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한반도에서 계곡이라 하면 대부분이 동쪽. 특히 산골짜기의 바위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은 대부분 강원도, 아르게스 쪽.
그런 곳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헌터.
산을 뒤에 둔 작은 건물 앞에서, 상호는 칼을 찬 사내가 내민 열쇠를 받아들었다.
“입구 쪽에서 세 번째 건물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사내는 상호가 몰고 온 버스 쪽을 흘끗했다.
“학생들인가 본데. 결계가 있긴 하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위험합니다. 알지요?”
“예. 괜찮습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X급 헌터가 셋이나 있으니 사고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다. 누가 없어지기라도 하면 해련이 뛰어서 찾으면 되고, 그동안 몬스터가 나타나면 상호가 지키면 되고, 밤에도 정 불안하면 민정이 결계를 치면 되었다.
거기에 설미와 미진도 나름 A급 헌터고, S급이나 다름없는 다혜도 있고. 성력으로 치료하는 나빛도 있고. 2학년들도 평범한 몬스터들이 상대라면 제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으니.
아이들이 몬스터에게 공격당할 확률보다 상호가 아이들에게 공격당할 확률이 더 높았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 예. 편히 쉬다 가세요.”
헌터는 그 말을 끝으로 사무소로 들어갔고, 상호도 버스로 향했다.
창문에서 세희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다 온 거예요?”
“응, 안으로 좀만 더 들어가면 돼.”
안에서는 아이들이 단체로 멀미를 하고 있었다. 험지와 비포장도로를 신나게 달려온 탓에.
“우웨에에…….”
“끄응……. 얼마나 남았다고?”
“조금만 더 가면 된대.”
“아이고…….”
아이들만 멀미를 하는 건 아니었다. 효은이 상호를 째려보았다.
“운전 좀 똑바로 해.”
상호는 어이가 없었다. 운전도 안 하고 세상 편하게 앉아 있는 인간이 뭐라는 건지.
“야, 내가 버스 운전 못하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해서 니가 나한테 뭐라 그러면 안 되지! 애초에 대형이 나밖에 없구만…….”
효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똑바로 하라고.”
“……알았어.”
결국 상호는 찍소리도 못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고객의 클레임을 피드백해 굼벵이처럼 버스를 모는데, 뒤에서 곡소리가 났다.
“선생님, 토할 거 같아요, 차라리 빨리 가주세요…….”
그래서 속도를 높였더니 이번엔 볼멘소리가 났다.
“살살하라고!”
대체 어쩌라고. 상호는 서러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다행히 펜션은 가까이에 있었다. 도로가 끝나는 곳으로 들어서자 물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 폭포도 있나 봐.”
“몰라, 비켜봐. 나 빨리 내릴래…….”
주차를 마치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아이고, 죽겄다…….”
“멍, 어지러, 끼잉…….”
“돌아갈 때 어떡해?”
“걸어갈래…….”
어른들도 푹 퍼져 버리고, 남은 것은 상호와 해련뿐이었다. 둘은 짐칸에서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해련이 내공으로 가방을 들며 눈짓으로 펜션을 가리켰다.
“어때. 괜찮아 보이지?”
상호는 펜션을 쓱 둘러보았다.
강과 가까운 1층짜리 건물. 나무와 벽돌 같은 느낌으로 마감을 해놓았는데 척 봐도 아늑하고 깨끗할 것 같았다. 정확한 것은 안으로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한 가지 흠이라면 조금 작아 보인다는 것.
‘사람이 20명인데…….’
4인 가족이 다섯인 셈이다. 저 작은 펜션에서 다 잘 수는 있을까.
그래도 어쨌든 외양은 좋으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보이긴 해요.”
“그치? 들어가자. 짐은 내가 풀 테니까 얼른 가서 쉬어요.”
“아뇨, 딱히 지친 것도 아닌데 같이 하죠. 다혜야, 이리 와.”
“아우웅……. 으웩.”
셋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아이들을 놔두고 짐을 풀러 펜션으로 들어갔다.
* * *
딱 예상대로였다.
‘작네.’
주방이 붙은 거실, 그리고 작은 방 하나.
평범한 가족이 왔다면 충분히 넓었겠지만, 상호의 반에게는 많이 좁았다.
‘방도 쓰고 거실도 써야겠는데.’
사람을 구겨 넣을 게 아니라면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상호가 효은과 민정 외의 누군가와 함께 자야 한다는 뜻이었다. 방에서, 또는 거실에서.
혹은 집 밖에서 자든가.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상호는 고민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냈다. 시간은 어느덧 점심. 슬슬 밥을 차려야 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암만 생각해도 놀러 오는 게 아닌데…….’
애들이랑 같이 오면 어른은 못 논다.
상호는 담임이니까 아이들만 잘 논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다른 어른들은 굳이 왜 따라와서 고생을 사서 하는지 의문이었다.
여행을 가자고 이야기를 꺼낸 건 설미와 해련이더라도, 이렇게 많이 오는 걸 예상치 못한 건 아닐 텐데.
‘모르겠다. 밥이나 빨리 차려야지.’
그가 입맛을 다시며 짐을 뒤적이기 시작하자 다혜가 옆을 기웃거렸다.
“므앙.”
“배고파?”
“아으아으.”
“조금만 기다려. 금방 차려 줄게. 너는 동생들이랑 놀고 있으…….”
상호는 말하다 말고 눈을 끔뻑였다.
‘아, 맞다. 셋 중 하나가 붙어 있어야 하는데.’
상호, 민정, 해련. 셋 중 한 명은 다혜와 붙어 있어야 한다. 해련은 냉장고 앞에서 음식을 정리하는 중이었고, 민정은 밖에서 멀미 중.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혜의 수갑을 풀어주고 방을 가리켰다.
“수영복 입어. 계곡에서 놀다가 밥 먹자.”
“으아.”
다혜는 가방을 들고 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옷을 다 갈아입은 다혜가 방에서 나오자 곧 멀미에서 회복된 아이들이 펜션 안으로 들이닥쳤다. 언제 앓았냐는 듯 쌩쌩한 모습으로.
태화가 눈에 불을 켜고 물었다.
“쌤! 계곡 어디야?!”
상호는 거실 한쪽에 드나들 수 있도록 크게 달아놓은 유리창을 가리켰다.
“저쪽.”
“아싸!”
“수영복 입고 가, 임마.”
아이들이 가방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민정과 효은도 함께. 그런데 방에 들어가지 않고 주방으로 다가오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하솔이었다.
“하솔이 왜?”
“도와드릴 거 없으세요?”
아마 친할머니가 일하고 있는데 지나칠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없어, 없어. 가서 놀…….”
손사래를 치는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해련에게 들리도록 일부러 조금 크게 목소리를 내었다.
“아, 그럼 하솔이 잠깐 따라와 볼래?”
“아, 네.”
상호가 거실의 큰 창문으로 나가자 하솔이 뒤를 따랐다.
펜션 뒤쪽에는 마당과 평상, 바위와 자갈 너머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약간 습하지만, 확실히 공기가 시원해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물씬 올라오는 물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어디 불판하고 숯통 같은 게 있을 텐데……. 같이 찾자.”
“네.”
하솔도 상호가 말한 물건들을 찾아 마당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상호는 사실 찾는 척만 하고 있었다. 그런 물건들이 십중팔구 있기야 있겠지만, 명확히 알고 온 것은 아니었다.
목적은 하솔과 단둘이 있는 것.
분명 해련이 반응을 보일 터였다.
‘어디 어떤 표정을 짓고 계신가 한번 볼까. ……켁!’
그는 거실 쪽을 돌아보았다가 몸을 움찔했다. 해련이 완벽한 무표정으로 그와 하솔을 주시하고 있었다.
귀신처럼 조용하고, 서늘하게.
‘역시, 손녀가 관련되면 무서워지시네…….’
하지만 상호도 여태 속은 것에 살짝 심통이 난 상태였다. 평소에야 해련이 살기를 쏘면 알아서 쪼그라들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조금 더 나아갈 심산이었다.
곧 하솔이 바비큐 그릴과 숯 담는 통을 찾아내었다.
“선생님, 찾았어요.”
“아, 찾았어? 잘했다.”
상호는 일부러 밝게 웃으며 하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솔이 얼굴을 조금 붉혔지만, 그의 앞에서 물러나지는 않았다.
‘불편해 보이진 않네.’
싫은 건 아닌 모양이다. 그는 조금 대담하게 해련의 복장을 긁어보기로 했다.
상호의 손이 하솔의 볼을 살짝 집었다.
“하솔이는 볼이 귀엽네.”
그 말에 하솔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익었다.
“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기운이 상호의 목을 실제로 조여들기 시작했다.
상호는 황급히 내공을 꺼내 해련의 내공을 걷어냈다.
‘깜짝이야…….’
방금 공격은 진짜다. 그는 서둘러 하솔의 볼을 놓고 헛기침을 했다.
“들어가자. 하솔이도 갈아입고 애들이랑 놀아.”
“……네.”
하솔의 얼굴은 아직도 붉었다.
상호가 하솔과 함께 거실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해련은 여전한 무표정으로, 빛을 잃은 어두운 눈으로 상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 들린 식칼이 시퍼렇게 빛났다.
‘조금만 더 갔어도 점심으로 날 요리하셨겠구만…….’
진땀이 날 것 같았지만, 그래도 태연한 척 연기해야 했다. 해련과 하솔이 어떤 관계인지 알고 있다는 걸 숨겨야 하니까.
상호는 멀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교장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으응~?”
해련의 입꼬리가 느릿하게 올라갔다.
“아니 그냥~. 강 선생 목 뒤에 벌이 날아다니길래~.”
“벌이요?”
“응. 엄청 크더라구~. 장수말벌인가 봐. 산속이니까~.”
입은 웃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쏘이면 죽을지도 몰라. 조심해~.”
‘죽을지도’라는 단어에 힘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살기는 전장에서 수도 없이 겪어 봤으니. 상호는 가볍게 무시하고 하솔의 등을 두드렸다.
“그럼요. 하솔이 너도 조심하고. 애들한테 벌 조심하라 그래.”
“네.”
하솔은 헐레벌떡 방으로 들어갔다.
해련도 입만 웃는 기묘한 표정으로 상호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다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을 도우러 다가온 설미와 미진이 당황했다.
“저어…… 교장선생님?”
“응?”
“식칼 손잡이가…… 다 부서졌는데요…….”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거 아니야?”
“아니, 아무리 봐도…….”
“에이, 누가 잘못 건드렸나 보지.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저희 중에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내가 그랬다는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요…….”
설미와 미진은 찍소리도 못 하고 묵묵히 해련의 일을 도왔다. 상호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신의 가방을 흘끗했다.
‘이거 괜찮은데……?’
좀 더 건드려 볼까.
그는 가방에서 수영복을 챙겨 버스로 향했다.
224. 계곡에 빠지다
“쌤. 쌤. 이거 봐봐.”
태화가 양손에 가재를 잡고 흔들었다.
“잡았엉.”
“잘했어.”
“나 이거 요리해줭.”
겨우 새끼손가락만한 가재다. 상호는 계곡 앞 바위에 앉아 건성으로 대답했다.
“적당히 놀다 놔줘.”
“랍스타아아!”
“연말 1등 하면 사줄게.”
“랍스타아아아아악!”
태화는 상호를 내버려두고 아이들을 향해 달려갔다.
“받아라! 가재 펀치! 가재 킥!”
“꺅!”
가재가 무섭기라도 한지, 표적이 된 초란은 기겁하며 달아났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허공섭물로 가재를 빼앗아 물에 던졌다.
“야, 이리 내.”
“앗!”
태화가 자갈밭에 주저앉았다.
“안돼! 에보니! 아이보리이이!”
“그새 이름을 붙였어?”
“너무해! 쟤들도 가족이 있을 텐데……!”
“가족한테 돌아갔을 거야. 동물친구 말고 사람친구랑 놀아.”
그는 혀를 차고 아이들을 쓱 둘러보았다.
다들 위에 래쉬가드를 입었다. 하의는 삼각형도 있고 팬츠 형태도 있고, 반바지를 입은 아이도 있었다.
“이야앗! 하이드로 펌프!”
“꺄아악!”
괴상한 모양의 튜브를 타고 물대포를 쏘아대는 아이는 미래. 도망치는 아이들은 초란과 아리, 나빛과 나디아.
“멍, 이거 먹어도 될까?”
“아르르릉…….”
쪼그려 앉아서 사냥을 하는 아이들은 단비와 다혜.
“마! 수영이라니께. 물 위를 달리면 우짜라는 기고!”
“미안…….”
수영 경주를 하다가 경공으로 물 위를 달린 아이는 은율, 옆에서 따지는 아이는 지윤.
다른 아이들도 알아서 잘 놀고 있었다.
‘하솔이는 어딨지?’
문득 생각이 나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평상에 앉은 효은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효은의 표정이 빠르게 찌그러졌다.
상호는 어안이 벙벙해 눈을 끔뻑였다. 또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애들 다리 보니까 좋냐?”
“다리는 맨날 보는 건데 뭐…….”
“맨날 본대네. 숨기려는 척도 안 하네, 짐승 새끼…….”
“몰라. 맘대로 생각해. 짐승이든 뭐든.”
어른들은 아직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민정은 효은의 옆에 앉아서 경치를 구경하는 중이었고, 설미와 미진은 해련을 도와 과일 등의 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솔도 그 옆에 있었다.
‘지금인가.’
상호는 바위에서 일어나 하솔에게 향했다.
“하솔인 왜 안 들어가?”
“네? 아, 그게…….”
하솔이 말꼬리를 흐리다가 해련을 곁눈질했다.
“그냥…… 도와 드리려고…….”
“네가 그걸 왜 도와. 그러면 반장인 은율이는 뭐가 되냐. 자자, 놀자, 놀아.”
그는 하솔의 곁으로 다가가 덥석 어깨동무를 했다.
해련이 쏘아낸 살기가 솜털을 바짝 솟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상호의 팔은 하솔의 어깨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가자. 친구들 기다리고 있잖아.”
“아, 네, 네에…….”
하솔은 당황하며 그의 곁에 꼭 붙어서 계곡으로 끌려갔다.
상호는 하솔을 그렇게 밀어붙이다가 고개를 슬쩍 돌려 해련의 표정을 확인했다.
퍼석
해련은 맨손으로 수박을 쪼개고 있었다. 상호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며.
마치 네 골통을 이렇게 부숴버리겠다는 듯이.
‘손녀는 건드리지 말라 이건가.’
하지 말라는 짓은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물가에 다다른 상호는 아예 하솔을 안아 들었다.
그러자 이번엔 2학년들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니들은 왜…….’
엉뚱한 곳에 불이 붙는다. 이쪽을 건드리려고 한 게 아닌데.
어쨌거나 그는 하솔의 어깨와 오금을 받친 채로 슬쩍 흔들었다.
“자, 던진다~, 던진다~. 얍!”
“서, 선생님, 꺅!”
하솔의 몸이 하늘 높이 솟았다.
“꺄아아악!”
그리고는 몸을 웅크린 자세로 등부터 수면에 낙하했다.
풍덩, 깔끔하고 시원한 소리. 사방팔방으로 튀는 물을 맞은 아이들이 꺅꺅 환성을 질렀다.
상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콰드득……
해련이 숟가락으로 수박 속을 박박 긁고 있었다.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네 내장으로 화채를 만들어버리겠다는 듯이.
“저어……, 교장선생님. 수박 다 부서지는데요.”
“수박 죽이 되겠어요…….”
미진과 설미가 말려도 해련은 기계처럼 팔을 움직였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살짝 식은땀이 났다.
‘……설마 진짜 죽이려고 하지는 않겠지?’
이제 와서 후회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생각을 포기하고 계곡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앗! 쌤 들어왔다! 공격공격공격!”
“해 봐, 임마.”
“크아아악!”
손짓 한 번에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파도에 휩쓸린 아이들은 한 번 뒤집어졌다가 콜록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입과 코에서 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으에엑…….”
“귀에 물 들어갔어, 끼잉…….”
그때 설미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상호야, 애들 물 먹지 않게 해. 기생충 생겨.”
“……아.”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상호는 당황하며 설미를 돌아보았다.
“치료 안 돼요?”
“성력으로 되긴 한다는데…… 그래도 아프면 안 되잖아. 옛날엔 그거 때문에 죽기도 했대.”
“네. 얘들아, 들었지? 되도록 물 먹지 않게…….”
상호의 말이 순간 뚝 끊겼다.
태화가 코에서 물을 질질 흘리며 눈을 깜작이고 있었다.
“엥.”
“…….”
성력이 안 듣는 아이.
상호는 순간 식겁했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확률적으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너희 태화한테 물 뿌리지 마.”
탱크 모양 튜브에 탄 미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엥, 왜요?”
“태화는 성력이 안 먹혀. 기생충 생기면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 너희가 조심하면서 놀아. 물에 빠뜨리지도 말고.”
“우오옷!”
태화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물을 튀기며 세희에게 달려가 뒷덜미를 잡고 물에 냅다 꽂아버렸다.
텀벙
“스파이크!”
“이런 씨…….”
세희는 손으로 얼굴을 닦으며 태화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걸 보고 더욱 신이 난 태화는 깔깔거리며 아이들에게 물을 뿌렸다.
“꺄하하하! 강상호 실드! 메롱~ 메롱~.”
“이 미친 가스나가…….”
“아야! 꼬르륵…….”
“캬하하하!”
아이들은 짜증이 나도 상호의 말 때문에 복수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태화가 아이들을 빠뜨리고 다니기 시작하자, 더는 참지 못한 아이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돌을 찾기 시작했다.
“야, 돌 가져와.”
“바위로 눌러 놓자, 그냥.”
“으, 으응?!”
당황한 태화가 상호를 향해 빽 소리쳤다.
“쌤! 도와조! 애들이 돌 던질라구 그래!”
“얘들아, 돌은 안 된다.”
“……끄응.”
아이들이 꿍얼대며 돌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민정이 쓰게 웃었다.
“기생충은 마법으로 치료하면 돼.”
“응? 진짜?”
“응. 마법으로 생명 반응 탐색해서……. 그니까 마음껏 놀게 해 줘.”
그 말에 상호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그렇다는데.”
아이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지윤과 이츠키를 필두로 아이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렇단 말이지예.”
“잘 알겠습니다.”
“으……으응?”
태화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아이들을 보며 몸을 움츠렸다.
아무런 표정 없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꼭 좀비나 강시 떼와 같았다.
“뭐…… 뭐야, 너희들……. 저리 가.”
태화가 주춤거리며 물을 뿌려대도 아이들은 눈 하나 끔뻑하지 않고 포위망을 좁혀들었다.
이미 둘러싸여서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오, 오지마. 오지마……!”
곧 아이들이 태화를 에워쌌다.
순간이동으로 도망치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어느새 뒤로 다가온 세희가 꼬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태화는 덜덜 떨며 팔을 붕붕 휘둘렀다.
“오지말라고……!”
아이들이 활짝 웃었다.
“넌 오늘부터 인어공주야.”
“물에서 숨쉬게 해주꾸마.”
“오지마아아아악!”
태화의 처절한 비명이 계곡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