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의외로 멀쩡하네?”
효은이 눈썹을 치켰다.
이사장실. 모인 사람은 효은, 도현, 민정, 해련, 혁. 도현은 효은의 날카로운 눈빛을 무심한 표정으로 흘려 넘겼다.
“내가 멀쩡해 보이면 네 눈에도 문제가 있다.”
“이딴 일을 벌이길래 폐인이라도 된 줄 알았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그런 일을 겪은 애한테, 또 이런 일을 겪게 해?”
“옛날 일이랑은 관계없어. 사람을 살려야 하니까 택한 거지.”
도현의 시선이 민정을 향했다.
“너도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냐?”
민정은 대꾸 없이 도현을 째려보았다.
구태여 입을 열지 않아도 뜻이 뻔했다. 도현은 헛웃음을 치며 해련과 혁을 돌아보았다.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혁은 말없이 차를 홀짝였고, 해련은 팔짱을 낀 채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현의 말이 이어졌다.
“한 아이를 죽여서 수십, 수백, 수천의 목숨을 살린다…… 혹은 살리려고 시도한다. 이 사실에 내가 개인의 사정을 봐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두 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
“이게 헌터란 직업 아닙니까?”
도현은 다시 고개를 돌려 민정과 효은을 노려보았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채였다.
“너흰 어떻게 생각하냐?”
“…….”
“너희가 나보다 고민해 봤어? 잠을 설쳐 봤어? 너희 손으로 사람을 죽여 봤어? 나는 수천 번을 고민했어. 올해 1년 내내. 그런데 너희는 고작 과거의 일 따위로, 더 많은 사람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할 셈이냐?”
“그럼 다른…….”
효은은 말을 하다 말고 삼켰다. 스스로도 너무한 말이라는 걸 깨달아서.
하지만 도현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다른 뭐? 다른 사람을 죽여라? 다른 악마 융합체를 죽여라? 그 사람은 무슨 죄지? 그 사람이 그 여자애하고 다를 게 뭐지? 더 고귀한가? 더 쓸모있나? 나효은. 똑똑히 알아둬. 내 목표는 단 한 사람, 제일 적합한 사람을 찾는 거야. 제일. 알아들어? 두 번째, 세 번째가 아니라, 제일 당위성이 있는 사람 한 명을 찾는 거라고.”
“……그건 알겠는데.”
효은의 입에서 엷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권리……지. 권리야. 걔한텐 권리가 있어. 오빠도 알고 있을 텐데.”
“그건 우리 넷끼리 결정할 때 이야기지. 우리 선에서 끝나는 문제를 말할 때 이야기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데에 어디 권리가 끼어들 구석이 있냐? 그래, 그런 권리가 있다고 쳐. 나한텐 없고, 상호한텐 있다고 쳐. 근데 나도 지금까지 충분히 죽여 왔어. 사람을 죽일 권리가 없는데 죽여 왔다고. 그럼 나한테도 이제 권리가 있는 거 아니야? 사람들을 살릴 권리가 있는 거 아니야?”
도현의 손이 덜덜 떨렸다.
“대장님이라면 뭐라고 하셨을 것 같냐? 헌터 여자애 목숨 하나. 민간인 목숨 수백 수천. 답이 뻔한 거 아니야? 아닌가?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대답해. 내가 틀렸어? 틀렸냐고!”
벽력같은 호통.
효은과 민정은 할 말을 잃었다.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싫지만,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은 평등하고 목숨의 무게는 한결같으니, 단수와 다수를 비교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녀들 본인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싸워 왔다.
“……오빠.”
민정은 간신히, 나직하게 그를 불렀다.
“일찍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도현의 눈 밑이 움찔했다.
“그런데 난…… 이기적인 년이라서, 내가 아끼는 동생이 슬퍼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볼 수가 없어. 물론 오빠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도 보기 싫지만…… 예경이가 죽었을 때, 상호가 지었던 표정은…… 절대로,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 게다가 태화는 내 제자이기도 해.”
민정은 그렇게 말하고 효은의 손을 잡았다.
“대답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여기 머무를 거야. 오빠를 도와주진 못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오빠가 상호랑 관련된 사람을 건드리려 한다면…… 내가 대신 싸울 거야.”
민정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속삭였다.
“미안해.”
그 말을 끝으로, 민정과 효은은 이사장실을 나갔다.
자리에 남은 도현은 잠시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다가, 그 눈 그대로, 초점 없이 텅 빈 눈으로 혁과 해련을 돌아보았다.
“당분간 자주 볼 겁니다.”
“예.”
“제가 직접 학교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할 겁니다. 두 분도 포함해서. 초법적인 사안이니 이해해 주시죠.”
“어쩔 수 없죠.”
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들은 도현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도 성이 난 걸음으로 이사장실을 나섰다. 걸어간 자리에 쌩하니 찬바람이 불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해련이 뒷짐을 진 채로 지켜보고 있었다.
‘딱하기도 하지.’
남매나 다름없는 전우들과 갈라져 홀로 걷는 사내.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는 것은 본래가 외로운 길이지만, 곁에 남아주는 이 하나 없는 모습을 보면 가엾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본인한텐 그 길밖에 없겠지…….’
문득 상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감시와 도청 때문에 연락을 할 수는 없고.
그저 행운을 빌어줄 뿐이었다.
‘다 같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으려나……. 나이 먹은 늙은이도 이럴 땐 쓸모가 없구나.’
해련은 한숨을 푹 쉬고 터덜터덜 문가로 걸어갔다.
232. 내 꿈 꿔
“그건 또 뭐야?”
“렌즈.”
상호는 운전석에 앉아 태화에게 렌즈 케이스를 건넸다.
“너 눈동자 때문에. 눈 나빠지니까 자주 쓰지 말고, 어쩔 수 없이 사람들 볼 때만 써.”
“응.”
“그리고…….”
차 안은 과자와 물, 원피스와 속옷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차 안을 들여다봤다가는 의심을 살 게 뻔했다.
상호가 손짓하자 담요와 빨래집게가 날아가 뒷좌석의 창문을 가렸다.
“옷 갈아입어. 그 옷은 휴게소에서 들켰으니까.”
“웅.”
태화가 꼬물거리며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상호는 주변에 사람이 오는지 감시하며 물을 들이켰다. 그런데 갑자기 하얀 팔이 그의 옆으로 쏙 들이밀어졌다.
손에 벨트를 들고 있었다.
“이건 뭐야?”
“그걸로 꼬리 몸에 묶어.”
“원피스 아래로 차라고?”
“그래야겠지.”
백미러로 하얀 살결이 언뜻 비쳤다.
밖에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6시. 슬슬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다.
태화에게 편의점 빵으로 끼니를 때우게 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야 했다.
“다 입었어?”
“응.”
“빵 뭐 먹을…… 야!”
“쏘리~.”
태화가 혀를 쏙 내밀며 원피스의 아랫단을 마저 내렸다.
상호는 뜨거워지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너 먹을 거 먼저 골라. 남은 거 하나 줘.”
“나 아무거나 먹을래. 쌤이 먼저 골라.”
“너 먼저 고르라니까……. 그럼 반반씩 먹자.”
“웅.”
둘은 빵의 포장을 뜯어 반씩 먹기 시작했다.
별안간 태화가 입에 크림을 묻힌 채로 배시시 웃었다. 상호와 지그시 눈을 마주치면서.
상호는 마주 웃지 못하고 눈을 끔뻑였다.
“나 뭐 묻었어?”
“아니, 그냥.”
태화는 뭐가 그리 좋은지 자꾸 샐쭉 웃었다.
“쌤이랑 도망치는 거, 뭔가 재밌어서.”
“……난 하나도 재미없어.”
이딴 생활 빨리 끝내버리고, 태화가 친구들과 놀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상호는 식빵을 신경질적으로 물어뜯었다.
“조금만 참아. 금방 학교로 돌아가게 해줄게.”
“……응.”
태화는 빙긋 웃고는 방금 벗은 옷을 흘끗했다.
“근데 우리 차에서 사는 거야? 빨래랑 샤워는 어떻게 해?”
“머무를 곳을 찾아야지.”
제일 처음 생각한 곳은 상호 자신의 집. 하지만 도현은 당연히 거기까지 손을 뻗쳐 놨을 터였다.
두 번째로 생각한 곳은 해련의 집. 하지만 협회의 정보력이라면 거기까지 알아냈을 수도 있으니.
남은 선택지는 하나.
상호도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
“시골로 내려갈 거야. 전쟁 후로 버려진 집들이 많으니까……. 전쟁 전부터 그런 곳에 몰래 들어가 사는 사람도 있었고.”
“섬으로 갈까?”
태화가 눈을 반짝였지만,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섬에서 포위당하면 도망치기 힘들다. 되도록이면 도로망이 여럿 연결된 곳으로 가야 했다.
“일단 내일 생각하자. 오늘 가지는 않을 거니까.”
“그럼 오늘은 어디서 자?”
상호는 차창 밖 건물을 흘끗했다.
“모텔.”
* * *
“안 들킨 것 같지?”
“응.”
상호는 계단을 오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변장을 했잖아. 하루째니까 아직 모르는 사람도 많을 거고.”
“아니, 그거 말고.”
“응?”
“내가 민짜인 거.”
태화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봐도 연인인데 말이야~.”
“……조용히 해.”
“그만큼 내가 쭉쭉빵빵하단 거겠지? 그치?”
“조용히 하라고…….”
“쌤이랑 모텔 온 건 내가 처음이지?”
“아니. 세희랑 왔었는데.”
“뭐? 또 걔야?! 우씨, 핸드폰 어딨어…….”
“얌마.”
상호는 내려가려는 태화를 붙잡고 꿀밤을 놓았다.
“쌤이라고 부르지 마. 누가 들으면 큰일난다고.”
“쌤을 쌤이라 부르지 못하고……. 그럼 뭐라 불러? 자기야?”
“……오빠라고 해.”
“오빵~.”
태화는 그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계단을 올랐다.
방에 도착한 상호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좁은 방에 TV가 하나, 침대가 하나.
‘어쩔 수 없지.’
침대가 둘 있는 방을 잡았다가는 의심을 받을 것 같았다.
그가 침대에 가방을 던지고 TV를 켜자 태화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오빠, 나 화장실 먼저 쓸게.”
“방에선 쌤이라고 해도 돼.”
“오빠, 나 씻고 나올게~.”
“……알았어.”
“헹.”
태화는 렌즈를 빼고, 빵모자를 벗고 벨트를 푼 후, 갈아입을 속옷과 카운터에서 준 일회용 세면도구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상호는 침대에 걸터앉아 TV 채널을 돌렸다.
저녁 뉴스에 리주와 태화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염병.’
전국 각지에서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느니, 리주의 말을 검증한다느니, 관련도 없는 이들이 여러 소리를 해댔으나 실속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지만, 리주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TV를 꺼 버렸다.
‘빨리 씻고 자야지…….’
핸드폰이 없으니 할 게 없었다.
아이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연락을 간단히라도 하긴 해야 할 텐데.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공중전화도 안심할 수 없고, PC방에서 메세지를 보내는 것도 안전하지 않다. 그나마 믿을 만한 수단은 편지.
‘나중에 편지라도 써 볼까.’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생각에 잠겼다. 편지를 쓴다면 어떤 내용을 쓸지.
곧 태화가 수증기와 함께 화장실에서 나왔다. 하얀 반팔 원피스를 입고 목에 수건을 걸친 채로.
그런데 손에 무언가 작고, 네모나고, 얇은 것을 들고 있었다.
“그거 뭐야?”
“아, 쌤.”
태화가 그 물건을 흔들었다.
“이거 뭐야? 카운터에서 준 거에 들어 있던데.”
“…….”
상호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버려, 그냥.”
“콘돔이야?”
“버리라고!”
“아이고, 이 귀한걸…….”
“뭘 귀해! 내놔.”
상호는 내공으로 태화의 손에 들린 것을 잡아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걸 본 태화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안 쓸 거야?”
“저걸 왜 써!”
“근데 안 쓰면 쌤 학교에서 짤리잖아.”
“……시끄러.”
그렇게 대꾸하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려는데,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씻는 동안 누가 들이닥치면 어쩌나.
그래서 상호는 문을 닫지 않았다.
“태화야.”
“응?”
“계속 말 걸어 줘.”
“알았엉.”
문 사이로 태화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쌤.”
“응?”
“세희랑 모텔 왔었다고?”
“……응.”
하필이면 주제가 그건가. 샤워기로 물을 맞으면서도 진땀이 났다.
태화가 재차 물었다.
“왜 왔는데?”
“강원도에 갔다가, 차가 부서져서……. 세희랑 둘만 있었던 건 아니야. 민정이 누나랑 효은이도 있었어.”
“우와아…….”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야.”
문틈으로 꼬리가 슬며시 기어들어 왔다.
“쌤.”
“응?”
“들어가도 돼?”
“뭘 들어와, 임마. 저리 가.”
“이거 확 열어 버리면 쌤 알몸 내가 처음 보는 거 아냐?”
“아니, 그것도 세희가 먼저 봤는데.”
“뭐어?!”
태화는 문을 벌컥 열어 버리고 쌍심지를 켰다.
“또 걔야?”
“문 닫아, 임마! 실수였다고, 그거는…….”
상호는 황급히 손으로 몸을 가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태화는 그냥 거기 주저앉아서 문틀에 기대었다. 붉은 입술을 혀가 쓱 훑었다.
“나도 한번 봐야겠는데, 교보재.”
“……저리 가.”
그는 내공으로 태화를 들어 침대에 던졌다.
한시름 놓고 머리를 감는데, 침대에서 태화가 웅얼거렸다.
“쌤.”
“응.”
“쌤.”
“……응.”
“난 왜 이래?”
상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학교 밖에서는 좋은 일이 없어. 항상…… 어릴 때부터 계속. 그래서 죽을까도 생각했었다? 솔직히…… 그때 날 잡으러 왔다면, 도망 안 치고 잡혀 줬을 거야.”
태화가 키득거렸다.
“웃기지. 이제는 살고 싶어지니까 잡으러 오는 게. 쌤 만난 후로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세상은 왜 항상 반대로 돌아가는 걸까?”
상호는 샴푸를 씻어 내렸다.
“왜 나만 이럴까?”
울먹이지 않는, 나직한 목소리.
“솔직히 세희도 나보단 행복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나빛이는 말할 것도 없고. 지윤이도……. 나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이제 행복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태화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그때 물소리가 멈추고 수건으로 머리 터는 소리가 들렸다.
상호의 목소리와 함께.
“행복은 네가 찾는 거지. 세상이 대령해 주는 게 아니라.”
옷을 입는 소리도 들렸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최선을 다해서 만들면 되는 거야.”
무를 수 없는 건 죽음밖에 없고, 사람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상호가 항상 하는 말.
태화는 살며시 눈을 떠서, 화장실에서 나오는 상호를 바라보았다.
“난 찾긴 찾았어.”
“그래?”
“그런데 세상이 갈라놓는 거야.”
세상이 갈라놓은 행복. 그에겐 이미 겪어본 경험이었다.
물기를 다 닦은 상호는 침대에 걸터앉아 태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뭘 갈라. 이렇게 같이 있는데.”
“그런가?”
“앞으로도 갈라질 일 없어. 계속 함께 있을 거니까.”
“계속?”
“계속.”
그 말에 태화가 씩 웃었다.
“쌤.”
“응.”
“야식으로 치킨 어때?”
“나쁘지 않네. 당분간 못 먹을 테니…….”
“어, 그럼 짜장면도.”
“그래.”
“족발도?”
“다 시켜, 다. 먹고 남기면 되지.”
“앗싸~. ……어, 근데 어케 시키징? 핸드폰…….”
“방 전화로 시켜야지. 이런 데 보면 배달 번호부가 다 있어.”
“우왓. 역시 모텔 전문가.”
“얌마…….”
둘은 머리를 맞대고 메뉴를 골랐다.
* * *
“아~.”
태화가 침대에 벌러덩 나자빠졌다.
“배 터질 것 같아~.”
“적당히 먹었어야지. 배탈나면 어쩌려고.”
“안 그래도 이미 큰일났어.”
태화의 손이 배를 통통 두드렸다.
“내일 엉덩이에 불나겠는데.”
“그러게 누가 이렇게 매운 거 시키래?”
“어떡하지~. 쌤도 써야 하는데~.”
“……화장실 말하는 거지?”
상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태화의 볼을 잡았다.
“네 몸 네가 신경 써. 니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그치만~. 떡볶이는 참을 수가 없는걸~.”
“물에 씻어 먹어.”
“우엑.”
태화가 혀를 내두르며 베개에 얼굴을 폭 묻었다.
상호의 눈이 시계를 향했다. 시간은 열 시.
일찍 자고 일어나면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빨리 자. 내일 일찍 나갈 거니까.”
“응.”
침대에 앉은 상호의 옷자락을 태화의 손이 끌어당겼다.
이제는 같이 자는 게 익숙한지라, 상호도 몸을 빼지 않고 태화의 곁에 누웠다.
팔을 내어 주자 태화가 머리를 그 위에 놓았다.
“이 높이가 딱 좋아.”
“그래?”
“응. 근육이 빵빵하니까. 옆으로 누워도 뿔이 안 걸려서 좋아.”
태화의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걸렸다.
상호는 그 웃음을 보고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며, 내공을 뻗어 방의 불을 껐다.
그리고 태화를 살짝 끌어안았다.
“자자.”
“……응.”
붉은 눈이 스르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