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삐~용~ 삐~용~.”
태화가 경찰차 소리를 내며 거실을 빙글빙글 뛰어다녔다. 빨간 뿔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우리 쌤 백수 확정~. 내가 멕여 살려야징~.”
“야, 나가. 쌤 애인도 있는 곳에 막 들어오면 되겠어?”
“허락 받았지롱.”
“……에휴.”
상호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남교사 숙소로 돌아와 보니 메세지 폭탄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특히 나빛과 지윤에게서.
-전화안받아요?
-또이럴거예요?
-선생님미워요
-전화안받아요?
-진짜안받아요?
-알았어요 두고봐요
-진짜전화안받을거예요?
-진짜로?
-알았어요저도이제선생님전화안받아요문자도안해요연락하기만해봐요2학기에선생님반안가고딴반갈거니까복도에서만나면성창으로다리때릴거구요안대도벗겨서창밖으로던져버릴거구요소원권도선생님책상에서싹훔쳐갈거예요선생님이게임기버튼망가뜨린것도오빠한테이를거구선생님이내머리때린것도아빠한테이를거구선생님이여장한동영상도인터넷에올릴거구선생님만날때마다칼뺏어서기어다니게만들거구선생님진짜미워요-쌤예~
-뒤지기싫으면 문자읽으이소~
-쌤예~
-뒤졌어도 읽으이소~
-쌤예~
-만나면 뒤졌습니더~
상호의 옷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태화야.”
“응?”
“살려줘…….”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죽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사진이 갔는지는 세희와 함께 돌아오면서 확인했다. 아이들을 끌어안은 사진, 손을 잡은 사진,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진을 책상에 엎드리게 한 사진.
죽을 것이다.
실의에 빠져 고개를 푹 숙이는데 태화가 곁에 앉았다.
“살려줘?”
“응?”
상호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뭐야,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핸드폰 줘봐.”
태화가 손바닥을 펼쳤다.
살 수만 있다면 뭐든 못할까. 상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태화의 손에 핸드폰을 올렸다.
태화는 그의 핸드폰을 엄지로 신명나게 두드리며 씩 웃었다.
“예로부터 율곡이이라고 했어.”
“이이제이겠지. 그래서 뭘 하려고?”
“얘네 둘이 제일 문제지? 하나빛하고 오지윤?”
“아니 잠깐만, 말을 해 달라니까. 뭘 하려는 건데?”
“가만있어 봐. ……됐다.”
태화가 그의 앞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짠~.”
“…….”
심장이 순간 멈췄다.
화면에는 사진 한 장이 아이들에게 전송되어 있었다. 안대를 쓴 청년과, 뿔 달린 소녀가, 같은 선베드에 누워 있는 사진.
그 아래에는.
-ㅎㅎ,,,얘들아,,선생님은 안사람이랑 수영장 놀러 와 있다,,물이 아주 좋구나,,안사람 수영복도 쥑여주는 것이,,밤되면 너희한테 죽지 않아도 안사람한테 죽을 것 같다*^^* 당분간 많이 바쁠 것 같으니,,개학식까지 연락하지 말어라~ㅎㅎㅎ,,, 상호의 머릿속에 천둥이 쳤다.
“태화……야?”
“웅?”
“이거…….”
“웅.”
“왜……?”
“원래 불나면 맞불 놓는 거야.”
태화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얘들이 뭐라 하면 더 큰 충격을 주는 거지. 그러면 이전에 받았던 충격을 까먹을 거 아냐. 봐봐. 다들 봤는데도 아무 말 안 하잖아.”
메세지 옆의 1이 사라졌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답이 없었다. 둘 다 혈압이 올라서 죽은 게 아닐까. 상호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다급히 새 답장을 보냈다.
-지윤아 방금 그거 태화가 보낸거야
-쌤 지금 숙소에있다 진짜
그러자 지윤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그럼 사진에 찍힌 건 누군디예?
‘아.’
상호는 그제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잘못했구나.’
변명할 방법은 없다.
이번에는 나빛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나빛의 문자를 확인했다가.
오줌을 지릴 뻔했다.
-출애굽기20장14절간음하지말아라레위기20장10절누구든타인의처와간음하는자즉그이웃의처와간음하는자는그리한자와함께한자를반드시죽일지어다신명기5장18절간음하지말지어다잠언6장29절타인의처와간통하는자도이같게되리라그를접하는자마다벌을피치못하리라잠언6장32절간음한자는미련한자요그리한자는스스로의넋을썩게하며……
화면을 꽉 채운 성경 구절.
상호는 변명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져 가슴을 부여잡았다.
“……태화야.”
“웅?”
“쌤 죽으면, 민정이 누나한테…… 우리 누나 옆에 묻어달라고 전해 주라.”
“쌤 누나? 쌤 누나 있었어?”
“그냥 그렇게 말하면 알아들을 거야…….”
“알았엉.”
태화가 그의 머리 밑에 허벅지를 끼워 넣었다.
“푹 쉬어. 고생했어.”
“응…….”
상호는 그렇게 무릎베개를 받으며 눈을 감았다.
220. 더러운 인간
“우와!”
미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살아 계셨네요.”
“……으응.”
상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미래 오랜만. ……인데 왜 창문으로 올라왔니?”
“언니들이 그래도 된댔어요.”
미래가 쓴 헬멧에선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있었다.
상호는 커튼을 그러쥐고 얼굴만 빼꼼 내미는 중이었다. 옷도 덜 입었고, 침대에도 효은이 누워 있어서.
“들어……올 거야?”
“네!”
“조금만 기다려. 정리 좀 할게…….”
그는 커튼을 치고 하품을 하며 돌아섰다.
* * *
“들어와.”
“넵.”
미래가 창턱을 타고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침대에서는 하얀 티셔츠를 입은 효은이 하품을 하고 있었다. 상호는 바닥에 떨어진 효은의 속옷을 침대 밑으로 슬쩍 걷어찼다.
“무슨 일로 왔어?”
“그냥 궁금해서…… 곧 언니들도 온대요. 그런데 선생님.”
“응.”
“그 사진들 진짜예요?”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가짜에 가깝지.”
“진짜란 소리네요?”
“아니, 진짜보다는 가짜에 가깝지.”
“진실이 섞여 있단 소리네요?”
“……약간은.”
미래가 키득거렸다.
“언니들이 엄청 화내던데.”
“네가 잘 좀 설명해 주라. 다 오해라고…….”
상호가 한숨을 푹푹 쉬자 효은이 관심을 보였다.
“뭔데?”
“그냥…… 이상하게 찍힌 사진들이 있어.”
“보나마나 또 여자 문제구만.”
“…….”
“뻔하지 니가.”
효은이 미래를 향해 손을 까딱였다.
“친구. 그 사진 좀 보여줄래?”
“앗, 넵!”
미래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핸드폰은 미래의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와 상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엥? 선생님?”
“안 돼.”
“그치만, X급 수녀님인데……. 선생님이 죽을지도 몰라요.”
죽일 수 있으면 죽여보라 해라. 상호는 무시하고 미래의 핸드폰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런데 미래가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럼 프로젝터로 보여드릴게요…….”
미래의 장갑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상호는 벽에 비치는 영상을 보며 넋이 나가 버렸다.
“이야~.”
효은이 배를 벅벅 긁으며 혀를 찼다.
“남편이 여자 건드리는 걸 홈시어터로 직관할 줄이야.”
“…….”
“어어, 저거 봐라. 제자들이랑 멜로를 찍어 아주. 손을 꼭 잡네. 내 손은 저렇게 잡은 적이 있나 몰라. 와, 껴안기도 해? 좀 있으면 키스신도 나오겠어.”
그 말을 하자마자 벽에 문제의 장면이 띄워졌다. 책상에 엎드린 미진과 그 뒤에 선 상호.
효은이 순수한 감탄성을 터트렸다.
“이야 X발, 개쩌네. 바로 베드신이 나와버리네.”
“…….”
상호는 슬쩍 효은에게 다가서서 어깨를 조물조물했다.
효은의 휘둥그레진 눈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뭐야, 왜 이래?”
“앞으로 잘할게……. 그리고 저거 그냥 안마였어…….”
“왜. 뒈질 것 같아서 쫄렸냐?”
효은은 코웃음을 치며 상호의 손을 쳐냈다.
“됐어 이 새끼야. 나는 니가 어떤 새끼인지 정확히 알았어, 이제.”
“아니라고…….”
“니한텐 세상 여자들이 장난감으로 보이나 보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건드리는 거야. 인격체가 아닌 거지.”
“아니에요, 진짜…….”
“그나마 사람새끼 흉내 내려고 애들은 안 건드리는데, 뻔해. 애들 졸업하고 나면 어떤 꼴이 날지. 그때 가면 내가 니랑 일주일에 한 번은 잘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니 누나, 애가 듣는다고…….”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미래를 흘끗했다. 미래는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둘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때 창문으로 머리 네 개가 쏙 올라왔다.
“선생님.”
“쌤~ 열어조~.”
“끄응…….”
세희, 태화, 이서, 이츠키.
아직 경공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서는 안간힘을 쓰며 창턱에 매달려 있었다.
상호는 창문을 열고 이서를 끌어올렸다.
“너희만 왔어? 가은이……는 올 리가 없겠구나. 그런데 왜 모인 거야?”
“몰랑. 걍 쌤 보러왔엉.”
“……들어와.”
창문으로 들어온 네 명의 아이들이 효은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용.”
“그래.”
“아침 드셨어요?”
“아니. 세희 너는?”
“저희도 다 안 먹었어요.”
이서를 제외한 아이들의 눈이 상호에게 붙박였다. 부담스러운 빛으로 반짝이며.
상호는 한숨을 쉬고 냉장고로 걸어갔다.
“알았다, 알았어. 차려 줄게…….”
* * *
식탁에 찌개와 반찬이 놓였다.
나빛, 지윤, 은율의 집 밥상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냄새는 좋았고 단란한 감도 있었다. 상호는 밥그릇을 아이들의 앞에 놓으며 말했다.
“천천히 먹어.”
“네~.”
태화가 숟가락을 들며 물었다.
“쌤, 저번에 콩나물무침 어디 갔어?”
“숙주나물이야. 진작에 다 먹었지. 교장선생님이 주셨던 건데 맛있었어? 더 달라고 여쭤봐?”
“웅.”
“그래.”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옆에 앉은 효은이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뭐야. 왜.”
“애들이랑 집에서 자주 먹냐?”
“주말에 가끔.”
“흐음.”
효은은 찌개를 한술 뜨며 그를 흘겨보았다.
“나보다 애들이 니 밥 많이 먹었겠다?”
“그럴걸?”
“개새끼.”
“……응? 왜?”
상호는 어안이 벙벙해서 밥도 못 먹고 눈을 끔뻑였지만, 효은은 더 말하지 않고 식사를 계속했다.
아이들의 밥그릇이 빠른 속도로 비어가고 있었다.
* * *
그 후로 상호의 방에는 아이들이 들락날락거렸다.
세희와 태화는 당연했고, 이제는 이츠키와 미래, 심지어 이서까지.
오늘은 간만에 아침부터 방이 비었지만, 상호는 옷을 똑바로 챙겨 입었다.
‘또 누군가 오겠지…….’
효은은 민정과 놀러 갔다. 아마 점심 먹은 후에나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터.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법인데, 요즘은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낮에는 아이들과 지내고 밤에는 효은과 자서.
‘출출한데…….’
누가 밥 달라고 할지 모르니까 허기만 대충 때워놓을까. 그런 생각으로 냉장고를 열어 아이스크림 포장을 뜯는데, 창밖에서 익숙한 기계음이 들렸다.
부우웅……
‘미래구나.’
상호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창가로 걸어갔다.
예상대로 미래의 목소리가 커튼을 뚫고 들어왔다.
“선~생~님~.”
“그래, 그래.”
그나마 태화처럼 막무가내로 들어오지는 않는다는 게 다행이었다. 적어도 옷 입을 시간은 주니까.
상호는 커튼을 치우고 창문을 열었다.
“오늘은 뭐 하러 왔어?”
“영화 봐요.”
미래가 장갑 낀 손을 흔들었다.
* * *
콰과광
작은 장갑에서 대포알같은 음량이 튀어나왔다.
벽에 비치는 화면에서는 도시 한복판에서 거대 로봇과 거대 괴수가 레슬링을 하고 있었다. 로봇이 손에 든 나무를 괴수의 입에 쑤셔 박았다.
침대에 앉은 미래가 허공에 어퍼컷을 날렸다.
“나이스! 아, 나도 저런 괴수 한번 잡아봤으면……. 선생님.”
“응?”
“선생님은 저런 거 잡아보셨어요?”
소파에 반쯤 누워 있던 상호는 화면 속 괴수를 바라보았다.
“많이 잡아봤지.”
“진짜요? 어땠어요?”
“센 놈도 있었고, 약한 놈도 있었고……. 근데 덩치가 천 배 크다고 천 배로 강한 건 아니야. 칼로 베도 생채기밖에 안 나서 문제지.”
미래가 그를 돌아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럼 천 배 큰 놈한테는 천 배 큰 칼이 필요하겠네요?”
“……왜? 로봇 더 크게 만들려고?”
“네!”
상호는 화면 속 로봇의 크기를 가늠했다. 어지간한 빌딩 한 채와 맞먹는 크기.
‘나로가 장기까지 팔아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냥…… 지금 크기로도 충분할 거야.”
“그래요?”
미래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큰 게 좋은데. 쩝.”
화면에서는 이제 불쌍한 괴수가 두 동강이 나고 있었다. 상호는 멀거니 영화를 감상하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미래야.”
“네?”
“부모님은 보고 왔어?”
“네.”
“왜 기숙사에 남은 거야?”
미래가 입맛을 다셨다.
“배틀슈트를 계속 개조하고 있는데…… 집에는 둘 데가 없어서요.”
“지금처럼 트럭에 눕혀놓으면 되는 거 아냐?”
“동네 꼬마들이 건드릴 게 뻔하잖아요.”
“아, 그건 그렇지.”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포츠카에도 테러를 하는 꼬마들이 있는데 3미터짜리 로봇을 들고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선했다.
“그리고 지금 학교에 민정 쌤이 계시니까, 방학 동안 배틀슈트 보여드리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려구요. 이런 기회 쉽게 오지 않으니까.”
“그것도 그렇지.”
방학을 알차게 쓰고 있구나. 상호는 기특해서 흐뭇하게 웃었다.
“근데 미래야. 또 물어볼 게 있는데…….”
“네.”
“가은이랑 이서랑. 셋이서 잘 놀아?”
“음…….”
미래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네, 뭐. 그럭저럭. 근데 저는 슈트 때문에 바쁘고, 이서는 중학교 친구들 만나는 것 같고, 가은이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요.”
“잘 못 논단 말이구나.”
“으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요.”
“가은이는 혼자서 뭐 한대?”
“모르겠어요. 자주 외출하던데. 가족이랑 만나는 거 아닐까요?”
상호는 그 말을 듣고 공개수업에서 가은의 아버지를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아마 아닐 것 같은데.’
나중에 만나서 물어봐야겠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영화에 집중했다.
* * *
경찰서 뒤편의 공원.
아침부터 두 여자가 서로를 향해 짧고 검은 고무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한쪽은 눈빛이 매서운 소녀. 다른 쪽은 눈빛이 매서운 여인.
여인의 고무칼이 가은의 팔 아래로 파고들었다.
퍼억
“……윽.”
가은은 옆구리에 고무칼을 얻어맞고 움찔했다.
여인이 손을 내리며 말했다. 목소리는 평범한데 말투가 걸었다.
“반응이 느렸다. 그지?”
“네.”
가은의 턱에 흘러내린 땀방울을 손등으로 닦았다.
마주한 여인은 경찰이었다. 검은 민소매를 입고, 근무복 상의를 허리에 묶고, 단발머리를 대충 묶은.
근무복 상의에는 서호림이라는 이름 석 자와, 경위를 나타내는 무궁화 하나가 박혀 있었다.
“그래도 옛날보다 많이 늘은 것 같은데? 졸업할 때쯤이면 충분히 실력이 되겠어.”
칭찬을 들은 가은은 희미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이어진 말에 확 찌그러지고 말았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나 보네.”
“……아니에요.”
“아냐?”
호림은 검지 끝에서 고무칼을 빙글빙글 돌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실력이 확 늘었는데. 학교 선생님한테 배운 거 아냐?”
“아니에요. 시험 등수도 떨어졌어요.”
“그런가. 뭐, 그런 평가에서 단검술이 불리하긴 하지.”
헌터 경찰이 단검을 쓰는 이유는, 휴대와 은닉이 간편하고 좁은 곳에서의 사용이 용이하기 때문에.
범인을 찾거나 미행할 때 나 경찰이오 나 헌터요 광고하고 다닐 수는 없는데다가, 창문을 넘거나 사람이 겨우 들어갈 지름길을 달리는 게 다반사니, 강력계 헌터 형사는 사복에 단검과 총을 숨겨 다니는 것이 기본이었다.
“근데 그럼 학교에선 뭐 배워?”
“안 배워요.”
“응?”
“그냥 친구들이랑 대련만 해요. 선생……님한텐 배우는 거 없어요.”
호림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남자구만. 맞지?”
“……맞는데, 경위님이 생각하는 것 때문은 아니에요.”
“그래? 그럼 뭔데?”
“그 인간은 진짜 쓰레기예요. 제가 남자 싫어하는 거랑은 별개로…….”
가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여고인데, 제자들 막 껴안고 다녀요. 빈 교실에서 다른 선생님이랑 이상한 짓도 하고……. 언니들한테 듣기로는 경찰한테도 몇 번 붙잡혔대요.”
“와우. 그런 인간이 어떻게 여고 선생이야?”
“……저도 그게 제일 궁금해요.”
그런 인간 옆에 왜 교장이 있고 X급 헌터가 있는지. 가은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호림은 계속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너한텐 손을 안 댔나보다. 너한테도 그랬으면 네가 가만있진 않았겠지?”
“네. 아직은.”
“그런 일이 생기면 말해. 신고를 해도 되고.”
“네.”
“계속하자.”
둘은 다시금 고무칼을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