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0화 (250/501)

* * *

“다녀왔습니다.”

상호는 잠든 태화를 마루에 눕히고 방을 향해 말했다.

작은방에서 노파가 걸어 나와 상호를 일견하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끓여놓은 보리차를 마시려는 모양이었다.

‘더 끓여놔야겠네.’

물 끓이고, 빨래하고, 다시 점심 준비하고. 집안일은 다 그의 몫이 되었다.

그렇지만 귀찮거나 하진 않았다. 학교 일보다는 훨씬 쉬워서.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보리차 얼마 안 남았죠?”

“…….”

“주세요. 더 끓여 올게요.”

그가 주전자를 잡자 노파가 입을 열었다.

“너는 애 하나 돌보기도 힘들 터인데 노인네까지 챙기려 드느냐?”

“별것도 아닌데요, 뭐.”

상호는 어깨를 들썩였다.

노파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이름은 말 못할 것이고. 무슨 일 하다가 왔냐?”

“학교…….”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상호는 뒤늦게 노파의 말뜻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언제부터?”

“너희 처음 온 날부터 알고 있었다.”

검을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희가 누구인지 안다고요?”

“알다마다. 하루종일 그 지랄을 하는데 어찌 모르겠냐.”

노파는 혀를 차고 주전자를 끝까지 기울여 보리차를 털어냈다.

“팔아넘길 생각 없으니 걱정 마라. 이 나이가 되면 다 귀찮아. 어린놈들은 귀찮다귀찮다 그러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줄 아는데…… 정말로 귀찮아 죽는 나이가 있다.”

상호는 경계를 풀지 않고 바깥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는 않나. 누가 매복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제가 어르신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믿기 싫으면 마라. 설명하기도 귀찮으니까……. 난 그냥 니가 집안일이나 해 주면 그것보다 편한 일이 없어서 신경 끄고 사는 것뿐이다.”

노파가 혀를 끌끌 차고 주전자를 내밀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상호는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 주전자를 받아들었다.

물을 받고 가스레인지에 올리는데 노파가 다시 입을 열었다.

“딸이 있었다.”

상호는 잠시 눈을 끔뻑이다가, 곧 아침에 한 질문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깨닫고 잠자코 들었다.

“딸이 일찍 결혼을 했어. 내가 싫었던 게지. 그게 30년 전인가……. 착한 사위 만나서 아들 하나 보고 잘 살다가…… 나랑 변변찮은 일 하나 때문에 대판 싸웠다. 그 후로는 얼굴 한 번 못 봤어. 그게 20년 되었다. 그래도 사위 통해 연락은 닿고 살다가…… 괴물놈들 나타난 후로는 그마저도 끊어졌지.”

노파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상호의 가슴에는 돌덩이가 하나 떨어지고 있었다.

‘……설마.’

설마.

혀가 굳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상호를 내버려두고, 노파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손자는 내가 지 어미와 사이가 나쁜 줄을 몰랐다. 여기 올 때면 저 마당을 바람처럼 달려와서 웃는 얼굴로 날 불렀지. 집에 단것이라고는 고구마와 곶감이 전부였는데도 손자는 잘도 먹었다. 딱 하나, 화장실은 맘에 안 들었는지 갈 때마다 무섭다고 울곤 했어.”

상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데 결국은 철들기 전에 헤어지고…… 다시 만나지 못했다.”

시종일관 초연하던 노파가 엷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뭐 하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이제는 기억도 못하겠지.”

“그 손자는…….”

상호는 떨리는 손으로 주전자에 볶은 보리를 넣으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몇 살이었습니까?”

노파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국민학교를 들어갔던가? 기억이 잘 안 나는구만. 안 들어갔던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에 상호는 멍하니 주전자 속의 물을 내려다보았다.

양친을 전쟁에서 잃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남자.

아마 아닐 테지만, 그럴 확률은 낮지만.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이것은 기막힌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문득 그 말이 기억이 났다.

“할머니.”

삶에는 방향이 있다.

“그 손자…….”

사람의 삶은 제각기 방향이 달라서, 누구는 오른쪽으로 가고, 누구는 왼쪽으로 가기도 한다.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그러나 세상의 흐름은 시곗바늘처럼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고.

바꿀 수 없는 그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이름이 뭡니까.”

상호는 운명을 직감했다.

그리고 예상했다. 아마 자신이 생각한 이름이 나올 것이라고.

하지만 노파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은 상호의 생각과는 달랐다.

“손영주.”

딸그랑……

떨어뜨린 주전자 뚜껑이 바닥을 굴렀다.

마루에 누워 있던 태화가 흠칫했다. 잠을 깬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호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버려서.

“손…….”

그 이름을 되뇌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손영주, 요?”

“아는 이름이냐?”

노파가 그의 발치에서 주전자 뚜껑을 집었다.

“흔하다면 흔한 이름이지. 네가 아는 영주와 내가 아는 영주가 같은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네가 아는 영주는 어떠냐. 살아 있더냐?”

상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혹은 누군가의 함정인가.

“……할머니.”

상호의 눈에 어두운 빛이 깃들었다.

“저희가 여기 있다는 걸…… 누군가한테 말한 적이 있습니까?”

“요 앞에 사는 할망구들한텐 말했지.”

“그 외에는요?”

“없다.”

노파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상호는 그 말이 진실임을 깨닫고 의심을 거뒀다.

‘함정……일 리는 없다. 그랬으면 진작에 협회 놈들이 찾아왔겠지.’

우연일 뿐.

그래, 기막힌 우연일 뿐이다.

그래도 태화를 지키기 위해 도망쳐 온 곳이 영주의 외조모 집이라.

‘……아니야.’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

상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노파에게서 주전자 뚜껑을 받아들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그랬어요.”

“괘념치 말고 점심이나 맛깔나게 차려봐라.”

“예에.”

노파는 작은방으로 들어갔고, 상호는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주전자를 내려다보았다.

길쭉한 주둥이에서 김이 뿜어지고 있었다.

* * *

“아이고~.”

태화가 침대에 대자로 널브러졌다.

“모자 안 쓰니까 너~무 편해~. 근데 할머니한테는 왜 알려준 거야?”

“이미 알고 계셨대. 만났을 때부터.”

“엥. ……뭐, 쌤이 알아서 하겠지. 흐암…….”

상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태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졸리면 먼저 자. 씻고 올게.”

“어, 왜? 물 데워줄게.”

“난 찬물로도 잘 씻어.”

방을 나서는 그를 태화가 불러 세웠다.

“쌤.”

“응?”

“나 티비 봐도 돼?”

상호의 몸이 멈칫했다.

TV에는 태화의 공개수배령이 나오고 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에는 온종일 그 뉴스만 나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태화가 보면 상처가 될 텐데.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씩 웃었다.

“씻고 오면 같이 보자.”

“엥~. 쌤 없으면 심심해서 그러는데.”

“빨리 씻고 올게. 좀만 기다려.”

“웅.”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태화를 놔두고, 상호는 화장실로 향했다.

* * *

다음에 도시에 들를 땐 DVD라도 몇 개 사올까. 상호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마루에 올라섰다. 큰방에 노파가 누워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작은방에서 어떤 소리가 났다.

TV 소리.

[사, 살려줘, 제발 살려줘…….]

영화라도 보는 걸까. 상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같이 보자고 했는데 기어코 먼저 보는구나. 그래도 뉴스가 아니라면 딱히 상관없었다.

TV에서 남자의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대로, 이대로는 못 죽어요. 제발, 아무 일이나 시켜주세요, 뭐든 할 테니까! 아, 안 돼! 제발, 제발! 끄아아악!]

절대 연기가 아니다. 상호는 황급히 문을 열었다.

침대 위, 무릎을 끌어안고 쪼그려 앉은 태화.

TV 속, 복면 쓴 괴한들에게 끌려가며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는 사내.

[제발 한 번만 살려줘! 진짜 제발, 제발! 제바아아알!]

곧 화면 속으로 한 여인이 들어왔다.

여인은 구부러진 눈으로 상호와 태화를 노려보며 말했다.

[오늘 열 번째 희생자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상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화야.”

“…….”

“태화야, 채널 돌려.”

“…….”

태화는 리모컨을 품에 안고 멍하니 TV를 보았다. 리주의 입이 다시금 열리고 있었다.

[태화 양. 태화 양이 죽인 거예요. 순전히 태화 양이 오지 않아서, 혼자 희생하기 싫다고 도망치고 있어서, 지금까지 열 명이 죽었어요.]

리주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내일도 한 명이 죽을 거예요.]

상호에게는 그 같잖은 묵념이 가증스럽게만 느껴졌다.

[그 한 명도 태화 양이 죽이는 거라는 걸 기억해요. 앞으로 몇 명이 희생될지는 전적으로 태화 양의 선택에 달려 있…….]

TV가 꺼지자 태화가 몸을 움찔했다.

상호는 뽑은 코드를 던지듯이 내려놓고 태화에게 다가갔다.

“왜 혼자 티비 켰어.”

화가 난 목소리.

하지만 절대로 태화에게 화난 것이 아니었다.

“같이 보자고 했잖아. 왜 혼자 봤어?”

“쌤.”

태화는 이미 꺼진 TV의 까만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죽인 거야?”

상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개소리야. 네가 죽인 게 아니야! 그 X발놈의 악마 때문이지, 너 때문이 아니라고!”

상호는 태화를 덥석 끌어안고 이를 갈았다.

“왜, 왜 본 거야, 응? 응……?”

“……미안해.”

태화의 팔이 그의 목에 감겼다.

“잘 몰랐어. 쌤이랑 같이 있다 보니까, 괜히 신나서……. 내가 어떤 상황인지…… 잊고 있었나 봐.”

태화가 눈을 감았다.

이를 악물고 분을 삭이던 상호는, 곧 태화의 품에서 리모컨을 빼앗아 던져버리고, 불을 끄고, 얇은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에서 속삭였다.

“넌 잘못 없어.”

“……정말?”

“당연하지. 넌 그냥 살아온 것뿐이야. 네가 이 뿔이 달린 거, 이 꼬리가 달린 거…… 전부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냥 욕해버려. X발년 X발놈들이라고 욕해버려…….”

“쌤.”

태화가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내 뿔이랑 꼬리 있잖아.”

“응.”

“예뻐?”

“……당연하지.”

“있는 게 예뻐?”

“응. 훨씬.”

매끈한 꼬리가 상호의 손에 살며시 놓였다.

“그럼 꼬리 만져줘.”

이 꼬리는.

상호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태화를 끌어안은 채로 꼬리 끝을 부드럽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응…….”

태화는 몸을 움찔거리다가, 곧 편안한 표정이 되어 상호의 팔에 머리를 늘어뜨렸다.

“쌤.”

“응.”

“사랑해.”

“……응.”

상호는 나직하게 답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도 꼬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둘은 곧 한 몸이 되어 잠에 빠져들었다.

238. 낙원

“밤에 이상한 소리가 나던데.”

노파가 한쪽 눈썹을 치켰다.

“거사는 잘 치렀냐?”

“……왜 갑자기 말이 많아지신 거예요?”

상호는 퀭한 눈을 비비고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우……, 그냥 티비 때문에 그랬어요. 영화 보는데 짜증나 가지고.”

“눈은 왜 그렇고?”

“애가 잠꼬대를 해서요.”

태화는 밤사이에 또 울었다. 그는 그런 태화를 달래느라 밤을 꼬박 새웠고.

“아침으로 빵 괜찮으시죠? 토스트 할 건데. 토스트 뭔지 아세요?”

“내가 무지렁이로 보이냐?”

“……할머니 것도 만들게요.”

냉장고에는 그저께 사놓은 토스트 재료들이 들어 있었다. 식빵과 햄, 치즈, 양배추, 계란, 케찹, 마요네즈 등.

노파는 저 혼자서 식용유를 두르는 후라이팬과, 상호의 주변에 둥둥 떠 있는 식재료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그 마법이란 거냐?”

“비슷하죠.”

상호는 단번에 뚝딱 토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접시에 담아서 하나는 노파에게, 두 개는 자신이 들고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태화는 아직 자고 있었다.

“크아…….”

“태화야. 아침 먹자.”

“크아앙……웅?”

그는 부스스 일어나는 태화의 앞에 토스트가 담긴 접시를 놓았다.

“먹어.”

“오옷, 빵이네. 웬일이야?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이더니.”

“너 좋아하잖아. 도시 갔을 때 샀어.”

태화는 토스트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커피는 어딨어?”

“갑자기 웬 커피를 찾아?”

“일어나자마자 남편이 모닝커피 가져다줘야 하는 거 몰라?”

“애가 뭔 커피야. 자. 모닝 보리차.”

상호가 보리차를 내밀자 태화가 한 모금 마시고는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으음, 이 맛은…… 부드러운 산미와 풍부한 아로마, 묵직한 바디감을 보니…… 에티오피아산!”

“시고르하르모니산이야.”

“크악!”

태화는 순식간에 토스트와 보리차를 해치우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바다 고?”

“또?”

매일 가려니 질린다. 상호는 빈 접시를 싱크대로 날려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나랑 놀자, 그냥.”

“뭐 하면서 놀게?”

“이렇게.”

그는 태화를 끌어안고 지윤에게 하듯 관절기를 걸었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살살.

그러자 태화는 관절기를 풀기는커녕 상호의 손을 덥석 잡아채 엉뚱한 곳으로 잡아끌었다.

“……야!”

“까비~.”

태화가 깔깔 웃고 몸을 일으켰다.

“가자~, 바다~.”

“알았어, 그래……. 에휴.”

그는 태화를 따라 방을 나섰다.

* * *

노파는 주방에 서 있는 상호를 보고 눈을 끔뻑였다.

“아침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러냐?”

“……그러게요.”

이번엔 점심 준비. 상호는 고기를 망치로 다지며 쓰게 웃었다.

“좀 품이 많이 드는 요리라서.”

“뭔데?”

“돈까스요. 할머니 양식 좋아하세요?”

“돈까스가 일식이지 무슨 양식이냐?”

“……대충 알아들어 주세요.”

“함 만들어 봐라. 먹어보게.”

“예.”

아주 작정하고 제대로 만들어 볼 요량으로 고기를 두드리고, 소금과 후추 간을 해서 재우고, 계란물을 만들고, 식빵을 곱지 않게 갈은 것과 속이 깊은 냄비를 꺼냈다.

상호가 그렇게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는데, 노파가 주방에 들어섰다.

“이건 뭐냐?”

“아, 그건 소스요. 돈까스 소스.”

“저으면 되냐?”

“아뇨, 제가 마법으로 하면 되는데.”

“저으면 되냐고 물었지 누가 니 사정을 물었냐? 주걱이나 내놔라.”

“……예에.”

상호는 주걱을 꺼내 노파에게 건넸다.

노파는 주걱으로 소스를 휘젓다가 물었다.

“네가 아는 영주는 어떤 사람이냐?”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상호는 재워 놓은 고기를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잘 몰라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진 않을 거 아니냐?”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이번엔 그의 차례.

“할머니 손자는 어떤 아이였어요?”

“글쎄. 잘 웃고, 그 나잇대 아이들처럼 장난기가 많았지.”

주걱을 젓는 손이 조금 느려졌다.

“하나 특이한 점이라면…… 뭘 죽이는 법이 없었다. 개미 한 마리, 파리 한 마리도……. 그 나이 애들이 방아깨비 다리 뜯고, 잠자리 날개 뜯을 때도, 손자는 벌레 한 번 잡지 않았어.”

“…….”

상호는 묵묵히 고기에 계란물을 묻혔다.

자신이 아는 영주와는 달랐다. 그가 아는 영주는 살인자. 스스로 희생할 수 없어 타인을 죽인 비겁자.

하지만 상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원수와 노파의 손자가 동일인임을.

“비범했네요.”

“그렇지.”

노파는 그 뒤로 말없이 소스를 저었다.

상호의 눈빛이 작은방 쪽을 향했다.

‘좋아할지 모르겠네.’

돈가스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는 도망을 시작한 날 태화가 휴게소에서 돈가스를 먹지 못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후에도, 편의점 도시락으로라도 먹이려 했지만 맛이 영 좋지 않았고.

그래서 몰래 돈가스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태화는 주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맛있어야 할 텐데…….’

상호는 그런 걱정을 품고 빵가루 묻은 고기를 하나씩 튀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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