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5화 (235/501)

* * *

가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어딜 가도 시선이 느껴진다. 사춘기라서가 아니었다. 착각인지 아닌지 정도는 스스로 구별해낼 수 있었다.

오늘은 땀을 흘려서 그런지 더했다.

‘다 죽었으면.’

가은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맞은 곳이 욱신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미 익숙한 일이라서.

서호림 경위.

어머니의 사건을 맡았던 경찰이었다.

“……윽.”

얻어맞은 옆구리가 지끈거렸다.

땀도 흘렸고, 날도 더우니. 빨리 가서 쉬어야겠다. 가은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기숙사 근처 벤치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쳇.’

담임.

가은은 눈에 띄지 않게 돌아서 기숙사로 들어가려 했지만, 그녀를 발견한 상호가 벌떡 일어나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모른 척 지나쳐 가기엔 각도가 너무 제대로였다. 정확한 맞은편.

결국 가은은 상호를 마주했다.

“뭐요.”

퉁명스런 말투로 선빵을 날리자 상호가 당황했다.

“아니, 그냥. 우리 반 학생을 만났는데 이야기 좀 할 수도 있지……. 어디 갔다 온 거야?”

“알아서 뭐하시게요. 알려드려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묻는 거야. 내가 그런 거 알아서 어디다 쓰겠어.”

“산책하다 왔어요.”

“그래? 그럼…….”

상호는 씩 웃었다.

“수업 잠깐만 하는 거 어때?”

뒈지게 맞다 왔는데 또 맞으란 말인가. 가은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안 해요.”

“에이, 그러지 말고. 방학이라 수업하기 싫은 건 알겠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하는 게…….”

“안 한다고요.”

가은은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다가 옆구리에 통증을 느끼고 움찔했다. 생각보다 타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아주 잠깐이니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여기고 태연한 척 걸어가려는데.

무언가가 어깨를 덥석 잡았다.

“뭐야, 가은이 너 어디 아픈…….”

손.

크고 거친 손.

생각 없고, 멍청하고, 더러운 손.

가은의 눈이 뒤집혔다.

“X발!”

자동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선생이고 뭐고 없었다. 예의 따윈 잊어버렸다.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뇌수가 들끓어서.

가은은 상호의 손을 쳐내고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X발, X발 진짜, 씨…….”

몸서리를 치느라 목소리도 덜덜 떨렸다.

하얀 손은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듯 어깨를 거칠게 털어냈다. 감각을 지우기 위해.

입에서 혐오가 듬뿍 담긴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 으으…….”

상호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

그러다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지 입술을 뻐끔거렸지만, 가은은 그를 무시하고 기숙사로 달려갔다.

이 자리에 1초도 더 있기 싫었다.

“씨, X발, X발, 흐으, 우욱…….”

구역질을 하며 목련관의 문을 여는 가은의 뒤를, 멍하니 서 있는 상호의 망연자실한 눈빛이 쫓고 있었다.

221. 1초라도 빨리

“으…….”

가은은 숨을 헐떡이며 샤워볼로 어깨를 문질렀다.

피부가 사포로 문지른 듯 쓰라렸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아까의 감각이 자꾸만 되살아나서.

거품에 피가 묻어나왔다.

“으, 으으……. 끄윽…….”

그러다가 결국은 제풀에 지쳐, 손이 덜덜 떨리도록 근육을 혹사시키고 나서야 샤워볼을 놓을 수 있었다.

가은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멍한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뭐야, 이게.’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웃고 싶은데.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데. 남자를 볼 때마다 서늘해지는 심장도 이제는 떼어버리고 싶은데.

오늘따라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오래된 일인데.

가슴에 묻었다고 생각했는데.

“윽…….”

눈물이 물에 섞여 흘러내렸다.

그녀는 욕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울음을 삼켰다. 파르르 떨리는 어깨에서 붉은 거품이 느리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 * *

“표정이 왜 그래?”

저녁 식사 자리에서 효은이 물었다.

“똥 지린 똥개 표정인데. 똥지렸냐?”

“똥 먹는데 밥 이야기…… 아니 X바, 밥 먹는데 똥 이야기…….”

“똥똥거리지 마, 더러운 새끼야.”

“니가…… 에휴, 그래. 내가 문제지…….”

상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밥을 우물거렸다.

옆에 둘러앉은 아이들이 그의 눈치를 보았다. 세희, 이츠키. 그리고 이서도. 하지만 묻지는 않았다.

이럴 때 물어보는 아이는 꼭 둘로 정해져 있었다. 궁금증이 제일 많은 둘.

미래와 태화가 차례대로 물었다.

“진짜 쌌어요?”

“지렸어?”

“……그랬으면 내가 이렇게 태연하게 있겠니?”

“그럼 뭔데.”

“그냥…….”

상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손버릇이…… 잘못 들었어.”

“손버릇?”

“가은이랑 이야기하다가…… 가은이가 어디 좀 불편해 보이길래, 놀라서 어깨를 잡았거든. 근데 가은이가…… 남자 싫어하는 걸 깜빡했어.”

태화가 눈을 깜작였다.

“걔 남자 싫어해?”

“그렇더라.”

“쌤도 싫대?”

“나도 남자니까 당연하겠지?”

“문제 있네.”

“……가은이 앞에선 말하지 마라.”

상호는 한숨을 쉬고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세희……는 2학년이니까 부탁하기 좀 그러네. 미래야, 가은이 보면 미안하다고 좀…….”

그러자 효은이 혀를 찼다.

“야, 니가 직접 가서 해야 사과가 되는 거지, 왜 애를 시켜?”

“그럼 어떡해, 날 싫어하는데……. 날 보기만 해도 화낼걸, 이제…….”

“니가 알아서 해야지.”

“……끄응.”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상호는 머리를 싸쥐고 식탁에 이마를 박았다.

그때 무언가가 그의 머리를 콕콕 찔렀다.

“쌤.”

“왜.”

“방법이 있어.”

“또 이상한 방법일 거 아냐.”

“아니야! 이번엔 진짜 합리적이고 샤방샤방한 해결책이라니까.”

“진짜?”

솔깃해서 고개를 들어 보니 태화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호는 태화는 좋지만, 그 표정은 아주 싫었다. 저 표정을 짓고 나면 항상 기상천외한 결과가 나와서.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무슨 방법인데?”

“잠깐만 기다려. 기숙사 좀 들렀다 올게~.”

태화가 검은 연기를 남기고 사라졌다.

* * *

“……그래.”

상호는 거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샤방샤방하긴 하네. 합리적인지는 모르겠고…….”

“합리적이지!”

태화가 립스틱을 흔들었다.

“합리적! 논리적! 걔가 남자를 무서워하면 쌤이 남자를 포기하면 되잖아!”

“무슨 뇌를 가지면 그런 결론이 나오냐?”

상호는 치마와 가발을 벗어 던졌다.

“널 믿은 내가 잘못이지. 이제 버려, 이것들. 언제까지 갖고 있을 거야.”

“쌤이 여자가 되면 되잖아아아!”

“버리라고!”

그렇지만 상황을 타개할 힌트는 되었다. 상호는 욕실로 걸어가며 생각에 잠겼다.

얼굴을 마주친 이서가 덜덜 떨고, 미래가 입을 틀어막으며 몸을 배배 꼬았지만, 그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변장을 하는 거…… 나쁘지 않은 생각일지도.’

그는 세수를 하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점심.

상호는 가은의 방 현관문을 똑똑 두드렸다.

“가은아. 선생님이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렇게 될 줄 예상은 했다. 그래도 이 방법밖에 없었다.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보니까.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갈 수도 없고.

그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야기 좀 하자.”

콰앙

안쪽에서 무언가가 문을 강타했다. 아마 물건을 집어 던진 모양이었다.

어쨌든 듣고는 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한테 들려주기 곤란한 이야기라 그래. 가족 이야기, 집 이야기…… 남들한테 들리면 싫잖아. 방이 싫으면 교실…….”

“……은 더 싫겠지. 옥상도 괜찮고, 네가 상관없으면 벤치도 괜찮아. 잠깐만…… 이야기 좀 하자. 응?”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상호는 차분한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안 열어주면 그냥 여기 계속 있을 거야.”

그러자 발소리가 다가왔다. 잔뜩 성난 발소리.

발소리는 문 바로 앞에서 멈추더니, 한참이 지난 후에야 목소리를 내었다.

“어쩌자고요.”

“사과하러 왔어.”

상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남자 싫어하는 거 짐작도 하고 있었고, 아버님께 들어서 알고도 있었는데…… 머리로만 알고, 몸으로는 몰랐어. 그래서 실수한 거야.”

“그래서 뭐요.”

“용서해 줬으면 좋겠어.”

“못하겠다면요?”

“어쩔 수 없지. 네 선택이니까.”

“그럼 그렇게 알고 가세요. 목소리도 듣기 싫으니까.”

“근데 이거 하난 알아둬.”

상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선생님은 선생님이야. 너 포기 못 해. 네가 내 반에 있는 동안은…… 널 돕기 위해 뭐든지 할 거야. 그게 널 귀찮게 하는 일이라도.”

“……제발 꺼져요.”

가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 필요 없으니까 꺼지라고요.”

“내가 널 도울 수 있다는 확신은 없지만…… 그렇다고 돕는 노력을 안 할 수는 없어.”

“못 가겠다고요?”

“못 가지.”

“여기서 1초라도, 빨리 꺼지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아는, 아는 것도 없으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들러붙는 건데.”

“…….”

“내가 뭘 하려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왜 이러는지도 모르면서, 뭘…… 뭘 안다고, 자꾸 건드리는 거야…….”

말은 끝났지만, 헐떡임은 멈추지 않았다.

상호는 잠시 입을 다물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야 해서.

이윽고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선생님 옛날 여친도 살해당했어.”

문 너머의 헐떡임이 멎었다.

“지금도 그 범인을 죽이고 싶다.”

솔직한 마음이 상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6년 전 일인데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해.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겠지. 그 일 때문에 4년 동안 폐인으로 지내다가…… 작년 3월, 언니들 가르치고 나서부터 나아졌어.”

“…….”

“내가 네 사정을 아는 건 아니지만…….”

상호는 눈을 감았다.

“미운 사람이 미운 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미워할 필요 없는 사람까지 미워해버리면…… 힘들다. 사는 게 힘들어져.”

“……그걸 누가 몰라요.”

문에서 쿵 소리가 났다. 머리를 박은 듯했다.

“그게 안 돼요. 난 그냥 이렇게 살으려니까, 그냥 나한테 신경 끄고 선생님 갈 길 가세요…….”

“이게 내 일이야.”

상호는 문에 기대어 앉았다.

“여기가 내 올 곳이라고. 너 보기엔 내가 쓰레기로 보일지 몰라도…… 결국 선생이고, 학생 포기 안 한다. 물론 날 선택한 건 네가 아니라 네 아버지겠지만…….”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거예요. 날 고치겠다고요? 남자 손 닿아도 상관없게 만들어 주겠다고요?”

“아니. 그건 내가 잘못한 거지. 그렇게 바뀔 필요는 없고. 그냥 네가 내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만.”

“……진짜 하나도 모르면서.”

문 안쪽에서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왜 수업 안 듣는지 알아요?”

“짐작은 하고 있어.”

“제가 뭘 하려는지는 알아요?”

“경찰로 예상하고 있지.”

“왜 검을 역수로 잡는지는요?”

“단검을 쓰는 너한텐 검을 짧게 쓰는 게 익숙할 테니까. 너 검지랑 엄지에 굳은살 있지? 알고 있었어. 계속 단검 쓰고 있는 거.”

“……그럼 어제 수련하고 돌아온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건 몰랐어. 알았으면 바로 수업하자고 안 했을 거야.”

“거봐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은의 목소리가 힘을 잃었다.

상호는 쓰게 웃었다.

“맞아. 몰라. 근데 그건 네가 아무것도 말 안 해서 그렇게 된 거 아닐까?”

“내가 왜 말해야 하는데요?”

“말할 의무는 없지만, 말도 안 해 놓고 상대한테 왜 모르냐고 해버리면…… 할 말이 없어.”

“…….”

가은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이야기 좀 해주라. 내가 널 모르니까 자꾸 실수를 해. 내가 너한테 비밀 하나 알려줬듯이…… 너도 터놓고 이야기해줬음 좋겠다. 그럼 네 마음도 편해질지도 몰라.”

“그건 선생님이 맘대로 말한 거잖아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굳이 비밀을 교환하자는 건 아냐. 그냥 평범한 이야기로도 충분해.”

“……무슨 이야기요.”

상호는 가은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나직하게 대답했다.

“뭐가 싫었다, 뭐가 좋았다, 그런 거. 나는 이래서 뭘 배우고 싶어요, 뭐는 배울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아니면 선생님 애들 손잡는 거 기분 나빠요, 교실에서 이상한 짓 하지 마세요, 그런 거. ……응?”

갑자기 상호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상호는 고개를 돌려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문틈으로 가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날아들고 있었다.

곧 그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깃들었다.

“……뭐예요, 그건?”

“아, 이거…….”

상호는 곰 인형탈의 뒤통수를 긁적였다. 쓸데없게도.

“네가 내 얼굴 보면 싫어할 것 같아서…….”

“개싸이코패스 성범죄자 같은데요.”

“그래……? 미안해, 나름 머리 쓴 건데…….”

돌연 머릿속에 어떤 충동이 찾아들었다. 상호는 그 충동을 그대로 내뱉었다.

“머리 써서 머리 쓴 건데…….”

“네?”

가은의 얼굴에 순간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러나 곧 그 몹쓸 개드립을 이해하고는 바위처럼 굳어 버렸다. 상호는 삽시간에 얼어붙은 눈빛을 마주하고 당황했다.

“아니, 미안, 갑자기 생각나서…….”

“…….”

“근데 웃기지 않았어? 머리를 써서 머리를 썼다, 머리, 그니까 내 머리를 굴려서 인형 머리를 썼다……. 으음,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든가? 아하하, 하하…….”

콰아앙

문이 부서져라 닫혔다.

상호는 인형탈을 벗고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닦았다.

‘실패……인가…….’

가은을 웃겨보려고 시도했는데, 오히려 관계에 치명타가 된 것 같았다. 간신히 문까지 열게 했는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에휴……. 내가 애들이랑 유머 코드가 잘 안 맞나…….’

그때 문 너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세요.”

“응?”

“안 쓴 것보단 나으니까, 저 보러 올 땐 쓰고 오시라고요.”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약간 귀찮은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상호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 너랑 수업하거나 이야기할 땐 꼭 쓸게.”

“가세요, 이제.”

“응. 아, 근데 가은아.”

“뭐요.”

“나중에 친구들이랑 같이 식사하러 와. 너 먹고 싶은 거 해 줄게. 내가 싫으면 세희가 요리 잘 하니까 세희랑…….”

“됐어요.”

가은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대화는 이걸로 끝이라는 듯이.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다.

조금 아쉽지만, 소득이 있는 건 분명했다.

‘해결……이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앞으로 많이 대화하면 되니까…….’

그는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복도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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