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2화 (242/501)

* * *

“쿠울…….”

아이들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설미와 미진, 효은도 자고 있었다. 깨어 있는 것은 상호와 민정, 해련까지 셋뿐.

올 때처럼 멀미 앓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운전을 잘해서는 아니었다.

“잘 자네.”

상호는 백미러로 아이들을 확인했다.

“마법으로 재운 거지?”

“응.”

“교장선생님은 안 주무세요?”

그 말에 해련이 씩 웃었다.

“늙으면 잠이 없어.”

“그래놓고 제가 할머니라 하면 화낼 거잖아요.”

“젊어서 쌩쌩해~.”

“어련하시겠어요.”

상호는 혀를 차고 민정을 흘끗했다.

민정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창밖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자꾸 곁눈질을 하는 것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도 했다. 어쩌면 해련을 신경 쓰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물었다.

“누나. 휴게소 들를까?”

“아니.”

민정이 뒤를 돌아보았다.

“잘 자고 있는데 깨우긴 좀 그렇잖아.”

미약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상호와 민정과 해련을 감싼 결계. 마나가 짙지 않은 것을 보아 간단하게 소리만 차단하는 마법 같았다.

“뭐 할 말 있나 보네.”

“응.”

민정은 엷은 한숨을 쉬었다.

“상호야, 오빠랑 최근에 연락한 적 있니?”

“만났지. 애들 데리고 전국평가장에서.”

“그랬구나.”

민정의 시선이 먼 산을 향했다.

“연락이 왔었어.”

“뭐래?”

“이제 한계래.”

상호는 고요한 눈빛으로 도로를 주시했다.

“오빠가 버티는 것도, 66부가 비밀을 숨기는 것도…….”

민정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공리주 소장이 다른 부서 헌터들한테도 명령을 내렸었나 봐. 오빠가 다 취소시키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소문이 퍼진 거지.”

“다른 부서? 일반 직원들도 알고 있다고?”

“그런 것 같아. 그래서 도와달래. 자기가 잡아 오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자기가 외출할 때마다 직원들이 눈치를 본다고. 그렇다고 66부한테 맡겼다가는 일반인들한테 들킬 확률이 높아지고…… 심지어는 이제 하루에 두 번씩 나가게 생겨서.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도와달래.”

“하루에 두 번?”

“이젠 20시간도 안 된대.”

20시간.

일주일에 여덟 명. 상호는 그 뜻의 무게를 가늠하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누나보고 사람을 죽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백미러를 확인하니, 해련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상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상호는 개의치 않았다.

“무시해, 그냥. 그러면 부하들 시키겠지.”

“어쩔 수 없어, 상호야.”

민정은 상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모두가 짊어져야 할 짐이고…… 너랑 오빠가 각자의 짐을 지고 있는데, 나만 안 할 순 없잖아.”

“아니 X발, 그냥 다른 놈들한테 시키면 되잖아. 왜 형처럼 답답해지려는 거야? 모두의 짐이면 모두한테 지라고 그래.”

“그럼 그 다른 놈들이 다른 방법을 찾으려 들겠지. 공리주처럼.”

“…….”

할 말을 잃은 상호에게 민정이 살짝 웃었다.

“난 괜찮아.”

살인을 예고하는데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웃어야 하는 신세라.

상호는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이따가 셋이서 얘기해.”

“셋이서?”

“형까지. 애들 집 데려다주고 협회로 갈 거니까.”

그 말에 민정이 고개를 푹 떨궜다.

“……그래.”

셋을 감싸던 결계가 사라졌다.

해련은 묻고 싶은 것이 많은 듯했지만, 결계가 풀어지는 바람에 아이들과 선생들이 들을까봐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거울 속 상호와 눈을 마주칠 뿐.

상호는 말없이 버스를 몰았다.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깨어났고,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몇 있어 휴게소에 들렀다.

그렇게 상호는 커피를 들고 벤치에 앉아 해련을 독대하게 되었다.

“많이 놀라셨나 보네요.”

“……솔직히.”

해련은 상호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안색이 그녀답지 않게 창백했다. 원래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그걸 사람을 죽여서 유지하고 있는 줄은 모르셨겠죠.”

“……으응.”

해련의 잔에서는 커피가 줄어들지 않았다.

“게다가 저승부대원들도 도저히 못 이긴 상대가 도시 한복판에 있다는 게…….”

“지금 여기에도 있고요.”

상호는 다리를 톡톡 두드리고 커피를 홀짝였다.

“교장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떤 거를요?”

“평화를 유지하는 일을 저희 부대원들만 부담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세요?”

“그거는…….”

해련은 잠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을, 가없는 하늘에 띄워 보내려는 듯이.

이윽고 그녀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그 일에 희생된 사람들 중에, 헌터가 있나요?”

상호는 옆에 걸쳐놓은 검을 흘끗했다.

“한 명이요.”

“백 하사?”

“네.”

추서 때문에 백 중사지만, 어쨌든 해련은 그렇게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희생자는 모두 일반인.

해련이 착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백 하사가 처음이죠? 그러면 그 후로는 없고?”

“네.”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상호는 도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헌터는 땅에서 파내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헌터란 대체 불가능한 자원. 언젠가 다가올 전쟁을 대비하고, 그 빌어먹을 악마와 싸우기 위한 기반.

그렇기에 일반인들만을 희생시켰다.

헌터는 쏙 빼두고.

논리적으로 옳긴 하지만, 그 사실을 일반인들이 알게 된다면.

“차별……이라고 하게 되겠죠.”

“그래서 숨기려고 하는 것일 거예요. 서 부협회장도, 민정 양도…….”

해련은 상호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모두에게 짊어지라 하면 아무도 짊어지지 않아요. 난 두 사람이 맞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상호는 답답해서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다만 한편으로는, 그 말이 옳다고. 알려져 봤자 좋을 것이 하등 없는 일이라고. 되도록이면 저승부대의 선에서 끝내는 게 좋을 것이라고.

그런 생각은 들었다.

‘그래도 X같은 건 어쩔 수 없군.’

그는 다 비운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해련도 곧 커피를 쭉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상호에게 나직이 물었다.

“태화는 알고 있나요?”

“몰라요. 하나도.”

“어떻게 할 거예요? 그냥 강 선생이 지키려고?”

상호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해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슬슬 갈까요. 애들은 어디 있나?”

“식당에 있을걸요. 다혜랑 지윤이랑 밥 먹는다고 그러던데.”

“가보죠.”

둘은 휴게소 식당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왁자한 소리가 귀를 가득 메웠다. 휴가철이라 사람이 하도 많은 탓이었다.

아이들은 한곳에 모여 앉아 있었다.

“한입만 달라고! 돼지야!”

“니는 부탁을 하는 기고 시비를 거는 기고?”

“아, 선생님 왔다.”

“쌤! 나 이거 사줘! 반반 나눠 먹자, 응? 응?”

태화가 지윤의 돈가스를 가리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상호는 쓰게 웃으며 지갑을 꺼냈다.

“그래. 사.”

“아싸! 오지윤 뱃속에 욕심만 그득한 돼지뇬~.”

“카드 다시 내놔.”

“크아아악!”

태화는 카드를 들고 순간이동으로 도망쳤다.

상호는 아이들 옆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식당 가운데 기둥에 벽걸이 TV가 설치된 게 보였다. 화면에는 요즘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었다.

‘어라.’

화면 중앙에 앉은 뉴스 앵커.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누가 채널을 돌렸나?’

그건 아닌 듯싶었다. 식당 내의 모든 TV가 뉴스를 내보내는 중이었으니까. 저마다 다른 배경, 다른 앵커의 뉴스를.

그러니까, 모든 방송사가 긴급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앵커가 상호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한국괴렵협회의 특수 부서 소속이라 밝힌 한 여성이, 오늘 오전 11시경에 본 방송사에 다음과 같은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앵커가 앉은 뉴스 데스크에서, 어떤 벽과 그 앞에 선 여인으로.

여인의 구부러진 눈매가 하회탈을 연상케 했다.

‘……뭐야.’

상호는 눈을 부릅뜨고 화면 속 여인을 노려보았다.

딱 한 번 봤을 뿐이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

공리주.

‘설마…….’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 한다.

그렇게 불안감을 억누르려 했지만, 이미 사건은 터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TV에 리주가 나온 시점에서 그녀가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곧 리주의 입이 천천히 열렸고.

그 안의 그늘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오늘, 국민 여러분께 한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려 합니다.]

229. 차도살인

“그 말을 믿나요?”

뒤에서 리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좀 더 생각해보겠다. 나중에 도와주겠다. 그런 말들을요?”

“이젠 하다하다 전화까지 엿듣나.”

도현은 창밖을 내려다보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디부터 들었는데?”

“그냥 딱 거기부터. 도와달라는 말부터.”

“귀도 좋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쥐어짜 냈는데. 문 너머까지 들렸을 줄이야.

도현은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을 쏘았다.

“뭐 때문에 왔어?”

“이유는 늘 같지요.”

리주가 무언가를 꺼내 도현의 책상에 던졌다.

“근데 할 말은 달라졌어요.”

하얀 편지봉투.

도현은 그걸 들어 대충 둘러보았다.

사표.

“그만두겠다고?”

“더 이상 이런 더러운 짓거리는 못하겠어요.”

리주가 양 손바닥을 내보이며 어깨를 들썩였다.

“난 분명 세상을 구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여자애 하나 살리려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더라고요. 차암……. 이게 다 뭐 하는 짓거리인지.”

도현은 생각에 잠겼다.

리주는 66부의 수장. 비록 말본새가 짜증 나긴 해도, 악마의 봉인을 유지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였다.

보낼 수는 없었다. 이렇게 갑자기는 더더욱.

“후임은 구해 놨나?”

“아뇨?”

“그럼 당장 오늘부터 어떡하라고?”

“직접 하시죠? 아니면 누굴 새로 시키던가.”

의식의 절차를 아는 사람은 협회에 단 두 명. 도현과 리주뿐.

도현은 그 일을 새로운 누군가에게 시키고 싶지 않았다. 살인자를 더 늘리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의 영혼을 영원히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자신이 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의 숨통을 끊는 일이라서.

물리적으로, 직접,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서.

“안 받겠다면?”

리주가 눈썹을 까딱였다.

“출근을 안 하겠죠. 아, 그러면 이제 감금을 당하려나? 살인에 비하면 감금쯤은 애들 장난인가요?”

“불만이 뭔데.”

도현은 목을 양옆으로 꺾어 우두둑거리며 리주에게 다가갔다.

“그 애를 잡자고?”

“잡든 말든 이제는 내 알 바 아니고. 사표나 받으세요. 내가 무슨 대책을 내든 부협회장님이 다 묵살하는데, 무슨 일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래?”

도현의 손이 리주의 팔뚝을 잡았다.

“근데 나 당신 못 보내주겠는데.”

리주가 피식 웃었다.

“결국 잡아두시게요?”

“그렇다면?”

“내가 뭐 어쩌겠어요. X급 헌터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그런데…….”

리주는 도현에게 다가서서 그를 삐딱하게 올려다보았다.

“나한테 계속 일을 시킬 거라면…… 나도 이제 내 방식대로 할 거예요.”

“뭔 소리야?”

“마지막 방법을 쓸 거예요.”

그녀의 손이 도현의 가슴에 얹혔다.

“이거 하난 똑똑히 알아둬요. 날 여기 붙잡아둔다는 건…… 그 방법을 써도 된다고, 묵인한 거라는 거.”

“무슨 방법.”

“그 아이를 바치는 거요.”

리주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나는 세상을 지키는 거지, 그 애를 지키는 게 아니에요. 대답해요. 부협회장님은 뭘 지킬 거예요?”

가슴을 후비는 말.

심장을 움켜쥘 듯한 손.

양심을 찌르는 눈빛.

도현은 더 이상 그녀를, 자신을 외면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눈을 감은 그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 * *

“이게 방법이야?”

도현은 삼각대에 올려놓은 캠코더를 노려보았다.

“인터넷에라도 올릴 생각인가?”

“언론에 뿌려야죠. 세상이 알도록.”

리주는 캠코더를 들여다보며 설정을 확인했다.

“이제 진실이 밝혀지고…… 합리적인 희생이 합리적인 절차대로 진행될 거예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게.”

“그걸 말해버리면 세상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어?”

“모두의 일이니 모두가 알 권리가 있지요.”

리주의 눈이 도현을 흘끗했다.

“진실을 알리는 게 무서워요?”

도현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6년 동안 숨겨왔다. 평화다운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또 세상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서.

사회가 혼란해지지 않도록, 봉인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또 일반인들을 희생시켜 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도록, 죽을힘을 다해 오늘 이날까지 숨겨왔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

“아니.”

그는 돌아서서 문가로 걸어갔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그 한마디를 남기고, 도현은 방을 나가버렸다.

리주는 목을 가다듬고 녹화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지금부터.

“제 이름은 공리주. 한국괴렵협회의 대 악마 봉인 전담 부서, 66부의 책임자입니다.”

위선자들을 벌할 것이다.

“저는 오늘, 국민 여러분들께 한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려 합니다.”

세상보다 자신의 주변을 중히 여기는 쓰레기들과.

“제가 속한 부서, 66부는 한 악마의 봉인을 유지하는 일을 맡은 부서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 부서지요.”

스스로의 의무를 저버리고 도망친 버러지들을.

“저희가 봉인하고 있는 악마는…… 이계대전 때 저승부대가 미처 죽이지 못한 악마입니다. 간단하게 몬스터들의 왕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세상을 지키기 위해.

“이 악마는 오직 사람의 영혼에만 봉인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죽여왔지만.

“악마가 봉인된 사람들은 급속도로 쇠약해집니다. 생명력을 빼앗기는 것이죠. 봉인되는 그 순간부터 의식을 잃은 채로 수척해지다가…… 종국에는 죽게 됩니다.”

그 짓도 오늘로 끝.

“작년까지는 이 죽음까지의 시간이 일주일 남짓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주기가 점점 짧아지더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스무 시간도 버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부터.

“그래서 저희는 하루에 한 명…… 어쩔 때는 두 명씩. 사람을 희생시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형수와 자살 자원자가 대상이었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세상은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도 최근 이어진 일련의 실종 사건들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살얼음 위에 자리한 평화와, 그 평화를 지키는 방법을.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저희의 소행입니다.”

비록 억울한 생명이 하나 더 스러지겠지만.

“저희는 그동안 일반인들을 희생시켜 왔습니다. 일반인을 지켜야 할 헌터가, 일반인들을 죽인 것이죠.”

상관없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저희의 과오입니다.”

겨우 수백 중의 하나일 뿐이므로.

“무슨 욕을 하더라도 달게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누구도 그녀를 욕할 수 없으리라.

“저희는 이 순간부터 바뀔 겁니다.”

고귀한 희생들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그녀이니.

“저희는 한 아이를 찾고 있습니다.”

목숨의 무게를 누구보다도 잘 알 수밖에 없다.

“수십, 수백, 어쩌면 수천 명 분의 희생을 대신할 수 있는 아이지요.”

지금까지 희생한 수백, 그리고 앞으로 희생할 수천에 비하면.

“그 아이는 헌터입니다.”

소녀 하나쯤의 목숨은 파리와 진배없다.

“또한 악마 융합체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값싼 대가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나라에서, 세상에서 가장 악마에 가까운 융합체……. 그렇기에 그 아이가 적합한 겁니다.”

그 어떤 부도덕이라도 용납되는 것이다.

“저희는, 여러분을 포함한 우리는…… 그 아이를 봉인의 매개로 삼음으로써, 수백, 수천의 인명을 살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아이를 찾아야 합니다.”

리주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아이는.”

그 손에 끌려 나온 사진 한 장.

사진에는 아주 선명한 해상도로 소녀의 얼굴이 나와 있었다. 협회의 엘리베이터 CCTV에 찍힌 사진.

리주는 그 사진을 캠코더에 들이밀고 말을 이었다.

“이 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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