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우와!”
반으로 들어선 미래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하도 커서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이서가 모범생이 됐어!”
“……시끄러.”
이서가 입술을 자근자근 씹었다. 앞머리 한쪽에 있던 브릿지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자 손으로 두 뼘이 될까 말까하던 치마도, 앉으면 무릎에 닿을 만큼 늘어난 채였다.
뒤따라 들어온 단비가 꼬리를 세우며 기겁을 했다.
“멍! 멍! 멍! 아르르르……. 너 누구야!”
“꺼져, 된장 바르기 전에.”
“멍, 너무해, 장난인데…….”
단비가 꼬리와 귀를 축 늘어뜨렸지만, 이서는 심기가 불편한지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다.
이서의 뒷줄에서 이츠키가 물었다.
“그래서 왜 갑자기 범생이가 됐습니까?”
“몰라.”
“니가 모르면 누가 압니까?”
“언니는 반말이나 배워.”
그러자 지윤이 피식 웃었다.
“니 그거 아덜헌티 들켜도 되겄나?”
그 말에 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마침 교실 문으로 지윤이 말한 아이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세희, 은율, 나빛.
나빛이 이서를 보고 활짝 웃었다.
“이서 염색 풀었네!”
“으응.”
“잘했어~. 검은 머리가 예쁘다니까~.”
“그러는 언니는 완전 탈색이잖아…….”
“나는 체질이야~. 봐봐~.”
나빛이 허리를 꾸벅 숙여 정수리를 내보였다.
그 옆에 선 은율이 이서의 치마를 보며 빙긋 웃었다.
“치마도 늘렸네.”
“……어.”
“선생님이 보면 좋아하시겠다.”
“…….”
이서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한쪽은 선도부원. 한쪽은 반장. 셋이서 방과 후 수업을 받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사실 웬만하면 무시하려고 했는데, 첫날에 염색 풀고 치마 줄이라는 말을 흘려 넘겼다가, 둘째 날부터 점차 공격의 강도가 심해지는 것을 느끼고, 그래도 또 며칠 뻗대다가 결국은 구타에 못 이겨 이렇게 순종하게 되었다.
덕분에 겉모습은 완전히 범생이 꼴이었다. 은율의 말에 세희가 맞장구를 쳤다.
“이서 너는 다리 길어서 치마 안 줄여도 돼. 그런 건 다리 짧은 애들이나…….”
그때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야! 천세희. 너 내 뒷담깠지!”
“그런 건 어떻게 귀신같이 아나 몰라.”
세희는 어깨를 으쓱이고 자리로 가 앉았다.
그러자 태화가 세희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다리를 위로 쫙 뻗어 박력 있게 책상에 발을 올렸다.
“뭐? 다리 짧은 애들이나 치마를 줄인다고? 야, 이 새끈한 다리가 안 보여?”
“안 보여.”
“안 보이지? 너 같은 애들 더 잘 보라고 줄이는 거야!”
“그걸 왜 나한테 보여줘 멍청아. 팬티나 가려.”
태화는 콧방귀를 뀌며 다리를 내렸다.
“무다리.”
“자기소개.”
“……니들 몇 살이고?”
둘의 유치한 말싸움에 지윤이 헛웃음을 쳤다.
그때 복도에서 검 짚는 소리가 들렸다.
“야야, 쌤 온다.”
“앉아, 앉아.”
곧 앞문이 열리고 상호가 걸어 들어왔다.
“좋은 아침. ……어?”
상호의 눈이 연신 끔뻑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둘러보는 그를 향해 나빛이 물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이서 어디 갔어?”
상호는 앞줄에 앉은 여학생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머리가 길고 옷차림이 평범한 무색무취의 여학생.
“넌 누구니? 어디 반에서 왔어?”
그 말에 이서의 얼굴이 대번에 새빨개졌다.
“……뭐, 요?”
“응?”
상호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알아차렸다.
“……설마 이서야?”
“풉!”
아이들이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웃음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지는 못하고, 폭소를 터트리며 책상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까하하하! 쌤! 진짜야? 꺄하하하핫!”
“어떻게 염색만 풀어도 못 알아봐요? 푸흐흐흐…….”
“아~, 배아파 죽겄네, 끅끅끅…….”
“미안해, 못 알아봤어……. 선생님이 눈이 나빠서…….”
상호는 얼굴을 가렸다. 눈을 가리려면 한쪽만 가려도 되지만, 구태여 양쪽을 가리는 이유는 얼굴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기 때문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아니,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빨리 수업하자, 수업…….”
“선생님! 저는 알아보시겠어요?”
“야, 초란아. 안경 벗어바라. 쌤예, 야는 눈지 알아보심니꺼? 푸하하하!”
“수업하자…….”
상호는 눈을 질끈 감고 교탁에 머리를 박았다.
* * *
“선생님 눈 진짜 나쁜 거 아냐?”
단비가 과자를 와작거리며 말했다.
“원래 한쪽 눈이 나쁘면 다른 쪽 눈도 나빠진대.”
“아예 없어도 그래?”
“그건 몰라, 멍.”
세희는 단비와 하솔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쓴 상호를.
얼굴이 조각 같으니 뿔테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론 서글서글한 인상을 살리려면 동그란 금속테가 좋을 것이고.
안대를 썼으니 단안경도 괜찮을 것 같다. 세희는 매점 창가에 기댄 채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다음에 선물해 드릴까. 알 없는 거라도…….’
그때 매점으로 다혜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어떻게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을까. 그것도 식전 식후 둘 다. 세희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다혜를 쳐다보았다.
다혜는 세희를 보고는 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으…….”
세희는 답하지 않았다.
곧 그 인간들이 올 터였다. 다혜가 빵만 사러 오면 귀신같이 쫓아오는 인간들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제는 익숙한 얼굴들이 매점으로 들어섰다.
“야, 저깄다. 벙어리. 낄낄…….”
“또 빵 처먹네. 저년 때문에 자꾸 빵이 매진되는 거 아냐.”
3학년 두 명이 키득거렸다.
빵이 다혜 때문에 매진될 리는 없다. 다혜는 빵을 꼭 한 종류씩만 사니까. 그걸 아는 세희는 혈압이 솟는 것을 느끼며 단비와 하솔에게 말했다.
“얘들아. 먼저 가.”
“응? 언니는?”
“난 뭣 좀 보고 갈게.”
“응.”
단비는 별 의심 없이 꼬리를 살랑이며 하솔의 손을 잡고 매점을 나갔다.
세희는 팔에 찬 완장을 흘끗했다.
선도.
‘……선도는 아니지.’
선도가 아니라 청소다.
3학년들은 다혜를 향해 다가갔고, 세희는 그런 3학년들을 향해 다가갔다. 셋 모두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3학년들이 다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잠깐.”
세희의 말에 셋 모두 뒤를 돌아보았다.
빵에 정신이 팔려 있던 다혜는 그제서야 3학년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움찔했다.
“아으…….”
“뭐야.”
3학년이 표독스러운 눈으로 세희를 노려보았다.
“왜 부르는데?”
왜 부르기는. 세희는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 언니 그만 괴롭혀요.”
“괴롭혀? 우리가? 언제, 어떻게?”
“말은 못 해도 기억은 할 줄 알아요.”
세희의 눈빛은 한겨울 서리처럼 차가웠다.
“말 못한다고 괴롭히지 마요. 병신만도 못한 짓이니까.”
“하.”
한 명이 코웃음을 쳤다.
“참나, 꼰대질은……. 그러려고 완장 찼니? 응? 친구야.”
말만 친구야지 말투는 씨X년아였다.
세상에는 초등학생도 아는 것을 모르는 고등학생이 있다. 세희는 이마에 혈관이 불거지는 것을 느꼈다.
“언니들도 언니들이 잘못한 거 알잖아요? 그러니까 알아서 선도질한다느니, 일러 보라느니 그러는 거고.”
“우리가 뭔 잘못을 했는데? 증거가 있어?”
“그렇게 숨기는 거 자체가 언니들 양심에 찔렸다는 증거예요. 두 번 안 말해요. 저 언니 옆에 다시는 다가가지 마요.”
“뭐어?”
3학년은 눈살을 우스꽝스럽게 찌푸리며 귓바퀴에 손을 붙였다.
“안 들리는데? 다시 좀 말해 줄래? 벙어리 여친아?”
세희의 마음속에서 실이 하나 끊어졌다.
“……하.”
세희는 완장을 잡았다.
새하얗게 표백되는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담임의 전우들이 들려준 담임의 소싯적 이야기들.
자식이 부모를 닮는다면.
제자도 스승을 닮게 되리라.
“니X미.”
선도부 완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200. 폭주
“……뭐?”
3학년들이 헛웃음을 쳤다.
“다시 말해 볼래?”
“니애X라고.”
세희는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털썩
옆을 돌아보자 다혜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토끼눈을 뜨고.
“……아으.”
떨어뜨린 빵이 발치에 굴러다녔다.
세희는 다혜를 무시하고 3학년들을 노려보았다. 3학년들은 열이 뻗치는지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 올리고 있었다.
“뭐하는 새끼야? 너.”
“뭐하는 새끼든 간에 말 못 하는 사람 괴롭히는 새끼들보다는 낫겠지.”
“싸우자는 거야, X발아?”
드디어 말이 통한다. 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 말에 주먹이 날아왔다.
다행이다. 먼저 때리기에는 담임 눈치가 보였는데. 세희는 마음 놓고 손에 내공을 실었다.
턱
“응?”
3학년이 얼빠진 목소리를 흘렸다. 휘두른 주먹은 세희의 손날에 손목을 맞고 옆으로 걷어내진 채였다.
당황한 것도 잠시뿐.
“이런 씨…….”
곧 무릎차기가 세희의 아랫배로 날아왔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뻔한 공격은 대인무술 운운할 필요도 없이 예측이 가능했다.
세희는 가볍게 발을 들어 3학년의 무릎을 밟았다.
퍽
그때 다른 3학년의 발차기가 머리 옆으로 날아들었다. 먼저 공격한 3학년보다 키가 조금 작았다.
‘……쳇!’
한쪽 다리가 들린 상태. 상체로 받아내면 무게중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세희는 팔꿈치로 발차기를 막았다.
“악!”
“큭…….”
3학년은 정강이를 부여잡았고, 세희는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았다.
자세를 가다듬을 시간은 없다. 바로 다른 3학년을 상대해야 할 차례.
세희의 주먹이 키가 큰 3학년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그림자가 흐릿하게 지나갔다.
‘어?’
너무 빠르다.
세희의 눈동자가 그곳을 향했지만, 그 무언가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쫓아갈 수가 없다.
탁
무언가가 손목을 잡았다. 세희는 깜짝 놀라 앞을 돌아보았다.
다혜가 자신과 3학년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세희의 손목은 수갑 찬 손으로, 3학년의 손목은 겨드랑이로.
“아으.”
다혜가 매섭게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 눈빛에 3학년들, 그리고 세희까지도 움찔하며 물러났다.
하지만 3학년들은 다혜의 실력을 몰랐고, 세희도 눈깔이 뒤집힌 상태였다. 셋은 콧방귀를 뀌고 다혜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다혜는 단 1mm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으……. 으아으.”
다혜는 세희를 바라보며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를 내었다. 세희의 주먹을 두 손으로 감싸면서.
세희는 그 웅얼거림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고 치지 말라고, 나 때문에 이러지 말라고.
그렇지만 세희는 다혜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었다.
“비켜요.”
“아으.”
“비키라고!”
“아으으.”
기싸움을 하는 다혜의 뒤로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손을 놓지 않고서는 피하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혜는 몸을 살짝 틀어서 턱과 목으로 그 발을 잡았다.
“윽……!”
다리를 잡힌 3학년이 비틀거렸다.
한 명에게 세 명이 제압당한 상황. 손목을 잡힌 3학년이 다른 쪽 주먹을 날렸지만, 그마저도 다혜가 뻗은 다리에 막혀 버렸다.
3학년은 눈에 쌍심지를 켰다.
“이년이……. 안 놔?!”
“으아.”
세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오라니까!”
“아으.”
다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가볍게 돌렸다.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 셋 모두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윽!”
“큭…….”
세희는 바닥을 구르며 일어나 3학년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또다시 다혜가 그 앞을 막았다.
세희의 이마에 혈관이 솟았다.
“비켜!”
세희는 다혜의 얼굴을 옆으로 거칠게 밀어냈다.
“……아.”
다혜의 눈에 당황이 깃들었다.
세희는 엉덩방아를 찧은 다혜를 뛰어넘어서, 일어서고 있는 3학년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뻑
둔탁한 충격이 뼈를 울렸다.
제대로 들어갔다, 그렇게 확신한 순간 뒤통수에 똑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퍼억
“윽…….”
땅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세희는 쓰러진 채로 3학년들을 돌아보았다. 방금 얼굴을 맞은 3학년이 코피가 터진 코를 부여잡고 있고, 다른 3학년이 발차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배에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다.
“쿠욱……!”
세희는 몸을 구부리며 숨을 헐떡였다.
배를 걷어찬 3학년은 이번엔 세희의 얼굴을 향해 발을 들어 올렸다.
그때 세희의 위로 다혜가 달려들었다.
퍽
“아윽!”
다혜는 등을 밟히면서도 세희를 감쌌다.
“넌 뭐야, 꺼져.”
뒤따라온 3학년이 다혜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머리를 밟히고, 발끝으로 옆구리를 차여도, 다혜는 세희를 놓지 않았다.
“아으, 윽…….”
세희는 멍하니 그 품을 바라보았다.
이 멍청한 사람, 답답한 인간. 훨씬 강하면서 왜 맞고만 사는 건지.
아니, 왜 자신을 감싸는지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야, 야, 꺼지라고. 이젠 귀도 멀었냐?”
3학년이 다혜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이미 흠씬 두들겨 맞은 다혜는 머리가 뒤로 젖혀진 채 질질 끌려갔다.
“끄으…….”
“니는 거기 찌그러져 있어.”
3학년들은 다혜를 치워놓고 또 세희를 향해 발을 들어 올렸다.
“이 년부터 죽여줄라니까.”
세희는 팔을 들어 그 발을 막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른 3학년의 발차기는 막지 못했다.
“커흑.”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년은 뭘 믿고 깝치는 거지?”
얼굴을 맞은 3학년이 손등으로 코피를 쓱 닦았다.
“야. 야. 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거야? 대답해봐, 대답해보라고.”
뻐억
“카흐……윽.”
약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해도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선도부라고 뭐라도 된 줄 알았어? 어이가 없네.”
다시금 발이 날아왔다.
세희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애초에 움직일 힘이 없었다.
신발의 무늬가 눈앞을 가득 채웠다.
콰득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
하지만 세희에게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3학년들은 발을 멈추고 소리의 근원지를 돌아보았다. 세희도 그곳으로 눈을 돌렸다.
모두가 돌처럼 굳어 버렸다.
우드득……
다혜가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그 머리 양옆에 난 뿔이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리저리 굽이지다가 앞쪽으로 뾰족하게 끝나는, 거대하고 검은 뿔. 지금도 뼈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점점 솟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노랗게 변한 눈동자.
세희는 그 노란 눈 안쪽의 찢어진 동공을 보고 아리를 떠올렸다.
“……언니?”
“크르…….”
짐승처럼 으르릉거리는 입에서 불꽃이 팔락였다.
다혜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로 세희와 3학년들을 바라보았다.
“크으……그륵…….”
그러고는 자신의 손목에 차인 수갑을 내려다보더니.
“크으…….”
팔에 힘을 주었다.
우득……
팔과 목에 힘줄이 돋아날수록, 수갑을 연결한 사슬이 조금씩 벌어졌다.
수갑에 걸린 마법과, 다혜의 내공이 거칠게 뒤얽히고.
곧 수갑이 끊어지며 마나의 폭발이 일어났다.
파앙
“윽……!”
“헉…….”
세희와 3학년들은 그 후폭풍에 숨을 들이켰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마나의 양.
수갑에서 터져 나온 것도, 다혜에게서 느껴지는 것도.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위력이었다.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세희의 뺨에 식은땀이 흘렀다.
‘대체……. 저건…….’
“크륵.”
다혜는 입마개를 가볍게 끊어버리고 웃었다.
기분 탓일까, 이빨이 짐승의 것처럼 뾰족해 보이는 것은. 세희는 자신과 3학년들을 향해 다가오는 다혜를 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도망쳐요.”
“어?”
세희의 말에 3학년들이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아직도 돌이 된 것처럼 움직이질 못했다.
세희는 뒷걸음질을 치며 버럭 소리쳤다.
“도망치라고!”
그와 동시에 다혜가 셋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