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헉, 헉, 허억…….”
청년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발아래 펼쳐진 시가지가 도시 모형처럼 작게 보였다. 현기증 때문에 구토가 확 올라왔다.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을 터.
그는 자신의 뒷덜미 쪽 옷자락을 잡아챈 이를 올려다보았다. 안대를 쓰고 소녀를 안은 사내.
“쯧.”
상호는 혀를 한 번 차고 청년을 뒤로 던졌다.
“악!”
청년은 바닥을 구르다가 허리를 문지르며 일어났다.
“고…… 고맙습니다.”
“아까는 욕이라도 할 것처럼 꼬라보더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그런 귀하야말로 다 죽일 것처럼 굴더니 정작 절 살렸잖습니까.”
“…….”
상호의 눈 밑이 꿈틀했다.
기울었던 건물이 다시 바로 섰다. 상호는 광선을 날렸던 고치와 그 앞에 모여드는 헌터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방금 건물을 지탱한 것은 분명 도현의 내공.
‘도착했나.’
그의 옆에서 청년이 물었다.
“저기 저분 부협회장님 아닙니까?”
“맞아.”
“전우잖아요. 안 도와줄 거예요?”
“몸이 X창났다니까?”
애초에 도와줄 생각도 없지만.
상호는 건물 외벽에 걸터앉아 태화의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애도 이 모양인데 어딜 가? 싸울 수 있다 해도 도망칠 거야, 나는.”
“그러고도 헌터십니까?”
“내 복장을 긁으려고 해도 소용없어.”
그가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그저 악마의 최후를 두 눈으로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희생을 강요하고, 가만히 방관하고, 돌아서면 망각하는, 세상이란 악마의 최후를.
청년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 정말…… 영웅은 못 되는 사람이네요.”
“이젠 날 죄인 취급하는구만. 죄 없는 사람들을 그토록 죽여 왔으면서.”
상호는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당신도 결국 구더기일 뿐이야.”
시체 썩는 냄새가 도시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245. 언덕을 오르는 자
도현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66층 부근에 한 남자가 걸터앉은 게 보였다. 품에 빨간 뿔이 달린 소녀를 안았고, 얼굴에는 안대를 쓰고 있었다.
보고만 있을 셈인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있는 사람들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도현의 창이 세차게 한 바퀴 돌았다.
그들의 주변으로 S급 이상의 헌터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건물 안 상황은?”
“거의 다 비웠습니다. 해봤자 열 명 남짓 남았을 겁니다.”
“66부 주술사들은?”
“여기 모였습니다.”
“좋아.”
도현은 주술사들을 흘끗했다.
“지금 봉인할 순 없나?”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아직 주력이 파악이 안 돼서……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봉인이 가능할지 계산이 안 되고 있습니다.”
“계속 계산해. 그동안 우리가 막을 테니.”
그때 고치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 시커멓고 끈끈한 액체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고약한 냄새를 탐욕스런 아귀처럼 가득 품고서.
꿀럭……꿀럭……쪼르륵……
도현은 비웃는 듯이 흘러내리는 그 액체를 노려보며 뒤로 한 걸음, 한 걸음 물러났다.
“온다.”
그 말을 신호로 삼듯 고치가 찢어졌다.
쫘아악
그림자.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었다. 온통 검었다. 성력과는 완전히 반대로, 안개처럼 뭉글뭉글하게 빛을 빨아들이는 어둠이었다.
어둠은 인간의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키가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근육질 사내의 모습.
고치를 찢고 나온 그림자가 하늘을 향해 천천히 양손을 뻗었다.
“감탄스럽군.”
그림자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찰나라도 나를 붙잡은 것. 필생의 영광으로 여겨라.”
오만방자하고 느긋한 목소리.
저릿저릿한 저주의 기운이 도현의 머릿골을 훑었다. 도현은 창에 내공을 모으며 대꾸했다.
“찰나라기엔 너무 오래 잠들어 계셨는데.”
“너희의 시간 감각에는 관심이 없다.”
그림자의 손가락이 도현을 향했다.
“익숙한 얼굴이 하나뿐이군. 동료들은 어디로 갔느냐?”
“여기 있는 사람들로 충분해.”
하지만 도현은 지금 일부러 대화를 이어나가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나머지 수호부대원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혹시 민정이 와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리고 백에 하나, 만에 하나.
‘영주야, 여기까지는 못 내다본 거냐…….’
지금 이 순간 제일 필요한 사람인데. 도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림자, 악마가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르게스에서 본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아마 힘을 많이 잃어서 저 불완전한 모습까지만 회복하는 게 최선인 듯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도현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죽이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터였다.
도현의 창에 누런 불꽃이 피어올랐다.
“공격.”
헌터들이 무기를 휘둘렀다.
강기, 마법, 정령, 성창. 수십 가지, 수백 수천 개의 공격이 악마를 향해 빼곡하게 날아들었다. 도현과 수호부대원들도 초강기를 일제히 쏘아냈다.
악마는 느릿하게 양손을 들어 올렸다.
짝
박수 한 번에 모든 공격이 흩어져 사라지고.
짝
박수 두 번째에 정령들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터져 나갔다.
짝, 짝, 짝……
그냥 평범한 박수 소리만으로.
헌터들이 눈과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쿨럭……!”
“으윽, 커헉…….”
“…….”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광경. 도현은 새삼스레 눈앞의 악마가 어떤 존재인지 떠올렸다.
저승부대의 반이 희생하고도 죽이지 못해서 결국 주술로 봉인했던 악마.
괴물의 왕. 마법과 주술의 신.
전쟁의 근원.
“벌레가 재롱을 떠는군.”
이목구비 없는 그림자가 쓰러진 헌터들을 쓱 둘러보았다. 멀쩡히 서 있는 것은 도현과 수호부대원 일곱, 그리고 S급 최상위 헌터 몇몇뿐.
도현은 턱에 힘을 주며 악마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느리다.”
악마는 그렇게 말하며 창끝을 검지로 막았다.
악마가 한쪽 손을 쓰는 그 틈을 타고 수호부대원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머리로, 허리로, 다리로, 등으로. 검과 결정창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악마는 피하지 않았다.
콰직……
모든 공격이 정통으로 들어갔다.
수호부대원들의 얼굴이 일순 환해졌다.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실제로 제대로 들어간 게 맞았다.
하지만 악마의 몸은 바위처럼 조금 부스러지고는.
츠츠츠……
그마저도 금방 재생되었다.
그 모습을 본 수호부대원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다들 안색이 백짓장처럼 창백했다.
“이……런.”
“이게 무슨…….”
“머릿수는 비슷한데 실력은 너무 다르군.”
그렇게 중얼거린 악마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여전히 도현의 창을 검지로 막은 채.
“분명 겨룰 만한 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손 위에 검은 구체가 나타났다.
구체는 주변의 마나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세를 불리더니, 금세 집채만 한 크기가 되어 하늘로 치솟았다.
“그 여자. 하늘색 칼을 다루는 여자. 그 여자는 죽었나?”
봉인된 이들에 대한 기억은 없는가 보다. 도현은 창을 밀어붙이며 내뱉듯 대답했다.
“곧 올 거다.”
“죽었군.”
시종일관 무심한 목소리로 말하던 악마가 처음으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럼 너흰 끝이다.”
검은 구체가 땅에 내리꽂혔다.
* * *
“우와아악!”
“시끄러워. 베테랑인 줄 알았더니 완전 맹탕이구만.”
상호는 무너지는 콘크리트 사이를 훌쩍훌쩍 뛰어다니며 핀잔을 날렸다. 한쪽 팔에는 태화를 안았고, 다른 쪽 손에는 신앙인 청년을 들고 있었다.
뛸 때마다 청년의 몸이 덜렁덜렁 흔들렸다.
쿠르르릉……
일대의 모든 건물이 무너지는 중이었다.
높은 곳에서 구경하나 싶더니 다 박살을 내서는 그러지를 못한다. 상호는 혀를 차며 철골을 밟고 높이 치솟아 올랐다.
청년이 헛구역질을 하며 켁켁댔다.
“우욱, 케헥…….”
돌과 강철을 헤치고 하늘로 빠져나온 상호는, 약간의 내공을 운용해서 바닥으로 쭉 떨어져 내렸다.
셋은 무너진 건물 위에 착지했다. 초고층건물이라 무너진 후에도 상당히 큰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며 터진 수도가 도로를 휩쓸고, 자욱한 흙먼지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상호는 신앙인 청년을 헌터들이 있는 쪽으로 던졌다.
“이제 볼일 없다. 니 알아서 해.”
“끄윽…….”
청년은 비틀거리며 건물 더미의 아래쪽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악마의 공격에 다친 헌터들이 누워서 끙끙 앓고 있었다.
상호는 좀 평평한 돌을 찾아 그곳에 드러누웠다. 태화와 함께.
언덕 아래에서 도현과 수호부대원들이 악마와 싸우는 게 보였다.
‘명당이네.’
구경하기 딱 좋은 위치였다.
도현이 악마를 향해 창을 겨누고 짓쳐 들어갔다. 아홉 갈래로 나뉜 창끝이 현란하게 빈틈을 노렸지만, 악마는 너무도 가볍게 창을 잡아채고 도현의 복부를 후려쳤다.
“커헉!”
도현의 몸이 공중으로 튕겨져 올랐다.
“크…….”
오랜만에 겪는 고통이었다.
허공에서 자세를 가다듬은 도현은 주변에 유선형의 강검을 만들었다. 모두 열두 개.
누렇게 불타는 강검들이 악마의 전신을 노리고 날아갔다.
푸욱……
제법 깊게 박힌 것이 몇 있었다.
하지만 악마는 아프지도 않다는 듯이 강검을 툭툭 털어냈다. 초강기가 파고든 상처는 순식간에 다시 재생되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주변의 헌터들이 크게 당황했다.
“저 괴물…….”
“저런 걸…… 어떻게…….”
어떻게 죽이랴.
전의를 잃은 그들에게 도현이 일갈했다.
“주술사!”
“아직…… 아직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악마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도현은 악마가 주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강검을 거세게 휘몰아쳐 갔다.
“될 때까지 싸우는 거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지켜보던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도현의 목소리가 누군가와 겹쳐 들려서.
‘……꼰대 다 됐구만.’
이제 헌터들은 다시 악마를 향해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악마는 도현의 강검을 하나씩 깨부수고는 주변을 쓱 둘러보다가, 언덕 위에 드러누운 상호를 발견하고 피식 소리를 내었다.
“익숙한 얼굴이 하나 더 있군.”
모두의 시선이 상호를 향했다.
어리둥절함, 분노, 절박함. 수많은 시선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드러누운 상호에게 몰려들었다. 상호는 그들 모두를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보기만 했다.
“싸울 생각은 없나.”
악마는 곧 상호에게서 신경을 끄고 헌터들을 둘러보았다. 이목구비 없는 얼굴이 올빼미처럼 기이한 각도로 고개를 구부리며 360도의 모두를 한 번씩 마주했다.
“느껴진다.”
악마가 양손을 들어 선지자처럼 뻗었다.
“보잘것없는 번민과 망념에 빠진 우민들이.”
도현과 상호는 이미 한 번 들어본 내용이었다.
“나를 새 신으로 섬겨라. 그 모든 걸 해결해 주겠다. 고뇌로부터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도현은 혀를 찼다.
“그쪽 세상하고 자유라는 단어의 뜻이 다른가 본데. 아니…… 이 말도 이미 했던가.”
“굳이 싸울 필요 없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라.”
악마가 손을 내밀었다.
“난 이 자리에서 너희 모두를 죽일 수도, 물러나서 내 군대를 몰고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는 않겠다. 왜인지 잘 생각해봐라.”
“너는 네 신도들에게 먹일 식량이 필요한 것뿐이겠지. 다들 듣지 마. 얄팍한 간계야.”
도현은 그렇게 대꾸하며 악마의 배에 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악마는 몸을 슬쩍 틀어 가볍게 피해냈다.
“현실을 봐라. 어느 쪽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지.”
“필요 없어.”
“결렬인가.”
악마의 모습이 사라졌다.
“뭣…….”
당황하는 헌터들 사이에서 하늘을 보는 이는 단 둘뿐, 상호와 도현.
도현의 발이 그 즉시 땅을 박찼다.
퍼석……
하지만 악마의 손에서는 이미 비명도 지르지 못한 헌터의 머리가 수박처럼 으깨어지고 있었다.
피가 뇌수와 섞여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이 새끼……!”
도현의 창이 번개처럼 악마를 향해 날아갔다.
꽈아앙
우레와 같은 소리가 대기를 울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칠 악마가 아니었고.
죽은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다.
털썩
머리 잃은 시체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악마는 멀쩡한 모습으로 모두를 내려다보았다. 손에서는 방금 터트린 헌터의 체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모두 이렇게 될 것이다.”
헌터들이 움찔했다.
도현은 그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퍼지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다들 화산이나 해일 따위의 천재지변을 마주한 이들처럼 무력감에 빠진 채였다.
‘젠장…….’
그는 폐허의 바위 더미 위를 올려다보았다.
상호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봐.’
라는 눈빛을 지으며.
‘다 구더기들이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남이 희생할 때까지. 멀거니 기다리기만 하는 자들. 안 되는 걸 알아도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저승부대원들과는 인종이 달랐다.
도현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다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도현은 헌터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다들 정신 차려! 도망칠 거냐? 너희만 살면 다냐? 가족을 지켜야 할 거 아니야!”
그 말에 헌터들이 정신을 차렸다.
쓰러져 있던 헌터들도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악마는 다시금 전투를 준비하는 헌터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너희는 사료로 쓰는 게 답이다.”
곧 악마의 모습이 사라지고, 사방에서 피가 튀었다.
촤좌좍
“컥……!”
단번에 죽은 이도 있고, 간신히 반응해서 치명상을 피한 이도 있었다. 수호부대원들도 공격을 피하며 무기를 휘둘렀다. 마법사들은 마법진을 그리고, 주술사들은 정령을 불러 공격했다.
하지만 악마는 갈대밭을 지나는 전차처럼 헌터들을 휩쓸고 다녔다.
“커억……!”
“다쳤으면 후방으로 물러나! 신앙인!”
“막아! 다친 사람들한테 못 가게 해!”
“아악!”
본격적인 전투.
상호는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태화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더 있으면 태화가 위험해질 것 같았다. 지금 상태로는 저 악마와 싸울 수도 없고.
내공을 슬쩍 운용해 보니 아직 상처가 남아 있었다.
‘뒤쪽으로 갈까.’
그는 건물의 무더기 뒤편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신앙인들과 주술사들로 보이는 인원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다들 정신없이 환자를 치료하거나, 눈을 감고 주문을 중얼거렸다.
“후욱, 크으…….”
“조금만 참으세요, 조금만…….”
“얼마나 걸려?”
“놈 주변에 저주가 깔려 있어서…….”
“아직도야? 다른 악마들이랑 얼마나 다르길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상호는 귀찮아서 그들을 피해 빙 돌아가려 했지만, 그 익숙한 목소리의 외침에 걸음을 멈췄다.
“당신 왜 여기 있어?!”
리주가 눈을 부릅떴다.
“왜 같이 안 싸우는 거야? 당신 때문이잖아! 뭘 느적느적 싸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사람이 죽고 있는데!”
상호는 이제 달릴 수 있었다.
바람처럼 달려간 그는 리주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케흑…….”
“난 이미 한 번 싸워 봤어, X발년아.”
상호의 눈에 그늘이 졌다.
“진심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너희가 X같이 게을러서 약해빠진걸 왜 남탓을 하지? 너희는 항상 최선을 다해서 살았나? 난 죽을힘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강해졌어. 그런데 그 결과가 뭔지 알아? 내 소중한 사람들을 전부 죽이려고 하더라. 너희가, 세상이. 개새끼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한 손으로 리주의 목을 죄었다.
“너희가 도망칠 때 난 칼을 들었어. 너희가 숨을 때 난 괴물이랑 싸웠고, 너희가 밥을 먹을 때 난 벌레를 먹었다고. 왜 내가 너희 같은 구더기 새끼들을 위해서 싸워야 하지?”
“컥, 컥…….”
리주의 얼굴이 검붉게 물들었다.
상호는 리주를 땅에 내던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헌터들이 두려움과 경멸의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그가 피식 웃자 헌터들이 흠칫했다.
“그래. 개새끼들아. 한번 싸워줄게. 무능한 버러지 새끼들 대신 싸워줄게. 대신에.”
상호는 태화를 내려놓고 헌터들을 노려보았다.
“이 애한테 생채기 하나라도 생기는 순간…… 전부 죽여 버릴 거다. 악마가 아니라 내가 직접. 알아들었냐?”
헌터들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상호는 검을 어깨에 걸치고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향해 걸어갔다. 폭발음과 비명이 언덕 너머에서 쉼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체 냄새가 났다.
참을 수 없는 썩은 내가 어디를 가도 사라지질 않았다.
“……X같은 새끼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위 언덕을 넘어갔다.
246. 우리가 악일지라도
하늘에 날아다니는 기계가 동그란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날아다니는 것은 카메라 달린 드론, 떨어지는 것은 마이크. 어떻게든 싸움을 중계하려는 방송사의 몸부림이었다.
상호는 발치에 굴러온 마이크를 짓밟아 부쉈다.
“쯧.”
다 찾아 부수기엔 귀찮을 정도로 수가 많았다.
그는 부서진 마이크 파편에 침을 탁 뱉고 악마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