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3화 (253/501)

* * *

차는 겉보기에는 멀쩡했다.

그러나 시동을 걸 수가 없었다. 내공이 나오지 않아서.

상호는 시동장치의 겉면을 맨손으로 후려쳐 부쉈다. 손가락 관절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틱……티딕

전선을 아무거나 대충 붙이자 스파크가 튀며 시동이 걸렸다.

핸들을 잡는 순간까지도 상호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오로지 태화에게 가야 한다는 공허한 일념뿐.

그가 페달을 밟으려는 그때. 조수석에 놓인 양복 외투에서 무언가가 삐져나온 게 보였다.

상호는 그걸 집었다.

“…….”

고양이 캐릭터가 수놓인 안대.

상호는 안대를 부여잡고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윽.”

심장이 욱신거렸다.

이미 한 번 겪은 고통. 하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오래 되기도 했거니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이라서.

그러나 이대로 앓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후우…….”

상호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핸들을 잡았다.

이미 늦었을 거라는 생각은 머리에서 지워버린 채로.

* * *

“고맙다.”

태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헬기의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목에는 마나의 운용을 막는 초커를 차고 있었다.

“네가 사람들을 구한 거야.”

도현은 몰려오는 피곤함에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렸다.

“봉인에 쓰일 사람들, 상호와 싸운 헌터들…… 전부 네가 구한 거야. 어려운 결정을 내려줘서…… 고맙다.”

태화의 눈동자가 헬기 창문에 비친 도현을 향했다.

“아저씨.”

“응.”

“우리 쌤이랑 친해요?”

“친하게 지냈지.”

“우리 쌤 엄청 강해요?”

“강하지.”

그 말에 태화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밤 동안 보았던 상호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모두와 싸우던 모습.

그거면 충분했다.

‘……좋았어.’

태화는 상호의 품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헬기에 몸을 맡겼다.

* * *

“오랜만이에요.”

리주는 태화를 마주하고 씩 웃었다.

“벌써 반년이 훌쩍 넘었네. 그동안 죽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지만…… 이제라도 왔으니 됐어요. 드디어 세상을 구할 준비가 됐군요.”

태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한 번 왔던 66층의 복도. 태화의 뒤에는 도현이, 리주의 뒤에는 66부의 인원들이 서 있었다.

리주는 뒤에 서 있는 대원들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바로 준비해요.”

“예.”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대원들이 태화를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도현이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잠깐만.”

대원들은 그 즉시 걸음을 멈췄다.

리주는 눈살을 찌푸리며 도현을 째려보았다.

“왜 그래요?”

“밥이라도 한 번 먹이자고.”

도현은 태화를 내려다보았다.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태화는 눈을 깜작였다. 먹고 싶은 건 어제 다 먹었는데.

그래도 주겠다니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무조건 비싼 거요.”

“…….”

도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리주를 흘끗했다.

“갔다 올 테니까 데리고 있어. 멋대로 시작하지 말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알죠? 동생분이 달려오고 있을걸요.”

“두세 시간 정도는 괜찮아. 명령이다. 너희는 이 아이를 지키고 있어.”

“예.”

66부의 대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도현은 그걸 확인하고는 휙 돌아서서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리주는 도현의 뒷모습을 시큰둥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명령이라니 어쩔 수 없지. 난 봉인체 상태 확인할 테니 부협회장님 볼일 끝나면 부르러 와.”

“애는 어디에 데리고 있을까요?”

“부협회장님 방으로 데려가든가.”

“예.”

대원들은 태화의 팔뚝을 붙들고 엘리베이터로 데려갔다.

* * *

“자.”

태화의 앞에 접시가 여럿 놓였다.

고급스러운 검은 접시에 정갈한 담음새. 어떻게 가져왔는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태화는 포크를 만지작거리며 음식들을 멀뚱히 내려다보았다.

“이거는 뭐예요?”

“거위 간.”

“트러플요?”

“아니, 푸아그라.”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태화는 하얀 소스가 묻은 고기를 포크로 찍었다. 아무런 저항감 없이 부드럽게 들어가고, 구멍에선 육즙이 줄줄 흘러내렸다.

맛있어 보인다.

맛있어 보이는데.

영 군침이 돌지 않았다.

“별로인가?”

도현은 음식을 깨작거리는 태화에게 물었다.

“다른 걸로 가져다줘?”

“……아니요.”

다른 음식을 봐도 밥맛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거 다 얼마예요?”

“돈도 돈이지만…… 헌터협회 부협회장 정도가 아니면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야.”

“이 돈이면 돈까스 몇 개 사요?”

“삼백 개 정도는 살 수 있을걸.”

그런데 상호가 해준 돈가스보다 훨씬 맛이 없었다.

이 음식을 상호와 먹었다면 어땠을까. 태화는 잠시 눈을 감고 상상에 빠졌다.

‘……좋았겠지.’

다시 눈을 뜬 태화는 음식을 먹지 않고 접시에서 뒤적거렸다. 완전 곤죽이 되도록. 아이가 흙장난을 치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본 도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만 해. 세 시간 동안은 네가 먹고 싶은 거 다 가져다줄 테니까.”

“괜찮아요.”

이제 알았다.

뭘 먹는지가 아니라 누구와 먹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태화는 포크를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준비됐어요.”

* * *

도현은 태화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65층과 66층 사이의 비밀층. 즉 진짜 66층으로.

우우웅……

금속으로 된 문에서 진동 소리가 나더니, 위로 열리면서 하얀 복도가 드러났다.

길도 많고, 문도 많고. 마치 미로 같다. 태화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무슨 소리예요?”

“다른 악마 봉인체.”

도현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봉인을 연구하려고 실험하다가…… 조금 잘못돼서.”

“……잘못되기도 해요?”

“다른 악마라서 그래. 봉인하는 주술사의 역량 차이기도 하고. 봉인체가 상호만큼 강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쌤만큼요?”

태화는 그제서야 상호의 다리에 악마가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 들은 것 같아요. 몸하고 영혼하고 따로 봉인했다고. 쌤이 몸이랬나.”

“맞아.”

“쌤이 봉인한 악마는 뭐예요?”

그 말에 도현은 살짝 당황했다. 상호가 이미 다 말한 줄 알고 있었기에.

“……네가 봉인할 악마하고 같은 악마야.”

“제가 그 영혼을 봉인하는 거예요?”

“응.”

도현의 대답에 태화는 살짝 웃었다. 상호와 같은 악마를 봉인하게 된다라.

썩 나쁘지 않았다.

“근데 저 쌤만큼 강하지가 않은데.”

“넌 영혼이라 상관없어.”

“아파요?”

“하나도 안 아플 거야.”

도현은 태화를 데리고 깊이, 깊이 들어갔다.

이번엔 원 모양의 문이었다. 도현이 손가락으로 지문인식기를 누르자 아무런 소음도 없이 문이 스르르 양옆으로 열렸다.

안쪽에서 리주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왔어요?”

리주의 앞에는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다.

병원에서 가져온 듯 앙상한 침대 위, 앙상한 몰골의 노인. 입에는 호흡기가 달려 있고, 옷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하얀 원피스형 환자복. 몸 곳곳에 연결된 관에는 어떤 액체들이 흐르고 있었다.

손목에 묶인 붉은 실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태화가 보는 동안에도 노인의 머리에서는 머리카락이 사르르 떨어져 내렸다. 태화는 그걸 보고 이 노인이 어제까지만 해도 노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옷 갈아입고 와요.”

리주가 옆방을 가리켰다.

태화는 그곳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노인과 똑같은 하얀 원피스로.

다시 나와 보니 리주는 침대 옆에 놓인 기계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태화가 빤히 바라보자 리주가 태화를 흘끗했다.

“뭐해요? 빨리 누워요.”

태화는 비어있는 침대에 누웠다.

리주는 노인의 손목에 묶인 실을 태화의 손목에도 묶었다. 몇 차례를 감아서.

태화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 아픈 거 맞죠?”

“하나도 안 아파요. 태화 학생은.”

리주는 서랍에서 검은 안대를 꺼내 태화에게 씌웠다.

“걱정 말고 편히 있어요. 잠자는 거랑 똑같으니까.”

태화는 마음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자꾸만 심장이 저려왔다.

곧 손목과 발목에 무언가가 차였다. 족쇄, 수갑.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자 본능적인 공포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이미 죽으리라 다짐했는데도.

가슴을 바위가 짓누르는 것 같았다.

“저기…….”

태화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떠듬거렸다.

“저…… 쌤 한 번만 만나면 안 돼요?”

리주는 묵묵히 의식을 준비했고, 도현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다는 묵언의 거절이었다.

태화는 이제 헐떡이며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저…… 쌤 얼굴 한 번만 보게 해주세요. 사진이라도 상관없으니까…….”

“…….”

“제발요…….”

안대 밑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도현은 착잡한 표정으로 리주에게 눈짓을 했다. 빨리 끝내라는 뜻으로.

리주가 주사기를 들었다.

“자…….”

주사기의 바늘이 노인의 목을 찔렀다.

“편히 자요, 이제.”

그 안의 약물이 주입되고.

삐──

노인의 숨이 멎었다.

일직선을 그리는 심전도 그래프. 노인의 사망을 확인한 리주는 노인의 손목에서 실을 풀어냈다.

부들부들 떨던 태화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희고 가느다란 팔이 침상에 축 늘어뜨려졌다.

“끝.”

리주는 주사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도현을 돌아보았다.

“축하해요. 이제 쉴 수 있어요.”

“…….”

도현은 말없이 태화를 내려다보았다.

태화의 손목에 묶인 붉은 실이 피처럼 바닥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뒤처리 잘해.”

“그럼요.”

리주는 태화의 안대를 벗기고 호흡기와 심전도 검사용 전극을 붙이기 시작했다.

도현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쉴 수 있다.’

걸음이 무거웠다.

‘이제 쉴 수 있어…….’

우선은 잠부터 자야겠다. 도현은 비틀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 * *

죽은 듯이 잠을 잤다.

그러나 달콤한 잠은 아니었다.

소파에 누워 새우잠을 자던 도현은, 주머니에서 울리는 벨소리를 듣고 슬며시 눈을 떴다.

협회 직원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뭐예요.”

[부협회장님. 저어…… 어떤 청년이 1층 로비를 자동차로 들이박고서는 부협회장님을 찾고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올라가려는 걸 막고는 있는데…….]

결국 왔구나.

도현은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66층으로 올려 보내요.”

* * *

완전히 거지꼴이었다.

얼굴에 붉게 말라붙은 피가 꼭 아수라상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눈빛은 매섭기는커녕 흐리멍덩하고, 얼굴도 일그러짐 없이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도현은 방금 막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상호를 마주했다.

“이미 끝났다.”

도현의 목소리는 아직도 피곤에 절어 있었다.

“잘 옮겼어.”

상호의 공허한 눈동자가 도현을 향했다.

“……태화 어딨어.”

“상호야.”

도현은 상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잊어라.”

“태화 어딨냐고.”

멍한 눈동자에 살기가 깃들었다.

도현은 고민했다. 데려다주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태화가 봉인당한 모습을 보여주면 훨씬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여주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을 기세였다.

“……그래.”

도현은 돌아서서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따라와.”

* * *

상호는 침상에 누운 태화를 내려다보았다.

헤어질 때 본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좀 더 창백하고, 몸에 이런저런 관들을 달고 있었다. 얼굴은 잠을 자는 듯이 평온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염없이, 하염없이.

입까지 살짝 벌린 채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주 보러 올 거면 통행증 만들어 드릴까요?”

뒤에서 팔짱을 낀 리주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상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너무 슬퍼하지 마요. 애가 스스로 선택했잖아요.”

“…….”

“마지막까지 어른스럽게 걱정 말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걱정하지 마요. 당신 제자도 당신처럼 세상을 구한 것…… 응?”

리주는 방을 나서는 상호를 보고 눈을 끔뻑였다.

“더 안 봐도 되겠어요?”

상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키에 맞지 않는 짧은 검을 짚으며, 비틀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복도를 걸어가, 미로처럼 복잡한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리주는 닫히는 원형 문을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많이도 아끼셨나 보네.’

그리고 태화의 침상 주변에 놓인 기계들을 둘러보았다.

생체 신호는 모두 정상. 생명력 소모에 따른 노화는 전혀 관측되지 않았다. 예상보다 훨씬 더 봉인을 잘 버티는 몸이었다.

‘진작 잡힐 것이지.’

발견한 날부터 오늘까지, 애꿎은 200명만 죽어나갔다. 리주는 혀를 차고 돌아섰다.

‘뭐, 이제라도 잡혔으니 다행이지만.’

이제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

리주는 노인이 누워 있던, 지금은 빈 침대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저기에 사람을 눕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한없이 감사하기만 했다.

오늘부터는 쉴 수 있을 것이다.

태화의 상태 확인을 마친 그녀는 뒷짐을 지고 방을 나섰다. 작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복도를 걷는 모습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241. 그 표정

로비에 들이박았던 차는 빌딩 바로 앞 도로에 주차되어 있었다.

헌터들이 벌써 수리해 놓은 입구로 사람들이 멀쩡하게 드나들었다. 길가에도 사람들이 한가로이 거니는 게 보였다. 하하호호, 행복한 웃음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상호는 그 모든 것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웃고 있는 거지?’

저들을 위해서 사람들이 죽었고. 저들을 위해서 소녀가 희생했는데.

이미 리주가 세상에 쫙 까발렸는데.

어떻게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돌아다닐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그는 곧 깨달았다.

저들은 관심 없다.

누군가 죽으면 슬퍼하는 척을 하고.

소녀가 도망치면 손가락질하며 욕하지만.

사실 저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다른 세상 이야기.

‘구더기…….’

갑자기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더기들…….’

상호는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랐다.

핸들을 잡는 그의 눈에는 은은한 살기가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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