻고 싶은 것만 묻고 도망쳐야겠다. 앞으로 자주 볼 수 있을 테니.
“누나.”
“응?”
“그 영혼을 담는 강기 있잖아요.”
“초혼강기.”
“그게 이름이에요?”
“응. 내가 지었어.”
“그거 색깔에 의미가 있어요?”
“으음…….”
예경은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내가 보기에는, 초혼강기의 색깔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보통 강기의 색깔이 영혼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아. 그래서 같은 심법인데도 색깔이 차이가 나는 거지.”
“그러면 제 색깔이 변한 거는요?”
“네가 내 영혼을 받아들여서?”
그런 건가.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상호가 덮고 있는 이불에서 무언가가 꿈틀했다.
‘……뭐지?’
그는 이불을 걷었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
“……선생님?”
이불 속에서 세희가 눈을 깜작였다.
“왜 여기 계세요?”
“…….”
내가 할 말이야, 라고 말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상호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이불을 다시 내렸다. 혹시 얄궂은 꿈이 아닐까 생각하며.
하지만 다시 걷어 봐도 그대로였다.
‘왜 내 심상에 얘가…….’
“……세희야?”
“네.”
“왜 여기…….”
“이거 꿈 아니에요?”
세희는 이불 밖으로 쏙 나와서 어리둥절한 눈으로 상호와 예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분은…… 아, 선생님의 스승님…….”
“언니라고 불러도 돼.”
“네? 제가 어떻게……. 근데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영혼이 섞였나 봐.”
“네?”
멍하니 눈을 끔뻑이는 상호와 세희에게 예경이 빙긋 웃었다.
“상호가 세희한테 내공 줬구나?”
“네.”
“그래서 섞인 거야. 상호 네가 초혼강기 쓰기 전부터도 나랑 만났었잖아.”
“아하. ……가 아니라, 그게 셋이서도 돼요?”
“그런가봐.”
“…….”
이러다간 먼 훗날에는 10명 20명씩 모이게 될지도 모른다. 상호는 어지러워지는 정신을 다잡으며 예경과 세희를 돌아보았다.
“…….”
“…….”
“…….”
평소에 할 말 다 하고 지내는 사이라, 심상 속이라고 해서 딱히 할 말이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경이 뺨을 살짝 붉혔다.
“상호야.”
“네?”
“할 거 없지.”
“네.”
“야한 꿈 좋아해?”
“……네?”
왜 그런 질문이 나오는지, 상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요?”
“심상에서도 할 수는 있으니까……. 네가 좋다면 해줄까 해서.”
“…….”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지금은 안 돼요.”
“안 돼?”
“나중에 해요. 지금은 세희 있잖아요……!”
“선생님.”
세희도 얼굴을 붉혔다.
“저 한번 보고 싶어요.”
“뭐?”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는 힘이 상호의 몸을 단단히 붙잡았다.
이미 한 번 당해본 느낌. 초혼강기를 깨닫기 전에 예경의 영혼을 만날 때마다 느꼈던 바로 그 힘이었다.
상호는 당황해서 눈동자를 굴려 예경을 쳐다보았다.
“저기…… 누나?”
“귀여운 사손이 보고 싶다는데 어쩔 수 없지.”
예경이 침대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식겁한 상호는 다급히 세희를 향해 소리쳤다.
“세희야, 잠 깨! 아니, 내가 깰게. 나 때려! 빨리!”
“괜찮아요.”
세희는 침대에 다소곳이 앉아 둘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스승과 제자가 쌍으로 괴롭히는구나. 상호는 눈을 질끈 감고 혀를 콱 깨물었다. 잠에서 깨기 위해서.
하지만 알 수 없는 힘이 그것마저 막아버렸다.
“어딜 도망치려구, 상호야~.”
“아니, 누나! 진짜로……!”
“우와…….”
“세희야, 눈 감아! 혼낸다!”
“우와아아…….”
“세희야……!”
* * *
“세희야, 세희야, 안 된다니까……!”
“뭐하냐?”
“……응?”
상호는 눈을 번쩍 떴다.
효은과 혜소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혜소가 그의 볼을 꾹꾹 눌렀다.
“괜찮으세요?”
“으, 으응…….”
다행히 본방 전에 일어났다. 상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효은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뭔 꿈을 꿨길래 세희 이름을 그렇게 애타게 불러?”
“뭘 애타, 간 떨어지는 줄 알았구만…….”
“그래서 뭔 꿈인데.”
“몬스터…… 몬스터랑 싸우는 꿈이었어.”
그렇게 적당히 지어냈다.
다행히 거짓말이 먹혀들었는지, 효은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지는 않는 눈치였다. 효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난 또 뭐 니가 이상한 꿈이라도 꾸는…….”
이불이 걷어지며 상호의 텐트가 드러났다.
셋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
“…….”
“꿨구만.”
효은은 코웃음을 치고는.
“븅신.”
한마디를 남기고 주방으로 향했다.
상호는 황급히 이불로 하체를 가렸다. 혜소가 계속 보지 못하도록. 하지만 이미 본 것까지 어찌할 수는 없었다.
수치스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죽고 싶었다.
‘누나…… 나 죽어요…….’
그때 혜소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꿈 꾸신 거예요?”
“몰라도 돼…….”
상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혜소가 시무룩한 목소리를 냈다.
“거사님은 물어보면 다 알려주셨는데…….”
“……10년 후에 알려줄게.”
그러자 프라이팬이 머리를 강타했다.
“징그러워, 새끼야! 20살 차이는 너무하잖아!”
“아니 X바, 알려준다는 게 그런 게 아니잖아…….”
“밥이나 해! 빨래도 밀렸어. 다 빨아서 널어 놔!”
‘염병…….’ 상호는 코를 훌쩍이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새삼스레 도현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그래도 어쩌랴. 그가 선택한 인연인 것을.
‘에휴, 악착같이 깡따구로 버티는 수밖에…….’
그는 냉장고를 뒤적이며 아침을 준비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뒷모습이 퍽 처량했다.
255. 어라
효은은 아침 일찍 방을 나갔다. 설미와 미진과 카페에 간다면서.
상호는 학부모들에게서 받은 선물을 정리하다가, 침대에 앉아 있는 혜소에게 눈길이 갔다.
혜소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놀아줘야겠네.’
영주가 죽은 슬픔을 아직 잊지 못한 듯싶었다.
대여섯 살 아이는 뭘 좋아할까. 상호의 시선이 습관적으로 TV 리모컨을 향했다.
“혜소야, 영화 볼래?”
“네?”
혜소는 눈을 깜작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아저씨도 심심해서 그래. 네가 안 본대도 아무거나 볼 거야. 한번 골라 봐.”
상호가 리모컨을 건네자 혜소가 받아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어떻게 쓰는 거예요?”
“이렇게. 이게 전원이야. 이걸 눌러서 켜고. 요걸로 들어가서 이렇게 고르면…….”
“이거는 재밌어요?”
“나도 잘 몰라.”
“아저씨는 어떤 거 좋아해요?”
“나는…….”
어렵지만 않으면 다 잘 본다고 대답하려는데, 침대 옆에 검은 연기가 펑 하고 터져 나왔다.
“공포영화!”
“……넌 왜 맨날 그런 것만 봐?”
상호는 혀를 차고 뉴스를 틀었다.
“혜소 있어서 안 돼. 나랑 뉴스나 봐.”
“스으으읍…….”
태화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꼰……!”
“꼰대 틀딱 편애 토끼. 그래. 항상 그렇지 뭐.”
뉴스에서는 며칠 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대소동을 다루고 있었다. 모든 채널이 그랬다. 심지어는 영화 채널에서도 악마와 헌터들의 전투 장면을 편집해서 내보내는 판이었다.
그 사건을 다루지 않으면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듯이.
안경을 쓴 앵커가 자료화면을 손짓했다.
[해당 남성은 안대를 쓰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조사 결과 예현여고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자료화면에는 흐릿한 남자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검푸른 칼을 들고 악마와 싸우고 있는.
빠르게 움직이는데다 거리도 멀어서 이목구비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안대만큼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당분간은 아예 못 쓰고 다니겠구만.’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안대를 벗었다.
화면에 상호가 악마와 싸우는 모습이 짧게 재생되었다. 태화와 혜소는 TV를 멀뚱히 보다가 상호를 향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저거 진짜 쌤이야?”
“저거 아저씨예요?”
“응.”
“상대는 누구예요?”
“악마.”
그는 침대에 옆으로 드러누워 손으로 머리를 받쳤다.
“거사님이랑 내가 그토록 없애고 싶어 했던 놈이야.”
“그래요……?”
혜소가 슬픈 눈빛을 지었다.
“거사님이 저 악마 때문에 희생하신 거예요?”
“응.”
“그럼 저 악마는 없어졌어요……?”
“아니.”
혜소의 가슬가슬한 머리를 상호의 손이 쓰다듬었다.
“아직 남아 있어. 그렇지만 거사님이 헛일을 한 건 아니야. 절대로.”
“그런가요…….”
혜소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태화가 상호를 향해 빙글 돌아섰다.
“아, 근데 쌤 있잖아.”
“응?”
“저기서 뭐 했어?”
“뭐하긴, 싸웠지.”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어제 폰을 봤는데.”
태화는 핸드폰을 꺼내 상호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봐봐. 막 이러더라고.”
“뭐가…….”
상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이 있는 단체 문자 방.
-단비: 세희 언니
-단비: 피난 가고 있어?
-세희: 응
-초란: 다들 어디야..? 피난 출발했어?
-나빛: 난 출발했어... 이서 있어? 출발했어?
-이서: 응
-하솔: 그런데 이츠키 언니는 어떻게 가고 있어?
-이츠키: 자전거
-하솔: ?
-이츠키: 이게 더 빠른
상호가 악마와 싸우고 있던 시간이었다.
-미래: 티비에 선생님 나오시는데
-나빛: 미래 차에 티비 있어?
-미래: 언니 폰으로 티비 볼 줄 몰라?
-나빛: 응...
-나빛: 아 오빠가 해준대... 어디 나오시는데?
-아리: 채널 어디야? 찾아도 안보여
-미래: 난 지금 nbc에서 보고 있어
-지윤: 진짜네
-지윤: 와.. 다 뿌서지네
-지윤: 저거 머꼬
-나빛: 어떡해
-은율: 너무 강한데
-나빛: 선생님 어떡해
아마 상호가 개박살이 나서 날아가는 꼴을 보고 있을 때인 모양이었다. 상호는 아이들의 문자를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때 죽었으면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잘 끝나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윤: 저거 머꼬 뭐가 날아갔는데
-나빛: 선생님 어디갔어?
-지윤: 기둘리바라 민정쌤헌테 전화해보께
-세희: 이미 출발하셨어 연락하지마 연락하면 더 늦어져
-나빛: 선생님 어딨어?
그때 가은의 문자가 처음으로 보였다.
-가은: abs에 나와
-은율: 가은이도 보고 있어?
-가은: ㅇ
-나빛: 아 나오신다...
-지윤: 태화 저깄네
-지윤: 세희 봤나? 태화 지금 나온다
-나빛: 근데 뭐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들려?
헌터들과 말싸움을 할 때인 것 같았다. 상호는 헌터들에게 욕을 한 사발 쏟아냈던 것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속마음이라서.
‘전국에 다 중계됐을 텐데…… 젠장.’
-나빛: 선생님 많이 화나셨나봐...
-나빛: 엄청 화나셨나봐... 욕도 많이 하셔...
-지윤: 저년은 눈데 따지고 ㅈㄹ이가
-세희: (삭제된 메세지입니다.)
-단비: 세희 언니...?
-세희: 미안 너무 화나서
상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메세지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
-단비: 선생님 우셔...
-지윤: 진짜가
-나빛: 선생님 그동안 참으셨나 봐...
뭔가 쪽팔리면서도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의 걱정이 느껴져서.
그는 웃는 듯 마는 듯 입가를 씰룩이며 문자 내용을 쭉 내렸다. 그가 악마를 이겼던 때까지.
-지윤: 머고 쌤이 이겼는데
-지윤: 머가 달라진기가?
-나빛: 이기셨어? 뭐야? 나 기도하느라 못 봤어
-나빛: 진짜 이기셨어? 끝난 거야?
-지윤: 그런가본디? 민정쌤이랑 이야기하고 있다
-나빛: 진짜??! 진짜????!!!
-세희: 무사하신가봐
-나빛: !!!!!!!!!!!!!!!!!!!!
‘그리도 좋았나…….’
흐뭇한 웃음을 짓는 상호의 앞에 태화가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그렇게 좋아?”
“……그냥. 그럭저럭.”
“더 읽어 봐.”
밑에 뭐가 더 있나. 상호는 어리둥절해하며 문자를 더 내렸다.
-지윤: ㅆㅂ 저거 머꼬
‘?’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뭘 보고 이랬던 걸까.
문자를 읽는 그의 몸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단비: 뭐야? 방금 뭐야? 봤어?
-아리: 선생님 태화 언니 좋아해...?
설마.
-이츠키: 세희?
-이츠키: 세희? 봤습니까?
-은율: 아니... 세희는 안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아...
-미래: 세희 언니 왜?
-은율: 부르지 마 그냥...
-나빛: 성경에 간음한 자는 돌로 쳐 죽이랬어
‘…….’
진땀을 줄줄 흘리는 상호에게 태화가 속삭였다.
“결혼 고?”
“……뭔 결혼이야.”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결혼하고 도피하자, 응? 솔직히 도망칠 때 쌤도 좋았잖아.”
“난 여기가 제일 좋아……. 그리고 얌마, 너도 학교가 좋다고 그랬으면서…….”
“학교는 원래 그런 법이야. 오면 싫어지고 떠나면 좋았고. 뭐 그런 거지.”
“됐어.”
상호는 한숨을 쉬고 몸을 일으켰다.
“하여튼 잘됐다. 태화 네가 혜소랑 놀고 있어.”
“웅? 어디 가?”
“친구 만나러. 나빛이네 오빠.”
“아, 그 게임 좋아하는 백수 오빠?”
“……뭔가 상당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상호는 혜소의 머리와 태화의 볼을 문지르고 문가로 향했다.
“갔다 올게.”
“칼 안 들고 가?”
“이제 항상 들고 다닐 필요는 없지.”
들고 다니면 눈길만 더 끌게 될 뿐이다.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문고리를 잡았다.
“잘 놀고 있어. 갈게.”
“웅~. 야 빡빡아. 너 이름이 뭐라고?”
“혜소요.”
“반갑다, 혜소. 상호부대에 온 걸 환영한다.”
“네?”
“좌로 굴러!”
“……야!”
상호의 손가락에서 지탄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