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저녁.
오늘은 어제보다 메뉴가 다채로웠다. 소시지도 있고, 조개도 있고, 새우도 있고. 상호는 쉴 새 없이 음식을 숯불에 굽고 접시에 담았다.
옆에서 태화가 새우만 쏙쏙 골라 가는 게 보였다.
“야. 애들 먹게 좀 남겨.”
“갑각류 마시쪙.”
“1등하면 사준다니까, 랍스터. 그러니까 애들 먹게 놔두라고! 야!”
“마시쪄어엉!”
태화는 남은 새우를 입에 욱여넣고 도망가 버렸다.
상호는 한숨을 쉬며 새우를 석쇠에 더 얹었다. 식신 둘도 감당하기 힘든데 편식쟁이까지 있으니.
그 식신 중 한 명이 옆에서 침을 흘리고 있었다.
“므앙.”
“조금만 기다려. 금방 구워줄…….”
다혜가 생새우를 집어 으적으적 씹었다.
“앙냠냠.”
“…….”
상호는 현기증이 나서 이마를 짚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기를 굽는데, 나빛이 유난히 덜 먹는 게 눈에 띄었다. 젓가락만 깨작거리고 음식을 먹질 않았다.
어디 아픈 걸까.
어쩌면 천사화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집게를 내려놓고 나빛에게 다가갔다.
“나빛아.”
“아, 선생님.”
나빛이 설핏 웃었다. 안색이 조금 좋지 않았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어디 아파? 괜찮아?”
“아픈 건 아니에요.”
“그럼?”
“저 밤에…….”
나빛이 우물쭈물해하며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밤에 선생님한테…….”
“아.”
밤동안의 일이 기억난 모양이었다. 상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쓰게 웃었다.
“괜찮아. 졸리면 그럴 수도 있…….”
“입 맞춘 거…….”
“……응?”
상호의 눈이 끔뻑였다.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걸까.
입맞춤은 또 뭔 소리인가.
‘아까 봤을 때 그런 건 없었는데……?’
분명히 없었다. 분명히. 그냥 껴안기만 했는데.
얼이 빠진 그에게 나빛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아니, 아니. 어…….”
상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진땀을 흘렸다.
“나빛아. 그거 아마도 꿈…….”
“저희 어떡해요……?”
“응?”
나빛이 초조한 표정으로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입 맞추고 자면 아기 생기잖아요…….”
“…….”
할 말을 자주 잃는 날이었다.
대체 그런 유언비어는 누구한테 배운 건지. 그동안 배운 가정수업과 성교육은 어디 엿 바꿔먹은 건지.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빛은 스스로의 배를 토닥이며 웃었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키울게요. 헤헤…….”
“…….”
“선생님.”
“……으응.”
“저 새우 먹고 싶어요.”
“응…….”
상호는 존재하지 않는 자식에게 새우를 먹이기 위해 석쇠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탓인지, 등이 새우처럼 굽어 있었다.
228. 그늘의 정체
“끼잉…….”
평상에 앉은 단비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방학 다 끝났어. 멍.”
“그러게.”
미래는 망원경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맞장구쳤다.
“근데 단비 너 학교 가기 싫어?”
“아니, 그건 아닌데…….”
단비의 귀가 축 늘어졌다.
“이렇게 다같이 노는 게 더 좋아…….”
“아, 그건 맞지.”
미래는 피식 웃고 망원경을 조절했다.
별을 보러 나온 것은 넷. 미래, 단비, 이서, 가은. 다만 이서와 가은은 평상 모퉁이에 앉아 핸드폰만 보는 것이, 별을 보러 나왔다기보다는 혼자 있고 싶었거나 상호를 피해 나온 듯싶었다.
‘아직도 선생님이 싫은가.’
밥 먹으러 오길래 좀 친해졌나 싶었더니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도시가 멀어서 별이 잘 보였다. 희미하게 펼쳐진 은하수와 아이가 대충 뿌려놓은 듯한 별들. 그 이름을 다 외우진 않았지만 몇 가지는 알고 있었다.
“야, 단비야. 단비자리 볼래?”
“응? 그런 게 있어?”
“작은개자리.”
“멍.”
단비가 미래의 망원경에 눈을 들이밀었다.
“우와! 별이 글자 모양이네.”
“그건 망원경에 붙은 디스플레이야.”
“엥.”
미래는 단비에게 망원경을 넘겨주고 맨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별구경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하고 있어?”
“아, 선생님.”
상호였다.
“별 보고 있었어요.”
“그래? 잘 보여?”
“네. 멍.”
“이서는 뭐해?”
상호의 물음에 이서가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보면 알잖아요.”
“……미안.”
상호가 평상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자 가은이 자리에서 잽싸게 일어나서는 퍽 매정하게 돌아서서 잰걸음으로 펜션을 향했다. 미래는 펜션으로 향하는 가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상호와 눈을 마주쳤다.
“아직도 못 친해지셨어요?”
“아니. 아주 약간, 약~간 친해지긴 했어.”
“그래서 언제 친해지실 거예요?”
“……모르겠어.”
상호가 한숨을 푹 쉬었다.
“2학기에는 더 노력해 봐야지.”
미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단비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야, 선생님한테도 보여드려.”
“멍. 은하수에 엄청 큰 구멍 있어. 저게 블랙홀이야? 암흑 성운? 거시 공동?”
“그건 벌레야.”
“멍멍멍! 끼잉, 낑…….”
화들짝 놀란 단비가 망원경을 던지고 이서의 옆으로 도망쳤다. 상호는 내공을 뻗어 망원경을 잡았다.
그리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뭐야, 하나도 안 보이는데.”
“거꾸로 들으셨어요.”
“아차……. 아, 이제 보이네. 이야……. 이것도 미래 네가 만든 거야?”
“네.”
“잘 만들었네.”
그는 망원경을 미래에게 돌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오래 있으면 모기 뜯긴다. 적당히 보고 들어와.”
“네~.”
미래와 단비는 그렇게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상호가 펜션에 들어가자 가은이 다시 평상으로 돌아왔다. 미래는 그런 가은을 보며 헛웃음을 쳤다.
“그렇게 싫어?”
“좋을 이유도 없지.”
가은은 평상에 벌러덩 드러누워 미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한번 볼래. 별.”
“자.”
미래가 망원경을 넘겼다.
가은은 별을 구경하다가 미래에게 망원경을 돌려주고 뒷머리에 양손을 받쳤다.
‘별이 예쁘네.’
경치가 좋았다.
여행에 담임이 따라온다기에 올지 말지 고민했었는데. 겪어 보니 썩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은근슬쩍 물장난을 걸어올 때에는 돌로 한 대 치고 싶었지만.
대체로 즐거웠다. 다음에 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저 인간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가은은 그런 상념에 잠겨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눈을 감았다.
* * *
어느새 잠이 들었던 듯했다.
코에 은은히 흘러드는 모기향 냄새. 가은은 스르르 눈을 떠 평상 옆에 놓인 모기향을 돌아보았다.
약간 매캐한 듯도 하지만, 그 의미를 알고 있으니 맡기에 썩 나쁘지 않았다.
‘누가 갖다 놨으려나…….’
누구의 다정함일까.
주변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래와 단비와 이서는 펜션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귀를 기울여 보니 역시나, 펜션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미래와 단비의 것이 섞여 있었다.
가은은 몸을 일으켰다.
“일어났어?”
그 목소리에 가은의 몸이 굳었다.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분명 인기척이 없었는데. 가은의 시선이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평상 끄트머리에 곰돌이 인형탈을 쓴 사내가 앉아 있었다.
가은이 죽일 듯이 노려보자 사내가 인형탈의 뒤통수를 긁적였다.
“혹시 몰라서 챙겨왔어.”
“…….”
“으음…… 벗을까?”
“……아뇨.”
가은은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렸다.
“왜 여기 계신 건데요?”
“그냥. 바람 쐬는 김에 너 지키고 있으려고…….”
“뭘 지켜요?”
“몬스터가 휙 채갈지도 모르잖아.”
“뭔 말도 안 되는…….”
“진짜야.”
상호는 검을 꼭 쥐고 있었다.
“그런 놈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
뭘 안다고 저렇게 말하는 걸까. 꼭 S급 헌터라도 되는 양 말한다. 사실은 B급인 주제에.
가은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핑계 대지 말고 들어가세요.”
“미안. 실은 별 보려고 나온 거야.”
“아까 많이 봤잖아요.”
“별은 봐도 봐도 안 질리잖아.”
상호의 손가락이 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가은이 너는 별 같이 본 사람 없어?”
없다.
아니, 실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기억에는 없었다.
“있었겠죠.”
“기억엔 없나 보네.”
“그건 왜 묻는 건데요? 별 같이 본 거 자랑하려고?”
“그렇게 들리나?”
곰 인형탈 아래에서 쓰게 웃는 소리가 났다.
상호는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가, 이내 머리를 긁으며 다시 고개를 들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추억이 다 저 산 너머에 있어.”
가은은 잠자코 들었다.
실은 듣기도 싫었지만, 들려오니 어쩔 수 없었다.
“일 때문에 밖에서 자는 일이 많았거든. 여친이랑. 그래서 항상 하늘을 보면서 잤어. 거기도 여기처럼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날이 맑으면, 별이 되게 잘 보였어.”
약간 밝은 목소리.
“그래서 그냥 별을 보고 있으면 그때 생각이 나는 거야. 그 사람 생각이. 물론 그 추억이 있는 곳으로,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지만…… 그리운 것도 어쩔 수가 없으니까.”
가은은 대꾸하지 않았다.
뭐 어쩌라는 걸까. 동병상련이라는 걸까. 전혀 공감되지 않는데.
“가은이 넌 그런 거 없어?”
질문을 받으니 울화가 확 치밀었다.
그래서 날이 선 말투로 되물었다.
“선생님의 그 사람은 어떻게 죽었는데요?”
인형탈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부당하게…… 라고 할까. 죽으면 안 될 사람이었지.”
“누구한테 죽었는데요?”
“아는 인간이었어.”
“저랑은 반대네요.”
그녀의 원수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었다.
죽은 것도 애인이 아니라 모친.
“사인은 뭐였는데요?”
“정확히는 말할 수 없지만…… 독살이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지.”
그녀의 어머니는 칼에 찔려 죽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르다. 그런 주제에 무엇을 이해하려 드는지.
가은은 화를 내고 싶었지만, 놀러 와서까지 그러고 싶진 않았다.
“모르겠고. 난 들어갈 거니까, 별은 선생님이나 많이 보세요.”
“으응.”
가은은 그 말을 남기고 펜션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상호는 검을 만지작거리다가, 인형탈을 벗어 평상에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동쪽의 산맥과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이 촉촉이 젖어 들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지윤이 아쉬운 표정으로 펜션을 돌아보았다.
“쌤예.”
“응?”
“내년에도 여기 올낍니꺼?”
상호는 짐을 차에 실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상황 봐서. 그때 못 오는 애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라믄 둘만 오지예.”
“얌마…….”
“흐흐.”
지윤은 팔꿈치로 그의 허리를 찌르고 버스 안으로 도망갔다.
올 때와는 달리 짐칸이 널널했다. 식량을 싹 비워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호는 짐을 대충 싣고 차창을 향해 소리쳤다.
“뭐 놓고 온 거 없지?”
“네~.”
“출발한다?”
“네~.”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펜션에서는 정리를 마친 해련이 걸어오고 있었다. 상호는 그녀에게도 물었다.
“뭐 없죠?”
“응. 다 확인했어요.”
“가죠, 이제.”
해련도 버스에 올랐다.
조수석에는 민정이 타고 있었다. 상호는 운전석에 올라 핸들을 잡고 뒤를 향해 물었다.
“벨트 맸지?”
“네~.”
“네~.”
곧 버스가 펜션의 마당을 벗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