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어르신.”
“으엉?”
노숙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곱 때문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다.
도현은 노숙자를 향해 삼각김밥을 내밀었다.
“드세요.”
“엉? 뭐야? 약이라도 탄 건 아니지?”
“그럴 리가요. 그냥 안쓰러워서 산 겁니다.”
“고마워, 클클. 근데 현금이면 더 좋았을걸.”
“현금이면 뭐 사시게요?”
“모아서 로또 사지.”
이유 없이 노숙자가 된 건 아닐 것이다. 도현은 중년인의 옆에 앉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응? 자네 뭐 기자 같은 거야?”
“아뇨, 그냥…… 삶이 개같아서. 다른 사람 이야기가 듣고 싶었습니다.”
“어쩌다라…….”
중년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삼각김밥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쯥쯥……. X부럴, 설명하다간 화딱지가 나서 소화 안 될 거 같은데. 그냥 대충 사업이 망했다고 퉁치고 넘어가면 안 될까?”
“보통 넋두리라도 하면 편해지지 않나요?”
“글쎄? 살면서 그런 인간은 본 적이 없는데. 적어도 길바닥에서 자는 양반들 중에선. 뭐…… 그래도 얻어먹은 게 있으니, 700원어치만 풀어 볼까.”
“요즘은 1500원입니다.”
“그래? 물가가 그 모양이니까 사람들이 동냥을 안 하지, 쯧…….”
중년인은 혀를 차고 말을 이었다.
“보자, 뭐부터 말해 줄까…….”
* * *
중년인은 자기 인생사를 풀었다. 700원어치라기에는 좀 많이.
보증을 잘못 섰고, 사업이 망했고, 술이 늘어서 가족을 잃고.
처참해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결국에는 딸까지 엄마 따라갔지. 그 후에 길바닥에 나앉았고. 그게 20년쯤 됐네.”
“전쟁 때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전쟁? 그때도 그냥 뭐, 똑같이 빌어먹고 살았지.”
전쟁 때 기회를 잡았다면 어렵지 않게 재기할 수 있었을 텐데. 역시 이유 없이 거지가 된 건 아닌 모양이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럼 가족도 20년 동안 못 보셨어요?”
“응.”
“보고 싶진 않으세요?”
그 말에 중년인은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어떤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이.
“못 봐.”
“한번 찾아가 볼 법도 하지 않아요? 20년이 지났는데. 앙금이 남았어도 얼굴 한 번쯤은 볼 수도 있잖아요.”
“못 보는 거야. 어차피 그동안 날 찾지도 않았잖아. 사람은 말이야, 아쉬우면 찾는 거고 안 아쉬우면 안 찾는 거야. 안 아쉬운 거지. 새 인생 잘 살고 있거나…… 전쟁 때 가버렸거나 했겠지. 그런 거야. 그런 거지……. 어차피 알아보지도 못할 거고.”
도현은 입맛을 다셨다.
“그럼 어르신은 뭘 기대하면서 살고 계세요?”
“로또?”
중년인은 그렇게 대답하고 킬킬 웃었다.
“물론 기대 안 하지. 그냥 사는 거지. 죽지 못해서 사는 거야. 뭐 가끔은…… 이렇게 얻는 것도 있어서, 그냥 사는 거지.”
중년인이 삼각김밥 포장지에 코를 박았다. 냄새마저도 행복하다는 듯이.
도현은 그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응? 가게?”
“예. 슬슬 약속 시간이 되어가서.”
“약속. 약속 중요하지. 염병할 놈의 보증만 안 섰어도, 낄낄낄…….”
중년인은 웃으며 바닥에 누워 담요를 덮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장기팔이가 아니라서.”
“네?”
도현은 고개를 기웃했다.
“장기팔이요?”
“요즘 노숙자들 납치해서 장기를 떼간다 그러거든. 없어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래. 그래가지고 자네가 김밥 줄 때 좀 의심했었어, 미안해. 낄낄낄…….”
중년인은 웃으며 도현을 바라보다가 흠칫했다.
“……근데 자네 표정이 왜 그래?”
도현은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석고상처럼 차갑고 무정한 얼굴로.
중년인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일어나 도망치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일어나지 못하게 누르고 있었다.
“으, 으으……!”
중년인의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도현은 차분하게 손수건을 꺼내 마취약을 묻혔다. 그 모습을 보고 중년인이 몸을 덜덜 떨었다.
“자, 자네, 자네, 제발…….”
“…….”
“제발, 제발, 목숨만, 목숨만은 살려줘, 다 가져갔잖아, 목숨만 남기고 전부 다 가져갔잖아…….”
마치 하늘에게 빌듯이 애걸을 했다.
하지만 세상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
도현은 허리를 수그려 중년인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덮었다.
“끄, 끄윽, 윽…….”
중년인은 부르르 떨다가 축 늘어졌다. 얼굴에 천을 덮은 모습이 마치 시체와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는 일. 도현은 몇 번이고 그렇게 되뇌며 중년인을 자루에 담았다.
밧줄로 자루 입구를 묶는데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렸다.
‘상호……겠지.’
오늘 그런 일이 있었으니, 아마도 맞을 것이다. 도현은 애써 그 소리를 무시했다.
하지만 끊길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은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뭐야.’
상호가 아니었다.
도현 자신의 아버지.
이 시간에 무슨 일일까. 도현은 매듭을 마저 짓고 전화를 받았다.
“예, 아버지.”
[도현아, 수요일에 집 오냐?]
“수요일이요? 무슨 일 있어요?”
[어버이날이여, 이눔아. 결혼도 안 한 녀석이 몇 달째 얼굴 한번 안 비추냐. 엄마가 너 보고 싶대.]
도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바빠서 못 가요.”
[또 바쁘냐? 전화도 잘 안 받더니만…… 그 일은 언제 끝나냐?]
기약이 없다.
도현의 이빨이 입술을 자근자근 씹었다.
“곧…… 곧 끝나요.”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예. 시간 되는 대로 갈게요.”
[고생해라. 사람들 잘 지키고.]
통화가 끊겼다.
사람들 잘 지켜라. 그 말이 도현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 어깨에 둘러메는 자루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세상을 지키는 일.
사람을 죽이는 일.
이 모순을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지.
‘……죽고 싶다.’
도현은 텅 빈 눈빛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바람 한 줄기를 남기고 자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주인 잃은 담요만이 골목길에 처량히 굴러다녔다.
186. 짐승
“……그렇게 됐어.”
상호는 복도 끝에 서서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교실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려왔다.
“아마 형도 알게 됐을 거야. 떡을 만들어 놨으니.”
[……그러니.]
민정이 힘없이 대답했다.
[오빠한테 연락은 해 봤어?]
“아니.”
[오지도 않았고?]
“응.”
[안 할 거야?]
“응.”
알아서 처신할 것이다. 바쁘기도 할 것이고.
실은 목소리를 들으면 언성을 높일 것 같아서 일부러 피하는 것이지만.
상호는 그런 셈 치기로 했다.
“누나가 잘 말해 줘. 나 이제 애들 종례 들어갈게.”
[응…….]
“화 안 났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으응.]
어렴풋한 민정의 웃음을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상호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로 이틀이 지났다.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학교로 누군가가 찾아오지도 않았고, 태화와 아이들도 멀쩡히 잘 지냈다.
도현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모르는 척 하고 있겠단 뜻인가?’
애매했다. 도현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래도 경고를 해 놨으니 태화만 잘 지키고 있으면 다음번에 무슨 일이 생기든 끝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상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교실로 향했다.
* * *
“어버이날이지?”
“네.”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등학생씩이나 됐는데 굳이 말 안 해도 알지? 전화해서 인사라도 한 번씩 드리고. 전화가 싫으면 문자라도 해. 쑥스러우면 선생님이 시켰다고 하든가. 아니면…….”
상호는 출석부에 붙인 일정표를 살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공개수업이니까, 그거 핑계로 말 붙이면서 슬쩍 사랑한다고 하든가. 어떤 느낌인지 알지?”
“네~.”
“그래. 수고했다. 들어가.”
“네~.”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호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일정표를 읽었다. 다음 주 월요일이니, 주말 전에 학부모들에게 연락해야 할 것이다.
생각에 빠진 그의 어깨를 누군가가 두드렸다.
“응?”
고개를 들어 보니 태화와 세희가 양옆에 서 있었다.
상호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아이들을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아빠.”
“……응?”
태화가 실쭉 웃으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그 말에 상호는 괜스레 불안해졌다.
“뭐야, 무섭게 왜 그래……. 말로 해.”
“말로 하고 있잖아. 그래서 뭐 갖고 싶은 거 없냐니까?”
“없어. 그 돈으로 동생들 먹을 거나 사줘.”
“애들 말고! 쌤 갖고 싶은 거 하나쯤은 있을 거 아냐.”
태화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없으면 나 준다? 참고로 난 선물 줄 때 포장 안 해.”
“아니…….”
상호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받고 싶은 물건이 없었다. 의식주엔 모자람이 없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취미도 딱히 없고.
그래서 그저 웃었다.
“그냥 마음만 받을게, 마음만.”
“마음? 오~케이, 내 넓고 풍만한 마음을…….”
“……헛소리하지 말고.”
상호는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꼭 뭔가 줄 필욘 없어. 그냥 평가 잘 보고, 사고 안 치면 그걸로 족해. 그리고 뭣보다…… 건강하고. 그거면 돼.”
세희가 살짝 웃었다.
“아빠 같아요. 정말로.”
“……그런가?”
상호는 멋쩍어서 머리만 긁적였다.
“어쨌든…… 가서 쉬어, 너희도. 고생했어.”
“웅.”
태화는 세희와 함께 문가로 걸어가며 상호에게 손을 흔들었다.
“밤에 봐!”
“밥 같이 먹자고?”
“밥도 같이 먹고.”
그 말을 끝으로 둘은 교실을 나섰다.
뭐가 더 있단 뜻인가. 상호는 고개를 기웃하며 출석부를 챙겼다.
* * *
“후우…….”
고된 하루가 끝났다. 상호는 방에 들어서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공개 수업을 대비해서 시설을 확인하고, 청소하고, 정비하고. 그걸 금요일까지 끝내서 주말에 또 확인해야 했다. 학부모 중에 누가 오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이번 주는 일이 또 바빠질 것 같았다.
‘정신이 없네……. 응?’
상호는 재킷을 벗다가 멈칫했다.
방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주 작은 숨소리. 그리고 희미한 온기.
침입자가 있었다.
‘66부…… 라기엔 너무 엉성하고.’
방을 둘러보던 상호의 눈길이 침대에서 멈췄다. 이불이 살짝 솟아 있었다.
그는 침대로 다가가서 이불을 천천히 걷었다.
“짜잔~.”
태화가 리본에 묶인 채로 누워 있었다.
“어버이날 선물~, 어버이 체험 키트~. 직접 아버지가 되어보자! 3분이면 뚝딱!”
“뚝딱은 임마, 니 머리통을 뚝딱해버릴라…….”
“엥? 3분이면 되는 거 아냐? 길어? 설마 짧어?”
“……맞는다.”
“빡친 거 보니까 짧은 쪽이구나?”
효은과는 한나절도 해봤지만, 미쳤다고 애한테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상호는 다시 이불을 덮어 버렸다.
이불 속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재포장해도 환불 안 돼!”
“버릴 거야. 이불로 싸매서 던져 버리기 전에 돌아가.”
“딸을 버리는 아빠가 어딨어! 앗, 있구나.”
“그…….”
상호는 중선의 최후를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말해도 모를 것이다. 66부에 대해서 알려줄 수도 없고.
지금은 말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그냥 다른 대답을 했다.
“야, 지금 니 행동이 딸이 할 행동이냐. 통금 넘기기 전에 빨리 돌아가.”
“뿌에엑~. 어버이 체험학습 할거야~.”
“가라고, 임마. 나도 씻고 잘란다.”
상호가 이불을 톡 치자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갔나.’
상호는 돌아서서 욕실로 향했다.
빨리 씻고 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옷을 다 벗고 욕실 불을 켜는데.
“……어?”
세희가 구석에 앉아 있었다.
세희는 상호를 보고 멍하니 눈을 끔뻑이다가.
“……학.”
숨을 들이키며 황급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당황스럽기는 상호가 더했다. 상호는 뒤로 나자빠질 듯이 욕실을 뛰쳐나가 허둥지둥 옷으로 몸을 가렸다.
“세, 세, 세희야……? 네가 왜 거기…….”
“어, 어버이날, 선물, 드리려고…….”
세희의 손에는 종이 카네이션이 들려 있었다.
그걸 대체 왜 화장실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상호는 어질어질한 머리로 이해해 보려 애쓰다가 포기하고 다른 것을 물었다.
“……봤니?”
“……네.”
고개를 푹 숙인 세희의 입에서 개미만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웅장했어요.”
감상은 필요 없는데.
상호는 붉어지는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세희 너도…… 빨리 기숙사 가서 자…….”
“네…….”
세희는 상호에게 다가와 카네이션을 쥐여 주고는, 황망히 현관을 나갔다.
상호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몸도 마음도 쪼그라들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돌겠네, 진짜…….’
그는 간신히 일어나서 비틀비틀 욕실에 들어갔다.
* * *
“누구누구 오신대요?”
미진이 키보드에 손을 올린 채로 그를 돌아보았다.
상호는 핸드폰을 켜서 화면을 확인했다.
“음……, 미래랑 단비랑 하솔이랑 아리는 부모님 두 분 다 오시고. 초란이는 어머님만, 이서랑 가은이는 아버님만.”
“많이 오시네요.”
“헌터 학교니까요.”
걱정이 많이 될 것이다. 수업 내용이 궁금하기도 할 것이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미진이 다시 상호를 돌아보았다.
“작년엔 누구 부모님들께서 오셨는데요?”
“나빛이랑 태화요. 태화는 아버지.”
“올해는 왜 안 오신대요?”
“나빛이 가족은 원래 바쁘고, 태화네 아버지는……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아.”
미진은 더 묻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다.
그때 옆자리에서 설미가 고개를 쏙 들이밀었다.
“상호 씨, 학부모님들 많이 오셔?”
“네.”
“얼마나 늘었어? 작년보다?”
“8명 늘었죠.”
상호의 대답에 설미가 활짝 웃었다.
“우린 작년보다 7명 줄었는데~.”
“그래요?”
“그게 41명이야~.”
“……수고하세요.”
“살려줘, 상호 씨……. 위로해 줘……. 술 사줘…….”
상호와 미진은 묵묵히 할 일을 했다.
* * *
월요일.
상호는 뒷짐을 진 채로 칠판에 글씨를 적고 있었다.
“오늘은 전술과 전략을 배울 거야.”
물칠판에 아이들, 그리고 뒷문으로 들어오는 학부모들이 비쳤다.
“너희가 헌터라는 인재가 되는 이상 책상머리에서 앉아나 있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말단의 졸병이라도 큰 틀은 이해해 놔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는 고개를 돌려 세희와 지윤을 흘끗했다.
“또 모르지. 너희가 단 열 몇 명이서 전쟁을 책임지는 부대에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이고. 그러니까 잘 배워 놔.”
“네.”
“우선 전술과 전략의 차이부터 알아보자.”
그렇게 평소처럼 수업을 했다.
어려운 내용이라도 아이들은 척척 대답을 했다. 특히 미래와 하솔이. 그래서 두 아이의 부모들은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솔의 아버지는 예정과 달리 오지 않았지만.
수업이 끝나자 교실 뒤에 서 있던 미진이 학부모들을 밖으로 이끌었다.
“다음은 외부 수업입니다. 학생들 환복해야 하니까 운동장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상호도 교실을 나갔다.
* * *
운동장으로 나오자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 한둘씩 인사를 건네 왔다. 상호는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한 명 한 명 악수를 했다.
대체로 평범하고 밝은 사람들이었다.
“우리 아이 친구들하고 잘 지내지요?”
따돌림을 걱정하는 이들은 아리의 부모.
“수업중에 시끄럽진 않나요?”
틱 증세를 걱정하는 이들은 단비의 부모.
“애가 말은 잘 듣습니까?”
말 잘 듣는지 걱정하는 이는 이서의 아버지.
“애랑 대화는 해 보셨어요?”
……이렇게 묻는 건, 가은의 아버지.
“예?”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전체적으로 삶의 여로에 지친 듯한 인상이었다. 웃어도 금세 사라지고, 언제나 모든 것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있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아이가 남자를 대하는 걸 싫어해서……. 혹시 선생님한테도 그렇습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말하면 다 듣습니다. 수업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잘 나왔고…….”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가은의 아버지가 쓰게 웃었다.
“애가 남자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마침 성적 잘 나온다는 남자 선생님이 있길래 보내 본 건데……. 괜찮은가 보네요.”
“저…….”
상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야기를 엿듣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가은이가 왜 남자를 싫어하는 건지…… 혹시 아세요?”
그 물음에 가은의 아버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애엄마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가은의 가족은 편부 가정.
상호는 차마 더 묻지 못했다.
그냥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할 뿐이었다.
“가은이랑 많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가은의 아버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상호도 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본관에서 아이들이 나오고 있었다. 상호는 그쪽을 바라보다가 가은과 눈이 마주쳤다.
가은은 늘 그렇듯 표독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친해지긴 힘들 것 같지만.’
좀 더 관심을 보여야겠다. 상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수업을 준비했다.