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0화 (210/501)

* * *

 그렇게 매일 방과 후, 상호는 세희와 은율을 데리고 특훈을 했다. 인간을 상대하는 무술을 가르치며.

 그러던 어느 날, 변화가 생겼다.

“세희. 은율이가 뺀다고 바로 들어가지 마. 네가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어. 은율이는 방금 기회였는데 놓쳤다.”

 상호는 그렇게 말하고 운동장 가장자리를 흘끗했다.

그곳에서는 가은이 멀거니 서서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너희 둘 다 발 쓰는 걸 주저하지 마. 때로는 보법을 포기하고 공격을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손기술까지는 안 써도 돼. 대신 발차기는 연습 따로 해.”

“네.”

 둘은 짤막하게 답하고 대련을 이어나갔다.

상호는 둘의 대련을 지켜보다가 대놓고 가은을 향해 몸을 돌렸다. 가만히 서 있던 가은이 그를 보고 몸을 움찔했다.

상호는 씩 웃으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가은아, 잠깐만 와 봐.”

 그러자 가은은 그를 쌩까고 기숙사 쪽으로 걸어갔다. 상호는 당혹한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

‘저 정도면 남자가 싫은 게 아니라 내가 싫은 게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십중팔구 그럴 것이다. 지금껏 보인 게 있으니.

‘다 업보다, 업보…….’

 상호는 염주를 굴리며 세희와 은율의 대련을 살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또 누가 와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열렬하기 그지없었다.

누가 왔는지 알 법했다.

‘보나마나…….’

 뒤를 돌아보니 다혜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었다.

“므앙.”

“……안녕.”

“느앙으앙.”

 다혜가 그의 앞으로 수갑이 차인 손목을 들어 올렸다.

풀어 달라는 뜻인가. 상호는 열쇠를 꺼내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하려고?”

“아으아으.”

“……일단 알겠어.”

 딱히 일이 없더라도 옆에 있을 때만은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었다. 그는 수갑을 풀고 입마개도 풀었다.

다혜는 두 팔을 쭉 펴고 스트레칭을 하더니.

“아으!”

 쏜살같이 세희와 다혜를 향해 뛰어들었다.

대련 중이던 둘은 갑자기 난입한 불청객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게 다혜라는 것을 확인한 둘은 눈에 불을 켜고 검을 휘둘렀다.

다혜의 몸에 호신강기가 피어올랐다.

“흐웅…….”

 다혜는 그렇게 느긋한 목소리를 흘리고는, 가볍게 뛰어서 둘의 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그와 동시에 다혜의 발끝이 세희와 은율을 톡 치고 지나갔다. 세희는 이마, 은율은 턱.

“아윽!”

“큭……!”

 그 가벼운 발길질로 둘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둘은 다시 일어나 다혜를 노렸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헛수고. 칼끝 한 번, 발끝 한 번을 닿지 못했다.

“익!”

“흐읍!”

 조금만 더 빠르면 닿을 법도 한데. 다혜는 약이 오르도록 아슬아슬하게 둘의 검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그러기를 몇 십 번.

결국 세희와 은율은 녹초가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으윽…….”

 상호는 땅에 엎어진 둘을 향해 다가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는 다혜를 돌아보았다.

“만족했어?”

“아으.”

 다혜는 싱글벙글 웃으며 손목을 내밀었다.

얇은 손목에 다시금 수갑이 채워지고, 입에는 입마개가 채워졌다. 상호는 볼일을 마치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다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곁에서 세희가 같은 방향을 보며 말했다.

“검이 없어도…… 못 이겼어요.”

“아직은 그럴 수밖에 없지.”

“검이 없는 정도로는 택도 없는 거예요?”

“너희가 다혜랑 수준이 비슷해지려면…… 으음. 저 수갑 찬 상태로 양발에 50키로짜리 족쇄 하나씩 달아야 할걸? 그것보다 가벼우면 오히려 무기로 쓰겠지.”

 준 S급 헌터의 강함은 그런 것이다. A급 헌터에도 못 미치는 세희와 은율로서는 다혜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은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길 수 있을까요?”

“나중에는.”

 상호는 세희와 은율의 몸에 묻은 흙을 털었다.

“다혜는 심리를 읽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고 행동하는 거야. 몬스터만 잡아와서 그럴 수밖에 없어. 만약에 너희가 사람의 심리를 제대로 읽고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다혜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특히나 이 둘은 손이 빠르니까.

검을 휘두르는 속도는 다혜가 훨씬 빠르겠지만, 그래도 다혜의 몸통을 쫓아갈 정도는 될 것이다.

“대신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 돼.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강기도 강해야 하고.”

 상호는 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말 나온 김에 내공 좀 보자. 최대한 밀어내 봐.”

 둘이 상호의 손을 잡자 각자의 내공이 서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둘 다 중간평가 때보다도 내공이 늘었다. 아마 하루도 빠짐없이 운기를 해왔을 터.

상호는 둘의 내공을 살피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은율의 내공이 세희보다 열 배는 많았다.

‘정말 효율 하나는 쓰레기구나…….’

 최고의 강기를 만드는 무공이 축기에서는 최악이라니. 아이러니하면서도 필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이쯤 하자. 들어가서 씻고 쉬어. 같이 운기조식을 해도 좋겠고.”

“네.”

 세희와 은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함께 기숙사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선생님.”

“응?”

“아까 그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강한 거예요?”

“아, 은율이는 모르는구나. 그게 있잖아…….”

 길어지는 그림자만큼 나누는 이야기도 길었다.

* * *

다음 날 방과 후에도, 세희와 은율은 어김없이 대련을 했다.

 그리고 또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님.

상호는 멀리에 우두커니 선 가은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불러야 여기까지 올까…….’

 그냥 와보라고 하면 저번처럼 도망칠 것이고.

상호는 고민하다가 내공을 뻗어 세희와 은율을 멈추게 했다.

“어?”

“앗…….”

 내공이 몸을 붙들자 둘이 당황하며 상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공으로 은율의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은을 향해 흔들었다.

“……아.”

 가은이 살짝 손을 들어 화답했다.

이제 은율은 가은을 향해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물론 은율의 자의가 아니라 상호의 조종 때문이었지만.

어찌됐든 가은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케이. 드디어 오는구만.’

 상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가은이 가까이 다가오자 상호의 내공이 세희와 은율을 놓아주었다. 둘은 잠시 눈을 끔뻑이다가 곧 다시 대련을 재개했다.

상호는 가까이 다가온 가은을 돌아보았다.

“가은이 왜 왔어?”

“은율이 언니 기다리려고요.”

 쌀쌀맞은 목소리.

상호는 세희와 은율을 흘끗하고 말을 이었다.

“가은이는 특훈 받아볼 생각 없어?”

“없어요.”

“……상당히 매몰차네. 저 언니들만큼 강해지고 싶지 않아?”

“제가 노력하면 저절로 저렇게 되겠죠. 저한테 신경 꺼 주세요.”

“선생님이 학생한테 신경을 어떻게 꺼.”

 그 말에 가은이 그를 노려보았다. 신경을 못 꺼서 그렇게 학생들을 만지고 껴안고 했느냐는 투였다.

죄인이 어디 할 말이 있으랴.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재밌을 거야. 아니, 재미보다는…… 네가 원하는 걸 배울 수 있을 거야.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제가 원하는 게 뭔데요?”

 가은이 눈썹을 치켰다.

“그걸 선생님이 어떻게 아시는데요? 그럼 한번 말해 보세요. 제가 뭘 원하는지.”

“그냥 평소…… 아니, 시험 때 무술을 보니까 애들이랑은 다르게 대인 무술이더라고. 그래서 아마 경찰이 목표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어.”

“아니에요.”

“아니야?”

“네.”

 가은은 혀를 차고 돌아섰다.

“맘대로 넘겨짚지 마세요.”

“미안해.”

 상호는 씩 웃었다.

“앞으론 실수 안 할게. 사과는 받아 줘.”

“……흥.”

 가은은 콧방귀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역시 대하기가 힘들다. 상호는 멀어지는 가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나머지 수업을 하면 좀 친해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것도 애들 도움을 받아야 하나?’

 어떻게 해야 가은이 나머지 수업을 받도록 만들 수 있을까. 상호는 생각에 잠긴 채로 세희와 은율의 대련을 지켜보았다.

 193. 유월의 어느 날

“또 무슨 책을 그렇게 봐요?”

 미진이 혀를 찼다.

상호는 황급히 읽던 책을 무릎에 내려놓고 키보드를 잡았다.

“그냥…… 별것 아녜요.”

“저번엔 뭐 이상한 중독 치료인지 뭔지 읽더니. 이번엔 또 뭔데요? 줘봐요.”

 미진은 그의 무릎에서 책을 뺏어들어 제목을 읽었다.

“경찰 실전 무술? 경찰 준비해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상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반에 경찰이 되려는 애가 있어서요.”

“……흐음.”

 미진이 의외라는 듯한 눈빛으로 상호를 내려다보았다.

“그 애 때문에 공부하고 있었다고요?”

“네. 나라고 해서 무술을 다 아는 건 아니니까……. 몬스터를 상대하는 법만 남들보다 잘 알 뿐이니까요.”

“좀 기특하다 싶었는데 또 잘난 척을…….”

“네?”

“됐어요.”

 미진은 혀를 차고 상호를 자리에서 끌어냈다.

“나와요. 제가 일할 거니까.”

“네? 괜찮아요, 맨날 미진 씨가 하지 말고…….”

“나오라고요. 구석에 처박혀서 책이나 마저 읽으세요. 도움도 안 되면서.”

“네…….”

 내가 그렇게 무능한가, 상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책을 들고 터덜터덜 구석으로 걸어갔다.

* * *

 이미 들킨 것 더 이상 숨기지 않겠다는 생각인지, 가은은 자신이 배운 무술을 가감 없이 펼쳤다.

 그래서 나온 결과는.

“멍…….”

 스탠드에 앉은 단비가 한숨을 푹 쉬었다.

“또 졌어…….”

“넌 원래도 졌잖아.”

“멍! 이서 팩트 너무 아파……. 근데 가은이, 너무 갑자기 강해졌어…….”

 옆에서 듣던 상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가은은 1학년들을 말 그대로 농락했다. 무예가는 물론이고 마법공학 발명가까지. 공격에 대처하는 능력도, 상대를 제압하는 능력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상호가 다른 아이들에게도 대인무술의 기초를 가르쳐 주긴 했지만, 가은의 공부를 따라가기엔 한참 멀었고, 가은 자신의 대인무술에 대한 재능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다만 딱 두 명. 가은이 쉬이 상대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무예의 수준이 더 높은 아이, 하솔.

 그리고 순간이동을 쓰는 마법사 아이.

“아리 이겨라~.”

“박가은! 박가은!”

 푸른 뿔 사이에서 번개가 쏘아졌다.

번개는 가은을 빗나가 땅에 불꽃을 남기고 사라졌다. 가은은 그 틈을 타 아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아리는 순간이동으로 멀리 도망가 버렸다.

상호는 작년의 기억을 떠올렸다. 태화를 상대하던 무예가 아이들.

 그 구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공을 빨리 가르쳐야겠다. 보법도 이것저것 더 알려주고…….’

 고민하는 동안 대련은 아리의 승리로 끝났다.

상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둘을 바라보았다.

“아리는 잘 했고……. 가은이는 조금 흠이 있네.”

 그 말에 가은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리에게 진 것만은 사실이라, 따지지는 못하고 가만히 상호를 노려보기만 했다.

상호는 가은의 성깔을 건드리지 않으려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네 무술은 좁은 곳에서 쓰는 걸 상정하고 만든 거야. 상대를 항상 곁에 두고 싸우는 걸 전제로 해서. 그래서 아리처럼 순간이동으로 거리를 벌리는 상대한테는 그다지…….”

“흥.”

“별로……인 것 같아.”

 가은은 대꾸도 안 하고 스탠드에 앉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눈이 너무 무섭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2학년들이 대련하고 있는 곳을 보았다.

“으갸아아악!”

 태화가 식겁하며 순간이동을 했다.

“야, 도은율! 칼로 꼬리 때리지 말라고!”

 은율이 시무룩한 눈빛으로 칼을 늘어뜨렸다.

“선생님이 급소 노리라고 하셨는데…….”

“아프다니까! 몇 번을 말해, 빠가야!”

“세희도 이렇게 하던데…….”

“걔는 내 말을 안 들어먹는 거고!”

“알았어……, 미안해.”

“쳇.”

 태화는 혀를 차고 까만 불덩이를 날렸다.

은율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놀라지도 않고 태연하게, 딱 한 걸음만 옆으로 움직여 불덩이를 피했다.

 그 모습을 본 태화가 또 역정을 냈다.

“아이씨, 그걸 그렇게 쉽게 피하면 어떡해!”

“너무 뻔해서…….”

 은율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고 태화에게 달려들었다.

2학년의 수준에서는 상호의 대인무술 교육이 마법사를 상대로도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 낌새를 읽어내는 훈련 덕분에.

곧 은율의 검이 태화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깍! 어딜 때려! 야, 여기가 급소냐?!”

“훤히 드러나 있길래…….”

“아오, 아파라……, 씨이.”

 태화는 꿍얼거리며 상호에게 걸어왔다.

“조언!”

“뭐가 그리 당당해, 임마. 뻔하게 싸우지 좀 마. 마법을 쓴다는 애가 칼보다 뻔하면 어쩌자는 거야.”

“끄엑~. 잔소리~.”

“조언해달라며! 다음, 세희, 나빛이.”

 둘이 일어나서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나빛이 대련을 할 때면 1학년 아이들이 유난히 수다스러워진다. 상호는 나빛이 성창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진짜 예쁘다, 저거.”

“나도 성력 쓰고파, 멍…….”

“나빛이 언니는 날개도 만들잖아. 부러워…….”

 예쁘다고 좋은 것은 아닌데.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진흙탕을 구르고 피와 오물을 뒤집어쓸 헌터 지망생들이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멋지고 예쁜 것을 동경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저 성창이 실전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는…… 굳이 말해줄 필요 없겠지.’

 곧 나빛이 황금빛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하늘을 뒤덮을 듯하던 효은의 것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그래도 날개 한 쪽의 폭이 사람 키보다는 넓었다.

‘……성력이 더 강해졌구나.’

 성창도 이제 한눈에 세기 힘들 정도였다. 열두 개의 성창이 등 뒤에서 차륜처럼 둥글게 돌아갔고, 나머지 성창들은 허공에 둥실 떠올라 세희를 겨눴다.

나빛이 생긋 웃었다.

“세희 요즘 선생님한테 수업 자주 받던데.”

“음.”

 세희는 검을 뽑아 자세를 잡았다.

“나랑 은율이한테만 시키신 게 있어서.”

“그래? 뭔지 알려주면 안 돼?”

“딱히 비밀은 아닌데.”

 하늘색 강기가 세희의 검을 감쌌다.

“지금 설명하긴 좀 그래.”

“뭔데 그래. 왜 너희만 알고 있어…….”

“우리가 제일 강하니까.”

 세희는 검으로 나빛을 겨눴다.

“너 약하잖아.”

“……헤에.”

 나빛이 벙긋 입을 벌려 웃었다.

그와 함께 성창들이 세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파창

세희가 검을 휘두르자 성창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허공에 새롭게 생겨나는 성창들이 빠르게 뒤를 이었다. 세희는 사방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성창을 쳐내다가 나빛을 향해 뛰어올랐다.

나빛은 기다렸다는 듯 더욱 위로 날아오르며, 아주 넓은 방어막을 하나 만들어 세희를 향해 내리쳤다.

“얍!”

“큭……!”

 위에는 방어막. 아래에는 유도탄처럼 쫓아오는 창.

세희는 입술을 깨물며 검으로 방어막을 갈랐다.

콰악

방어막 또한 성창처럼 부서져 내렸다.

 하지만 허공에서 한 차례 몸을 움직인 세희는 더 위로 올라갈 추진력을 잃어버렸고, 실속과 함께 땅으로 떨어졌다.

나빛은 그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잡았다~.”

 허공에서 나타난 쇠사슬이 세희를 친친 감았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내공이 없어서…….’

 방금은 허공에서 한 번만 더 도약했어도 나빛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은율은 중간평가 때 그런 방식으로 나빛을 이겼다.

 하지만 세희는 원체 내공이 부족해서, 상승의 경공과 검강을 동시에 운용할 수가 없었다.

‘저걸 해결 못 하면 다혜도 못 이길 텐데…….’

 그런 걱정 때문에 착잡한 표정으로 세희를 바라보는데, 옆에서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아, 쌤 또 표정 안좋아뿌네.”

“세희 지면 저런다니까.”

“하 양도 눈치가 없습니다. 그냥 져주면 되는 것을.”

“네!”

 상호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이 억울한 마음을 누가 알아주리…….’

“선생님?”

“응?”

 어느새 다가온 나빛이 시무룩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잔뜩 풀이 죽은 채로.

“저……, 별로……였어요?”

 상호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 아니. 잘했어. 훌륭했어, 응…….”

“저는…… 아직도 눈치가 없나 봐요…….”

“아냐! 절대 아냐. 나빛이 최고야, 진짜, 진짜…….”

“죄송해요……. 다음부턴 아무것도 안 할게요…….”

“아니라고…….”

 상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나빛의 손을 감싸다가, 화두를 돌리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1학년들이 그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얘들아, 너희도 계속 대련하고 있어야지. 누구 차례야?”

“미래랑 가은이요.”

“미래가 뭐 가지러 간댔어요.”

 그 말에 상호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설마…….’

 아니나 다를까. 곧 땅이 미세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 울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격해지더니.

쿵쿵쿵쿵

[박가은! 딱 대!]

 3미터가 넘는 강철 로봇이 되어 나타났다.

로봇을 본 가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뭐야, 그거?”

[대인무술? 다 필요 없어! 대세는 배틀슈트야! 덤벼, 구시대의 유물!]

“어…….”

[간다아아!]

운동장에서 강철 로봇과 한 소녀가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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