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9화 (259/501)

* * *

콰아앙

“……후우.”

해련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방금 얻어맞은 어깨가 터질 듯 얼얼했다. 그래도 터지지는 않았으니 아픈 걸 내색하지는 않았다.

주변에는 현역 때 동고동락했던 전우들이 서 있었다.

아니, 사실 대부분은 쓰러져 있고 극소수만 서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대장님?”

“응. 쌩쌩하지. 옛날보다 더 젊은걸.”

수호부대원의 물음에 해련은 살짝 웃었다.

걱정을 받아야 할 쪽은 도현이었다. 한 시간이 되도록 쉬지도 못하고 싸우고 있으니. 해련은 땀을 줄줄 흘리는 도현을 흘끗했다.

“괜찮아요?”

“모르겠습니다.”

도현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옆에 민정이 착지했다. 오랜만에 강적과 전투를 한 탓인지 민정의 눈 밑에도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번 휴전하자고 해볼까, 오빠?”

“역시 마법사라 머리가 좋네.”

농담을 할 정도의 기운은 남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전우와 함께 싸우니 마음이 편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우들을 상대로 싸웠었는데. 이렇게 같은 편에 서니 약간은 후련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악마가 다가왔다.

“또 온다.”

해련과 도현, 민정은 다시 전투 태세로 악마를 마주했다.

민정이 양옆으로 손을 뻗자 폐허의 거대한 바위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쿠구구구……

떠오른 바위들이 악마를 향해 운석처럼 내리꽂혔다.

콰과광

악마가 멀쩡한 모습으로 파편 사이를 걸어 나왔지만, 어차피 시간을 벌기 위한 공격이었다. 민정은 도현을 향해 물었다.

“영주 오빠한테서는 연락 없었어?”

“없었어.”

도현은 짤막하게 답하고 창을 던졌다.

퍼억

창이 악마의 허리를 뚫었다.

하지만 모래처럼 바스러진 육체는 금세 회복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도현은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민정아.”

“응?”

“어떻게든 영주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오빠가 찾아와. 내가 잡아둘게.”

“아니, 네가 더 빠를걸. 네가 가. 내가 여기서 버티고 있을…….”

그 말을 들었을까.

악마가 고요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마나의 파동이 허공에 입체를 그리기 시작했다.

민정은 그 모습을 보고 즉시 마나를 운용했다. 그녀의 발치에서 뻗어나간 마나가 순식간에 마법진을 완성시켰다.

외부의 마나를 차단하는 마법진.

하지만 악마의 입체 마법진이 훨씬 더 강력했다.

쿠구구구……

검은 원이 태양을 가리기 시작했다. 일식, 그중에서도 완벽히 태양을 가리는 개기일식처럼.

그림자가 세상을 뒤덮자 헌터들이 경악했다.

“헉……!”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설마 달까지 조종할 줄이야.

하지만 몇몇 헌터들은 그 검은 원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나로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대를 그림자로 뒤덮을 만큼 컸지만, 분명히 달은 아니었다.

곧 검은 원이 태양을 완전히 가렸다.

“너희는 이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악마의 친절한 설명에 도현은 헛웃음을 쳤다.

“겁이 났나 보구만.”

악마는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도현에겐 더 웃긴 일이었다.

“뭐야, 정말로 영주가 무서운 거냐?”

“인간 주제에 날 잡아둔 것만은 인정하지. 허나 날 죽일 수는 없다.”

“나한테도 보이는 것 같은데.”

도현은 허공섭물로 끌어온 창을 낚아채며 웃었다.

“네 면상 속의 흔들림이 말이야.”

“인간의 눈은 믿을 수 없지.”

밤처럼 깜깜해진 어둠 속에 악마가 스르르 녹아들었다.

“헛것을 보며 틀린 계산을 하고, 그릇된 결론을 내려 잘못된 행동을 한다.”

“뭔 소리야. 계산 틀려서 6년씩 갇혀 있던 놈이.”

그때 하늘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부협회장님!”

도현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협회 소속 헌터가 공중에 떠 있었다.

“봉인 준비 끝났습니다!”

그 말에 검은 그림자가 주술사들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도현과 해련은 그 즉시 땅을 박차고 그림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

해련이 발을 내리찍자 그림자가 땅에 처박혔다. 도현은 강검을 만들어 악마의 몸에 꽂으며 소리쳤다.

“바로 시작해!”

제물이 누구인지는 물을 시간이 없었다.

수많은 주술사들이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악마는 순식간에 강검을 뿌리치고 주술사들을 공격하려 했지만, 민정과 학회의 마법사들이 수천 겹의 결계를 만든 후였다.

쾅 쾅 쨍그랑

악마는 마구잡이로 결계를 깨부수며 주술사들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 도현도 악마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방법이 맞으리라. 그렇기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제발…….’

낮은 목소리들이 그늘을 울렸다.

도현은 뼛속을 진동시키는 주문을 들으며 악마의 팔을 붙들었다. 옆에서는 해련이 검으로 악마의 머리를 내리치고 있었다.

“크윽……!”

악마의 얼굴에서 너무도 인간적인 당황성이 났다. 주술사들의 주문은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순간.

울컥

“아악……!”

주술사들의 눈에서 검은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눈뿐만이 아니었다. 곧 코에서, 입에서, 먹물처럼 까만 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주술사들은 덜덜 떨며 몸을 웅크렸다.

“아아, 아아아…….”

“꺼억, 꺽, 끄윽……!”

가느다란 비명은 곧 굵직한 신음으로 바뀌었다. 구토를 하기 직전에 먼저 토해내는 소리처럼.

“꾸어……어어억!”

주술사들의 입에서 곤죽이 된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더니 픽 쓰러져서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

그 광경을 지켜본 모든 헌터가 할 말을 잃었다.

“계산이 틀렸군.”

악마가 언제 당황했냐는 듯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 따위가 운명에 손대는 것이 잘못된 거다.”

도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저 순식간에, 허무하게 죽어버린 주술사들의 시체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주지.”

악마가 팔짱을 끼었다.

“저자들을 죽인 건 내가 아니다.”

민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소리야?”

“너희가 죽인 원혼들이지.”

악마가 웃었다.

“저들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하마터면 지난번처럼 될 뻔했어. 그러나 미천한 인간의 몸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거다. 억울하게 죽어 주변을 맴도는 원혼을.”

악마의 손가락이 헌터들을 향했다.

“너희는 너희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할 능력조차 없었던 거다.”

도현은 텅 빈 머릿속으로 악마의 말을 되뇌었다.

자신이 죽여 온 수백의 목숨.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업보인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세상을 속이기 위해 연 없는 이들을 죽였다.

그렇게 세상은 희생을 모르게 되었고.

버려진 영혼들이 세상에 한을 품었다.

‘……천벌인가.’

도현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비록 그가 악인일지라도, 그 명줄이 붙어 있는 한은.

‘싸우는 수밖에 없다.’

도현은 눈을 떴다.

그가 창을 들자 주변의 헌터들도 다시 싸울 준비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악마가 팔짱을 풀고는 느릿하고 거만하게 그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밑천이 다 드러났는데. 이제 어디에 기댈 셈이냐?”

“우리가 기대는 게 아냐.”

도현은 창을 빙글 돌렸다.

“세상이 우리한테 기대고 있다고. 그럼 할 수밖에 없는 거야. 세상은 자기들이 우리한테 기대고 있다는 걸 모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는 할 수밖에 없는 거야.”

도현은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렸다.

“우리는 아무한테도 기대지 않아. 방법을 찾고…… 없으면 만든다. 그것뿐이다.”

창끝이 악마를 향했다.

악마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손에 마나를 모아 휘둘렀다.

“그럼 잘 만들어 봐라. 나는 빨리 끝내고 숙원을 이루러 가련다.”

콰아앙

주먹이 얼굴에 꽂혔다.

도현의 몸은 질주하는 자동차에서 분리된 타이어처럼 마구 구르고 제멋대로 튕겨 오르다가, 민정이 마나를 뻗어 잡아주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젠장.”

도현은 부러진 이를 뱉었다.

이제 밑천이 드러났기 때문일까. 악마는 더 이상 힘을 아끼지 않으려는 듯했다. 이전까지의 신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몸짓에서부터 오만한 기색이 풀풀 묻어나왔다.

그런 악마를 향해 해련의 검강과 민정의 번개가 내리꽂혔다.

“흠.”

악마는 파리를 쫓듯이 검강을 쳐내고, 번개를 잡아 도로 되돌려 보냈다. 허공에 떠 있는 민정에게.

민정은 순간이동으로 번개를 피했지만.

퍼억

그 자리에는 이미 악마가 도착해 있었다.

“끄윽……!”

복부를 얻어맞은 민정은 숨을 헐떡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보호 마법으로 치명상은 피했지만, 본래가 마법사라 무예가들에 비해 몸이 약했다. 바닥을 버르적거리는 그녀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으, 으흑…….”

“아이고.”

해련도 눈앞에 날아온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돌무더기에 처박혀 버렸다.

도현은 악마가 던진 강검을 몸을 굴려 피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엔…… 진짜 끝인가 보군.’

하늘도 무심하다. 평생 남들을 구하며 살아온 그들에게 동아줄 하나 내려주지 않다니.

아니, 어쩌면 남들을 구해왔다는 것부터가 착각일지도. 이 모든 것이 천벌일지도. 하늘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모든 것을 봐 왔기에, 오늘 이 날에서야 마침내 외면당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필 태양도 눈을 감고 있었다.

영웅에겐 영웅이 없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라기엔 너무 큰 소망인가.’

그때 어디선가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도현은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뭐야.”

그의 입술 사이에서 피식 소리가 새어나왔다.

“간 줄 알았더니만…….”

시체와 쓰러진 헌터가 즐비한 폐허의 한가운데.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248. 소년은 그날 죽었다

“그냥 가려고 했는데…….”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칼을 어깨에 걸쳤다.

“아는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고민하다가…… 별 븅신 같은 그림자에 갇혀버렸네. 어쩔 수 없지. 싸우는 수밖에.”

“벌레 한 마리 한 마리의 사정을 일일이 들어줄 수는 없다.”

악마가 손을 들었다.

그 손에 검은 불꽃과 붉은 번개가 모여들어 검의 형상을 갖췄다. 상호도 예경의 검을 들어 검푸른 천색창염을 둘렀다.

‘……윽.’

혈맥에 부담이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을 상대라는 것은 옛날에 알았다. 상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꽈아앙

충격파가 폐허를 뒤흔들었다.

상호와 악마는 단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재차 서로를 공격해 들어갔다. 상호는 악마의 얼굴을, 악마는 상호의 다리를.

상호가 호신강기를 다리에 두르자 악마의 검이 궤적을 바꿨다.

촤아악

검은 상호의 외투만 찢을 뿐이었다.

악마의 얼굴을 향한 검이 허공을 갈랐다. 상호는 검을 휘두른 힘을 죽이지 않고 빙글 돌아서 발뒤꿈치로 악마를 후려쳤다.

악마가 손날로 그 공격을 막았다.

콰앙

상호의 공격은 쉼 없이 이어졌다. 검으로, 강검으로. 발을 내딛고 주먹을 뻗어서.

악마는 여유롭게 그 공격들을 받아쳤다.

쾅 쾅 콰직

격돌하는 마나와 익숙한 충격.

옛 기억이 상호의 뇌리에 떠오르고 있었다.

* * *

“아오, X바…….”

운전대를 잡은 효은이 눈살을 찌푸렸다.

“확 박아버릴까 보다. 드럽게 끼어드네. 야, 세희야.”

“네.”

“어떻게 되어가?”

세희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워낙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은 호각으로 싸우는 듯 보였다.

“잘 싸우고 계신 것 같아요.”

“악마놈이랑 일대일로 싸우고 있어?”

“네.”

효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치고받고 싸우고 있다는 거지?”

“네.”

“……쳇.”

효은이 혀를 찼다.

세희는 어리둥절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좋은 거예요?”

“아니, 혹시나 싶어서.”

효은은 신경질적으로 핸들을 돌려 옆 차선에 끼어들었다.

“그 악마놈, 예경이 언니를 무서워했거든.”

“아……, 들었어요. 이상하게 그분 공격만은 피했다고…….”

“그런데 상호랑 언니는 뭔가 다른가 보네.”

세희는 옆자리에 자고 있는 다혜를 흘끗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이 악마는 진짜 못 죽여요?”

“응.”

“그러면 어떡해요……?”

“글쎄. 그나마 가능성 있는 건…… 술자를 찾아서 다시 봉인시키는 방법이려나.”

“술자라면…….”

세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영주……라는 분이요?”

“응.”

“어디 계신지 아세요?”

“아니. 어떻게든 찾아야지.”

효은은 핸들을 틀며 중얼거렸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차가 어디론가 바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상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앞을 바라보았다.

“……뭐야.”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껏 죽도록 치고받고 싸우던 악마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 드넓고 검은 평야 어디에도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그 불길하고 압도적인 마나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해치웠나?”

도현이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상호도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겼……다?’

이겼다.

악마를 쓰러뜨렸다.

드디어 힘겨운 전투가 끝났다. 기나긴 전쟁도 끝났다. 빌어먹을 괴물의 신을 그들의 손으로 끝장낸 것이다.

상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끄윽!”

다리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상호가 다리를 부여잡고 버르적거리자 한참 뒤에 물러나 있던 효은이 달려왔다. 만면에 피로와 짜증을 가득 담은 채.

“뭐야, 넌 또 왜 그래.”

“으, 으…….”

“죽지도 않았으면서 엄살은…… 봐봐.”

효은은 상호의 바지를 벗기다가 당황했다.

“어?”

다리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흐르다 굳은 용암처럼, 번개 맞은 나무처럼 이리저리 뒤틀린 결이 보였다.

“언니, 민정이 언니.”

땅에 엎어져 있던 민정이 부름을 듣고 머리를 부스스 들었다.

“으응……?”

“와서 이거 봐봐.”

“응…….”

민정은 비틀비틀 달려와서 효은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상호의 다리를 본 민정의 눈에 혼란이 깃들었다.

“뭐야, 이거?”

“마법을 잘못 맞은 거 아냐?”

“아니,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그때 둘의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내가 했어.”

둘은 뒤를 돌아보았다.

영주가 다친 어깨를 부여잡고 서 있었다.

“주적 계산이 끝나서…… 상호 다리에 봉인시켰어.”

“봉인?”

“응.”

상호의 곁으로 다가온 도현이 영주를 향해 물었다.

“그럼 이제 상호만 잘 지켜보면 되는 거야?”

그 말에 영주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끝에는 검을 납도하는 예경이 서 있었다.

예경은 어지러운지 검을 짚으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상호 괜찮아?”

“……네.”

상호는 고통을 다스리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예경은 상호의 옆에 앉아 이마에 손을 얹었다. 내공으로 상호의 상태를 확인하는 예경에게 민정이 물었다.

“예경이 너는 괜찮아?”

“응.”

예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충 대답했다.

그 말투가 적잖이 인위적이어서, 꼭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민정은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상호가 고개를 들자 다섯의 시선이 마주쳤다.

효은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쓰러트린 거야?”

영주가 대답했다.

“응.”

“다 끝난 거야?”

“일단은.”

“그럼…….”

효은은 주변에 널브러진 전우들의 시체를 돌아보았다.

“다 함께…… 돌아가야겠네.”

그때 예경이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졌다. 누워 있던 상호는 다리의 고통도 잊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누나!”

“언니? 언니!”

“예경아?”

“예경아!”

상호, 효은, 민정과 도현은 쓰러진 예경을 둘러싸고 어깨를 흔들었다.

“예경아! 괜찮아?”

“숨, 숨은 쉬고 있어.”

“야, 빨리 성력 좀 써봐!”

“쓰고 있어, X발아!”

넷 중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단 한 사람만이 예경을 부르지 않았음을.

영주는 한데 모인 다섯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는 곧 돌아서서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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