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3화 (213/501)

* * *

문을 열고 들어서자 태화가 배를 긁적이며 현관으로 나왔다.

“왔냐?”

“얌마, 이젠 반말도 아니고 아주 그냥…….”

“그러게 누가 영화 보다 말고 학교에 던져놓고 토끼래? 또 그럴 거야?”

“애가 쓰러졌는데 어떡하라고…….”

 상호는 한숨을 쉬고 치킨이 담긴 봉지를 내밀었다.

“먹어.”

“쒯~! 믿고 있었다고오오~.”

 태화는 상호의 손에서 봉지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소파 앞 탁자로 달려가다가, 봉지를 열어 그 안에 있는 맥주를 보고 상호를 돌아보았다.

“안돼!”

“누가 지금 먹는댔냐. 나중에 혼자 먹을 거야.”

 상호는 내공으로 맥주를 냉장고에 넣고 치킨 상자를 열었다.

어느새 닭다리 하나를 다 뜯은 태화가 입에 뼈를 물었다.

“멍.”

“뱉어.”

“멍멍!”

 태화는 꼬리를 파닥거리고는 뼈를 퉤 뱉었다.

“단비는 꼭 뼈까지 쪽쪽 빨더라.”

“합쳐진 융합체의 습관이겠지. 자의가 아니라.”

“내가 개였으면 쌤의 개가 됐을 텐데.”

“뭐래, 임마.”

“막 침대에 목줄 묶여있고.”

“……치킨이나 먹어.”

“쌤 오면 막 꼬리 흔들면서 달려 나오고.”

“그건 지금도 그러잖아.”

“앗!”

 태화가 눈을 반짝였다.

“나 이미 쌤의 개였던 거야?!”

“개같은 소리하지 말고.”

“주인님! 멍멍!”

 상호는 더 대꾸하지 않고 TV를 켰다.

“영화 뭐 볼래?”

“응?”

“다 못 보고 나왔잖아. 뭐라도 같이 보자고.”

 그 말에 태화는 씩 웃고는 그의 옆에 다가앉았다.

“야한 거.”

“너 그런 거 본 적은 있냐? 왜 이렇게 그런 것만 찾는 거야?”

“본 적이 없으니까 궁금하지! 봤으면 궁금하겠어? 쌤은 봤어?”

“……아니.”

“그러니까 같이 보자고!”

“뭘 같이 봐!”

 상호는 TV를 꺼 버렸다.

“됐어, 내일 나빛이 오면 겨울나라나 볼란다.”

“아잇, 쌤이 애야?! 왜 그런 걸 봐! 어른이면 어른 영화 봐야지!”

“니가 어른이냐? 너도 애야, 임마. 공포영화도 보지 마, 이제. 정서에 안 좋아.”

“끄엑~, 꼰대꼰대꼰대~.”

“살도 좀 잘 발라 먹어. 이게 뭐야 다. 이것도 없어서 굶는 사람이 있는데…….”

“꼰~대애애애~.”

 그렇게 치킨 상자에 뼈가 쌓여갔다.

 196. 반탄강권

 까앙

금속 때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하지만 휘두른 것은 금속이었으나, 맞은 것은 금속이 아니었다. 검과 주먹이 맞부딪히는 소리.

지윤이 주먹을 위로 치켜들었다.

“성공!”

“우와~.”

 지켜보던 나빛이 박수를 쳤다.

반면에 지윤의 앞에 선 은율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상호는 은율의 낙담한 눈빛을 마주하고 움찔했다.

“왜, 왜……. 은율아?”

“선생님…….”

 은율은 자신의 검을 튕겨낸 지윤의 강기를 돌아보고는, 다시 상호를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 선생님 수업 열심히 들었는데…….”

“……오히려 지게 될 수도 있지. 지윤이도 노는 게 아니잖아. 너희처럼 강기 만드는 법을 깨닫고 새로운 보법을 배우고 하는 시절에는……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법이야.”

“네에…….”

 그래도 은율에게는 큰 충격이었는지, 검을 축 늘어뜨리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상호는 쓰게 웃었다.

“그래도 결판이 난 게 아니잖아. 계속해.”

 그 말에 은율의 눈빛이 바뀌었다.

은율은 다시금 검을 바로잡고 지윤의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1년 전이었다면 단번에 달려들어 끝내고도 남았을 텐데, 이제는 경계하는 기색이 걸음마다 역력했다.

“헹.”

 반면에 지윤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1년 만에 완성시킨 반탄강기. 그것도 작년 평균 1등이었던 은율의 강기를 막아내고 튕겨내기까지 했으니, 자신감이 붙을 만도 했다.

 그래서일까.

평소와는 다르게 지윤이 먼저 달려들었다.

“핫!”

 쩌엉

“……윽!”

 은율은 뒤로 물러나 검을 부여잡았다. 마치 돌덩이를 쇠막대로 내려친 것처럼 손아귀가 찌르르했다.

 그 모습을 보고 지윤이 웃었다.

“흐흐, 은율이 그간 많이 때렸다 아이가. 그제?”

“……으응.”

 은율은 검을 치켜들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네가 날 때리지는 못할 거야.”

“그래?”

 지윤은 씩 웃으며 손에 하얀 강기를 피웠다.

“해보믄 알기라.”

 그리고 은율에게 달려들었다.

은율은 발을 빠르게 놀려 지윤과의 거리를 재고, 검을 쭉 뻗어 멀리서 찔렀다. 꼭 펜싱을 연상케 하는 형태로.

반탄강기는 공격을 튕겨내는 무공이라,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한 번만 삐끗해도 자세가 무너져 버린다. 그래서 은율의 입장에서는 지윤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잰걸음으로 물러나고. 칼끝으로 찌르고.

 하지만 그렇게 휘두르니 지윤의 몸까지는 닿지 않고, 오히려 지윤의 손에 잡히기 쉬운 모양새가 되었다.

 그 사실을 먼저 알아차린 것은 지윤이었다.

터억

“……윽!”

 은율은 잡힌 검을 빼내려 했지만, 지윤은 당연히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고.

검을 끌어당기며, 은율의 머리를 향해 옆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차핫!”

 빠악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은율이 비틀거렸다.

“……윽.”

 하지만 쓰러지진 않았고, 대신에 그 충격을 이용해 검을 지윤의 손에서 빼낼 수 있었다.

은율은 자세를 바로 하고 머리를 한 번 흔들었다.

고운 입술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맞았네.”

 지윤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프제?”

“응.”

 은율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너한테 맞은 건 처음이네.”

“익숙해져야 할 기다.”

 이제 완전히 자신감이 붙었을까. 지윤은 다시금 달려들었다. 은율이 태세를 정비하기 전에 끝내려는 듯했다.

은율은 이번엔 검을 찌르지 않고 휘둘렀다. 지윤의 허리를 향해서.

 하지만 검이 아니라 손을 쓰는 지윤에게는 몸통을 방어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다. 그것도 한쪽 손을 가져다 대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동작.

지윤은 손바닥으로 은율의 검을 막았다.

카앙

이번에도, 튕겨 나가는 검.

 하지만 은율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

 지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검을 튕겨냈는데 왜 자세가 그대로인지.

곧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은율이 검을 놓고 달려든 것이었다.

“이익……!”

 지윤은 은율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아주 빠르게. 최대한 빠르게.

 하지만 은율의 눈은 그보다 더 빠른 것들을 봐 왔다. 세희의 검, 다혜의 검, 상호의 검.

은율은 지윤의 손목을 잡아채고.

지윤이 주먹을 휘두르는 힘을 이용해 힘껏 메다꽂았다.

쿠웅

“……커헉!”

 지윤이 입을 쩍 벌리고 숨을 토해냈다.

“끄으……으…….”

“검사라고 유술을 못 쓰는 게 아니야.”

 상호는 그렇게 말하며 내공으로 지윤을 일으켰다.

“그렇게 방심해 버리면 아무리 유술 공부를 열심히 했어도 다 도루묵이 되어 버리는 거야. 방심하지 마.”

“……알겠슴더.”

 지윤이 한숨을 폭 쉬었다.

드디어 은율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또 져서 많이 낙심한 모양이었다.

상호는 그런 지윤의 머리를 내공으로 쓰다듬다가 은율을 돌아보았다.

“은율이는…… 검을 잡혔을 땐 좀 위험했다. 유효타도 먹었고.”

“네.”

“검을 쓰는 사람은 검을 잡히면 안 돼. 검을 잡힌다는 건 방금 네가 지윤이 손목을 잡은 거랑 똑같은 거야. 그냥 검을 놔 버린다는 선택지가 있긴 하지만…… 상대가 검을 다룰 줄 안다면 오히려 무기를 쥐여주는 셈이지.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검을 놓게 만들던가, 아니면 네가 검을 놓고 결딴을 내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해.”

“명심할게요.”

 은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지윤의 등에서 흙을 털어내고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다음, 나빛이, 사카시타.”

 * * *

“흐읍!”

 째앵

검과 검이 맞부딪혔다.

방과 후의 대인무술 수업. 세희와 은율이 운동장에서 매섭게 격돌하고 있었다.

‘완전 호각이네.’

 상호는 둘의 대련을 지켜보다가, 가까이 다가온 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지윤이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로 서 있었다.

“쌤예.”

“어, 지윤이 왔구나……. 왜?”

“지랑 유술 대련 좀 하입시더.”

“유술?”

 안 될 건 없지만.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지금?”

“땅바닥에서 하믄 양복에 흙 묻잖아예. 쟈들 저거 은제 끝납니꺼?”

“곧 끝나.”

“그라믄 기다리겠심더.”

 지윤은 상호의 옆에 털썩 앉았다.

곧 세희와 은율의 대련이 끝났다. 둘은 조언을 받기 위해 상호에게 걸어오다가 상호의 곁에 앉은 지윤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지윤이? 무슨 일이야?”

“기냥. 쌤이랑 수업할라고 왔디.”

 지윤은 피식 웃었다.

상호는 방금 본 대련에서 발견한 실수들을 짚어주었다. 내공 부족에서 기인한 세희의 불완전한 경공과 호신강기, 그리고 세희가 검강은 강하지만 호신강기는 약하다는 점을 이용하지 않는 은율의 정직한 검로.

조언이 끝나자 둘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응, 들어가. 선생님은 지윤이랑 수업하러 갈게.”

 상호는 멀어지는 둘을 향해 손을 흔들다가, 곁에 앉은 지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별관으로 갈 거지?”

 별관에 체단실이 있으니까. 유술 수업을 하려면 거기밖에 없을 것이다. 바닥에 매트리스 깔고.

 그런데 지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입니더.”

“응? 그럼 어디에서 하게?”

“쌤 방이예.”

“……방?”

 상호는 멍청히 눈만 끔뻑였다.

* * *

“진짜 방에서 하자고?”

“안될 거 있심꺼?”

 지윤이 교복을 벗자 짧은 민소매 윗옷이 드러났다.

“설에 집에서는 잘만 했잖아예. 인자 와서 와 그러십니꺼.”

“그때는 논 거고, 업어치고 메치는 수업을 바닥에서 하기에는…….”

“땅바닥보다 위험할까예. 우짜피 목걸이 차뿔면 된다 아입니꺼.”

“그거야 그렇지만…….”

“양복 구겨집니더. 옷이나 갈아입어예.”

“으응.”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셔츠를 벗었다.

지윤의 말대로 이미 지윤의 집에서 한바탕한 전적이 있었지만, 학교에서 그런 일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켕기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툭하면 창문에 매달려서 고개를 빼꼼 들이미는 세희.

그냥 자기 맘대로 순간이동해 들어오는 태화.

대놓고 쳐들어오는 해련까지. 위험요소가 너무 많았다.

‘그래도 수업이니까…….’

 상호는 한숨을 쉬고 지윤을 향해 돌아섰다.

지윤은 어느새 치마도 벗고 운동할 때 입는 펑퍼짐한 반바지로 갈아입은 채였다.

지윤이 손을 까딱였다.

“들어오이소.”

“네가 와야지. 쌤 다리 아파…….”

“아, 맞다. 들어갑니더.”

“목걸이는 하고.”

 상호는 지윤에게 목걸이를 채우고 바로 뒷덜미를 잡았다.

지윤이 곧바로 팔꿈치로 그의 팔을 쳐내어 포박을 풀었다. 상호는 다시 지윤의 허리를 잡고 기술을 걸려 했지만, 그마저도 지윤이 아래로 쏙 빠져나가며 그의 다리를 붙잡고 역으로 넘어뜨렸다.

퍼억

“아야야, 끄응…….”

 의외로 몸놀림이 능숙했다. 침대에 넘어진 상호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잘하면서 왜 실전에선 다 당해?”

“모르겠어예.”

 지윤은 상호의 위에 올라타며 눈살을 찌푸렸다.

“쌤이랑 하믄 집중이 더 잘 되는 것 같긴 합니더.”

“그건 좀 곤란하네……. 다른 사람하고 대련할 때도 집중해야지. 실전에서도 그렇고…….”

“몰라예.”

 지윤의 턱에 땀방울이 맺혔다.

“지는 쌤하고 구르는 게 좋은가 봅니더.”

 상호는 그 땀방울이 눈앞에서 달랑거리는 것을 보며 물었다.

“에어컨…… 틀까?”

“대련할 때는 집중하셔야지예.”

 지윤은 그의 말을 씹고 다시 기술을 걸었다. 상호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고, 몸을 돌려 지윤을 깔아뭉개며 기술을 걸려 했다.

“끄응…….”

“아야야, 쌤, 아픕니더!”

“팔을 꺾으면 아파야지, 어떻게 하는지 잘 배워 둬.”

 그렇게 엎치락뒤치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지윤의 허벅지에 헤드락을 당하고 있었다.

상호는 돌덩이처럼 단단한 지윤의 허벅지에 감탄했다. 질식해서 숨이 넘어가려 하는 와중인데도.

‘이야, 터질 것 같네…….’

 이마의 혈관도 터질 것 같았다.

지윤이 몸의 방향을 돌리자 근육질의 갈색 배가 상호의 얼굴을 덮었다.

선명한 일자 복근이 상호의 코를 눌렀다.

‘우와…… 작살나네.’

 죽을 것 같았다.

슬슬 벗어나지 않으면 진짜 죽겠다. 상호는 지윤의 다리를 툭툭 쳤다.

“지……. 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켁!’

 상호는 다급하게 내공을 끌어올려 억지로 지윤의 다리를 벌렸다.

“앗! 내공 쓰지 마이소! 지가 모를 줄 아십니꺼!”

“지윤아, 나 죽을 뻔했어…….”

“뻥치지 마이소. 쌤이 어케 지헌티 죽습니꺼.”

“진짜야…….”

 둘의 몸이 계속 뒤엉켰다.

뻘뻘 흐르는 땀이 누구의 것인지도 알지 못할 정도로, 끌어안고 또 조였다. 이따금씩 기술에서 풀려날 때면 거칠고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상호는 땀에 젖은 지윤의 어깨를 잡았다.

“진짜 안 더워?”

“뭐 어떻습니꺼. 더우면 씻고 가지예……. 다리나 좀 더 벌려 보이소.”

“다리 벌리면 꺾을 거잖아!”

“그럼 엎드리고 엉덩이 들어예.”

“뭘 하려는 거야…….”

 슬슬 힘들다. 체력이 워낙 좋은 아이라서.

상호는 지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뒤에서 꽉 끌어안았다.

“아잇, 다시 해예! 이거 놓으이소!”

“쫌만, 쫌만 쉬자…….”

 땀에 젖은 옷 아래에서 뭉근하게 달궈진 증기가 올라왔다. 근육은 단단했고, 피부는 부드러웠다.

상호는 지윤의 뒤통수에 얼굴을 묻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짧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질였다.

 그렇게 한숨 돌리려는데, 문득 지윤이 그를 불렀다.

“쌤예.”

“응?”

“세희한테 가르쳐준 게 쌤 무공 아입니꺼.”

“맞지.”

“그건 어떤 무공입니꺼?”

 상호는 지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멈칫했다. 포박을 풀면 다시 레슬링이 시작될 것 같아서.

“왜, 궁금해?”

“기냥, 특이한 무공인가 해서예.”

 목소리가 약간 시무룩하다.

상호는 그걸 알아차리고 물었다.

“궁금한 이유가 있나 본데?”

“아입니더.”

“정말?”

 그가 캐묻자 지윤은 입술을 삐죽 내밀다가, 이내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오늘 지가 은율이 칼을 막지 않았습니꺼. 반탄강기로…….”

“그랬지.”

“그래서 기분이 좋았거든예. 참말로. 이거라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가꼬…….”

“그럴 만도 하지.”

“그런데…… 졌잖습니꺼. 그런데 또…… 세희는 은율이랑 잘만 싸우고.”

 지윤이 그의 품에 몸을 축 늘어뜨렸다.

“세희 무공이 센 건지, 지가 부족한 건지…… 그걸 모르겠심더.”

“그래?”

 상호는 쓰게 웃었다.

“그렇게 치면 은율이는 뭐가 돼. 은율인 저승부대 무공을 배운 것도 아닌데…….”

“가는 거의 개벽 직후부터 아부지한테 배웠다 카던디예. 그만치로 했으믄 그럴 만도 하지예.”

“세희도 그런 거지.”

 상호의 손이 지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의 지윤은 레슬링보다는 이야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물론 궁금할 만도 해. 곁에서 같이 수련하는 친구가 왜 자기보다 앞서 있는지…….”

 제대로 된 무예가라면 궁금해야만 하는 법이다.

무엇부터 설명해 줄까. 상호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윤이 너 쌤한테 옛날에 여자친구가 있었던 거, 알지?”

“예.”

“그 사람이 만든 무공이야.”

 지윤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분이 스승님이라고 하셨던가예?”

“응.”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 이름은 천색창염강기공이고, 네 생각대로 조금 특이해. 무공 특성이.”

“어떻게예?”

“내공을 쌓는 속도가 엄청나게 느려.”

 그 말에 지윤이 눈을 깜작였다.

“안 좋은 거 아닌가예?”

“안 좋지.”

“그기 쌤 무공이라구예?”

“응.”

 지윤은 그의 말을 바로 믿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안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지예?”

“응.”

“그러믄……?”

 상호는 살짝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강기를 만들 수 있어.”

 그 말을 들은 지윤은 잠깐 동안, 아주 잠깐 동안 부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쉬워하는 표정 같기도 했다.

“세희 가는 참…… 운도 좋습니더.”

“왜, 부러워?”

“……솔직히.”

 지윤이 작게 중얼거렸다.

“최강이라카는데 부럽지예.”

“최강의 무공은 없어. 방금 말했잖아. 내공을 쌓는 속도가 엄청나게 느리다고……. 다 그런 거야. 세상만사 장점만 있는 일은 없어.”

“……그런가예.”

“대신에 최강이 될 수 있다고 증명된 무공은 있지. 그중 하나가 네 반탄강권공이고.”

 상호는 지윤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항상 말하지. 열심히 하면 후회할 일이 없다고. 넌 의심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기만 하면 돼. 그러면 언젠가…….”

 아버지처럼, 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큰 어폐가 있다.

결국은 죽었으므로.

“……나보다 더 강해질 수 있을 거야.”

“에이…….”

 지윤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교.”

“불가능은 아니지.”

“불가능입니더, 그기는……. 그래도 머, 노력은 해 보겠심더.”

 그 말과 동시에 지윤이 다시금 상호에게 달려들었다. 상호는 자신의 배 위에 올라탄 지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유술 연습도 많이 해.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까…….”

“흐흐.”

 지윤은 키득거리며 다시 상호와 몸을 뒤엉켰다.

 197. 부숴버릴 거야

“머꼬.”

 지윤은 반으로 들어서다가 멈칫했다.

“야들아, 먼 일 있었나?”

“아니?”

“근디 세희 표정이 와 저러노.”

 세희는 악귀 같은 눈빛으로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단비는 그런 세희와 지윤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물었다.

“몰라. 멍. 세희 언니 무슨 일 있어?”

“아니.”

 세희는 살기를 거두고 살짝 웃었다.

“선도부 일 때문에, 고민할 게 있었어.”

“많이 힘들어?”

 단비의 꼬리가 마구 흔들렸다.

“매점 갈까? 태화 언니랑?”

“아니야. 배 안 고파.”

“엥…….”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지윤이 세희의 등짝을 쳤다.

“그라믄 내랑 가자카이.”

“배 안 고프다니까…….”

“배는 좀 걷다 보믄 금방 고프다. 같이 가자. 내가 함 사주께.”

“……그래.”

 세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윤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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