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4화 (214/501)

* * *

“그래서 먼 일이가?”

 지윤이 창가에 기대어 빵을 우물거렸다.

“먼디 글케 뿌~ 하게 있노. 함 말해바라. 선도부 어쩌구 한 기 보믄 생리 때문은 아일 꺼 아이가.”

“그냥.”

 세희는 빨대로 커피우유를 마시고 대답했다.

“아는 언니 때문에 그래.”

“언니?”

“바보같이 답답해서. 보고 있으면 속 터지거든.”

 지윤은 눈을 끔뻑이다가 빵을 한입 더 베어 물었다.

“얼마나 답답하길래 그러노? 먼 일인데.”

“그냥…….”

 생각을 숨기려 드니 그냥이라는 말만 자꾸 튀어나온다. 세희는 한숨을 쉬고 대충 얼버무렸다.

“아는 언니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 같아서.”

“눈데?”

“그건 비밀.”

“또 비밀이고.”

 지윤은 입맛을 다시고 되물었다.

“니 선도부 아이가. 쌤들한테 말하면 되지 않나? 쌤이나, 교장쌤이나.”

“글쎄…….”

 세희는 그 또한 얼버무렸다.

실은 스스로도 자신의 생각을 잘 알지 못해서.

‘……왜 말을 못 하고 있는 건지.’

 일름보라고 놀림 받을 것 같아서는 아니었다.

선생님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

그냥 가서 딱 한 마디만 하면 해결될 일인데.

‘선생님이 알면…… 분명히 엄청 화내시겠지.’

 첫 제자의 일이니까. 약자를 괴롭히는 걸 싫어하니까.

틀림없이, 확실하게 처리할 것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지만 그 정도로는.

‘그 정도로는……?’

 세희는 생각을 되뇌다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아주 개박살을 내버리고 싶었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힘으로.

다혜가 당하는 것을 볼 때마다 타들어간 마음이, 이제는 새까맣게 그슬려 있었다.

세희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마, 세희야.”

“……아.”

 세희는 지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미안, 무슨 말 하고 있었지?”

“니는 선도부믄서 와 쌤들헌티 말 안 하냐고……. 됐다. 그만 물어볼란다. 어지간히 정신이 읎는 모양이구마.”

“응…….”

 커피우유를 다 비우자 빨대가 쪼로록 울렸다. 세희는 우유갑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지윤을 돌아보았다.

“가자.”

“으이.”

 둘은 교실을 향해 걸었다.

* * *

“자, 한 장씩 받아.”

 상호의 손에서 종이들이 날아갔다. 각자의 책상에 한 장씩.

아이들은 그 종이를 보고 눈을 끔뻑였다.

“학교폭력…… 실태조사?”

“갑자기 왜 해요?”

“교장선생님이 하래. 학기말이니까 한번 할 때도 됐지.”

 상호는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태화가 펜을 끼적이며 중얼거렸다.

“교사가 학생한테 폭언, 폭행…….”

“야.”

“부를 때도 임마 점마, 수시로 몸을 요구…….”

“날조하지 마.”

 상호의 검지에서 날아간 지탄이 태화의 이마를 때렸다.

“에쿵! 이렇게!”

“똑바로 써. 경찰이 조사할 수도 있으니까. 다 쓰고 나면 나한테 가져와.”

 그 말에 가은이 또 표독한 눈빛으로 상호를 노려보았다. 상호는 선뜩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진땀을 흘렸다.

‘너는 이사장한테 이미 말했잖아…….’

“만약에 내가 보는 게 싫으면…… 그 종이에 적지 말고 교장선생님 방 앞 쪽지함에 담으면 돼. 익명으로…….”

 그제서야 가은은 눈길을 돌려 설문지의 내용을 읽었다.

아이들이 볼펜을 들어 설문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적는 아이는 없었다. 다들 ‘있다’와 ‘없다’ 중 ‘없다’에만 체크를 할 뿐, ‘있다면 그 내용을 적어 주세요’ 칸에는 글씨 하나 적히지 않았다.

 고민하는 사람은 한 명.

세희는 가만히 설문지를 내려다보았다.

 -본교 학생이 폭행당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나요? ①있다 ②없다 없다. 2번에 체크.

다음은.

 -본교 학생이 금품을 갈취당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나요? ①있다 ②없다 그 항목에서부터는 체크를 하지 않고, 계속 읽어 내려갔다.

 -갈취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①후배 ②동급생 ③선배 ④교직원 ⑤다른 학교 학생 ⑥그 외-목격한 장소는 어디인가요? ①본·별관 ②기숙사 ③등·하굣길 ④그 외-일시와 상황을 자세히 적어 주세요.

 세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다 쓰면 상호와 해련이 알게 될 것이다. 그건 싫었다. 자신의 손으로 그 인간들을 혼쭐내고 싶었다.

한참 후에야 세희의 볼펜이 체크를 했다. 목격한 적이 있느냐 없느냐를 묻는 설문에.

체크가 된 곳은 2번. 목격한 적 없다.

‘됐어.’

 이거면 됐다. 세희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설문을 이어나갔다.

곧 모두가 설문을 마치고 책상에 엎드리거나 딴 짓을 했다. 교탁에 기대어 있던 상호가 아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 됐지? 걷어갈게.”

 설문지들이 상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상호는 그렇게 모은 설문지 뭉치를 교탁에 툭툭 두들겨 정리하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끼리는 때리거나 그런 거 없지?”

“네.”

“믿는다.”

 상호의 눈이 번득였다.

“만약 이상한 짓 하다가 걸리면…… 절대 안 봐줘. 그게 누가 됐든 간에…… 절대로 용서 안 할 거야. 알았어?”

“네.”

“그래.”

 상호는 빙긋 웃었다.

“수업하자, 이제.”

 * * *

[으앗!]

 쇳덩어리 거인에게서 당황한 소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비야! 괜찮아?!]

“끼잉…….”

 단비는 둥글게 몸을 말아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배가 아픈 것처럼.

힘없이 늘어진 꼬리가 이따금씩 바닥을 쳤다.

“너무 쎄……. 꾸웅…….”

[미안, 미안…….]

미래는 슈트에서 내려와 단비에게 달려갔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스탠드를 향해 말했다.

“나빛아. 가서 봐줘.”

“네.”

 나빛도 벌떡 일어나 단비를 향해 달려갔다.

강철 주먹을 배에 정통으로 맞긴 했지만, 보호 마법이 있으니 다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래도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상호의 시선이 미래의 배틀슈트를 향했다.

‘저건 애들한텐 너무 세네.’

 1학년 중에는 배틀슈트를 이긴 아이가 없었다. 그나마 아리가 조금 선전을 했지만, 그건 순전히 순간이동 때문이고 배틀슈트에는 상처 하나 못 입혔다.

상호는 고민하다가 미래를 향해 말했다.

“미래야, 대련 한 번 더 할 수 있지?”

“네? 아, 네.”

“그럼 나빛이랑 하자.”

“네?”

 미래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나빛이…… 언니랑요?”

“2학년이랑 싸워보고 싶어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미래는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한번 해 보죠.”

“그래. 목걸이 있지?”

“네.”

“바로 시작해.”

 그 말에 미래가 슈트에 올랐다.

투박하게 생긴 강철 로봇은 곧 나빛의 앞으로 다가왔다. 몸놀림이 기계치고는 상당히 유연했다.

나빛이 기계를 올려다보며 입을 헤 벌렸다.

“우와…….”

[멋지지?]

“응? 어…… 그런 것 같아. 엄청 쎄 보이구…….”

[그치?!]

로봇이 허리에 손을 올리며 자신만만해했다.

[나랑 싸장님이 만든 걸작이라구. 프로토타입인데도 이 정도야.]

“싸장님? 미래 회사 다녀?”

[응. 대충 그렇지.]

“우와~.”

“싸우랬더니 노가리를 까고 있네.”

 스탠드에 앉은 태화가 핀잔을 날렸다.

“야, 싸워, 싸워. 얼마나 잘 싸우는지 한번 보자.”

 그 말에 로봇이 몸을 웅크렸다.

로봇의 등에서 부품이 솟아나더니 새빨간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간다!]

“우와~.”

 나빛이 방긋 웃으며 성창을 냅다 쏘았다.

로봇은 가볍게 성창을 쳐내고 나빛을 향해 달려들었다. 몸이 커서 느려 보였지만 실상은 놀랍도록 빨랐다.

 그 속도에 나빛도 당황하며 급히 황금빛 사슬을 만들었다.

“히익……!”

 사슬이 로봇의 두 다리를 묶었다.

 그러자 로봇은 아예 공중에 떠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미래의 기합과 동시에 로봇이 주먹을 뒤로 당겼다.

[이얍!]

 파앙

로봇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어?]

“여기야~.”

 로봇이 고개를 들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날개를 펼친 천사.

천사의 손에는 창이 하나 들려 있었다. 평소의 것과는 다르게, 황금빛 불꽃이 타오르고 주홍색 번개가 흘렀다.

가만히 지켜보던 상호는 그 창을 알아보고 급히 내공을 뻗었다.

‘저건…….’

 나빛이 창을 들고 로봇에게 돌격했다.

그대로 두면 로봇의 가슴을 찌를 것이다. 하지만 저 성창의 강도를 상호는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마나가 아니라서.

 그래서 허공섭물로 나빛과 로봇의 위치를 조정했다.

콰악

성창이 로봇의 어깨를 꿰뚫었다.

[끄아……!]

 미래가 기겁하며 허둥지둥 어깨를 매만졌다. 하지만 이미 사람 주먹만한 구멍이 나 있었다.

꿰뚫린 쪽의 팔이 축 늘어졌다.

[아악! 내 걸작이……!]

“와우, 방금 좀 삼류 악당 같았어.”

 태화가 깐죽거렸다.

 하지만 미래는 전투를 포기하지 않았다. 로봇의 남은 팔이 나빛을 향해 손아귀를 뻗었다.

 그러자 나빛이 빙긋 웃으며 가볍게 창을 내질렀다.

콰앙

로봇의 팔이 성대하게 터져나갔다. 마치 창이 아니라 대포를 맞은 듯이.

미래는 두 팔이 박살나고 나서야 전의를 상실했다.

[으으…….]

 축 늘어진 로봇의 주변으로 금속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졌어…….]

“이겼다~. 헤헤.”

“1학년 이겨 놓고 자랑이냐?”

 태화의 말에 나빛이 시무룩해졌다.

상호는 운동장에 흩어진 로봇의 파편을 대충 한쪽으로 그러모으며 말했다.

“나빛아, 그 창으로 선생님 공격해 봐.”

“선생님요?”

“응.”

 나빛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서 망설임 없이 상호에게 돌진했다.

콰아악

기세 좋게 바람을 찢으며 날아든 창은, 상호가 대충 들어 올린 검지에 가볍게 가로막혔다.

상호는 효은의 성창을 떠올렸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닌가.’

 그래도 성창의 강도는 알기가 힘드니, 앞으로는 조금 조심해야 할 듯했다.

“됐어. 이제 쉬어.”

“넵.”

 나빛이 스탠드로 걸어갔다.

운동장에 쓰러진 로봇에서는 미래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미래는 박살이 난 로봇의 양팔을 보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이……. 사장님이 슬퍼하시겠네…….”

 상호는 그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뭐 어때, 그렇게 부수면서 배울 거 아니었어?”

“그렇긴 하지만……. 아휴.”

 미래가 한숨을 푹 쉬고 로봇의 고간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주황색으로 도색된 금속 상자였다.

“그건 뭐야?”

“블랙박스요.”

“왜 하필 거기…….”

“구조상 여기가 제일 안전해서.”

 미래는 블랙박스를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손에 낀 기계 장갑에 연결하더니, 다시 로봇의 고간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저 트럭 좀 가져올게요.”

“트……럭?”

“슈트 치우게요. 여기 계속 둘 수는 없잖아요.”

“그냥 놔두지? 수업 끝나면 내가 치워 줄게. 아니 그보다 네가 무슨 트럭을…….”

“금방 치울게요.”

 상호는 달려가는 미래의 뒷모습을 얼이 빠진 채로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1학년이 뭔 트럭을 가져오겠다는 건지.

‘도대체…….’

 그래도 수업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스탠드에 앉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다음, 나디아랑 사카시타.”

 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수업을 하다 보니 운동장 저편 입구에서 진짜로 트럭 한 대가 털털거리며 나타났다.

상호는 흙먼지를 날리며 다가오는 트럭과, 운전석에 앉은 미래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진짜 트럭이네…….’

 로봇을 조종하는 여고생보다 트럭을 모는 여고생이 더 기묘해 보이는 건 어째서일까.

로봇에 가까이 다가온 미래가 차창을 열고 소리쳤다.

“선생님! 슈트 실어 주세요!”

“응……. 근데 나 없을 땐 어떻게 해?”

“반자동 유압 펌프로요. 근데 그것보단 선생님이 훨씬 편하죠, 효율로 따지면.”

“트럭은…… 면허 있어?”

“이거 원동기 아니라서 면허 필요 없어요.”

“그러면……?”

“마법공학이요.”

 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납득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슈트를 트럭 짐칸에 실었다.

미래가 씩 웃으며 핸들을 잡았다.

“갖다놓고 올게요~.”

 트럭이 털털거리며 운동장을 벗어났다.

마법공학 트럭이라는데 외양은 완전 주행거리 100만km에 침수도 서너 번은 해본 물건 같다.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가는 트럭을 바라보았다.

‘터지거나 하진 않겠지…….’

 그는 곧 아이들을 돌아보며 수업을 계속했다.

 198. 평생 책임지시라고

“아이고…….”

나로의 입에서 한숨이 쏟아졌다.

“완전 박살을 내놨네.”

“히히…….”

미래가 멋쩍게 웃었다.

“상대가 좀 강해서요. 2학년이었거든요.”

“1학년 기준으로 설계한 거 아니었어?”

“1학년은 다 이겨버려서……. 히히.”

“그럼 목표는 달성한 건가.”

나로는 머리를 긁적이며 트럭 위에 누운 슈트를 바라보았다. 두 팔이 완전히 망가져 버린 배틀 슈트를.

오른쪽 어깨에는 구멍.

왼쪽 팔은 완파.

“그래도 너무 막 부수진 마. 돈도 돈이지만…… 약해 보일수록 투자자가 줄어드니까.”

“넵!”

미래가 장난스레 경례를 했다.

상호는 공방 한쪽에 놓인 책상에 걸터앉아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방 고쳐져? 언제 오면 돼?”

“한 일주일? 이미 개량하느라 만든 게 있어가지고. 다 만들어서 갈아 끼우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나로는 그렇게 말하며 슈트의 박살난 왼팔을 매만졌다.

“그나저나 저 오른쪽에 구멍은 이해를 하겠는데…… 대체 여기는 뭘 맞아서 이렇게 박살이 난 거야?”

네 동생이 했다, 상호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책상에서 일어났다.

“부서지면서 강해지는 거지 뭐. 난 이만 갈게.”

“또 바빠? 안 바쁜 날이 없네.”

“헌터 교사가 시간이 널널하면 그것도 웃긴 일이지. 나중에 봐.”

“쯥…… 그래.”

나로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상호도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손을 흔들어 주고, 옆에서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하는 미래를 내려다보았다.

“밥은 학교 가서 애들이랑 다같이 먹자. 괜찮지?”

“네. 오늘은 뭐 먹으러 가요?”

“글쎄. 네가 정해 봐. 단비가 피자 먹고 싶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럼 칼국수요.”

“너희는 왜 언니들 나쁜 점만 닮냐…….”

둘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차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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