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6화 (246/501)

* * *

“흑…….”

울음소리.

상호는 움찔하며 눈을 떴다. 아주 작은 자극에도 반응할 수 있도록 선잠을 자고 있던 터라, 순식간에 정신이 명료해졌다.

태화가 훌쩍이고 있었다.

“어으……흑, 으흑…….”

내어 준 팔에 뜨거운 눈물이 닿았다.

악몽이라도 꿨을까. 아니면 쫓기고 있다는 현실이 무서운 걸까. 상호는 손을 뻗어 태화의 등을 토닥이려 했다.

그때 태화의 입에서 울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상호의 손이 멈췄다.

“엄마…… 어디 가? 가지 마……. 다 아빠 때문이야……. 잘못했어, 아빠……. 때리지 마……. 가지 마…….”

“…….”

“다시……. 다시 셋이서 살자, 응……? 하루만 더 있다 가……. 제발, 제발요, 엄마, 아빠……. 왜, 왜 이러는 거야……. 나 죽어버릴 거야, 그니까 제발, 가지 마…….”

가냘픈 목소리. 바들바들 떨리는 몸. 감은 눈에서 철철 흘러내리는 눈물은 용암처럼 뜨거워서 팔을 데일 것 같았다.

악몽보다 더 힘겨운 기억.

스스로 잊었다고 했지만, 아무리 어린 날의 기억이라도 가슴 한켠에는 남아 있었던 것이다.

상호는 멍하니 굳어 있다가.

곧 태화를 힘껏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태화야.”

그 말에 태화가 흠칫했다.

잠에서 깬 건지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하지만 가빠진 숨은 쉬이 가라앉지 못했다.

태화가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쌤.”

“응.”

“나 있잖아…….”

“말해.”

“죽기 싫어…….”

품에 뜨거운 눈물이 배어들었다.

어둠을 마주한 상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죄 없는 아이를, 무고한 아이를, 이토록 독하게 몰아붙이는 세상을, 그는 한없이 깊은 원망을 담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건드리는 놈들은 다 죽여 버릴 것이다.

한 놈도 남김없이.

전부 다.

“태화야.”

“응…….”

“쌤은 아무 데도 안 가.”

“으…….”

“네 옆에만 있을 거야.”

“으응…….”

“그러니까 잘 자고.”

“응…….”

“내 꿈 꿔.”

나쁜 꿈은 꾸지 말고. 슬픈 꿈도 꾸지 말고. 상호는 그렇게 빌며 태화의 등을 가만히 다독였다.

그러자 태화가 그의 품속에서 느리게 꾸물거렸다.

“……응.”

목소리가 많이 밝아져 있었다.

233. 검려지기

“크아아악!”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기합 섞인 비명.

상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좀 조용히 싸라, 임마.”

“갸아아악!”

“조용히 싸라고!”

“끄응, 이렇게 쏟아질 리 없는데…… 쌤 나 잘 때 엉덩이에 이상한 거 넣었지!”

“미쳤냐?”

“좌약 같은 거 넣은 거 아냐?”

“넣었겠냐?”

어제 울던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작은 냉장고에는 어제 먹다 남긴 족발과 치킨이 들어 있었다. 겨우 하룻밤 지났으니 상하지는 않았을 터. 상호는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슬쩍 냄새를 맡았다.

‘괜찮네.’

태화가 나오면 불로 데워 달라고 해야겠다. 상호의 시선이 화장실을 향했다.

“오래 걸려?”

“아니, 조금만……. 갸아악!”

“……천천히 볼일 봐.”

그는 차가운 치킨을 질겅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 * *

“세희야~.”

세희는 뒤를 돌아보았다.

교복을 입은 나빛이 비몽사몽인 눈을 끔뻑이며 기숙사 복도를 걸어오는 중이었다.

“선생님한테 연락 온 거 없어……?”

“없어.”

“으응…….”

나빛은 울상을 지으며 눈을 비볐다. 밤새 울기라도 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우리 어떻게 해……? 아빠한테 말해 봤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아보겠지만 협회는 건드릴 수가 없대…….”

“그야 그렇겠지.”

“어떡해…….”

“……모르겠어.”

세희는 한숨을 쉬었다.

상호에게 옛 이야기들을 들어서 악마의 영혼이 따로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봉인에 가장 적합한 게 태화라는 건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정확히는 협회가 태화를 죽이려 한다는 게.

“일단…… 교장선생님이나, 수녀님한테 가보자. 두 분은 뭔가 더 알고 있을 테니까.”

“응.”

“지윤이 불러서 같이 가자.”

“응.”

둘은 지윤의 방으로 향했다.

* * *

“미진쌤헌티는 말 안혀도 되겄나?”

“문자로 말씀드렸어.”

세희는 지윤과 나빛을 데리고 교장실로 걸어갔다.

1층. 교장실 문 앞에 도착한 셋은 우선 숨소리를 죽이고 안쪽의 소리를 엿들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을 두드려도 대답은 없다. 나빛이 세희와 지윤을 돌아보았다.

“안 계신가?”

“글쎄. 어, 열린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셋은 슬쩍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

나빛이 토끼눈을 뜨며 흠칫했다.

한 사내가 해련의 책상 근처에 서 있었다. 다부진 체격. 서글서글한 인상. 하지만 냉랭하고 피로에 찌든 눈빛.

손에 들린 창이 시퍼런 빛을 띠었다.

“무슨 일로 왔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

어디서 들어본 듯한 목소리. 세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TV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뿐, 정확히 누구인지를 기억해내지는 못했다.

“들어와.”

멀뚱히 서 있던 셋은 주춤주춤 안으로 들어섰다. 지윤이 주변을 쓱 둘러보고 물었다.

“교장쌤은예?”

“아직 출근 안 하셨나 보다.”

사내의 눈동자가 세희의 얼굴과 지윤의 손을 향했다.

“상호 제자들이구나.”

“……아.”

세희는 그제서야 사내가 작년 벚꽃 축제에서 자신들의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 말의 내용으로,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선생님이랑 같은 부대…….’

헌터 협회의 부협회장.

도현이 날카로운 눈빛을 쏘았다.

“선생님 어디로 갔는지 아니?”

“……아니예. 모릅니더.”

지윤이 고개를 저었다.

도현은 지윤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나빛과 세희를 짧게 일견하고 재차 물었다.

“그래서 여긴 어떤 일로 왔니?”

“저기…….”

나빛이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세희가 허리를 확 끌어당기는 바람에 말을 잇지 못했다. 나빛은 세희를 돌아보며 눈을 깜작였다.

“세희야?”

“그냥, 교장선생님께 인사드리러 왔어요.”

“아침부터?”

“제가 교장선생님이 관리하시는 선도부라서.”

세희는 그렇게 말하며 도현과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방금 선생님이 어디로 갔냐고 물었다. 그리고 도현은 헌터 협회의 부협회장.

아무리 담임의 전우라 하더라도, 믿을 수 없었다.

“안 계시다니 나중에 올게요.”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 세희는 나빛과 지윤을 잡아끌고 문가로 향했다.

그때 보이지 않는 기운이 그녀들을 스쳐 지나갔다.

“뭐고.”

지윤이 문을 열려 했지만, 문고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걸 본 세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X발.’

등 뒤에서 구두 소리가 다가왔다.

“안심해라.”

뚜걱, 뚜걱.

“해치진 않을 테니까.”

세희는 식은땀이 배어나는 것을 느끼며 도현을 돌아보았다.

저승부대. X급 헌터.

일개 헌터 지망생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괴물.

그 괴물이 세희를 향해 똑바로 다가왔다.

“친구는 뭔가 좀 알고 있는 눈치인데.”

도현의 내공이 그녀들을 짓눌렀다.

“전국평가에 왔었지?”

“……예.”

세희의 숨이 가빠졌다.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수제자인가 보네.”

“네.”

“그럼 선생님이 어디로 갔을지…….”

도현은 몸을 살짝 굽혀 세희와 눈높이를 맞췄다.

매섭게 치켜뜬 눈이 세희를 노려보았다.

“짐작 가는 곳이 있니?”

“……아뇨.”

세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음을 굳게 먹으려 해도 심장이 아파서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게 저승부대.

생사경을 수천 번 겪은 헌터의 살기.

그런데 옆에서 나빛이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저어…….”

도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알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나빛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선생님 수제자는 저예요…….”

“…….”

도현도, 세희도 할 말을 잃었다.

“제가 전국평가는 못 나갔지만…… 그래도 제가 제일 강하구, 선생님도 절 제일 좋아하시구…….”

“…….”

“어쨌든 수제자는 저예요…….”

나빛이 그렇게 항의했다.

도현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너희, 이름이 뭐니?”

“저는 하나빛이구요, 얘는, 세희, 천세희구, 얘는 오지윤이에요.”

“…….”

도현은 살기를 거뒀다.

지윤이 누구의 딸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빛이 누구의 동생인지는 방금 이름을 듣고 알게 되었다.

전우의 딸, 그리고 지인의 동생.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그래. 네가 수제자구나. 그럼 선생님이 어디로 갔는지 아니? 도움 받을 만한 사람이라든가, 연락할 방법이라든가.”

“잘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세희를 보았다.

“너는?”

“저도 몰라요.”

세희는 굳게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아는 거 없어요.”

“내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네.”

“너희 다?”

“네.”

나빛과 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은 빙긋 웃으며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아저씨는 이런 사람이야.”

한국괴렵협회 부협회장 서도현. 세희는 굳이 읽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윤과 나빛은 그걸 보고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엇…….”

“부협회장님……이세요?”

“응. 그리고 너희 선생님 친구기도 해.”

그 말에 나빛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협회면 태화 잡아가려는 곳이잖아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네. 난 너희 선생님 편이야. 만나서 이야기 한번 해보려는 것뿐이야.”

“그 말을 지들이 우예 믿습니꺼.”

“그 반지.”

도현은 지윤의 반지를 가리켰다.

“내가 아는 사람 거야.”

“……아.”

지윤도 눈앞의 사람이 저승부대라는 것을 상기한 듯했다.

그러나 평소 같았으면 그것만으로도 상호의 친인이란 게 증명이 되었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상대가 헌터 협회의 부협회장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애초에, 태화와 상호의 현재 상황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알아도 알려주지는 않았겠지만.

세희와 지윤, 나빛은 등에 문이 닿을 때까지 뒷걸음질쳤다.

“그래도…… 저흰 몰라요. 진짜예요.”

“그래?”

도현이 손을 들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한번 보자.”

살짝 들어 올린 검지에 누런 강기가 일렁였다.

혈도를 누르려는 것이다.

세희는 다가오는 검지를 노려보며 손바닥에 강기를 끌어올렸다.

도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하늘색으로 타오르는 강기.

도현은 입까지 조금 벌린 채로 멍하니 그 강기를 바라보았다.

“…….”

아주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방에 거센 바람이 한 번 휘몰아치더니, 도현의 등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떨어져요.”

열린 창문과 펄럭이는 커튼 앞에 해련이 서 있었다.

도현이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해련이 무서워서는 아닌 것 같았다.

“겁만 준 겁니다.”

“말했잖아요. 애들도 나도 아는 거 없다고.”

“혹시 모르니까.”

도현은 그렇게 대답하고 해련을 한 번 흘끗하더니, 셋을 내공으로 치운 후 교장실을 나갔다.

해련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 앉았다.

“아이구, 시퍼렇게 젊은 놈이 늙은이를 지지고 볶아……. 너희는 무슨 일로 왔니?”

“저희 선생님…… 혹시 연락 왔나 해서…….”

“안 왔어. 고작 하루밖에 안 됐잖니.”

“그리고…….”

나빛이 손을 꼼지락거렸다.

“저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해서…….”

해련은 셋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공을 뻗어 찻주전자와 찻잔을 꺼냈다.

“앉아볼래?”

“네…….”

셋은 소파에 앉았다.

곧 셋의 앞에 김이 폴폴 오르는 찻잔이 놓였다.

“일단 지금 상황은 어디까지 알고 있니?”

“저기……. 태화가, 어떤 악마를 봉인하는 데 쓰일 거라는 거…….”

“그리고?”

“그것까지밖엔…… 이해 못 했어요…….”

나빛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해련은 착잡한 표정으로 차를 홀짝이다가,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기사는 보고 있니?”

“보고는 있어요…….”

“세상이 관심을 많이 갖지?”

“……네.”

전쟁의 근원. 괴물의 왕.

저승부대를 몰살시킬 뻔한 악마. 그동안 사라진 수백 명의 사람들. 필요한 것은 한 소녀의 희생.

전쟁을 겪은 이들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 나라 땅을 밟고 있는 모든 성인들은 전쟁을 겪은 이들이었다.

“세상이 누구 편인 것 같니?”

해련의 물음에 나빛이 속상한 목소리를 내었다.

“……협회요.”

“그래. 이런 상황에서 너희가 선생님을 찾다가 꼬리가 밟히게 되면…… 선생님도 위험해지고, 너희도 위험해져.”

“그치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거야.”

해련이 눈을 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교를 지키는 일이고…… 너희가 선생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미안하지만 아무것도 없어. 아, 하나 있긴 하구나.”

“그기 뭡니꺼?”

“동생들 안심시키는 거. 선생님이 부탁하고 가셨잖니.”

“……아.”

셋은 깨달았으면서도 실망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할 수 있는 게 고작 그런 것밖에 없다니. 하지만 공연한 짓을 하다가 상호에게 누를 끼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하면 안 돼요……?”

나빛이 자신의 치마를 부여잡았다.

“이대로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도와 달라거나…… 사람들한테 좀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는 것도 안 돼요?”

해련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몇백 명이 죽은 시점에서 그런 방법은 사라졌어.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믿지 마렴. 그 사람들한테 태화는 그냥 모르는 학생 한 명일 뿐이야. 수백 명보다 중요하질 않아.”

“…….”

나빛이 고개를 푹 떨궜다.

세희는 가만히 그 말을 곱씹다가, 차를 쭉 들이켜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수업 받으러 갈게요.”

“응, 들어가렴. 그리고 혹시 내 말을 듣고도 뭔가를 하고 싶다면…… 꼭 민정 양이나, 효은 수녀한테 말하고 결정해. 알았지?”

“네.”

셋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교장실을 나갔다.

“아휴…….”

해련은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도울 수 없어서 답답한 건 그녀도 마찬가지. 하지만 논의되지 않은 행동은 상황을 더욱 어그러지게 만든다는 것을, 전장에서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상호의 생각대로 진행되게 놔두는 것이 옳다.

‘속 터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아침에 혁과 한 대화가 떠올랐다.

‘이사장은 어떻게 생각해요?’

‘뭐 말입니까?’

‘태화. 대의를 위해서 협회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이니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쎄요.’

혁은 늘 그렇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 애가 작년에 장학금 탄 애 아닙니까?’

‘맞아요.’

‘그 애가 끌려가면 그 돈이 날아가는 거고, 그 애가 남으면 재능 있는 학생 하나를 얻는 거겠죠. 근데 그거 때문에 사회하고 싸우진 않을 겁니다. 나한테 뭐 부탁하지 마요.’

‘그러려는 건 아니었어요. 근데 류 이사장.’

‘예?’

‘역시 학생한텐 지극하네.’

‘……출근이나 하십쇼.’

그 말을 끝으로 혁은 성난 듯 걸어갔었다.

혁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방관하려는 듯하고, 민정은 학교를 지키면서 다혜를 돌보고 있고, 효은은 더 이상 싸울 능력이 없다는 모양이고.

여론전을 펼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논리적으로 유리한 건 정보를 갖고 있는 협회 측이기에 오히려 독이 될 터였다.

결국 돌고 돌아 결론은 하나.

함부로 도와서는 안 되고, 애초에 도울 방법도 없다.

‘답답하네, 답답해…….’

해련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업무를 계속하려다가, 영 집중이 되지 않아 서류를 책상에 내던지고 의자에 늘어졌다.

쓸데없이 날씨가 좋았다.

234. 이 땅의 끝으로

“우리 어디로 가?”

“남쪽.”

상호는 핸들을 돌리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차가 달리는 곳은 좁은 도로. 한쪽엔 들이 펼쳐져 있고, 한쪽은 산이 시야를 막고 있었다.

태화가 뒤에서 과자를 와작거렸다.

“남쪽 어디?”

“그건 몰라. 빈 집을 찾을 때까지 돌아다녀야지.”

“도둑이야~.”

“맞긴 해.”

기왕이면 온수도 나오고 전기도 들어오는 곳이기를 바랐다. 정 없으면 찬물이 나오든 지붕이 없든 신경 쓰지 않겠지만.

곧 차가 터널 안으로 접어들었다.

“마당 있었으면 좋겠다.”

“있을 거야. 시골은 애초에 집을 안 붙이니까.”

“개나 고양이도 한 마리 키웠으면 좋겠어.”

“그렇게 오래 머물진 모르겠다.”

“애기 초등학교는 어디로 보내지?”

“야.”

“잇힝~. 어.”

짧은 터널을 지나자 산이 있던 방향에 바다가 펼쳐졌다. 태화는 차창에 바짝 붙어 반짝이는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다!”

“바닷가였으면 좋겠어?”

“바다다다다다!”

“그래. 바닷가에서 찾아보자.”

차가 바닷가 마을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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