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그렇게 된 거예요.”
해련이 말을 맺었다.
셋은 혁에게 자신이 아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상호는 다혜의 용혈과 그동안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건흠은 다혜가 벙어리이고 반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해련은 아까 싸워본 다혜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혁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래서 그 용혈이란 게, 용의 마나가 폭주했다는 겁니까?”
“그런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 달려들 때 침을 흘리고 있었고?”
“예.”
“그게 평소에 용 융합체 학생을 봤을 때 반응하고 같죠?”
“네.”
“그럼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혁은 쯧 하고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인간일 땐 용을 잡아먹으려고 하고, 용일 땐 인간을 잡아먹으려고 하고…… 참 골치가 아프구만. 그래서, 그 상태일 때 얼마나 강합니까? 교사들이 제압할 수 있어요?”
해련이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다치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러면 강 선생도 된다는 소리죠?”
“응?”
해련은 당황하며 상호를 돌아보았다.
“말했어요?”
“……제가 말하진 않았어요.”
자기가 직접 알아낸 거지. 상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혁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 애를 어떻게 기숙사에 재우고 교실에 보냅니까? 두 사람이 24시간 감시할 수 있어요? 학생들 안전이 백 프로 보장돼요?”
건흠이 고개를 푹 떨궜다.
“이사장님…….”
“애가 불쌍한 건 다른 걸로 해결할 문제고, 최우선은 학생들 안전입니다. 주 선생님이 고집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그건 압니다.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요. 최우선이라고. 최우선. 지금은 다른 가치, 도덕이니 인정이니 따질 순서가 아닙니다.”
이야기를 듣던 해련이 한숨을 푹 쉬었다.
“저런 아이를 안전하게 만들어서 사회로 내보내는 것도 학교가 할 일이에요.”
“그러다 못 고치고 사고만 나면 어떡합니까?”
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역정을 냈다.
“그리고 그 애들, 지금 교실 간 그 애들. 부모님이 가만있을 것 같아요? 애들이 집에 가서 이야기하면 나올 소리가 뻔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위험한 아이랑 같은 학교 못 다니겠다, 그러겠지요. 그냥 달려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뭐라고 할 게 뻔한데, 학부모들 항의는 어떻게 감당하실 겁니까? 심지어 이번이 두 번째인데!”
해련은 대답하지 못했다.
숨을 고르던 혁이 이번에는 상호에게 눈총을 쏘았다.
“뭐 말이라도 해 보지 그래. 애를 퇴학시키는 거 말고 방법이 있나?”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요.”
상호는 잠든 다혜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일단 저하고 교장선생님이 며칠만 부담하죠. 그동안 주 선생님이 잘 생각해 보세요. 또 모르는 일이니까요. 치료할 방법이 있을지도…….”
“며칠이 얼마나인데?”
혁의 물음에 상호는 책상에 놓인 달력을 흘끗했다.
곧 기말평가. 모두가 바쁜 날이 온다.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
“나흘 안에 답을 내겠습니다.”
“이거 하나 알아둬.”
혁이 검지를 들어 상호를 가리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일 고생하게 되는 건 그 애들 담임이야. 학부모들 등쌀을 견디면서 하릴없이 자네 답만 기다려야 한다고. 잘 처신해. 동료들에게 피해 주지 말고. 주 선생님한테도 말하는 겁니다.”
“예.”
건흠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도. 강 선생 편들려는 모양인데, 그럴 거면 감시 똑바로 하세요. 절대로 저 학생 혼자 다니지 않게 해요.”
“그럴게요.”
“이만 갑니다.”
혁은 교장실 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자리에 남은 상호, 해련, 건흠, 그리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쪼그라든 세희는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해련이 입을 열었다.
“이사장 말이 맞아요. 첫째는 안전이니까……. 다혜 잘못이 아니더라도, 그 애들이 훨씬 큰 잘못을 했더라도 그것만은 변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든, 받아들일 준비를 하세요.”
“……예.”
상호와 건흠은 고개를 숙였다.
“강 선생은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뭐 좋은 생각 있어요?”
“일단…….”
상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 학부모들 등쌀 막을 생각하고, 다혜 치료할 방법도 찾아보고……, 그래야죠.”
“그럼 일단 우리 둘이 다혜를 맡고…….”
해련은 말하다 말고 소파를 돌아보았다. 상호도 그 시선을 따라갔다.
다혜가 소파에서 부스스 일어나고 있었다.
“아.”
모두의 시선이 다혜를 향했다. 다혜는 그 시선들을 마주하고 당황했다.
“……므앙?”
“다혜야.”
상호의 나직한 목소리에 다혜가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퍼뜩 고개를 돌려 세희를 보고는, 상호의 팔을 흔들며 세희의 상처 난 얼굴을 가리켰다.
“아으, 아으…….”
“알아. 이따가 치료할 거야. 그 애들이 뭔 짓 했는지 다 알고 있어.”
“……아으.”
그때 건흠이 다혜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다혜가 깜짝 놀라 건흠에게 손을 뻗었다.
“아, 아으…….”
“왜 말 안 했어……?”
건흠은 그 손을 감싸며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아으…….”
“왜 말을 못 하는 거야…….”
“아으으.”
다혜는 빙긋 웃으며 건흠의 손을 꼭 잡았다.
상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세희를 향해 눈짓했다. 세희는 그 눈빛의 뜻을 알아듣고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조용히 교장실을 나섰다.
복도를 걷는 와중에 세희가 돌연 그를 불렀다.
“선생님.”
상호는 검을 짚으며 대답했다.
“응.”
“세상이 왜 이럴까요.”
세희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살짝 앞서 걸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전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는데…….”
축 처진 어깨가 퍽 처량했다. 상호는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잘못 아냐.”
만약에 세희가 나서지 않았다면.
다혜가 폭주하는 일도 없었겠지만, 괴롭힘에 대해서도 몰랐을 것이다.
“잘했어.”
상호의 말에 세희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어요.”
발이 무겁다. 아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무거웠다.
둘은 자신들의 생각보다 천천히 걸어 교실로 향했다.
202. 염세
이야기는 방과 후에 이어졌다.
다혜는 자기가 어떤 상태였는지 몰랐고, 그냥 3학년들에게 맞다가 기절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건흠이 진상을 알려주기 전까지는 그저 웃기만 했다.
이제는 웃지 않았다.
“아으…….”
상호는 힘없이 중얼거리는 다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 앉은 해련도 하염없이 찻잔만 만지작거리고, 다혜의 옆에 앉은 건흠도 고개를 푹 떨궜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닌데…….”
“으, 아.”
다혜의 손이 건흠의 손등을 감쌌다.
그때 누군가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교장선생님, 김성아 학생이랑 이예림 학생 부모님 오셨습니다.”
그 말에 다혜가 살짝 당황한 눈으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아으?”
“다혜는 옆방에 들어가 있어.”
해련의 말에 다혜는 쭈뼛쭈뼛 일어나서 해련의 개인실로 들어갔다.
개인실의 문이 닫히자 해련이 말했다.
“들어오세요.”
곧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부부가 두 쌍, 교사가 한 명. 교사는 해련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해련과 건흠, 상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어요.”
해련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건흠도 교장인 해련을 따라 인사를 했지만, 상호는 그러지 않았다. 자식이 잘못했다고 부모도 죄지은 건 아니지만, 세희와 다혜의 상처가 떠올라서 배알이 뒤집힌 상태였다.
인사를 하지 않는 그를 학부모들이 바라보았지만, 당장이라도 씹어 먹어버릴 듯이 험악한 표정을 보고는 슬쩍 눈길을 피했다.
“예, 성아 아비입니다.”
“예림이 엄마입니다.”
다들 인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았다.
부부들 중 한 중년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희 애가 코피가 났다던데요.”
격앙된 목소리.
상황을 알긴 하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큰소리를 쳐서 우위에 서려는 걸까. 상호는 혈압이 솟는 것을 느끼며 천장으로 눈을 돌렸다.
대답은 건흠이 했다.
“따님과 저희 반 학생 사이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제요?”
“양쪽 따님분들께서 제 학생이 산 빵을 지속적으로 뺏었다고 합니다.”
“빵?”
고작 빵 따위로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됐느냐, 그런 말투였다.
“그래서 빵이 왜 코피가 됐습니까?”
“그것 때문에 제 학생하고…….”
건흠의 시선이 상호를 향했다.
“여기 강 선생 학생 둘이서, 따님분들하고 싸우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 애들한테 맞아서 코피가 난 거라고요?”
상호는 그 학부모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꼭 자기 딸이 맞은 게 훨씬 중요하다는 것 같아서. 빵을 뺏은 이야기는 쏙 빼 놓고.
이어지는 질문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학생들 부모님은 여기 안 옵니까?”
건흠이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두 아이 다.”
그 말에 학부모들이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러면, 그냥 애들끼리 한 거니까 넘어가지요.”
선심 쓰듯 말하지만, 실상은 상대 부모에게 책잡힐 일이 없어 다행이라 여기고 있을 터였다.
상호는 목구멍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빵 그거 얼마나 한다고 시끄럽게 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넉넉히 줄 테니까 그 학생들도 잘 타일러 주시죠.”
명문 사립학교라서 학부모들은 대부분 돈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꼭 돈으로 넘어가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잘못을 따져야 할 것 아니냐. 상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으니.
건흠이 착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실은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뭡니까?”
“제 학생이……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가끔 자기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덤벼들 때가 있습니다.”
건흠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너무 강해서…… 또 그런 일이 생기면, 따님들께서 다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교사들이 막아야죠.”
“방법은 찾고 있습니다만…….”
그 말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말하던 사내의 아내가 물었다.
“그 아이한테 문제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무공이 너무 강해서…… 교사들도 제대로 대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위험한 아이는 학교에서 내보내야지요.”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건흠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저희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 그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걸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학부모들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다혜를 폭주하지 않게 치료한다 하더라도 학교에 다니게 할 수가 없었다. 계속 꼬투리를 잡으며 못살게 굴 것이 뻔해서.
그렇기에 다혜의 치료보다 이쪽이 더 먼저였고, 상호가 가만히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누가 누구한테 비는 건지…….’
잘못을 한 건 3학년들인데, 비는 것은 건흠이니. 상호는 목을 막고 있던 무언가가 입까지 튀어나오려는 것을 느꼈다.
“부탁드립니다.”
건흠이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교사와 학부모라는 위치도 한몫했으리라.
자신을 예림의 어머니라고 소개했던 여인이 건흠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선생님 같으면 그러시겠어요? 그 제어가 안 된다는 아이하고 딸을 같은 학교에 두시겠어요?”
“저는 감히 예단하지 못하겠습니다.”
건흠은 완곡하게 뜻을 전했지만, 학부모들의 답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희는 납득 못하겠네요.”
그 말에 상호의 눈깔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운을 느꼈는지, 해련이 내공을 뻗어 상호의 어깨를 꾹 눌렀다.
학부모의 말이 이어졌다.
“안 그래도 무기를 들고 다니는 학교인데, 그런 위험한 아이까지 있는 건 용납 못합니다. 저희 애는 그 학생하고 같은 학교 못 다닙니다.”
“제발…….”
건흠이 무릎을 꿇었다.
그 광경을 본 상호의 머리뚜껑이 끝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이 X발!”
콰앙
소파 앞에 놓여있던 탁자가 하늘을 날았다.
해련은 급히 내공을 뻗어 탁자를 붙잡았지만, 상호는 붙잡을 수 없었다.
“애를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놓고! 상대가 어떻게 됐는지는 물어보지도 않고! 말 못하는 애를 그렇게 괴롭혀 놓고는, 적반하장으로 니가 나가라? 말이 된다고 생각……!”
상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벌떡 일어난 건흠이 입을 막아서.
건흠은 상호의 뒤통수를 누르며 허리를 60도로 굽혔다.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혈기가 넘쳐서…….”
“이거 놔요. X발 이게 말이 돼요? 우리 애는 얼굴에도 몸에도 멍이 천지투성인데……!”
“강 선생, 제발…….”
건흠이 간절히 눈을 마주쳤다.
“내가 자네한테도 무릎을 꿇어야겠어?”
상호는 그 말을 듣고 간신히 정신줄을 잡았다.
“……아니요.”
하지만 죽어도 죄송하다는 말은 못 하겠다. 상호는 이를 갈며 문가로 향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살벌한 눈빛을 쏘았다.
“처신 잘하십쇼. 안 그러면 나도 우리 애 때린 거 못 봐줍니다.”
“아니…….”
학부모들은 잔뜩 쫄았으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선생님이 그 아이 아버지는 아니잖아요? 선생이 우리한테 그래도 돼요?”
“내 딸이요. 뭐 어쩌라고.”
상호는 그렇게 쏘아붙이고 방을 나갔다.
화딱지가 나 가지고 이마에 열이 꽉 들어찼다. 바람을 좀 쐬어야 할 듯했다.
그는 거칠게 검을 짚으며 옥상으로 향했다.
* * *
한참 바람을 쐬고 있는데, 옥상 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었군.”
상호는 돌아보지 않았다. 검을 짚은 채로 먼 산을 쳐다볼 뿐.
뒤에서 라이터 켜는 소리가 들렸다.
“학부모한테 성질을 부렸다며?”
“흡연하셨습니까?”
“말 돌리지 말고.”
혁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상호의 옆으로 다가섰다.
상호는 계속 말을 돌렸다.
“냄새가 안 났는데.”
“올해 처음 피는 거니까. 짜증이 나서 안 필 수가 없더라고.”
“짜증날 일이 뭐가 있습니까? 학교에 이득이 되는 쪽만 따라가면 되는데.”
“나한테 불만이 많구만.”
혁이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나도 알아. 다혜가 피해자인 거. 그래도 모두를 위해서 어쩔 수 없지.”
모두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 상호에게는 참으로 열불 터지는 말이었다.
그 논리가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갔고.
이제는 남은 인생마저 좀먹고 있었다.
“저는 아이들이 융통성보다는 정의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정의도 생각하기 나름이지. 결과가 중요한지, 과정이 중요한지.”
혁은 담뱃재를 한 번 털었다.
“일단은 다혜한테 어떤 조치를 취할지 들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어.”
“학부모들이요?”
“당연하지.”
상호는 그제서야 혁을 흘끗했다.
“제가 방법을 못 찾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연히 퇴학이지.”
“다혜는 잘못이 없는데도요?”
“방아쇠를 안 당겨도 격발하는 총을 어떻게 들고 다니나?”
“방아쇠가 어딨는지 못 찾은 거죠.”
“어쨌든 못 찾으면 못 들고 다니는 거지.”
혁이 어깨를 들썩였다.
“나도 아쉬워. 전국평가 1등이 확실한 아이를 퇴학시켜야 하는 게.”
“꿇은 애가 1등하면 귀찮다면서요.”
“다른 학교가 1등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꼬장 놓는 용도였나. 상호는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어쨌든 결국은 돈 내주는 학부모들이 중요하다 이거군요.”
그 말에 혁의 눈 밑이 꿈틀했다.
“그러고 보니 하 사장이랑 동갑이던가?”
“예.”
“그 나이에 칼만 잡고 살았으니 모를 만도 하군.”
혁은 담배를 튕겨서 빈 페인트 통에 버렸다.
“재단은 내 재산이 아냐. 학교 통장 키워봐야 나한테 떨어지는 거 하나 없어.”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몰랐던 이야기였다.
“……그래요?”
“뭐 이사장실 번드르르하게 꾸미는 정도는 쓸 수 있지. 봉급도 있고. 하지만 내가 꺼내 쓰는 건 불가능해. 내 돈이 아니라고.”
혁이 몸을 돌려 상호를 똑바로 마주했다.
“그 돈 다 건물 짓고, 칼 사고 책 사는 데 쓰는 거야. 자네가 오늘 부순 본관 외벽도 그 돈으로 고치는 거지. 아주 벽돌에서 헤엄을 쳤더구만.”
“……크흠.”
상호는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몰랐습니다.”
“날 무슨 장사꾼으로 본 모양인데…… 장사는 장사지. 하지만 내 장사는 아니야. 어디까지나 학교 장사지.”
혁은 뒷짐을 지고 다리를 삐딱하게 짚었다.
“뭐 어쨌든…… 학교 학생을 위해서든, 학교 통장을 위해서든, 위험한 학생은 쳐내야 하고, 학부모 눈치는 볼 수밖에 없단 말이지. 그런 위험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으면 자네가 자네 돈으로 학교를 세우던가 해.”
상호는 먼 산을 쳐다보았다.
“다혜도 돈 냈잖아요.”
“주 선생보다는 학부모들이 훨씬 무섭거든.”
혁이 문을 향해 돌아섰다.
“뭐 정 방법을 못 찾는다면…… 학교가 다혜를 품는 리스크의 반대급부를 제시하든가. 물론 교장선생님이나 자네가 다혜 곁에 붙어 있는 조건으로.”
“네?”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돈을 내라고요?”
“아니, X급인 거 까고 학교 홍보대사 하라고.”
무슨 말인가 했더니. 상호는 흙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기는 죽어도 싫지만.
“……그런 방법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혜를 위해서는 할 수도 있었다. 최후의 방법이 되겠지만.
혁은 가려는가 싶더니 다시금 돌아서서 물었다.
“근데 대체 왜 숨기는 거야?”
상호는 혁에게 등을 돌리며 짤막하게 답했다.
“개같아서.”
세상이 싫어서.
“흥…….”
혁은 콧방귀인지 코웃음인지 애매한 소리를 내고는, 옥상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상호는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돈 많은 사람.’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통화가 연결되었다.
[뭐야, 왜. 또 뭐가 필요한데.]
그 말에 상호의 가슴이 바늘로 찌르듯 쿡쿡 쑤셨다. 정말로 필요할 때만 전화하는 것 같아서.
“아니, 그게…….”
[뭔데. 시원하게 말을 해 봐 새끼야.]
“잘 지냈어?”
[꼭 돈 빌리려는 인간처럼 묻는다, 너.]
못 본 새에 촉이 많이 좋아졌다. 상호의 손에 진땀이 축축하게 배어나왔다.
“누나 돈 많지?”
[왜 또 누나야? 너 설마 빚졌냐? 도박? 보증?]
“그런 거 아냐, 그냥…… 그냥 돈 필요하지 않나, 해서 전화했어.”
[웃기네. 니가 뭔 내 돈 걱정을 해. 참나……. 내가 니 학교도 살 수 있어, 빠가야.]
상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진짜?”
[뭐 강남 빌딩보다 비싸겠냐? 얼만데?]
“몰라. 근데 빌딩보다 싸면 사줄 수 있어?”
[싸면 사 주지.]
“진짜?”
[싸면. 싸. 면. 사 준다고, 토끼새끼야.]
“미친년…….”
상호는 혀를 차고 평소 말투로 돌아왔다.
“됐어 X바. 진지하게 물어본 건 아니었어.”
[많이 절박하던데.]
“아니라고. 어쨌든…… 부탁 하나만 좀 하자.”
[부탁?]
효은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뭔데?]
“너 방송 같은 것도 잘 했었잖아.”
[니 관심 끌려고 그랬던 거지…… 이제 그런 거 안 해. 난 조용하고 금욕적인 수녀원 생활이 좋다고.]
“지X을 싼다, 정말……. 그래서 아직도 담배를 못 끊었어?”
[으, 응? 뭐야, 너 지금 보고 있어?]
“안 봐도 뻔하지. 어쨌든 얼굴 파는 데 거부감 없잖아.”
[뭐길래 그래? 시원하게 말을 해 봐.]
상호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우리 학교 홍보대사 좀 해 줘.”
203. B급따리
“방법 찾는 건 잘 돼가요?”
해련이 차를 홀짝이며 물었다.
교장실 가운데 탁자에는 빵과 과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산더미의 한쪽에서는 다혜가 우울한 표정으로 빵을 깨작거리는 중이었다.
상호는 다혜 옆에 앉아 고개를 저었다.
“이제 찾으러 가야죠. 다혜 데리고…….”
“고생이네. 수업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 힘든 건 상관없는데…… 애들 못 챙겨주는 게 문제죠. 한창 평가 준비해야 하는데……. 다른 일도 많고.”
“므아…….”
그 말에 다혜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상호는 당황하며 허둥지둥 손을 내저었다.
“아니, 너 때문이 아니라…….”
“아으…….”
그 모습을 본 해련이 쓰게 웃었다.
“누구한테 갈 건데요?”
“학회에 있는 누나요.”
“내가 아는 사람인가?”
“그렇겠죠.”
“그럼 내가 데려가서 만나 볼게.”
“……교장선생님이요?”
상호는 난색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안 바쁘세요?”
“바빠도 평가 준비하는 선생만큼 바쁠까. 걱정 말고 나한테 맡겨요.”
해련이 눈을 찡긋했다.
“그래도 아까 보니까 이사장 표정이 나쁘지 않던데. 이런 일이 생긴 것 치고는 말이야.”
“그래요?”
“응. 강 선생 이야기를 해도 딱히 기분 나빠하질 않더라고. 평소 같았으면 그러게 내가 뭐랬냐, 낙하산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을 텐데……, 뭐 이제는 X급인 걸 안다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여서. 대체 어떻게 구워삶은 거예요?”
“그게…….”
상호는 해련의 시선을 피했다. 애인 이름값을 팔았다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어서.
“곧 알게 되실 거예요, 교장선생님도…….”
“그래? 그럼 됐고.”
해련은 빵을 몇 개 집고 다혜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자, 다혜야.”
“으아…….”
다혜가 먹던 빵을 허겁지겁 입에 마저 욱여넣었다. 상호는 그런 다혜의 등을 토닥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잘 갔다 와.”
“움움.”
다혜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겠습니다. 그 누나한테 연락 해 놓을게요.”
“응~. 수고해요~.”
해련이 손을 흔들었다.
상호는 교장실을 나와 현관으로 향했다.
‘일단은 애들 나머지 수업부터 하고…… 걔는 저녁에 데려와야겠다.’
검과 발이 바쁘게 땅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