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8화 (228/501)

* * *

“아~. 더워.”

태화가 교복 앞섶을 팔락이며 한숨을 쉬었다.

“쌤.”

“뭐.”

“수영장 가자.”

“안 돼.”

“왜! 수영장이 별거야? 끽해야 한나절이면 놀고 오잖아! 내일 일찍 끝나니까 후딱 갔다 오면 될 거 아냐!”

그랬다. 내일은 방학식.

늦게 끝나 봤자 10시일 것이고, 쓱 가서 놀다가 점심 먹고 3시나 4시쯤에 돌아오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왜!”

‘니가 그걸 교실에서 말해버렸으니까…….’ 둘이서만 개인적으로 말했으면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애들 앞에서 말해버리면.

아무리 못해도 세 명, 많으면 십여 명이 따라가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만다.

“니는 절뚝이 선생님 데리고 그런 델 놀러 가야겠냐?”

“뭐 어때! 쌤은 복근 개쩌니까 괜찮아. 아무도 뭐라 안 그래.”

“안 돼. 안 가. 못 가니까 그런 줄 알아.”

“우씨……. 그러면 쌤 빼고 우리끼리 가면 되지.”

그 말에 상호는 또 66부의 일이 떠올랐다.

‘하아…….’

태화가 막무가내로 가자면 따라갈 수밖에 없다. 맘 같아서는 그냥 네 맘대로 하라고 내버려두고 몰래 미행을 하고 싶지만, 이런 몸으로는 불가능했다.

도망과 미행. 그가 아무리 강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두 가지 행동.

‘……갈 수밖에 없구나.’

그렇지만 그걸 애들 앞에서 말할 수는 없으니. 상호는 한숨과 함께 축 처진 목소리를 내었다.

“나중에 말해. 어차피 방학이잖아. 갈 시간도 많고……. 천천히 생각하자. 응?”

태화가 팔을 책상 위로 쭉 뻗으며 다리를 동동 굴렀다.

“그럼 같이 갈 거야?”

“너 하는 거 봐서.”

“오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슬그머니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상호의 머릿속이 새하얘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자, 응? 얘들아…….”

“지들도 갑니더.”

“저번처럼 쏙 빼놓고 가면…….”

“선생님 눈에서도 눈물 쏙 뺄 거예요, 헤헤헤…….”

눈물이 아니라 눈깔을 빼버리겠다는 분위기. 식겁한 상호는 반사적으로 손을 움찔했다. 하나밖에 없는 눈을 지키기 위해서.

“알았어, 알았어. 근데 너희들, 방학에 집 가는 애들은 꼭 선생님한테 언제 가서 언제 오는지 말하고…….”

“또 말 돌리시네예.”

“아니야, 그게 아니라……. 지윤이 너도 이번에 집 가지?”

“예.”

“그러니까 놀러 가려면 일정을 맞춰야 되잖아. 그래서 묻는 거야. 기왕이면 다 같이 놀러 가는 게 좋잖아.”

굳이 수영장 때문이 아니라도, 해련과 설미가 결정한 여행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미리 일정을 짜 둬야 했다.

지윤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예.”

“그래서…… 어쨌든. 방학에 집에 가는 사람 있어?”

세 명을 제외한 모두가 손을 들었다. 손을 들지 않은 사람은 세희, 태화, 그리고 나디아.

상호는 유학생 둘을 바라보았다. 이쪽이 제일 중요한 문제.

“사카시타는 언제 가는지 꼭 미리 말해 줘. 네 일정은 바꾸기 힘드니까.”

“네.”

“나디아는 집에 안 가봐도 괜찮겠어?”

“……네.”

나디아가 어두운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둘만 있을 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 상호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다시 물었다.

“집에 가서 계속 있다가 오는 애들. 손 들어 봐.”

지윤, 나빛, 은율.

단비, 아리, 하솔, 초란.

“내려. 이번엔 잠깐만 들렀다 오는 애들.”

이츠키.

미래, 이서, 가은.

상호는 지금 손을 든 넷을 향해 물었다.

“사카시타는 비행기가 정해져 있을 거고……. 너희는 언제 갈지 꼭 정해져 있는 거야? 아니면 그냥 한 번쯤 뵙고 오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냥 한 번이요.”

“저도.”

미래와 이서가 차례대로 대답했다. 가은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확답을 들어야 할 사항이라, 상호는 가은에게 다시금 물었다.

“가은이는 어때? 일정 맞출 수 있겠어?”

“수영장 안 가요.”

“아니,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래. 내가 아니라 교장선생님이 너희들하고 놀러 갈 수도 있어. 그건 괜찮잖아.”

가은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

“나중에 말해주면 네가 거기 맞출 수 있지?”

“네.”

“그럼 됐다.”

상호는 씩 웃고 교탁 아래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오늘 다 끝내자. 법이랑 국사랑 가정이랑.”

“아~ 내일 방학인뒈에에~.”

“그러니까 끝내야 하는 거지, 임마. 다른 반도 똑같이 한 권 배우는데 왜 우리만 오늘까지 밀려 있겠냐. 다 니가 맨날 놀자고 그래서…….”

“다른 반도 시험 끝나면 놀잖아! 비 오면 놀잖아! 왜 내 핑계야? 나 싫어? 나 미워?”

“아니 다른 반은…….”

“편애 금지!”

“그니까 제일 편애받는 게 너…….”

“우리만 진도 느린 건 쌤이 무능해서 그렇잖아! 미진쌤이 그랬어! 쌤 일하는 거 보면 답답해 죽겠대!”

“사람에겐 각자의 적성이란 게…….”

“또 꼰대질! 빼애애액!”

“야, 사람이 말을 하면…….”

“뿌에에엑~. 편애 무능 꼰대~, 뿌에에엥~.”

“……좀 들으라고!”

* * *

종례 시간.

상호는 태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넌 남아.”

“엉?”

태화가 눈을 깜작이다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또 꼰대질 할려구.”

“토를 안 달면 죽는 병에 걸렸냐. 남으라면 남아. 사람 짜증나게 하지 말고.”

“치……. 알았어.”

“너희는 가. 내일 보자.”

상호는 다른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이 나간 교실엔 상호와 태화만 남았다. 단둘이 되자 태화가 서운한 눈빛으로, 살짝 삐진 목소리로 물었다.

“혼낼꼬야?”

“응.”

상호는 태화의 책상에 걸터앉아 태화의 뺨을 집었다.

“너는 임마, 쌤이랑 아무리 친해도 그렇지. 너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으에──.”

뺨을 집힌 태화가 맹한 소리를 흘렸다.

“그래도──. 놀면 좋잖아──.”

“좋다고 맘대로 하면 되냐. 술이 좋다고 막 마셔도 되는 게 아니잖아. 네가 그러면 아버님께도 뭐라 할 수 없는 거야.”

그 말에 태화의 눈빛이 달라졌다.

“……쌤.”

“응.”

“무슨 일 있었구나.”

왜 그렇게 묻는지는 알고 있다.

상호는 말없이 양손으로 태화의 볼을 문질렀다. 회한과 한없이 비슷한 감정을 눈빛에 담은 채.

‘네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야.’

조금, 아주 조금 다르다.

그가 입을 열지 않자 태화도 더 묻지 않고 물끄러미 눈만 마주쳤다. 대답해주지 않을 거란 사실을 이미 아는 듯이.

상호는 태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돌렸다.

“내일 가자, 수영장.”

태화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 진짜?”

“그럼 가짜겠냐. 네가 수영장이라고 하면 워터파크 같은 거 말하는 거지? 내일 방학식 끝나면 바로 가게, 오늘 미리 준비해 놔.”

“준비랄 거야 뭐 수영복밖에 더 있나? 누구랑 가?”

“그냥 단둘이서 쓱싹 갔다오면 되지. 그게 너도 좋잖아.”

“응? 그건 아닌데.”

“……뭐?”

평소에 놀러 갈 땐 둘만 가자고 해 놓고선. 상호는 어리둥절해서 눈을 끔뻑였다.

태화가 머쓱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아니 그게, 쌤이 별로라는 건 아닌데…… 쌤이랑은 같이 있는 게 좋은 거지, 놀 때 좋은 건 아니라서. 물놀이처럼 장난치고 놀 때는 애들이 좋지.”

“……그게 뭔 소리야?”

“쌤 솔직히 놀 때는 재미없어.”

태화는 시선을 피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늙은이 같아서…… 좀 그래.”

그 말이 상호의 가슴에 운석처럼 처박혔다.

“그……래……?”

“응. 그니까 두 명쯤 더 데려갔으면 좋겠는데…….”

“누구…… 누구?”

“그건 내가 애들한테 물어볼게.”

“그래…….”

상호는 검을 짚으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러자 태화가 그를 향해 또 한마디를 날렸다.

“아, 그리고 쌤. 칼 긴 걸로 짚으면 안 돼? 짧은 거 짚으니까 꾸부정해서 더 늙어 보여.”

“…….”

“어쨌든 난 갈게.”

펑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흩날렸다.

상호는 태화가 사라지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검을 끌어안았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나, 누나 칼이 짧아서 내가 늙어 보인대요…….’

스물넷에 꼰대라느니 늙은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듣고 살 줄이야.

가만 생각해보면 그의 가치관은 예경에게서 배워온 것이니, 2학년 아이들과는 6살 차이가 아니라 12살 차이가 되는 셈이었다. 상호는 그 사실을 통감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니 X바…… 나도 어디 가서 나이 까면 애 취급받는다고…….’

헌터들 사이에서도 나이로 대접받은 적 없고, 예현여고 교사들 중에서도 제일 젊었다. 딱 한 명, 미진만 빼고.

그냥 예경이 죽은 후로 성격이 삭막해진 것뿐인데.

‘젊게 산다는 게…… 대체 뭘까.’

상호는 터덜터덜 문가로 향했다.

214. 워터파크

“조례 시작!”

태화가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며 소리쳤다.

“1학기 동안 고생했고! 2학기에 보자! 푹 쉬고! 잘자고잘먹고잘싸고! 종례 끝! 나가! 꺼져!”

“조용히 하고 앉아.”

“웅.”

상호는 태화가 자리에 앉자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1학기 동안 고생…… 으음. 굳이 말 안 해도 알지? 어차피 금방 또 볼 거니까, 짧게 끝내자. 방학이라고 해서 너무 놀기만 하지 말고…….”

“벌써 길어지는 거 같은디예.”

“……개학식날 보자.”

“네~.”

아이들의 신난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 * *

그렇게 짧고 굵게. 아니 굵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짧게. 방학식을 마쳤다.

상호는 이화관 앞에 차를 세우고 창밖을 올려다보았다.

‘누굴 데려오려나.’

두 명을 더 데려가겠다고 했다. 과연 그 두 명은 누구일지.

방학을 맞은 기숙사는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때문에 수선스러웠다. 트렁크를 들고 나오는 아이들, 그리고 기숙사 주변에 차를 대는 학부모들.

상호는 구석진 곳으로 차를 옮기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후딱 갔다 와야 다른 애들한테 안 들킬 텐데…… 응?’

태화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쌤 잠깐만 와봐

와보라니, 대체 어디로 오라는 걸까.

상호는 당황한 눈으로 이화관을 흘끗하고 답장을 보냈다.

-어디로?

-내 방

‘진짜냐?’

그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아이들이 드나들고 학부모들이 지켜보는 지금. 여학생 기숙사 입구를 남교사가 들어가는 것은 사회적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금 답장을 보냈다.

-왜 뭔데

-급해!!! 빨리와봐

‘뭐냐고…….’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빠아아앙

‘……아오, X바!’

경적이 울리자 주변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향해 굽실거렸다.

안 그래도 의심스러운데 더 의심을 사게 생겼다.

‘에휴…….’

여기서 이런다고 답이 나오진 않는다. 급하다니까 가 보는 수밖에.

방법은 하나.

상호는 차에서 내리며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어, 태화야, 응? 뭐? 아프다고?”

아주 심각한 목소리. 하지만 핸드폰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통화하는 척만 하고 있는 거니까.

“뭐? 맹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아? 알았어, 금방 갈게.”

그는 일부러 험악한 표정을 짓고 이화관으로 돌격했다. 아무도 함부로 말을 걸 수 없도록.

다행히 학생들은 별 의심 없이 길을 비켜주었다. 몇몇 학부모들이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의 기세에 짓눌렸는지 뭐라 따지지는 않았다.

“지금, 지금 가고 있어. 뭐? 추간판탈출증까지 있어? 큰일났네, 조금만 참아. 금방 갈게.”

상호는 아무렇게나 지껄이며 입구로 들어섰다. 얼굴이 달아올라서 터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연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탈력감이 빡세게 찾아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지…….’

그는 한숨을 쉬며 계단을 올라갔다.

* * *

문을 두드리자 태화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 쌤.”

“뭔데.”

“빨리 들어와 봐.”

상호는 태화의 손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넓지 않은 방. 이미 몇 번 왔던 곳. 달라지지 않은 침대 위에는 수영복 두 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설마…….’

당혹스러워하는 상호의 귀에 태화의 태연한 목소리가 박혔다.

“골라줭.”

“……겨우 이거 때문에 여기까지 오라고 했냐?”

“겨우라니! 중대사항이란 말이야.”

“하…….”

골머리가 아프다. 상호는 이마를 짚으며 수영복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근데 왜 두 벌이나 샀어? 원래 입던 건 또 어디로 가고.”

“하나는 세희 거.”

스타일이 확연히 달랐다. 하나는 끈이 많은 빨간색, 다른 하나는 나풀거리는 상아색.

빨간색은 어째 면적이 좁았다. 상호는 그 빨간색을 가리켰다.

“이게 니가 산 거지?”

“아니, 그게 세희 건데.”

“……뭐?”

얼이 빠진 상호를 향해 태화가 실쭉 웃었다.

“고르기 힘들어? 입어서 보여 줄까?”

“난 모르니까 고르기 힘들지……. 근데 이게 그렇게 중요해? 대충 입고 가면 안 돼?”

“안 돼! 1년에 한 번 기분내는 거란 말야. 잠깐만 기다려 봐. 입고 나올게.”

태화는 빨간 수영복을 들고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상호는 옷을 토해내는 욕실 문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태화는 그렇다쳐도 세희까지 수영복을 새로 샀을 줄은 몰랐는데.

기대하고 있는 걸까.

“야, 태화야.”

“엉?”

“누구누구랑 가기로 했어?”

“은율이랑 이츠키.”

너무 의외의 멤버가 아닌가.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넌 세희랑 척졌냐?”

“놀려줘야지.”

“너희는 참……. 그리고 은율이는 또 어떻게 데려오기로 했어? 오늘 집 간다고 했는데.”

“집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놀자고 했지. 걘 집이 되게 재미없나봐, 더 놀고 싶어하는 눈치더라. 수영장 간다고 하니까 무서워하긴 했는데…… 어쨌든 따라온대.”

“다른 애들한테는 물어봤어? 지윤이랑 나빛이랑 나디아랑…….”

“지윤이는 엄마 도와줘야 돼서 못 논다던데? 나빛이는 걔네 엄마아빠가 데리러 온다고 해서 못 놀고. 나디아는 나빛이 따라간대.”

“……아, 그래?”

집에 안 간다는 거지 기숙사에 남는다는 뜻이 아니었구나. 상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랑 간다고는 말 안 한 거지?”

“당연하지. 쌤이랑 간다고 하면 걔들이 그냥 갔겠어?”

태화는 그렇게 말하며 욕실에서 나왔다.

허리에도 끈. 어깨에도 끈. 상호는 대충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별로다. 걍 이거 입어.”

“아이씨, 좀 성의 있게 봐! 사랑스런 여제자가 천쪼가리 하나만 걸치고 있잖아!”

“한 번 봤으면 됐지…….”

상호는 태화가 벗은 옷을 내공으로 집어 태화의 품에 밀어붙였다.

“입고 나와. 빨리 가게.”

“웅.”

태화가 옷을 들고 욕실로 쏙 들어갔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로 방을 쓱 둘러보았다. 좁은 방에는 책상, 의자, 침대, 옷장.

그리고 곰인형이 하나.

‘잘 있구만.’

태화의 집에서 주워서 생일날 전해준 인형.

그때는 십중팔구 태화의 어머니 쪽이 사줬을 거라 예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반반이 아닐까 싶었다. 개벽 전의 일이라면.

물론 이제 와서 알 방법은 없으니.

‘하늘만이 아시겠지.’

상호는 그렇게 여기고 눈길을 거뒀다.

곧 욕실에서 나온 태화가 검지를 높이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출동이다, 강상호! 일어나!”

“그래 임마. 이젠 막 부르는구나…….”

둘은 같이 방을 나섰다.

* * *

뒷자리에 앉은 이츠키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여제자들하고 수영장을 가십니까?”

“…….”

“일본에선 이러면 매장당합니다.”

“……우리도야.”

상호는 그렇게 답하며 조수석에 앉은 태화를 돌아보았다. 태화는 태연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화야.”

“응?”

“말 안 했어?”

“뭐를?”

“나랑 간다고…….”

“웅. 아까 그랬잖아.”

“하아…….”

얘들한테까지도 그랬을 줄은 몰랐지. 핸들에 얹힌 상호의 양손이 축 늘어졌다.

애들을 단체로 데려가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셋은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단둘이면 모를까.

‘가면 또 엄청 시선 끌겠지…….’

작년에 갔던 바다는 동해 쪽이라 헌터의 동행이 필요했고, 그래서 관광객이 비교적 적은 편이었지만, 이런 워터파크는 내륙에 있기에 그런 규제가 없었고, 사람도 훨씬 많았다.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도 비교적 젊었고.

그런 젊은 사람들의 시선은 상호에겐 특히나 더 부담스러웠다.

‘워터파크에서 지팡이 짚는 놈은 나밖에 없겠지. 그런 놈이 여학생을 셋이나 끼고 있으니…….’

관심을 갖지 않는 인간이 비정상일 것이다. 상호는 한숨을 쉬며 차를 몰았다.

멀리에 워터파크 주차장 입구가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