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0화 (220/501)

* * *

평가 준비 기간이라 실내수업이 없었다. 스탠드에 선 상호는 운동장에서 구르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칼 똑바로 잡아라, 단비야. 꽉꽉 감아 잡지 않으면 힘이 안 들어가잖아.”

“이서는 선생님이 말했지? 생각하고 휘두르라고. 눈으로만 반응하면 속임수 쓰는 상대 못 이긴다.”

“지윤이 넌 부적에 닿으면 안 되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어. 피하면서 발기술 위주로 공략해야지. 그러면 사카시타가 이제 어떻게 하겠어. 칼이 아래로 내려가서 놀겠지. 그러면 또 어떻게 해? 네가 위쪽을 공략하는 거야.”

한창 떠들고 있는데 뒤에서 효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거 봐, 저거. 지는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안 한다니까. 애들만 시키고. 무능한 새끼…….”

상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효은과 민정이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효은을 발견한 단비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멍! TV에서 자주 보던 언니!”

“뭐여, 이 누렁이는.”

효은은 가까이 다가와서 단비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야, 강상호. 너 이런 거 좋아하냐?”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헌터님.”

“솔직히 말해봐. 니 애들 외모 보고 뽑지? 다 알아, 이 새끼야.”

상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화를 들은 아이들이 뒤를 돌아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수녀님!”

“어, 민정쌤.”

나빛은 벌떡 일어났고, 태화는 민정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 외에 세희와 지윤도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이미 민정을 본 적 있는 아리와 미래도 민정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X급 헌터인 효은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했다.

놀라지 않는 사람은 단 두 명. 이츠키와 나디아뿐이었다.

“저 사람…… 저승부대 수녀님 아니야?”

“진짠가봐. 뭐야? 여기 왜 왔지?”

효은은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는 아이들을 쓱 훑어보고 상호를 보았다.

“언니 온 거 알고 있었냐?”

“예, 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참나, 깍듯하시네, 밤에는 어떻게든 위에 올라타려고 들면서…….”

효은이 코웃음을 치자 상호의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다행히 나빛이 방긋 웃으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잘 지내셨어요, 수녀님?”

“어, 그래. 몸은 괜찮고?”

“멀쩡해요, 헤헤…….”

“니 담임이 변태라 다행이다. 그런 면으로는 쓸모가 있네.”

“네?”

나빛이 눈을 깜작였다.

상호는 그냥 효은을 무시하고 민정의 곁에 붙었다. 아이들의 이목은 모두 효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누나. 다혜 봤지?”

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누나가 보기엔 어땠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용을 먹어서…… 용의 마나가 몸에 너무 많이 섞였어. 용은 마나가 구체화된 생물이나 마찬가지니까…… 용의 마나가 신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당연해.”

“해결법은?”

“당장은 모르겠어.”

그 말에 상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도 몰라?”

“좀 더 관찰해 봐야지. 다혜한테 운기조식은 시켜 봤니?”

“운기조식? 아니, 내가 지금 가르치는 제자는 아니라서. 그건 왜?”

“마나 비율이 달라지는지 보고 싶어서. 그 아이 내공이 늘어나는지, 아니면 용의 마나가 늘어나는지…….”

민정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상호는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누나가 머리 좋으니까 좀 도와줘. 나는 애들 시험 끝나면 같이 고민할게.”

“아, 응. 그래. 너는 수업해야지.”

“얘들아, 다음 대련…….”

상호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가 진땀을 흘렸다.

아이들이 코앞까지 다가와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반짝이고 있어서.

“선생님 수녀님이랑 어떻게 알아요? 무슨 사이예요? 여자친구예요?”

“아니, 그냥 비즈니스…….”

“멍, 뻥치지 마요! 언니들은 다 아는 눈친데!”

“그니까 작년부터 이어진 비즈니스…….”

“여자친구죠?!”

“아니…….”

“뽀뽀도 했어요?!”

“수녀님이잖아…….”

미래와 단비가 특히 극성이었다. 상호는 둘의 머리를 내리눌러 스탠드에 앉혔다.

“수녀님한테 실례다, 얘들아. 우린 그냥 평소처럼 수업…….”

“수녀님한테 실례했어?”

태화가 눈을 끔뻑였다.

“나 그거 알아. 뭐시기 샤워? 뭐더라?”

“대체 뭔 소리야……. 이상한 소리하지 마.”

상호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다음. 나빛이, 은율이.”

* * *

“오늘도 고생했고…….”

상호는 교탁 앞에 서서 한숨을 푹 쉬었다.

“내일 보자…….”

“멍, 선생님 다 죽어가…….”

“쌤.”

태화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상호는 이미 태화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안 해. 뼈 안 삭아. 잠도 잘 잘 거야.”

“앗, 역시~ 내 맘을 너무 잘 안다니까아~.”

“넌 단순해서 다 예측이 돼.”

“아이씨, 그거 천세희가 하는 말이잖아아아!”

태화의 뿔에서 광선이 날아왔다.

상호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피하고 말을 이었다.

“보면 알겠지만…… 선생님 피곤해 죽을 것 같아. 그러니까 너희는 제발 사고치지 말아 줘……. 지금까지처럼…….”

“네…….”

“사랑한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유령처럼 교실을 빠져나왔다.

교무실로 향하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로 미루어보니 네 명.

상호는 뒤를 돌아 세희, 태화, 나빛과 지윤을 마주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으세요?”

나빛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상호를 올려다보았다.

“저번에, 교실에서 달려나가신 후로…… 웃으시는 걸 못 봤어요…….”

그런 거였나.

상호는 그 말에 웃었다.

“별거 아냐. 잘 해결되고 있어.”

“무슨 일인지는…… 말씀 안 해주시는 거예요?”

“아니, 비밀은 아니야.”

상호의 손이 나빛의 머리를 쓸었다.

밝고 가느다란 은회색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에서 물처럼 흘렀다.

“그냥 좋은 이야기는 아니라서 굳이 너희한테 말하지 않은 것뿐이고…… 해결은 되고 있어. 될 거야. 아마도. 너희한텐 시험 끝나면 말해 줄게.”

“그럼 큰일은 아닌 거지예?”

지윤의 눈빛도 나빛과 같았다.

“지들은…… 쌤 친구분덜이 단체로 왔길래. 먼 일이 있나 했습니더.”

“큰일 아냐. 걱정 말고 가서 평가 준비해. 방과후 수업 받을 거면 받고.”

“알았어예.”

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세희와 눈을 마주쳤다. 아이들이 다혜에 관한 일을 모른다는 건 세희가 말을 해주지 않았다는 뜻.

얼굴도 몸도 그렇게 다쳤었으니, 물어보지 않았을 리는 없고, 아마도 스스로 비밀로 하려고 마음먹은 듯했다.

그래서 상호는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세희도 걱정 말고 평가 준비해. 잘 해결되고 있으니까.”

“……네.”

세희는 희미하게 웃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뒷목으로 혈압이 살짝 오르는 게 느껴졌다. 세희의 몸에 난 상처가 떠올라서.

‘……걔들은 어떻게 됐지?’

나중에 해련에게 물어봐야겠다. 상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들의 뺨을 문질렀다.

“이따 보자. 선생님 교무실 좀 갈게. 그동안 쉬고 있어.”

“네.”

아이들이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상호는 아이들에게 한 번 더 웃어 보이고, 복잡하게 뒤엉킨 마음의 실마리를 찾으려 애쓰며 교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 * *

“야, 사진 잘 나온 거 같냐?”

효은이 그의 책상에 포스터를 내려놓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상호는 그 포스터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뭐야, 시안이 벌써 나왔어요?”

“X급 헌터님이 오셨는데 빨리빨리 하겠지. 그래서 어떠냐고.”

“예쁘게 나왔네요. 근데 누나는 어딨어요?”

“언니? 교장실.”

둘의 옆에는 미진이 서류 정리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설미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상호는 설미가 자꾸 자신을 힐끔거리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설미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으, 응?! 아니…….”

설미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상호와 효은의 얼굴을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꽤 오래 봤던 만큼 눈치를 챈 듯했다.

작년에 왔던 교생과 눈앞의 X급 헌터가 동일인임을.

상호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비밀로 해주세요.”

“응? 아, 어! 그래…….”

설미는 파닥파닥 고개를 끄덕이고 파티션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그 옆에서 미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비밀이에요?”

“몰라도 돼요.”

상호는 헛기침을 하고 포스터를 효은에게 돌려주었다.

“교장실로 가세요. 난 일하고 또 수업하러 가야 되니까.”

“언제 끝나는데?”

“저녁 먹을 때까지 안 끝나요. 빨리 가시라고요. 일에 집중 좀 하게.”

그 말에 미진이 콧방귀를 뀌었다.

“누가 들으면 유능해서 일이 많은 줄 알겠네요.”

“……끄응.”

양옆에서 쌍으로 갈구는구나. 상호는 대꾸도 못하고 키보드를 잡았다.

뒤에서 효은과 미진이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부하예요?”

“아, 예. 부하……는 아니고 부교사입니다, 수녀님.”

“학교 선생이 원래 이렇게 일이 많아요?”

“그냥 이 분이 일을 못하는 겁니다.”

“그죠?”

효은이 작게 낄낄거렸다.

상호의 이마에 혈관이 솟았다.

‘나보다도 일 못했으면서…….’

“학교에서 평판은 어때요, 이 인간?”

“평판요? 가관이죠. 무능에 낙하산에 B급에 난봉꾼에…….”

“난봉꾼?”

“안 건드린 여자가 없어요. 저한테도 툭하면 어깨 주물러준다면서 은근슬쩍 더듬고…….”

“……호오.”

효은이 코웃음을 쳤다.

“미진 씨라고 했던가요?”

“아, 네.”

“저기 미안한데 이것 좀 행정실에 가져다주세요.”

“넵.”

미진은 빠릿빠릿하게 포스터를 받아들고 교무실을 나갔다.

곧 상호의 귓가에 따뜻한 온기가 닿았다. 달콤한 향이 나는 숨결이.

하지만 상호에게는 엄동설한의 싸늘한 냉기처럼 느껴져서, 뒷목에 소름이 쫙 돋았다.

“아무 여자나 다 됐던 거네?”

“…….”

“언니 때문에 기다렸던 내가 븅신이다. 그치?”

“……아닙니다, 수녀님.”

“닌 뒤졌어.”

효은은 또박또박 한 글자씩 씹어 말했다.

“밤에 보자. X새꺄.”

“아니라고요…….”

어떻게든 변명해 보려 했지만, 효은은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쌩하니 나가 버렸다.

오뉴월인데 서리가 내릴 것 같았다.

‘난 잘못한 거 없는데…….’

왜 소문이 자꾸 이상하게 퍼지는 걸까. 상호는 고개를 푹 숙이며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고된 하루가 밤까지 이어질 것 같았다.

205. 엿보기

한창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꺼내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보낸 사람은 해련.

-저녁 먹지 말고 방으로 와요~

상호는 그 문자를 읽으며 눈을 끔뻑였다.

‘다혜랑 같이 먹으려나?’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예

그는 짧게 답장을 보내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얘들아, 이제 그만하고 밥 먹자.”

“네.”

아이들이 대련을 멈췄다.

방과 후 수업은 대체로 참여율이 높았다. 오늘도 열 명. 다들 사흘에 두 번꼴로는 꼭 와 주었다. 하지만 딱 한 명, 얼굴도 비추지 않는 아이가 있었으니.

‘이서가 가은이를 이길 수 있으려나…….’

그래 주기만 하면 일이 편해질 텐데.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돌아섰다.

지금은 다른 할 일이 있었다.

* * *

“짠!”

현관으로 들어서니 해련이 코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를 걷는 발소리를 들었으리라. 상호는 눈을 끔뻑이며 해련이 입은 앞치마를 내려다보았다.

“외식하자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 고기 구워 먹으려고. 어여 들어와요. 다 기다리고 있으니까.”

“다요? 누구요?”

상호는 안으로 들어섰다가 효은, 민정, 다혜와 눈이 마주쳤다.

“뭐야, 다 여기 있었…… 뭐해?”

“아, 이거?”

민정이 다혜를 묶은 마나의 사슬을 흔들었다.

“다혜는 먹으면 안 되는 거라서.”

그런 민정과 효은의 앞엔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는 전기불판이 놓여 있었다.

쌈에 찌개에 성대하게 차려져 있는데 왜 다혜는 안 먹이나. 다소 불만은 있었으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민정이 하는 일이었기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상호는 불판 앞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이게 뭔데?”

“용.”

“……용?”

상호의 눈이 멍청히 끔뻑였다.

“용이라고? 어디서 났어?”

“교장선생님이 잡아오셨어.”

뒤를 돌아보니 해련이 주방에서 사람 몸통만한 용 앞발을 해체하고 있었다. 비늘을 벗기고, 살코기를 발라서.

다시 앞을 돌아보면 다혜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으아므아으아…….”

“안 돼.”

“아으아으…….”

다혜가 눈물을 글썽이며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지만,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마음을 약하게 먹지 않았다.

그래도 굶길 수는 없으니. 상호는 고기 없이 밥과 쌈장으로만 쌈을 싸서 다혜의 입에 넣었다.

“꼭꼭 씹어 먹어.”

다혜는 눈을 반짝이며 쌈을 씹더니.

“아르르르…….”

고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으르릉거리며 쌈을 토해냈다.

용고기를 보고는 아주 짐승이 되어 버렸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휴지를 뽑아 다혜의 입을 닦았다.

“어떡하냐, 정말…….”

“그르릉…….”

해련이 고기가 담긴 접시를 들고 상호의 옆에 앉았다.

“옆방에 데려다 놓을까? 내가 보고 있을게.”

“아뇨, 한번 반응을 보죠.”

“맛은 있어?”

“그럭저럭요.”

상호는 용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익숙한 맛이었지만 그때의 느낌은 나지 않았다. 벌레와 나무뿌리로 연명하던 와중에 먹게 된 직화구이 고기의 폭력적인 향미.

그래도 맛은 좋았다.

한참 입에 넣고 질겅거리는데 민정이 물었다.

“어때. 용혈이 좀 느껴져?”

“용의 마나? 음…….”

상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몸속의 변화를 살폈다.

“좀 느리네. 내공에 섞여드는 게. 뭐 공기 중의 마나랑 비교하면 당연하긴 한데.”

“섞이긴 해? 뭉치지는 않아?”

“나는 잘 섞이는데…… 체내에 마나가 적은 사람들이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못 녹여낼 수도 있을 것 같아.”

상호와 민정, 그리고 해련의 시선이 다혜를 향했다.

해련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그걸 어떻게 녹이지?”

“내공이 용혈보다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녹을 것 같아요. 천천히라도……. 문제는.”

상호는 누워 있는 다혜의 목을 짚었다.

체내에 뒤엉킨 두 종류의 기운. 내공과 용혈.

용혈은 거대한 용이 날개를 펼치듯 한껏 부풀어 올랐지만, 내공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마…… 점점 용혈한테 먹히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에 해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용혈을 빨리 빼내야겠네.”

“어떻게요?”

“저번처럼 폭주시켜서 소모시키면 되지 않을까?”

“폭주하면 오히려 용혈이 내공을 더 빨리 잡아먹을지도 몰라요.”

상호는 다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좀 느리더라도 다혜가 내공을 쌓아가는 수밖에…….”

운기조식으로 용혈에게 먹히는 속도보다 빠르게 내공을 쌓는 것. 그게 제일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다혜야, 운기조식 한 번 하고 있을…….”

“으르르릉…….”

“……상태가 아니구나.”

밥 다 먹고 시키든가 해야겠다. 상호는 다혜를 놔두고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해련이 냉장고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반주 한잔 할래요? 다들?”

그 말에 효은이 제일 먼저 대뜸 대답했다.

“네.”

“어머, 내가 말을 너무 늦게 꺼냈구나. 민정 양도? 강 선생도 마실 거지?”

“아니 애도 있는데 무슨 술이에요…….”

“에이, 한 잔만 해.”

냉장고에서 술병이, 찬장에서 잔이 날아왔다.

상호와 효은과 민정은 해련이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아휴, 저승부대도 참 고생 많았지~.”

“예에.”

“너무 많이 갔어. 너무 많이……. 에휴, 살아있었으면 헌터 교육 수준이 여기서 멈추지 않았을 텐데.”

“그럴 수도 있죠.”

“자, 짠.”

넷의 잔이 부딪혔다.

상호는 효은과 민정이 잔을 기울이는 틈을 타 해련과 눈을 마주쳤다. 따로 할 말이 있어서.

해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걔들은 어떻게 됐어요? 3학년 애들.”

그 말에 다혜가 으르릉거림을 멈췄다.

해련은 그런 다혜를 흘끗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상호에게만 간신히 들릴 정도로.

“아직 못 정했어.”

“벌을 주긴 하는 거예요?”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그런데…… 적당히 봐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상호는 잔을 기울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쪽에서 또 건들까 봐요?”

“응. 내년이면 졸업한다지만…… 아직 올해가 많이 남았으니까.”

다혜가 더 귀찮아지지 않으려면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상호는 신경질적으로 용고기를 씹으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데요?”

“아마도 봉사활동.”

해련이 쓰게 웃었다.

“뭔가 더 해줄까?”

“……아뇨.”

상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됐어요.”

애를 상대로 복수를 할 것도 아니고. 다혜에 관한 일도 얽혀 있으니.

걷다가 마주치면 으르는 정도로 끝내자, 상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술병을 잡았다.

“한 잔 받으세요.”

“옹야~.”

해련이 씩 웃으며 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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